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9
1장 우리가 어떻게 바다를 마셔버릴 수 있었을까? / 15
2장 이제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 27
3장 인간은 핵심이 아니다 / 43
4장 당신이 원하는 형태로 당신 자신을 만들어라 / 63
5장 모든 인간 규칙을 내던지기 / 83
6장 영적 전쟁의 영역 / 107
부록 1: “기후 현실주의”라는 신화의 거짓말 – 앨 고어 / 127
부록 2: 기후비상사태와 대책 - 케빈 앤더슨 / 137
부록 3: 기후 임계점들(Tipping points)과 대책 - 팀 렌턴 / 149
부록 4: AMOC의 붕괴 위기와 그 영향 – 데이비드 프라트 / 159
부록 5: 식량 위기와 영국의 대책 – 폴 베렌스 / 185
부록 6: 기후 재앙의 경제적 피해와 대책 – 셸던 화이트하우스 / 193
부록 7: ≪태양이 온다≫(2025) 신간 대담 – 빌 매키븐 / 209
부록 8: 헌법적 책임 회피한 이재명 정부 2035 NDC – 플랜 1.5 / 239
부록 9: 탄소중립과 세 가지 희망 고문 - 김경식 / 243
부록 10: AI 혁명의 불확실한 미래와 경고 – 제프리 힌턴 / 247
부록 11: AI 혁신 시대의 인간에 대한 재정의 - 유발 하라리 / 285
부록 12: AI 시대의 실질적 위협과 대책 – 버니 샌더스 / 301
부록 13: ≪AI 제국≫(2025)과 민중의 저항 – 캐런 하오 / 309
부록 14: ≪골리앗의 저주≫(2025)와 불평등 – 루크 켐프 / 343
옮긴이의 말 -- 361
Adam Kirsch
애덤 커시(1976- )는 미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서 <월스트리트 저널> 문학과 사상 담당 수석 편집자이며, 시집 3권을 비롯하여 문학비평과 문화사에 관한 책 14권을 출판했다. 2023년에 출판한 이 책에 이어 On Settler Colonialism (2024)을 출판하여,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기후 붕괴가 초래한 안티휴머니즘과 AI 혁명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초래한 트랜스휴머니즘에 관한 여러 과학자와 사상가의 서로 반대되는 관점과 일치된 관점, 그리고 이런 사상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정리한 책이다. 인류의 산업문명과 생태계 파괴가 초래한 여섯 번째 대멸종 시대에 인간의 멸종을 환영하든, 아니면 슈퍼 AI가 만든 후계 종으로 대체될 것을 예상하든, 인류가 사라진 묵시종말론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이 책은 결론에서 생명 정치를 위한 “영적 전쟁”의 길을 제시한다.
기후변화 당사국총회를 30차례나 했지만,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가속화하고 있으며, 해결책으로 제시된 탄소 포집 저장 기술은 지연 작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화석연료를 태워 매일 히로시마 원폭 80만 개씩 폭발하는 열이 거의 대부분 바다에 흡수되어 이미 전 세계 산호초의 80%가 파괴된 현실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10〜20년 내에 지구의 열 수송 컨베이어벨트인 대서양 해류 순환(AMOC)의 붕괴 임계점을 넘게 되면, “동시다발적 식량 폭동”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첨단 GNR(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 기술과 인공지능이 결합되어 많은 편익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대다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이미 우크라니아 전쟁에서 사용 중인 스마트 무기는 이제 킬러로봇, 무인 전투기와 잠수함 같은 자율 무기체계의 대량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영장류 17종이 멸종한 것처럼, 슈퍼 AI는 지능이 낮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류 자체를 말살시킬 위험이 있다. 이 책은 우리 자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망상이 아닐 수 있는 길을 진지하게 묻는다.
서평
“활기차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신간.”
—New York Review of Books
“존경할 만한 간결함과 명료함으로, 이 짧은 책은 매우 도전적이고 불안감을 주는 몇 가지 사상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의 역사적 배경과 매력을 이해하며, 나아가 ‘미래에 대한 가능한 함의’까지 성찰한다는 스스로의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한다.”
—Los Angeles Review of Books
“간결하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인류에 대한 대반란』에서, 우리 시대의 애덤 커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의 종말을 예언하는 담론이 왜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적으로 등장해 왔는지를 설명하며, 이를 우리가 미래를 사유하는 방식을 지배하게 된 두 가지 더 큰 이데올로기—트랜스휴머니즘과 인류세의 안티휴머니즘—와 연결 짓는다.”
—New Criterion
“‘지구에서 인류의 지배가 끝난다는 생각’을 둘러싼 다양한 사상적 흐름을 다룬 강도 높은 연구서이다. … 전문가들의 관점에 더해 공상과학 영화와 문학에서 가져온 일화들이 어우러져, 다가올지도 모를 ‘심대한 문명적 변화들’을 매혹적으로 조망한다. 그 결과는 포스트휴먼 세계의 지형을 한눈에 보여주는 훌륭한 안내서다.”
—Publishers Weekly
“널리 존경받는 시인이자 비평가인 커시는, 인류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 문학적 사유의 최전선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가 그려내는 그림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WORLD magazine
“학문적이면서도 명료하고 간결한 여섯 개의 장을 통해,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서의 인간 생명의 종말이라는 진지한 가능성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탐구한다.”
—Philosophy Now
“이 책은 인간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없어도 세상이 더 나을지 같은 큰 질문을 아주 흥미롭게 파고드는 책이다. 글도 매우 아름답게 쓰여 있어서, 읽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답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다.”
—Ellen Ullman, Close to the Machine; Life in Code 저자
“우리는 생각이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애덤 커시가 소개하는 섬뜩한 아이디어들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쪽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이 인류가 멸종 직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희망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리콘밸리의 부자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돈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존재가 되길 꿈꾼다. 커시는 이 두 흐름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주 잘 설명한다. 그리고 시인 · 소설가 ·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왜 인간이 없는 세상이라는 기이하고 위험한 생각에 끌리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통찰력 있는 해설을 들려준다.”
—Damon Linker, The Theocons; The Religious Test 저자
이정배 교수의 서평
https://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726
책 속으로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인류세의 안티휴머니즘은 훨씬 더 심각한 생태 위기에 대해 훨씬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 관점은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파괴가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불가피하며,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우리가 스스로 내린 정당한 판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안티휴머니즘 사상가들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실제 멸종을 기대하며, 또 다른 이들은 설령 일부 인간이 다가오는 환경 종말을 살아남는다 해도 문명 전체는 파멸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서론에서)
반면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안티휴머니즘이 비판하는 바로 그 요소들, 즉 과학과 기술적 진보, 이성의 우월성을 오히려 찬양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은 호모 사피엔스가 더 이상 아닌 새로운 형태의 지적 존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서론에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여러 운동—기독교에서부터 공산주의까지—은 모두 결국 실망스러운 예언들(disappointed prophecies)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류에 대한 대반란은 아직 그런 거대한 운동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상이 그와 같은 실망스러운 예언들에 속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인 발전이며, 인간 존재의 본성과 목적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이다. (서론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 종까지 멸종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수십억 명이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은, 나무 개구리 같은 개별 종이 사라지는 이야기보다 사람들의 환경 미래에 대한 관심을 훨씬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래서 많은 기후 활동가는 대규모 죽음을 사실상 확정된 미래로 받아들인다. (1장에서)
우리 시대에, 인류세는 똑같이 어려운 도전을 제기한다. 만약 신의 죽음이 초인의 탄생을 요구했다면, 자연의 죽음은 포스트휴먼(posthuman)의 탄생을 요구한다. 포스트휴먼은 자연이 사라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존재다.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은 사상적 변화(우리가 무엇인지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와 기술적 변화(세상과 우리 자신의 몸을 실제로 변형시키는 방식) 둘 다를 불러일으킨다. (1장에서)
우리 시대에 인류는 인류세라는 어두운 산을 몽유병 환자처럼 내려가 더 포괄적인 파멸로 향하고 있다. 그 위험을 깨닫는 소수는 어떻게 꿈에 이끌린 다수를 경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레타 툰베리가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십대인 그녀가 이런 징벌적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 잘 알려진 인물들은 그런 분노를 품위 없거나 역효과를 낳을 행동으로 여겨 피하는 경향이 있다. (2장에서)
“우리는 성장하면서 호모 사피엔스의 고급 특성들에 경외심을 가지며 자라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것에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고 볼터는 말한다. 처음부터 “공격적 이기심”을 드러낸 종이, 심지어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그 착취를 멈출 수 있으리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볼터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제는 바꾸기에 너무 늦었고, 우리는 멈추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없다.” (2장에서)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미 인류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현대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우리에게 우리 조상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적 세계에 살도록 운명 지운 사실이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단지 시간표뿐이다. 우리는 매일, 인류의 종말이 아득하게 먼 미래, 마치 공룡 시대 만큼이나 먼 미래에 있다고 가정하고 살아간다. (3장에서)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번성하고 번식하라”는 명령이 사라지는 시점에, “종의 죄책감(species guilt)과 예비적 애도(preliminary mourning)”가 중심적인 인간 경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증가하는 여러 연구는 많은 젊은이가 기후 묵시적 종말이 올 것이라 믿는 세계에 아이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장에서)
만약 인류의 기술적 발전이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면, 인류세는 우리가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부서진 절벽 끝에 걸터앉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4장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이 21세기 초반에 급부상한 것이 인류세라는 개념이 등장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개념 모두 이런 직관을 공유한다. 즉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인간의 삶이 지속될 수 없으며, 우리의 세계가 근본적 변혁의 문턱에 서 있다는 직관이다. 이런 직관은 트랜스휴머니즘과 인류세가 모든 묵시종말적 사고(apocalyptic thinking)에 호소하도록 만든다. 이 사고는 현재를 역사의 획기적 전환점, 즉 가장 중요한 시대로 바라봄으로써 현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우리 종의 역사에서 결정적 순간에 서 있다”고 오드는 말한다. (4장에서)
2021년 말, 페이스북은 자신의 미래가 “메타버스”(metaverse)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바꿨다. “메타버스”에 대해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단지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경험하는 체현된 인터넷(an embodied internet)”이라고 설명한다. 메타버스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은 이미 다양한 수준의 대중성과 정교함 속에 존재하고 있다. (5장에서)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인공지능, 즉 독립적으로 의식을 지닌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데는 훨씬 가까이 와 있다. 보스트롬은 ≪슈퍼 인텔리전스≫(Superintelligence, 조성진 역, 2017)에서 “인간 수준의 기계 지능이 21세기 중반까지 개발될 가능성이 상당하며,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개발될 가능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5장에서)
인류세의 안티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양극화된 질문들을 제기한다. 그것들은 한 국가나 제도의 선함을 묻는 대신, 인류라는 종 자체의 선함과 인류 역사 전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사조가 쓰라린 상징적 투쟁을 만들어낼 잠재력은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난 사상가들은 자살, 낙태, 의학, 컴퓨터, 우주여행, 도시, 풍력발전소, 쓰레기 처리 등 수많은 주제에 대해 매우 이단적인 견해들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이 걸려 있는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 (6장에서)
전통주의자들과 포스트휴머니스트들 사이의 장기적인 문화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말하기 어렵다. 전자는 분명 수적으로 더 많지만, 후자는 지적, 재정적 자원 면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후자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도덕적 확신에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갈등에서 누가 패배자가 될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가치의 근원이 개별 인간이라는 구식 신념을 지닌 전통적 휴머니스트들이다. (6장에서)
온도와 습도가 계속 상승함에 따라, 현재 인간이 생리적으로 거주할 수 없다고 분류되는 지역들이 2070년까지 극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 광범위하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들을 덮치게 될 것입니다. 이 위기를 외면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일입니까? 수백만 명의 기후 난민만으로도 권위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가 얼마나 확산되었는지를 보십시오. 앞으로 25년 동안 10억에서 20억 명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케냐에는 80만 명의 난민이 있으며, 그중 30만 명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부록 1에서)
섭씨 3도와 4도 상승의 온난화 전망은 절대적으로 참담합니다. 우리는 그 위험을 전혀 감수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문명을 길러 온 어떤 안전지대도 훨씬 넘어서는,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기후입니다. 이러한 수준에서는 전례 없는 사회적 · 생태학적 붕괴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정학적 불안정은 격화될 것이며 군사적 긴장도 상승할 것입니다. 더 이상 ‘경제’라고 부를 만한 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GDP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적 붕괴의 문제입니다. (부록 2에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하여) 이 임계점을 넘을 경우 밀과 옥수수라는 두 가지 주요 주식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전 세계적으로 절반 이상 감소합니다. 이는 곧 전 지구적 식량 안보 위기를 의미합니다. (부록 3에서)
우리는 2023년에 이미 1.5도를 경험했고, 2024년에는 1.6도였으며, 올해 첫 11개월 평균은 1.48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3년 연속으로 연평균 1.5도를 넘는 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지점에 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충격입니다. 넷제로 2050은 전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리협정과 그에 기반한 체제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연구들을 보면, 1.5도 자체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새로운 논문들이 나오고 있고, 1.5도라는 수준은 주요 기후 시스템들의 붕괴를 결코 막아 주지 못합니다. (부록 4에서)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식료품 가격 상승이며, 이것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 추정에 따르면, 2023년에 나타난 식품 가격 상승의 약 3분의 1은 이제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일 수 없게 되면, 사회는 붕괴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반복해서 보아 왔습니다. (부록 5에서)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는 전 세계 은행 시스템을 점검하는 기구입니다. 그들이 경고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세계 은행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 왜냐하면 기후 위험 → 보험 붕괴 → 모기지 시장 실패 → 자산가치 폭락이라는 연쇄가 현실화되면, 은행의 대차대조표가 붕괴한다는 것입니다. 담보 가치가 사라지고, 담보인정비율(loan-to-value ratio) 때문에 은행이 지급불능이 되며, 이제 기저에 깔린 대기후 보험 붕괴 위로 은행 붕괴까지 겹쳐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유권자연맹이 하는 말도 아닙니다. 시에라클럽(Sierra Club)이 하는 말도 아닙니다. 국제 금융안정위원회가 하는 말입니다. (부록 6에서)
우리가 이미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엄청난 상실 때문에 슬픕니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멈추지’ 못합니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할 수 있는 최선은, 문명이 무릎이 꺾일 붕괴 지점까지는 가지 않도록 그 이전에서 멈추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직 가능한지 여부는 매우 열린 질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은 깊고도 큽니다. (부록 7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가 NDC를 수립할 재량은 1.5℃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되고, 이를 위반하면 기후 위기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가에 대해 손해배상과 같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밝혔다. 선형감축경로에 따라 설정된 현행 2030 NDC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은 비산유국 중에 꼴찌 수준으로 처참한 평가를 받고 있다. (부록 8에서)
2050 탄소중립이라는 대전제를 감안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목표는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감축목표의 핵심 수단 몇몇이 높은 확률로 2035년이든 2050년이든 상용화 가능성이 낮다는 데에 있다. 산업계와 정부, 그리고 심지어 일반인들에게도 희망고문을 주는 세 가지 감축 수단으로 탄소 포집·이용·저장(CCUS),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소환원제철(HRI)이 있다. (부록 9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도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얻었고, 그게 도움이 됐을 수 있죠. 하지만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훨씬 더 유능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이버 공격 같은 것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를 설계하는 데도요. 당연히 선거를 조작하기 위한 가짜 영상(fake videos)도 가능하고요. 개인 정보를 이용해서 그 사람에게 딱 분노하게 만들 요소만 골라 보내는, 표적을 삼은 가짜 영상도요. 그리고 자율 살상 무기(autonomous lethal weapons)도 있습니다. 큰 무기 판매 국가들은 모두 자율 살상 무기를 만들려고 바쁘죠.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이스라엘이 그럽니다. (부록 10에서)
그리고 인간 랍비들은 머지않아 유대 경전에 대한 AI의 압도적 숙련도와 경쟁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설령 인공지능이 공식적인 랍비 자격을 부여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일부 사람들, 심지어 일부 랍비들조차도 성서적 해석과 영감을 얻기 위해 “인공지능 랍비”(AI Rabbi)에게 의지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과는 매우 오래된 종교들 안에서 놀라운 새로운 전개가 나타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종교가 등장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부록 11에서)
지난 6월, 포드(Ford)의 CEO 짐 팔리(Jim Farley)는 AI가 향후 10년 안에 미국의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문자 그대로 절반을 없앨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일론 머스크 역시 올해 AI와 로봇공학의 결과로 “아마 우리 중 누구도 직업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직업을 갖고 싶다면 그것은 일종의 취미가 될 것입니다. AI와 로봇이 원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초 빌 게이츠(Bill Gates)는 AI로 인해 향후 10년 안에 제조, 배송, 농업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인간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부록 12에서)
OpenAI와 여러 다른 회사들이 방위산업으로 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돈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런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수백억 달러를 쓰고 있고, 그 비용을 회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 규모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산업과 시장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산 분야로 “밀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실리콘밸리가 “제국 구축”(empire building) 야망을 위해 미국 정부를 활용하는 모습도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제국 구축 야망을 위해 실리콘밸리를 활용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기술들이 민감한 군사 환경에서 사용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방위산업 계약을 따내고 기술을 군 인프라에 더 깊이 통합하려는 공격적 추진은 정말로 우려스럽습니다. (부록 13에서)
하지만 불평등은 제가 골리앗(Goliath)이라고 부르는—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든—오늘의 사회가 형성되는 데 핵심적이었습니다. 불평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평등은 사회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취약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부록 14에서)
단적으로 말해,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이 5%라면, 탑승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한 비상사태 현실에서, 2050년이 되기 전에 섭씨 2도 상승하여 기후 파국뿐 아니라 동시다발적 식량 폭동 같은 문명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설 확률은 “온실가스 최소 배출 시 25%가 넘으며, 현재처럼 배출하면 60%가 넘는다”(Stefan Rahmstorf). 특히 10〜20년 내에, 전 세계 “기후 충격”을 초래할 대서양 해류 순환(AMOC) 붕괴 임계점을 넘을 확률이 그렇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처럼 기온 상승이 계속되면, 80년 후에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4도 상승할 것이며, 지구상의 모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67m 상승할 것이다”(Tim Flannery 2015:56). (옮긴이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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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히로시마 원폭 80만 개씩 폭발하는 열이 지구에 추가되고 있는" 기후 붕괴와 대멸종 시대에 조만간 닥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담론은 단순히 "수렁에 빠졌다"고 할 정도가 아니라 헤어나올 길이 점점 아득하게 멀어지기 때문에 매우 참담하다. "넷제로(탄소중립)와 고통없는 녹색성장이라는, 점점 비현실적으로 치닫는 꿈이 있고, 반대쪽에는 종말, 폭력, 인류 멸종이라는 염세적 이야기가 있다"(벤 롤런스). UN은 2050년까지 넷제로를 이루도록 목표를 세웠고 각국이 탄소감축을 서약한 것처럼, 2030년까지 절반을 감축하면, 205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2.5도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산유국들은 2050년까지 매년 200억 톤씩 화석연료를 추가생산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UNEP, <2023년 (화석연료) 생산량 격차보고서>). 최근에 트럼프가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고 기후변화를 정부 문건에서 삭제했을 뿐 아니라,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 등에 관세 압력을 넣으면서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 LNG 가스 수입 물량을 대폭 늘리라는 요구였다. 그만큼 화석연료는 이윤이 넘쳐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파리협약 이후에도 세계의 대형은행들은 화석연료 회사들에 7조 달러를 대출해주었으며, 각국 정부 역시 2023년에 화석연료에 7조 달러에 달하는 보조비를 지급할 정도로 화석연료 생산과 사용은 자본주의 경제의 중심축이다. 한마디로 이미 그린란드 빙상 해빙 등 몇몇 임계점들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넘어선 마당에 2050년 넷제로의 꿈마저 비현실적인 꿈이 되었고, 조만간 모든 임계점들을 넘게 됨으로써 생태계의 전반적 붕괴와 문명의 붕괴는 더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기후학자들과 생태학자들은 25년 뒤, 50년 뒤, 100년 뒤를 예측하지만, 핵심은 인류가 결국 멸종하느냐, 아니면 멸종을 피할 것인가의 차이다. 2억5천만 년 전 페름기-트라이아스기(P-T) 대멸종 시대에는 지구 생명체의 90%가 멸종했는데, 당시보다 현재 기온상승 속도는 "100배 빠르다"는 것, 당시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해양 산성화 때문에 해양 생물의 96%가 멸종했는데, 당시의 해양 산성화 속도보다 지금의 해양 산성화 속도는 "10배 빠르다"는 것이 마이클 만의 계산이다(Our Fragile Moment, 2023, 77, 87, 89, 131). 그 후 6천5백만 년 전, 크기 6마일의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에 충돌하여 "히로시마 원폭 수십억 개의 영향"을 끼쳐 "1마일 높이의 쓰나미"가 발생하여 중생대 백악기에서 신생대로 바뀔 때(K-Pg), 공룡을 비롯해 모든 동물의 80%가 멸종했고, 해양 산성화로 해양생물의 절반이 멸종했는데, 당시 심해 온도가 2.8-3.9도 상승했고 그 결과 먹이사슬이 붕괴했다. 그 후 해양 산성화가 줄어들고 먹이사슬이 회복되는 데는 "수백 만 년이 걸렸다." 현재 바다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은 이처럼 "위험하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샐리 맥페이그, 김준우 역, <불타는 세상 속의 희망 그리스도>, 2023, 210).
문명의 요람이라고 부르는 메소포타미아의 최초 도시 문명인 수메르 문명과 아카드 제국, 인더스 문명, 그리스의 미노아 문명이 거의 4,200년 전에 모두 멸망한 것은 북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폭발로 인한 전 지구적 가뭄 때문이었다. 5세기 말 로마제국의 멸망, 9세기 마야 문명의 종말도 극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 부족 때문이었다(Michael E. Mann, Our Fragile Moment, New York, NY: Public Affairs, 2023, 32-40). 지금은 가뭄 외에도 사막화, 해양 산성화, 해수면 상승, 난민 증가, 삼림 파괴, 해류 순환 붕괴, 무기 발달로 인해 문명 붕괴를 더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멸종과 문명 붕괴 시대에 기독교인들의 과제는 존 캅 교수가 그의 마지막 책 <구원: 예수의 사명과 우리의 사명, 2020>에서 지적한 것처럼, 과연 "어떻게 하면 0.1%의 생명체라도 더 살아남도록 할 것인가?" 하는 과제다(김준우, "임박한 기후 파국과 인류의 마지막 혁명," 샐리 맥페이그, <불타는 세상 속의 희망 그리스도>, 2023).
공룡은 1억 5천만 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지만, 6,600만 년 전에 멸종되는 데는 단 하루 걸렸다고 한다. 소행성의 충돌로 인한 대멸종 사태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조차도 공룡을 구할 수 없었다. 지구 생태계의 변화는 그처럼 불가항력적인 위력이다.
지금은 인류가 화석연료를 무한정 사용해서 여섯 번째 대멸종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지금처럼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안전선 350 ppm을 훨씬 넘고 420 ppm을 넘을 정도로 높았던 것은 과거 1,400만 년 동안 유례가 없던 사태다. [사이테크+]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1천400만년 만에 최고 수준" | 연합뉴스
2030년에는 한반도의 5%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되며 [한반도가 물에 잠긴다] 가팔라지는 해수면 상승…“2030년 한반도 5% 침수” 예상
2050년에는 북대서양 해류순환이 붕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늦어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생존이 걸려 있는 매우 촉박한 시점이며,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1990년 대비 절반으로 줄여야만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촉박한 시점이다. 그러나 산유국들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매년 200억 톤씩 추가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이 가짜뉴스와 주술에 매몰되어 2년 반 동안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처럼, 트럼프 2기는 세상을 더욱 엉망진창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사기꾼 트럼프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그는 일반투표에서 겨우 1.6% 이겼을 따름이다)Donald Trump didn’t win by a historic landslide. It’s time to nip that lie in the bud | Mehdi Hasan | The Guardian
어쨌거나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혐오와 폭력을 증폭시킬 트럼프의 2기 집권 전략 <프로젝트 2025>에 맞서서 <프로젝트 2050 WnDEI>를 시작하는 이유다. 2024-05_Peoples-Guide-Pro-2025.pdf
고대 세계의 히타이트족처럼 막강했던 민족도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대인들이 2500여 년 동안 나라를 잃고도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랍비 조너선 색스는 (1) 생존하기 힘든 역경을 당해도 하나님을 탓하거나 (인신) 제물을 바쳐 신을 달래려 하지 말라, (2)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지 말라, (3) 25년 뒤를 예상하라, (4) 최악의 상태를 예상하라고 조언한다(Why Civilisations Die, TZAV)
프로젝트 2050의 기본 목표는 트럼프가 본격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한 DEI, 즉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의 문명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Awe&DEI로 수정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Awe, 즉 경외심이 만물에 대한 공경과 존중의 기초라고 믿기에 DEI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https://www.counterpunch.org/2025/02/17/trumps-reign-of-cruelty/
트럼프의 잔혹한 통치
헨리 지루(Henry Giroux)
신자유주의의 잔혹성 수용과 사회적 유대에 대한 공격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연대를 약화하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안된 정치적·교육적 무기이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의료, 교육, 복지 같은 공공기관의 자금을 삭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기관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며, 그것들을 필수적인 공공재가 아닌 부담으로 재구성한다.
신자유주의는 교육적·이념적 차원에서 무제한적 탐욕, 통제되지 않은 개인적 이익,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전혀 없는 정부 개념을 옹호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상호 돌봄을 나약함으로 간주하도록 가르치고, 경쟁만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믿게 만든다. 개인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도록 강요받을 때, 그들은 공동 책임 의식을 잃고, 결국 현대 정치의 특징이 된 잔혹성에 더욱 쉽게 영향을 받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결국 파시즘의 전조이며, 특히 그것이 더 이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힘으로 자신을 변호할 수 없을 때 더욱 그렇다. 신자유주의는 극단적 불평등을 조장하고,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시키며, 민주주의를 평등과 포용을 위한 독으로 간주함으로써 극단적 폭력과 잔혹성이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파시스트 정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장 본질적인 표현, 즉 ‘잔혹성의 문화’를 직시해야 한다. 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잔혹성은 인간의 몸과 정신에 새겨지며, 철저한 계산에 의해 생명을 파괴한다. 브래드 에반스(Brad Evans)는 폭력을 “객관적이고 무감각한 방식으로 연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폭력은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잔혹성의 문화는 체계적인 불의가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권력의 기제가 어떻게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디스토피아적 악몽으로 바꾸어 놓았는지도 드러낸다.
이러한 문화는 노동자 계층, 빈곤층, 유색인종 공동체 및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 희망,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박탈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미국 역사 속에서 잔혹성은 항상 존재해 왔지만, 트럼프의 두 번째 행정부는 이를 통치의 도구로 삼을 것이다. 사회적 유대를 더욱 황폐화시키고, 도덕적 연민을 말살하며, 집단적 저항을 억누를 것이다. 대신, 끊임없는 잔혹한 광경을 연출하며, 공포와 폭력을 수단이자 메시지로 삼는 ‘고통의 정치’를 조장할 것이다.
트럼피즘(Trumpism)은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본래 지닌 위계질서, 폐기성(disposability), 그리고 공포를 기반으로 한 논리의 필연적인 연장선이다. 공공재가 파괴됨에 따라,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가 말한 "사회국가(social state)에서 형벌국가(penal state)로의 전환"이 가속화된다. 이는 복지가 경찰력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연방 지원 프로그램의 축소,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이니셔티브에 대한 공격,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기관의 자금 삭감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들은 신자유주의의 ‘착취 전략’의 핵심 요소이다. 트럼프 시대에 잔혹성은 폭력을 조직하는 원리가 되며, 이는 시민권을 백인 기독교인만의 것으로 정의하고, 가자지구에서의 집단학살을 용인하며, 대규모 빈곤을 부추기고,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판카지 미슈라(Pankaj Mishra)는 오늘날 사회가 증오와 분노에 휩싸이며,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전능함에 대한 웅대한 환상으로의 후퇴"가 현재의 정치적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의 존재는 단순한 정치적 인물이 아니라, 증오와 잔혹성이 최고조에 달한 시대적 결과물이다.
트럼프의 차기 예산안은 이러한 잔혹성의 결정체가 될 것이다. 의료보조(Medicaid) 프로그램을 통한 의료 지원과 저소득층 식량 지원(SNAP) 접근성을 제한할 것이 확실하다. 또한, 저소득층 주택 지원, 직업 훈련, 아동 안전망 프로그램이 더욱 삭감될 예정이다. 그 목적은 억만장자들에게 4.5조 달러의 감세 혜택을 제공하고,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이러한 정책이 단순한 재정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빈곤층과 노동자 계층이 군사주의와 기업 복지를 위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아담 서버(Adam Serwer)는 미국 문화 전반에 걸쳐 ‘강경함의 이데올로기’가 전류처럼 흐르고 있으며, 고통이 단순히 용인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찬양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갱스터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질수록 정치의 본질은 단순히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말살되며, 인간 공동체의 근본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공공재, 사회적 권리, 그리고 세계 공동체(global commons)의 해방적 힘마저 지워지고 있다.
파시즘적 잔혹성과 민주주의의 붕괴
트럼프 시대의 정치적 문법은 잔혹성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책과 수사에서 단순한 반대자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며, 그들을 정치적·사회적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다. 마치 파시즘적 지도자들이 적을 악마화함으로써 공공의 분노를 선동했던 것처럼, 트럼프는 소수자, 난민, 빈곤층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러한 잔혹성은 공적 생활을 황폐화시키고, 시민적 연대를 파괴하며, 국가 폭력을 정상화한다. 공공 기관은 서서히 해체되며, 공교육, 의료 시스템, 노동권 보호 같은 필수적인 공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다. 이는 시민 사회 전체를 ‘잔혹한 기업 논리’에 종속시키고, 시장의 지배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파시스트적 잔혹성은 언제나 폭력을 필요로 한다. 미국에서 이것은 점점 더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그는 무슬림 입국 금지, 국경에서의 가족 분리 정책, 그리고 경찰력 강화를 통한 흑인 공동체 탄압을 정당화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국가 폭력은 불가피하며,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며, 법과 제도를 통해 국가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잔혹함은 포퓰리즘적 파시즘에서 단순한 부차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핵심 원리이다."
트럼프의 통치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다수의 국민을 취약한 상태로 몰아넣으며, 사회적 연대를 철저히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잔혹성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핵심 전략으로 활용한다.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와 잔혹성의 미화
트럼프주의는 단순한 보수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온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White Christian Nationalism)의 정치적 형태이다. 이 이념은 미국을 백인 기독교 국가로 규정하며,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이러한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와 결합시켜, 잔혹성을 신성한 것처럼 포장한다. 그는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을 ‘선택받은 지도자’로 제시하며, 비백인 이민자, 무슬림, LGBTQ+ 커뮤니티, 그리고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파시즘적 논리의 핵심 요소이다.
이러한 신념 체계는 단순한 정치적 선전이 아니다. 그것은 정책으로 이어진다. 트럼프는 반(反)이민 정책을 정당화하며, 국경 장벽 건설을 추진하고, 경찰과 군대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소수자 공동체를 위협한다. 또한, 사회적 안전망을 해체함으로써 빈곤층과 노동계급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잔혹성의 정당화: 감정의 정치학
파시즘적 정치에서는 잔혹성이 단순한 억압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지지자들에게 감정적 만족을 제공하는 일종의 스펙터클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 집회를 ‘잔혹한 카니발’로 만들었다. 그는 반대자를 조롱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언론과 지식인을 비웃는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 그의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감정적 해방’을 제공한다.
트럼프주의 지지자들에게 잔혹성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느껴온 좌절, 불안, 그리고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정치적 올바름(PC)과 자유주의적 가치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믿으며, 트럼프를 통해 잔혹성을 발산할 권리를 얻는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파시즘적 지도자들이 항상 대중의 불안과 좌절을 잔혹성으로 변환하는 방식을 사용해 왔음을 보여준다. 나치는 유대인을, 무솔리니는 공산주의자를, 트럼프는 이민자와 자유주의자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폭력을 정당화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과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가 현실화된다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는 사법부와 입법부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언론을 탄압하며, 선거 시스템을 조작하려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거 참여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트럼프주의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붕괴의 결과이며, 우리가 대응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잔혹성을 정상화하는 문화에 맞서 싸워야 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결론: 잔혹성이 아닌 연대의 정치로
트럼프 시대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어두운 순간 중 하나를 대표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도 독재와 억압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잔혹성에 맞서는 연대의 정치이며, 이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는 잔혹성의 문화를 거부하고, 연대와 정의의 정치를 재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