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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연 2017.06.05 10:55 글쓴이
  • 한기연 2017.06.05 10:57 글쓴이
  • 한기연 2017.06.05 10:58 글쓴이
  • 한기연 2017.06.13 11:49 글쓴이

    국민 56%, 동성애는 사랑의 한 형태

    한국갤럽조사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1505

  • 한기연 2017.06.14 17:01 글쓴이
  • 한기연 2017.08.18 19:00 글쓴이
  • 한기연 2017.09.19 15:40 글쓴이
  • 한기연 2017.09.22 11:56 글쓴이
  • 한기연 2017.09.25 09:24 글쓴이
  • 한기연 2017.09.30 09:44 글쓴이

    한국교회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여성신학자, 여성 기독교인들의 입장


    이대 기독교학과 박경미 교수


    최근 한국 교회의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정죄는 도를 넘었다. 주요 교단들이 성소수자들을 돌보는 여성 목회자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와 동성애 옹호자”의 소속 교단 신학대학 입학을 불허하고 교직원이 동성애를 옹호하고 가르칠 경우에는 총회에 회부하여 징계하겠다는 결의까지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개인의 성적 지향과 사상의 문제를 입학면접이나 신학대학 취업 시에 단답형으로 심문하고 그것이 입학과 취업의 당락에 영향을 끼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황제숭배나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방불케 하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이다. 이러한 기독교계의 현실을 의식한 듯 일부 정치인들까지 합세하여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정치인, 법관, 문화예술인을 공격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상의 자유라는 헌법적 기본권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약자들의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셨던 예수의 복음의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교회에 의해 복음이 짓밟히는 상황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행태는 상식과 지성을 가진 한국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일반 사회의 교양인들이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100 여 년 동안 성소수자들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성찰을 거쳐 오늘날에는 100 여개 국가들이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성소수자들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치사회문화적 풍토를 확립해 가고 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차별적 언어와 모욕적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서 폭력이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 교양과 상식을 저버린 것이고, 한국교회의 지성적 후진성과 몽매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이러한 편견과 독선적 언행은 성서와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과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 정치사회문화의 개혁과 진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 여성신학자들과 여성 기독교인들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성찰을 하고자 하며, 한국교회와 사회가 성소수자들을 하나님의 딸과 아들로서,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 존중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일 것을 기대하고 호소한다. 그리하여 성소수자들과 함께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더욱 기독교의 진리와 사랑을 실현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어가기를 바란다.

    1. 창조질서와 동성애에 대하여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한국교회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가족을 이루게 하셨으므로 남녀의 사랑은 창조 질서를 따르는 것이고 동성애는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차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지, 남자와 여자로만 창조된 것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한 것은 특정한 목적과 필요에 따라 이차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예수께서 열어놓은 부활의 생명세계는 창조의 뜻과 목적이 실현되는 세계다. 예수는 “부활 때에는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 22,30)고 했다. 하나님의 창조가 실현되고 완성되는 부활의 때에는 남녀의 구별과 차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의 구분과 차이는 궁극적인 것도 근본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인간을 여자와 남자로 서로 다르게 창조하셨는가? 여자와 남자의 서로 다름 속에서 서로 다름을 용납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서로 다름 속에서 일치와 사귐을 이루어가라고 하나님은 인간을 여자와 남자로 지은 것이다. 하나님은 서로 다르고 다양한 자연생명과 인간의 세계를 보고 기뻐하셨다. 서로 다르고 다양한 차이는 차별과 두려움의 근거가 아니라 기쁨과 고마움, 은총과 축복의 근거이다. 하나님은 자연생명과 인간을 획일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들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저마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생명과 인간들은 서로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은총과 축복으로 알고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여자와 남자로 창조한 것은 서로 다름 속에서 서로 다름을 넘어서 깊은 사귐과 하나됨을 이루어 생명과 정신의 깊이와 풍요로움에 이르게 하신 것이다. 서로 다른 것들의 차이와 낯섦 속에서 더욱 깊고 높은, 다양하고 풍부한 생명과 정신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나님은 인간을 여자와 남자로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로 된 것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것도, 궁극적인 목적도 아니며, 오히려 다름과 낯섦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향유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이다.

    2.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정죄와 비난에 대하여

    성서에는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이런 구절들은 고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편견과 오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성서는 인간과 인간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담은 책이지만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불완전한 생각과 지식을 통해 알려지고 표현되고 기록되었다. 시대와 지역의 종교 문화적 제약과 한계 속에서 성서의 저자들은 성서를 썼다. 따라서 성서에는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편견과 오류가 뒤섞여 있다. 우리는 성서에서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와 시대의 제약 속에 있는 인간의 편견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편견을 구별하지 못하면 자유롭고 책임적인 신앙인이 될 수 없다.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성서의 구절들은 시대와 지역의 종교 문화적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며,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성서구절들은 2~3천 년 전에 작성된 것이며, 그 시대 그 지역의 종교 문화적 편견과 오류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성서구절들을 내세워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2~3 천 년 전 고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편견과 오류를 21세기 인간과 사회에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롭고 성숙하고 책임적인 기독교 신앙인이 되려면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성서의 구절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성서구절에 매이고 집착하는 것은 현대인의 상식과 교양을 거스르는 것이다. 현대적 상식과 교양을 가진 민주시민들은 동성애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동성애자들과 평화롭게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성서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음을 말해준다. 동성애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3. 창조의 다양성과 동성애

    동성애는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것이 아니다. 많은 생명체들과 동물들도 동성애를 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 동성애는 존재했다. 생물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동성애는 다수는 아니라도 결코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언제나 자연생명들 속에, 그리고 인간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동성애는 있어왔다. 한국교회가 만일 동성애를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죄악으로 정죄한다면, 그것은 자연생명과 인간에게 동성애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연생명과 인간을 잘못 창조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자연만물과 생명과 인간정신에는 서로 비슷하고 같은 것끼리 가까이 하고 끌리는 성향이 있다. 비슷하고 같은 것끼리 사귀고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이다. 비슷하고 같은 성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 끌리고 좋아하는 것을 비난하고 정죄할 이유가 없다.

    자연생명세계와 인간세계에 동성애가 있다는 것은 남녀의 구분이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과 뜻을 위해서 생겨난 것임을 가리킨다. 동성애는 남녀의 사랑과는 다른 성적 사랑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동성애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 남녀의 구분을 넘어서, 그리고 남녀의 사랑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와 본분, 사명과 책임을 더욱 깊이 생각해보라는 요청이다. 동성애와 남녀의 사랑은 성적 사랑의 서로 다른 방식이다. 동성애와 남녀 사랑은 둘 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남녀의 사랑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면, 동성의 사랑도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남녀의 사랑과 동성의 사랑은 어느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일 뿐이다. 남녀의 사랑에서 벗어난 동성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이 더욱 깊고 다양하고 풍부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남녀의 사랑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기쁘고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르게, 다양하게 창조한 하나님의 세상에서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거부하고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비난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겸허하게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동성애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충실하여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4. 세리와 창녀의 친구, 성소수자의 친구

    예수는 당시 유대사회의 법체계에 의해 더러운 죄인이라고 낙인찍혔던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고, 그들을 하나님나라로 초대했다. 법에 의해 더러운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이웃으로 받아들였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죄인을 이웃으로 바꾸는 사랑의 기적을 일으켰다. 예수는 기존사회의 법과 통념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죄인으로 규정함으로써 다수성에 근거한 도덕적 우월감에 편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인간의 윤리의식이 지니는 상대성과 한계를 드러내고, 법과 윤리가 근거해야 할 근원적 토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시했다.

    당시 죄인을 대표하는 것은 “세리와 창녀”였다. 이들은 부도덕하고 더러운 죄인으로 비난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종교적으로 소외당했다. 이들과 가까이 하고 사귀는 것 자체가 부정하고 부도덕한 일로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는 기꺼이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지만, 예수는 세리와 창녀가 하나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고 했다. 소외당하고 정죄 받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의롭다고 여기는 이들 아흔 아홉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이 된다고 했다.(눅 15:7)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과 심정으로, 소외당하는 이들 자신의 심정과 눈으로 소외당하는 이들을 보고 사랑하고 가까이 했다. 예수는 그들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대상화하거나 타자로 보지 않고, 그들의 심정과 처지에서 그들의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으로 보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예수께서 오늘 살아 계시다면 예전에 세리와 창녀를 사랑하고 존중했듯이 동성애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의 성소수자들은 사회적, 도덕적으로 적극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주류사회와 다수의 편견과 차별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성소수자들을 예수처럼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성소수자들 자신의 심정과 처지에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소수자들 역시 자기 삶의 주체이며, 우리 시대의 일원이고 민주시민이다. 다른 사람이 그들의 삶과 권리를 재단하는 것은 동료시민에 대한 폭력이고 행패이다.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시민에 대한 민주시대의 예의이고 상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듯이, 오늘 우리는 성소수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 한기연 2017.12.01 19:16 글쓴이

    성소수자 문제, 이념적으로 진영화되는 것 우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302128035&code=100100

  • 한기연 2017.12.05 09:30 글쓴이

    너, 퀴어라고? 그게 뭐 어때

    "학생 성 권리 인식 경험 실태조사" 결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031526001&code=940100

  • 한기연 2017.12.12 09:34 글쓴이
  • 한기연 2017.12.18 18:13 글쓴이
  • 한기연 2017.12.20 11:00 글쓴이

    바리새인의 질문 / 김승섭 교수

    https://youtu.be/58J9Rx9q0xo

  • 한기연 2018.01.03 10:51 글쓴이

    부모에게 알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가 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022245005&code=940100

  • 한기연 2018.01.03 10:52 글쓴이

    내 딸은 동성애자, 그래도 괜찮아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2207

  • 한기연 2018.01.10 17:33 글쓴이

    혐오와 배제는 교회의 거룩성에 위배된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45

  • 한기연 2018.01.23 02:57 글쓴이

    혐오의 공포:  김승섭 교수와 홍성수 교수 대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121619001&code=940100

  • 한기연 2018.01.23 03:00 글쓴이
  • 한기연 2018.02.09 10:36 글쓴이
  • 한기연 2018.02.21 15:16 글쓴이
  • 한기연 2018.02.23 11:11 글쓴이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사람이 명백히 선택할 수 없는 성적인 성향(sexual orientation)과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성적인 행위(sexual behavior) 사이의 차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비난한 사람들을 이성애자들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이 자연에 반대로 행동해서, 그들에게는 낯선 것을 위해 그들의 정상적인 성적인 성향을 “버리고” “바꾸고” 한 것으로 말한 것이다. 바울은 성적인 성향이 어린 시절에 일찍이, 혹은 어떤 경우엔 태어나면서 아마도 유전학적으로 확정된 동성애자들에 대한 현대의 성 심리학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동성애자들에겐, 이성애적인 관계들을 갖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에게 낯선 것을 위해서,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성적인 성향을 “버리고” “바꾸고” 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에 역행하는 행동일 것이다.


    1. 구약성경 율법은 월경 기간 7일 동안에는 성교를 엄격히 금지해서(레위기 18:19; 15:19-24), 이를 어기는 자는 누구든지 “박멸” 혹은 “사람들로부터 끊어버림”을 당해야 했다(kareth, 레위기 18:29, 이 단어는 돌로 쳐 죽이기, 불태우기, 목매달기, 혹은 매질하거나 축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레위기 15:24은 이런 처벌을 생략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생각도 하지 않고, 때로는 월경기간 중에서 성교를 한다. 그들은 박멸시켜야 할까? 성경은 박멸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11. 모세 율법은 이혼을 허락했다(신명기 24:1-4). 예수는 정언명령으로 이혼을 금지한다(마가 10:1-12; 마태 19:9은 그 강도를 약화한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예수의 명령을 위반하고, 이혼을 해왔다. 그러면 왜 바로 이런 이혼자들이 자신은 세례, 교회입교, 성찬식, 그리고 목사안수 등에 법적으로 합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성애자들은 배척하는가? 특히 예수는 동성애를 언급한 적이 없지만 명백히 이혼은 정죄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무엇이 한 죄(동성애)는 다른 죄(이혼)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만들었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혼한 사람들을 목사 안수도 하고, 재혼도 하게 한다. 왜 동성애자들은 목사 안수나 결혼을 해선 안 되는가?

  • 한기연 2018.02.27 09:35 글쓴이
  • 한기연 2018.03.19 17:56 글쓴이
  • 한기연 2018.06.25 15:50 글쓴이

    혐오로 결집하는 한국 개신교회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50454.html?_fr=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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