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심층연구 시리즈 06
메시지와 하나님 나라
예수와 바울의 혁명
리처드 A. 호슬리 & 닐 애셔 실버만 지음
김준우 옮김
왜 예수는 영혼 구원을 넘어 하나님 나라(제국) 운동을 벌였는가?
예수와 바울의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 프로그램들은 무엇이었는가?
왜 예수와 바울의 체제 변혁적인 영성은 오늘날 흔히 부정되는가?
왜 예수와 바울이 정조준한 성전신학과 제국신학은 아직 막강한가?
왜 복음주의적 교회는 흔히 극우 기독교의 온상으로 변질되는가?
예수의 충만한 기쁨, 유머, 잔치는 어떠한 믿음에 근거한 것인가?
슈바이처와 불트만의 예수 해석에서 치명적인 결점들은 무엇인가?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이었는가?
악당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 정의의 심판은 누가 할 것이었는가?
지배 없는 평등주의적인 하나님의 질서는 어떻게 구체화되었는가?
바울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제국의 용어와 이미지로 표현했는가?
교회는 어떻게 천민 계급까지 구원을 경험하는 모임이 되었는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교회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았는가?
왜 교회는 돌봄을 통한 사회변혁 대신 현상유지에 매몰되었는가?
제국의 폭력체제 아래 하나님 나라의 꿈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묵시종말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시대에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리처드 호슬리는 성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학자로서 매사추세츠 대학교 종교학 교수로 은퇴했으며, <예수운동>, <예수와 제국>, <서기관들의 반란>, <예수와 권세들>, <바울과 로마제국> 등 20여 권의 책을 발표했다. 닐 애셔 실버만은 성서 고고학자로서 매사추세츠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이며, <숨겨진 두루마리>, <이스라엘의 고고학> 등 여러 저작을 발표했다.
이 책은 예수와 바울의 메시지와 하나님 나라 운동이 어떻게 당시의 세계를 변혁시킨 혁명이었는지를 밝힌 책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생존을 위한 마을 갱신 운동이며 정치적 대응이었다는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책이며, 성서학자와 고고학자가 함께 현장감을 탁월하게 살려낸 책이다. 박탈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삶의 기쁨과 구원의 희망을 되찾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분석하여, 그 사회적 비전과 실천방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로마제국과 성전, 지주들의 중첩된 착취 구조 속에서 공동체는 해체되고 사람들은 각자도생에 내몰릴 때, 예수와 바울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회변혁 운동을 전개했으며, 또한 전쟁 이후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된 후에 복음서 기자들은 어떻게 그 운동을 이어갔는지를 해명한다. 이처럼 제국의 식민지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역량이 전혀 없었던 시대의 예수운동을 새롭게 해석한 이 책은 오늘날 민주공화국 체제 아래 우리의 정치적 역량이 매우 강해진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개인주의와 기복주의, 초자연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이 땅 위에 실현하기 위한 예수운동 본래의 사회변혁적 꿈을 구체화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더군다나 기후위기가 악화됨으로써 묵시종말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시대에, 복음의 실존적 차원과 세계적 차원을 동시에 회복할 방법을 모색하도록 요청한다.
목차
감사의 말씀 __ 7
프롤로그 ___ 9
1. 하늘의 비전 ___ 19
2. 갈릴리의 대대적인 변화 ___ 37
3. 신앙의 치유자 ___ 66
4. 권력과 공공질서 ___ 96
5. 말씀의 선포 ___ 127
6. 민족들의 부흥 ___ 163
7. 성도들의 모임 __ 205
8. 충돌하는 영들 __ 229
9. 하나님 나라의 돌풍 __ 257
10. 카이사르의 승리 __ 285
11. 믿음을 지키다 __ 310
옮긴이의 말 __ 322
연표 1: 나사렛 예수의 생애 __ 323
연표 2: 바울의 생애 __ 324
Bibliographical Notes / 327
Bibliography / 351
“강력하며 설득력 있는 이 책은 예수와 바울의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가 갈릴리의 마을들에서, 또한 로마제국의 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들이 함께 우주의 악과 제국의 악, 개인의 악에 맞섰던 힘을 잘 보여준다.”
—John Dominic Crossan, The Birth of Christianity 저자
“로마제국의 장대함과 권력, 헤롯 당시 예루살렘의 위풍, 갈릴리 지방 시골과 유다 지방 도시의 견디기 힘든 가난. 호슬리와 실버만은 독자들을 이끌고 이 모든 풍경 속을 걷는다. 고대의 본문뿐 아니라 고고학적 자료와 오늘날의 사회 이론에 근거하여 이렇듯 잃어버린 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기독교의 기원에 관해 흔히 알려진 이야기에 새로운 깊이와 드라마를 제공한다.”
—Paula Fredriksen, From Jesus to Christ 저자
옮긴이의 말
쉽게 희망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한국 사회가 한국 전쟁 이전의 적대적 대립으로 돌아갔다”(김상봉, 2024).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뿐 아니라 탁월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빈부격차는 더 악화되었고, 적대감은 매우 위태로운 상태다. 또 기후 파국이 빠르게 다가오지만,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80%는 기후위기를 전면 부인하는 트럼프를 두 차례나 지지했고, 한국의 극우 기독교인들도 복음을 빙자한다. “혁명이 불가능한”(한병철, 2024) 정신적 붕괴 앞에서 신학과 교회가 실패한 것은 무엇인가? 지난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에 맞서 하나님 나라 운동의 사회변혁적 꿈을 구체화할 정치 신학과 신앙의 정치적 선택을 위한 가치 교육에 실패한 것 같다.
이 책은 로마제국 치하에서 살았던 예수와 바울이 가리킨 이 땅 위의 하나님 나라 대신 왜 교회는 여전히 내면과 내세만 가리키고 있는지 묻는다. 예수와 바울이 각자도생의 길은 다름 아닌 파멸의 길이라는 확신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한 삶의 기쁨과 나눔과 용서, 사랑의 돌봄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과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하나님 나라는 오늘날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간절한지를 묻는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에 대한 초자연적인 묵시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세속화 시대이지만, 교회는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여전히 초자연주의적 사건으로 가르치며, 성 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어른들이 자녀 세대를 교회에서 쫓아내는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자기를 성찰하며, 주변 사람의 상처를 정성껏 보듬는지를 묻는다.*
프롤로그
예수를 찾아서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 있던 마을들, 빈민가, 시장의 돌무더기들로부터 솟아오르는 유령처럼, 예수와 바울, 그리고 처음 기독교인들의 세계가 되살아나고 있다. 고고학 발굴이 진행 중인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등 여러 곳에서 그 발굴자들과 신약성서 학자들은 무너진 기둥, 깨진 그릇, 녹슨 동전, 비석 조각들의 증거를 함께 연결시켜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에 관해 놀랄 만큼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새로운 모습은 우리가 잘 알고 있었던 예수에 관한 경건한 이미지들과 그의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갈릴리의 평화로운 언덕과 계곡들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모습이다. 오늘날 지중해 연안 도시들의 복잡한 거리 밑에 묻혀 있는 지층들에서, 또한 외딴곳 그 지명조차 발음하기 어려운 곳에 묻혀 있는 지층들에서, 국적과 종교적 신념도 서로 다른 고고학자들이 고대 사회의 유물들을 발굴하고 있는데, 고대 사회는 전례가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와 사치를 드러낼 뿐 아니라, 전례가 없을 정도의 고통과 굶주림, 노숙자들도 공존했다. 먼지가 일어나고, 발굴자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흙과 돌을 걷어내고, 고대 도시들과 마을들의 맨 아래층까지 걷어내는 작업을 통해, 고고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세계, 곧 농민들과 예언자들, 로마군대의 장교들과 카이사르의 세계를 되살려내고 있다. 바로 그 세계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도들”이라는 친밀한 공동체의 급진적 정치와 멤버십을 통해 가장 강력하게 외국의 통치자들의 권력에 저항하고, 그들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나갔던 것이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의 사회사(社會史)를 재구성하려는 것인데, 최근에 얻게 된 많은 증거들, 곧 고대 로마문화에 관한 최근 연구들과 지중해 전역에 걸친 고고학적 증거들을 토대로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매우 다른 학문적 관점에서 이런 재평가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호슬리(Richard Horsley)는 학자로서의 생애 대부분을 신약성경의 본문 연구, 유다 지역(Judea)의 역사, “역사적” 예수 연구에 헌신해왔던 사람이다. 그의 초기 저작들은 1세기 갈릴리에서의 예수의 대중 목회가 그 밖의 농민 저항운동들의 특성, 곧 세계적인 인류학자들이 관찰하고 묘사한 농민 저항운동들의 특성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지적한 저작들 가운데 하나다. 실버만(Neil Asher Silberman)은 근동지방 고고학에 얽힌 정치적, 종교적 및 이데올로기 문제들에 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사해 두루마리에 관한 그의 최근의 연구를 통해, 그는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묵시종말적 기대의 정치적 차원들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고 결론지었는데, 사해 두루마리의 경우에는 그 묵시종말적 기대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피눈물나는 현실에 맞서는 이데올로기적 저항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학자들이 무시했다고 보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접근방식의 공통적 주제는 고대 종교와 정치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올바로 파악하는 작업이다. 또한 기독교의 이 세상적인 기원을 추적하는 새로운 자료들을 이용하면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 예수, 사도 바울, 그리고 처음 기독교인들의 세계가 단순히 영적 전쟁터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재배치, 문화적인 충돌, 정치적 변화가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 속속들이 큰 영향을 미치던 세계였다는 사실을 밝힐 것이다.
초기의 로마제국은,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것이지만, 어떤 곳에서는 번쩍이는 도시들이 세워지던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이 굶주림에 죽어가던 사회였다. 일부 귀족들과 소수의 사회적 명망가들은 극도의 사치를 누렸지만, 도시와 시골의 빈민들로서는 기본 생필품조차도 구할 수 없는 세계였다. 대부호들과 야망에 가득 찬 정치가들은 무한정한 물질적 풍요와 기술적 진보에 대해 꿈꾸고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가정이 박살나고 범죄, 생계 수단의 상실, 질병으로 인한 악몽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마디로, 로마제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로서, 일부 사람들은 그런 사회경제적 변화들을 환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변화들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던 사회로서, 궁궐 속의 가장 부유한 귀족들로부터 가축을 몰고 산등성이를 옮겨 다니던 가장 가난한 목자들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던 세계였다.
이런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현대 학자들이 마침내 로마제국의 부자들과, 훨씬 더 많지만 대부분 가려져 있던 빈민들, 농민들, 평민들, 노예들 모두의 생활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황제의 통치를 받던 광활한 지역을 탐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갈릴리의 언덕들과 계곡들에서 진행된 최근의 발굴조사를 통해, 예수 당시 사람들이 매일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농촌 마을들과 시장들의 유물들을 찾아냈다. 갈릴리 바다 해변의 두꺼운 진흙층을 파헤침으로써 고고학자들은 2천 년 이상 동안 진흙 속에 묻혀 있던 고기잡이배의 나무들을 발굴해냈다. 그것은 어부 출신 제자들이었던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가 매일 고기잡이를 위해 사용했던 배가 어떤 종류였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마사다, 여리고, 예루살렘에 헤롯 대왕이 세운 멋진 왕궁들과 기념비들에서, 학자들은 유다 왕조의 위용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지중해 연안의 고대 항구 도시 가이사랴의 유적지에서는 악명 높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의 이름이 라틴어로 새겨진 돌 조각을 발견하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옛 도시 바로 남쪽에서 발견한 고대 무덤에서는, 고고학자들이 화려하게 꾸며진 납골함을 찾아냈는데, 거기에는 요셉 가야바(Joseph Caiaphas)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에 대한 재판을 지휘했던 대제사장이었다. 또한 극적인 고고학적 발견들을 통해 개인들뿐 아니라 사상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사해 지역의 광야 동굴들에서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는 고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된 수천 개의 낡은 문헌 단편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통치 아래 신음하면서 붙잡고 있었던 메시아에 대한 큰 기대를 보여주었다.
북쪽과 서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산과 계곡, 섬들에서, 고고학자들은 기독교 초기 역사의 매우 다른 측면들을 함께 연결시키기 시작했는데, 이런 연구는 그리스-로마 세계의 사회사와 서로 연결된다. 로마제국의 지방이었던 갈라디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소아시아 등지의 신전, 광장, 개인 주택의 유물들을 발굴함으로써, 사도 바울이 그의 동료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독특한 복음을 설교하고 그의 첫 “성도들의 모임”을 만들어나갔던 풍경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스라엘에서와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발견들의 일부는 신약성서에 언급된 인물들과 장소들에 대한 명확한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바울을 재판정으로 끌고 간 사람들을 향해 바울에게 죄가 없다고 선언했던 아가야의 총독 루시우스 갈리오(행 18:12-17)의 이름이 델피에서 발견된 명각(銘刻)에서 확인되었으며, 고린도와 에베소에서는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통해 바울과 그 동료들이 살았던 도시 환경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스와 소아시아 전역에서 개별적 발굴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과, 또한 그 지역 전반에 걸친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도시들과 정착촌들의 변화하는 성격들을 통해, 우리는 로마문명이 단순히 정적인 무대 배경 이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고학적인 발견들을 통해, 최초의 기독교가 당시의 구체적인 경제적 및 정치적 상황들에 대한 직접적이며 강력한 대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대의 고고학자들이 팀을 짜서 들판을 헤집고 다니고 초원을 가로지르며, 가시덤불을 헤치고 하수구를 뒤지면서, 한때 농가였거나 곡물창고였을 건물의 잔해 흔적을 찾아다니고, 질그릇 조각들이 흩어진 곳을 살피느라 고생한 결과, 우리는 로마제국의 사회사를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고대 도시들의 산업구역을 발굴하고, 고대 농경 형태를 확인하기 위해 식물 분석, 고대 농경지 사용방식에 대한 사진 촬영, 토양 분석과 수자원 이용방식에 대한 인공위성 촬영 등을 이용하여, 고고학자들은 이미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정복자들과 그들에게 예속된 민족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해 인식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출생지인 갈릴리에서는 폭넓은 조사를 통해, 많은 수의 언덕 위에 자리잡은 소규모 소박한 시골 마을들—그 마을들 가운데 일부는 기원전 1,200년에 형성되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곡물 재배와 목축업을 병행했다—이 예수 당시에 점차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유물들과 고대 자료들은 갈릴리에 로마의 통치가 확립되어 그 지역이 로마의 경제에 편입됨으로써 농경 형태에 중대한 변화가 초래했음을 보여준다. 남부 스페인, 사르디니아, 이탈리아, 달마티아, 그리스 본토, 크레테, 키프로스처럼, 로마제국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행해진 고고학적 발굴조사 역시 그와 비슷한 결론을 보여주었다. 각각의 새로운 지방에 로마의 군대, 관리들, 사업가들이 진출함으로써, 농경방식, 정착 형태, 지방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즉 예전에는 자율적인 지역으로서 전통적 농경방식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목표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목표였던 지역들이 점차 중앙집중화된 경제 속에 편입됨으로써, 일부 사람들은 엄청나게 풍요로워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부채와 몰락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스페인으로부터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가장 비옥한 지역들에서도, 예전의 독립적인 농경과 목축을 통한 생존방식은 점차 보다 효율적이며 이윤을 많이 남기는 농경방식으로 바뀜으로써, 독립적인 농민들은 훨씬 덜 필요하게 되었고, 훨씬 많은 사람들이 소작농과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촌락생활 방식이 붕괴되자, 시골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된 많은 사람들은 재빨리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의 번잡한 거리, 시장, 광장에는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매체들, 곧 고전적인 건축물, 조각품, 동전, 공공장소에 펼쳐진 멋진 풍경들을 통해 고향을 떠나 뿌리 뽑힌 대중들에게 새로운 로마질서(New Roman Order)가 자연스러운 것일 뿐 아니라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물론 여러 민족들, 자원들, 생활방식들이 제국에 편입된 것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모든 곳에서 똑같은 속도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다른 시대와 다른 지역에서의 기술과학적이며 경제적 혁명들, 즉 르네상스, 산업혁명, 심지어 오늘날의 정보시대와 탈산업화의 격변과 마찬가지로, 옛날 방식의 지혜, 기술, 작업 습관이 점차 그 가치를 잃게 되고, 제도적 구조조정, 노동력의 이주, 정치적 불안정, 시장의 동요와 같은 거대한 물결이 새로운 관계와 질서가 자리잡도록 이끌었다.
역사는 거의 언제나 도시를 건설하고 제국을 정복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지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새로운 문명이 초래한 사회적 계층에서 갑자기 맨 밑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었던 희망, 꿈, 환상(vision)을 우리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최초의 기독교가, 당시 거대한 정부의 관료주의가 보여준 몰인정과 교만에 대해 담대하게 도전한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당시의 관료주의는 불공평한 세금 징수, 냉소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기회”와 “자립” “개인적 성취”에 관해 설교했지만, 대다수 피지배계층 사람들에게는 그 세 가지 모두를 거부하는 체제였다. 기독교는 거대한 로마제국의 외진 곳, 가난에 찌든 곳에서 생겨났는데, 오늘날의 경제적 기준으로 보면, “만성적으로 저개발된” 지역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변경 지방에서 입에 풀칠하기에도 벅찬 농민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심지어 그 운동의 위대한 예언자가 사회적 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고 그의 설교 때문에 처형된 이후에도, 그의 추종자들은 그 저항의 복음을 시골로부터 도시로 전파했으며, 로마제국의 동쪽 변경으로부터 그 세계의 서쪽 끝까지 전파했다. 이 운동의 핵심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현실적으로 실현될 것에 대한 꿈(the dream of a down-to-earth Kingdom)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꿈은 이스라엘 땅에서 수백 년 전에 예언자들이 처음 선포하기 시작했던 꿈이었다. 이 꿈은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사 65:21-22)라는 꿈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기력에서 벗어날 것에 대한 공통된 열망이 새로운 수단의 종교적 표현, 조직, 상징, 예배의식을 낳았으며, 이것이 결국 기원후 100년을 전후하여 기독교라는 조직된 형태의 믿음과 예배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고대 세계가 끝난 후 그 어느 세대보다도 우리가 더욱 많이 초기 기독교의 세계에 관해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고린도, 안디옥, 예루살렘, 가버나움 등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선물로 간주하여, 신자들에게 교회 전통의 역사적 신빙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신약성경의 책들 속에 나오는 애매한 구절들을 분명하게 해명해주는 것으로 간주했다. 고고학을 통해 우리는 이제 1세기 갈릴리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을지, 소아시아의 다소(Tarsus)에서 총명한 젊은 학자로 성장한다는 것, 혹은 로마에서 크리스천 순교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점은 현재, 초기 기독교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에게 도전하는 문제가 단순히 예수와 사도들이 돌아다녔던 도시와 마을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를 갖고 복음서들과 서신들을 무비판적으로 예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추종자들과 공동식사를 할 때 사용했던 그릇들이 어떤 종류였으며, 그들이 바다와 강을 건널 때 이용했던 배가 어떤 종류였으며, 그들이 입었던 옷과 신었던 신발이 어떤 종류였는지를 단순히 고고학적으로 밝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초의 기독교 세계에 대한 진정한 역사적 접근방법은 예수의 기적들과 가르침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며, 또한 예수의 메시지가 그의 청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야만 하는 작업이다. 또한 그 역사적 방법은 바울의 광범위한 목회가 왜 로마제국에서 그런 특정한 도시들을 거쳐 여행하게 되었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초기 로마시대의 무너진 돌들과 묻혀 있던 유물들은 여러 차원의 의미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고고학적 발견들이 복음서 이야기들과 사도행전, 바울의 편지들의 역사적 진실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간주할 것이지만, 그런 고고학적 발견들은 또한 예수의 생애, 바울의 경력, 기독교의 등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핵심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지중해 동쪽 끝, 갈릴리라는 작은 지역에서 2천 년 전에 시작된 운동은 점차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이 운동은 서양 종교사에서 독특한 순간으로서 이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활동, 사상, 대응의 역사적 연속으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또한 그 운동 결과 자체가 인간 역사로서 서양세계의 사회적 진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운동으로서 이해될 수도 있다. 현대 학자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처음 기독교인들의 생활과 생활방식을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계속적인 고고학적 탐사를 통해 우리는 이제 로마제국 초기의 신전들, 승전을 기념하는 아치(arch), 튼튼한 수도교(aqueduct)와 같은 인상적인 위용 너머의 일상적 현실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며, 당시에 흔히 사람들의 기대를 뒤집어엎고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들을 해체시켜, 정신없이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부흥과 갱신(revival and renewal)의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가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됨으로써 이 운동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메시지와 조직은 바울과 그 밖의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과 그 기억을 세계에 널리 전파함으로써 더욱 발전할 것이었다. 바울과 사도들의 시대는 로마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그 지배권력이 그냥 보아 넘기지 않던 시대였지만, 바로 이것이 예수의 추종자들이 “성도들”의 공동체라는 네트워크를 만들 때 감행했던 일이다. 이제부터 1세기 기독교 운동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예수, 바울, 최초의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추구했던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여정(a spiritual journey)이며 동시에, 인간의 나라를 여전히 특징짓고 있는 무자비한 폭력, 불평등, 불의에 맞서 생겨난 정치적 대응(an evolving political response)으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