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N IS NOT ALONE: A PHILOSOPHY OF RELIGION
by Abraham J. Heschel
\\\"나는 수백만의 동족들이 악의 위대한 영광을 위해 타 죽어간 불길 속에서 건짐받은 타다 남은 나무다.\\\"
하느님은 의미한다. 사람은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일시적인 것의 본질은 영원한 것임을, 순간은 무한한 모자이크 안에 있는 영원한 상임을, 거룩한 타자성 속에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음을.
옮긴이의 말
삼십대 중반, 목회 초년기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을 만나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돌아보면 저에게 참으로 행복한 하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또 부족한 실력으로 번역하면서, 아아, 사람이 하느님을 이렇게 믿을 수도 있구나 -- 홀로 감탄하던 날들이었습니다.
병든 개인주의가 온 인류를 공연한 경쟁과 다툼으로 몰아가는 오늘, 새로운 문명의 창출을 염원하는 독자라면 이 작은 책에서 많은 격려와 희망과 용기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절판된 지 오래되어 읽을 수 없었던 책을 이번에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다시 내어주신다니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더군다나, 김준우 박사가 친히 원문을 대조하여 잘못 번역한 부분과 미숙한 표현을 바로잡아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독자들을 위하여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2007년 1월 이현주
\\\\\\\"나는 수백만의 동족들이 악의 위대한
영광을 위해 타 죽어간 불길 속에서
건짐받은 타다 남은 나무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1907-1972
유다인 학자이자 히브리 사상가이며
온 인류를 사랑한 경건한 라삐로서,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저항운동의
지도자였고, 소련에 사는 유다인을 돕자고
세계에 호소한 최초의 유다인이었으며,
기독교-유다교의 대화를 재촉한 강력한
에큐메니스트였다.
\\\\\\\"내 중심된 관심사는 인간의 정황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190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1927-33년 독일의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7년 마르틴 부버로부터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레르 하우스의 후계자로 지명,
1937년 나찌의 폴란드 학살이 있기 두 달 전
영국으로 건너갔다.
1940년 미국 신시내티 헤브류 유니온대학에
초빙받아 5년간 철학과 라삐문학 강의,
1945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아메리카 유다신학교에서
신비주의와 유다 윤리를 가르쳤다.
1965-66년 미국 유니온신학교에서 최초로
해리 에머슨 포스딕 객원강좌를 맡았다.
미네소타, 아이오와, 스탠포드대학교 등에서도
강의했다.
1965년 봄 알라바마의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과 함께
민권행진을 하였다.
1972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二吾 이현주 목사는 {사람의 길 예수의 길},
{노자익}, {보라, 이 사람이로다}, {예수에게 도를 묻다} 등을
펴냈으며, 수많은 책을 번역했다.
||차례
옮긴이의 말
제1부 하느님 문제
제1장 표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감지 · 19
장엄함에 대한 인식· 표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감지·
표현 불가능한 것과의 만남· 본질로 들어가는 입구는 있는가·
영혼과 이성의 서로 다름
제2장 갑작스런 경이 · 27
이성과 놀람· 철학은 놀람으로부터· 이성 속의 신비·
표현되지 않는 경험· 이성의 뿌리
제3장 세계는 하나의 암시 · 35
인식적 통찰· 보편적인 지각· 존재의 암시성
제4장 존재하는 것은 나타내는 것 · 41
공경의 보편성· 공경, 하나의 지상명령· 생각 바깥에 있는
의미· 의미에 대한 기대와 확신· 과학, 끝없는 세계로 들어가
는 문· 모든 지식은 부분일 따름· 표현 불가능한 것은 환영(幻
影)인가
제5장 감상으로 얻는 지식 · 53
지각 끝에 오는 지각· 편리한 방편· 놀라고자 하는 의지· 객체로서의 세계· 세계는 인간의 자비에 달렸는가·
우리는 모든 사물을 노래한다
제6장 언어를 능가하는 물음 · 61
우리는 질문 방법을 모른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 아닌 나· 질문할 주체가 없다
제7장 철학자들의 하느님 · 69
사변의 문제로서의 하느님· 최고로 중요한 것은 질서인가· 종교철학
제8장 궁극적 질문 · 75
궁극적 놀람의 결과· 종교는 표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감각으
로부터 시작한다· 궁극적 질문· 질문하게 만드는 것·
사물들 너머· 현존하는 정신
제9장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 85
그 분의 현존에서 그분의 본질로· 신앙의 새벽· 놀람을 가지
고 무엇을 할 것인가· 누가 불가사의한 존재인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영혼을 찾아서· 찬양이라는 전제· 통찰력의 회복
인간에게 간청하는 하느님 · 강요된 관심
제10장 의심 · 101
제11장 신앙 · 107
신앙은 지름길이 아니다· 신앙으로 가는 길·
수줍어 홍조 띤 얼굴들· 신앙의 시련· 정신의 행위
제12장 신성(神性)이란 말의 의미 · 119
언설의 위태로움· 표현의 기준· 신성이란 말의 의미·
완전함이라는 속성· 하나의 우주라는 관념·
우주적 형제관계· 존재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
하나가 하느님은 아니다
제13장 한 분 하느님 · 135
다원론의 매력· 목적으로서의 일원· 다원성의 부정은 아니다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들어라, 이스라엘아· 하나는 독특함을
뜻한다· 하나는 유일을 뜻한다· 하나는 같음을 뜻한다·
선과 악· 그분은 무소부재· 하느님은 관심이다
제14장 하느님이 주체다 · 151
\\\\\\\'나\\\\\\\'는 하나의 \\\\\\\'그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전면이 따로
없다· 하느님이 인간을 봄· 하느님은 알 수 없는가·
우리의 지식이란 조심스런 표현이다· 지식이냐, 이해냐
제15장 하느님의 관심 · 163
존재의 문제· 생명은 관계다· 옮겨지는 관계· 세 차원·
자기 자신을 잊으라는 강요· 자유는 영적인 무아지경·
하느님의 관심· 계속되는 나타냄· 풍전등화인 문명·
연민· 진열과 위장
제16장 숨으시는 하느님 · 183
제17장 신앙을 넘어서 · 191
신앙의 위험· 믿는 것은 기억하는 것· 개인의 추억인 신앙·
신앙과 믿음· 신앙과 신조· 교리라는 우상숭배·
교리는 필요 없는가· 신앙과 이성· 우리에게 앎을 주소서·
신앙은 상호 작용이다· 종교는 내향성 이상이다
제2부 삶의 문제
제18장 요구의 문제 · 215
놀람에서 신심으로· 중성적인 것을 다루는 문제· 요구들의
경험· 인생: 요구들의 더미· 윤리의 부적합성· 삶의 절박한
위기· 요구들은 신성하지 않다· 누가 그에게 참으로 있어야
할 것들을 아는가· 옳은 요구와 그릇된 요구
제19장 실존의 의미 · 229
인간의 애용하는 무지· 실존의 의미· 궁극적인 추측· 인간은
자신의 목적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가· 욕구
의 자기멸절· 영속하는 것을 추구하여· 무기력한 갈망·
실존이란 무엇인가· 실존의 일시성· 실존의 연속성· 실존의
비밀· 존재함으로 순종한다· 최후의 목표· 시간과 영원
제20장 인간의 본질 · 249
인간의 특수성· 잠재성의 어둠 속에서· 하느님과 짐승 사이에
서· 우리의 요구들을 넘어서· 누가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
제21장 목적의 문제 · 261
생물학적 요구와 문화적 요구· 자기 표현에 관한 신화· 목적
과 요구· 범-심리학의 실수· 선 의식과 악 의식· 하느님의
비밀 무기· 삶은 입체적이다
제22장 종교란 무엇인가 · 273
어떻게 종교를 연구할 것인가· 종교는 마음의 작용인가·
마술과 종교· 종교의 객관적 면· 어중간은 없다·
성스러운 차원· 신앙심은 하나의 응답이다· 정신의 순수함
제23장 유다 종교에 관한 하나의 정의 · 287
하느님에게 사람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정념· \\\\\\\"하느님은 무엇
을 바라시는가\\\\\\\"· 종교적인 요구· 알려지지 않은 목적들 ·
목적을 요구로· 선행의 즐거움
제24장 위대한 동경 · 301
영적인 삶에 대한 동경· 고상한 향수· 끝없는 불만족·
간절한 바람
제25장 생활방식 · 311
무성음· 신격화도 아니고 천시도 아니고· 영과 육· 하느님과
이웃하여· 몸 속에 있는 성스러움· 희생 제물로 바치지 말고,
거룩하게 되어라· 미츠봇으로서의 요구· 질서 속에서 살아가
기· 인생의 모든 것· 평범한 것· 내적 권위
제26장 경건한 신앙인 · 325
경건이란 무엇인가· 분석 방법· 전인간의 태도· 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삶· 내적 익명· 습관은 아니다· 지혜와 경건·
신앙과 경건·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 사이에
있다· 하느님의 임재와 조화되는 삶· 실재하는 것들의 가치·
모든 실재에 대한 자세· 공경· 고마움· 일상적인 행위가 곧
모험이다· 책임· 영속하는 선물· 자기희생의 뜻· 거룩하신
분과의 인척관계· 하느님의 보물· 우리의 운명은 도와드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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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덧없는 욕망들을 품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삶이 매일의 작은 관심사들보다는 더 높은 것이며, 자기 도취의 안개를 날려보낼 때 우리의 것만은 아닌 기쁨이 솟아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를 속이는 만족감을 잃은 대신 우리의 가슴은, 우리의 머리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어떤 끝없는 동경에 취하고 만다.
유다인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사람이 우연히 빠져 들어가게 되고 도무지 충족될 수 없는 요구들을 채워보려는 헛된 노력에 있지 않고, 우리의 포부와 성취가 다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오는 불만족(discontent)을 지속시키고 부채질하는 데, 만족을 모르는 갈망을 지속시키고 부채질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유다이즘은 요구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요, 주관적인 관심이 아니라 객관적 요청이다. 유다이즘은 결코 흡족해 하지 말고, 만족하는 것을 경멸하며, 최상의 것을 갈망하고, 평상시에 무관심하던 대상들을 바르게 식별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인간 속에 끝없는 동경의 씨앗과, 성취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영적 요구들에 대한 요구를 심어 주고, 그에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는 만족하되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는 결코 만족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대부분의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예컨대, 남들의 재난 또는 궁핍에 무감각한 우리 자신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의 근원이다.
위에서 언급했거니와 행복은 따라서 만족이나 안심 혹은 우쭐한 기분 따위와 동의어가 아니다. 자기가 요구받고 있다는 확신, 여전히 앞에 있는 목적을 내다보는 것, 바로 그것이 행복의 본질이다. 자기 만족이 허무와 절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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