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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처드 로어
번역자 김준우
출판일 2020-01-30
가격 14000원
ISBN 978-89-97339-48-8 94340
  • 한기연 2020.01.23 09:18 글쓴이

    옮긴이의 말

     

     

     

    하느님의 철저한 사랑과 삶의 실패자들의 고통이 갖는 의미에 눈뜨게 해주는 로어 신부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으로 초대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절실했던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로, 월터 윙크가 『참사람: 예수와 사람의 아들 수수께끼』에서 강조한 것처럼, 참사람 예수는 유대인들이 기다려왔던 정치군사적 ‘메시아’가 결코 아니었으며, 또한 자신을 ‘메시아’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항상 “사람의 아들,” 곧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를 ‘메시아/그리스도’로 고백한 후, 그것이 정통이 되었다. 당시 자칭 메시아들은 모두 제국에 대한 폭력투쟁을 이끌었지만, 예수는 “폭력이 구원한다”는 메시아주의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로즈마리 류터 교수의 지적처럼 분명히 ‘안티-메시아’(anti-Messiah)였기 때문이다(2014:203).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인 “특수계시”를 강조했던 기존의 정통주의가 초래한 종교적 투사 때문이다. 예수가 메시아/그리스도가 됨으로써, 예수의 하느님 나라 가르침은 시공간을 초월하게 되었고 보편주의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오직 예수만 그리스도라고 고백함으로써, 예수는 하느님의 유일한 화육으로서 예배의 대상이 되어, 교회는 예수가 목숨 바쳐 살아낸 하느님 나라를 살아내기보다는, 예수 자신을 예배와 투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종교적 투사는 사람들의 온전한 성숙을 회피하는 핑계가 되기 때문에 예수가 그토록 경계했던 것이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보다는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춘 특수계시가 초래한 배타주의와 타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성 때문이다. 로날드 사이더가 『복음주의적 양심의 스캔들』에서 인용한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거듭났다”는 복음주의자들의 아내 구타와 인종차별은 비종교인들보다 훨씬 심하다(2005:17-29).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성소수자들과 난민들, 무슬림을 더욱 차별하며, 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 제정조차 전국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넷째로, 그리스도교의 독특성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리스도 신화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거의 전부 모방한 것이기에 그리스도교의 독특성과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또한 플라톤의 영향으로 탈육신 종교가 되어 육신, 물질, 여성, 자연을 혐오하며, 구원을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능력에 의존하도록 만들어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적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기초한 그리스도론만이 그리스도교의 독특성과 진정성을 줄 수 있다.

    다섯째로, 인류가 평화롭게 살아남기 위해서다. 전대미문의 기후위기 비상사태 속에서 다음 세대들의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단 10년 남았지만, 정통주의의 초자연적 권능을 지닌 전능하신 하느님(예컨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종교적/은유적 진리가 아니라 생물학적/산부인과적 진리로 간주하는 문자주의적인 의미에서)을 믿는 신자일수록 기후위기와 대멸종 사태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David. R. Griffin, 2019:318).

    특히 개신교인들의 배타주의적 혐오와 이념적인 차별은 언어폭력을 거쳐 실제 폭력 행동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성서 문자주의가 그 뿌리 가운데 하나다. 성서 안에 폭력과 복수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구원으로 선포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긴 세월 외국의 압제를 받아왔던 이스라엘 민족은 뼛속 깊이 복수심에 불타올랐고, 성서는 출애굽 사건 이후 구원을 “원수들에 대한 승리”로 선포했다. 그래서 크리스터 슈텐달은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경험하고 오늘날의 생태학적 재앙들을 인식하면서 구원을 ‘승리’ 대신에 ‘니르바나(nirvana)’로, 즉 하느님 안에서 에고가 소멸하고 하느님과 연합하는 신비가들의 구원 이해로 바꿀 것을 요청했다(Roots of Violence, 2016).

    또 하나의 뿌리는 종교인들이 쉽게 빠지는 자기 의로움이다. 세상에서 어둠과 악을 몰아내는 것을 사명으로 믿는 사람들의 열광주의는 특히 세상의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신념을 통해 극단주의 정치와 결합하여 무자비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히틀러의 인종청소와 마오쩌뚱의 “문화혁명,” 그리고 옴 진리교의 무차별적 학살은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종교인들이 폭력적 원리주의자들로 둔갑할 때, 미국의 대다수 백인 복음주의자들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극단주의 정치가를 뒷받침하게 된다. 경제적 불평등이 악화되고 기후재앙들이 악화될수록, 문명의 붕괴와 인류의 종말을 재촉하는 광신자들의 폭력을 더욱 경계해야만 한다(Robert Jay Lifton, Losing Reality, 2019).

    이 혐오와 죽임의 시대의 새로운 계시는 성소수자들과 난민들만이 아니라 삼라만상 전체가 하느님이 지으신 “한 피붙이”로서 모두가 “불가침의 권리”를 지닌 성스러운 존재라는 점이다. 극우파 민족주의라는 역사적 반동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큰 영적―도덕적 힘과 원칙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의 거룩함과 “한 피붙이”라는 보편주의뿐이다.

    예수와 바울로 모두 제국의 폭력, 지주들의 폭력, 성전의 폭력 속에서, 만물의 하느님은 폭력적이 아니라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인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로마의 제국신학자들 역시 “은총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것은 비너스 신, 승리의 여신, 전쟁의 신, 바다의 신, 군대의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는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 역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주장한 것은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주님,” “죄를 속량해주시는 분”으로 고백된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대한 믿음과 로마제국의 질서와 가치들에 대한 믿음이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다준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제국은 정의로운 세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정복한 지역의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면서 잔인하게 학살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다가 노예로 부렸다. 성전조차 거룩과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선택했던 것이다.

    인류문명은 이처럼 에고 중심적이며, 남과 비교하며 판단하고 경쟁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폭력적 문명이다. 따라서 이 책이 되살려내는 “잊혀졌던 실재,” 곧 그리스도라는 만물 속의 “신적 현존,” 그리고 관상 전통과 비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우리의 에고 중심적 삶에서 벗어나게 하며 모든 피조물의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되찾게 함으로써, 혐오와 폭력이 더욱 악화되는 묵시종말론적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처방전이다. 동시에 제도권 교회가 빠르게 몰락하는 시대에 화육 신비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위한 “대안적 정통주의”로서 우리가 되찾아야만 하는 “오래된 미래”라 하겠다.

  • 한기연 2020.01.24 19:01 글쓴이



    종교개혁이든 사상혁명이든 정치혁명이든 간에, 핵심은 인간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생명의 환희와 가능성을 억압하는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업이다. 자신과 현실에 대한 성찰과 경험을 통해서 단지 그 증상만이 아니라 그 모순의 뿌리까지 뽑아내고 새로운 대안적인 질서를 제시하는 과업이다.

    그러나 종교 특히 기독교는 최근 한 세대마다 절반씩 줄어들고 있는 현실인데, 가장 큰 이유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예수의 믿음"으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서 예수가 누리고 가르쳤던 기쁨, 즉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기쁨과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기쁨을 주지 못하며, 또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대신에 매우 폭력적인 종교가 된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것처럼,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대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 306-07). 핵심 원인은 나와 그것,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지 않았던 예수의 하느님 중심적이며 일치적인 사고방식,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 비이분법적 가르침을 배워 실천하기는커녕, 혐오와 독선, 폭력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와 사도 바울로에게 근본 모순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막강한 로마제국의 폭력과 지배계급의 착취, 그리고 그런 지배체제를 유지시켜주고 재생산하는 제국신학과 성전신학이었다. 따라서 제국신학과 성전신학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 절실하다. 즉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자아가 있고, 부인해야 하는 자아가 있다는 것(마가 8:35; 마태 10:39; 누가 9:24; 요한 12:25)을 아는 것이 절실하다. 소아에 대한 집착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며 나-그것, 우리-그들을 구별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유대교라는 성전중보체제의 율법적 정결례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조건적인 사랑, 즉 하느님은 율법을 잘 지키는 의로운 자들만 사랑하신다는 가르침과 하느님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단적 회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후천개벽과 미륵하생을 기다려야만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런 율법주의는 가난한 사람들과 죄인들을 차별하고 배제시키는 것이었기에, 예수와 바울로의 혁명은 하느님의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보편적 은총에 근거한 보편주의와 비폭력적 저항이었다. 즉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마태 5:44; 누가 6:27-28; 로마 12:14), “악한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대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마태 5:39; 로마 12:17; 12:21),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마태 5:44; 누가 6:27-28; 로마 13:8-10)이었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미 도래했기 때문에, 서로 섬김과 나눔을 통해 그 공동체적인 기쁨을 나누는 반제국적인 교회를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는 과업이었다. 이것은 미륵상생의 삶을 통한 후천개벽을 가르친 것이다. 윌리엄 슬로언 코핀 목사의 지적처럼,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의 위치는 무한 폭력에서부터 제한적 폭력("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거쳐 제한적 이웃 사랑에서 무제한적 사랑(원수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가르쳤다. 예수와 바울로에게는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에 근거해서 보편적인 이웃 사랑으로 성숙하는 길이 구조악에 집단적으로 대항하고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길이며 세계를 변혁시키는 교회의 사명이다.

     

    루터에게 근본 모순은 봉건주의체제로부터 초기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의 불안과 지배체제의 중추가 된 지역교회들의 바티칸 예속, 그리고 당시 면죄부 판매에서 드러난 가톨릭 교회의 타락이었다. 특히 신학적 모순은 “복음에 나타난 하느님의 의”(로마 1:16)를 스콜라신학의 영향으로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적극적인 의”로 해석한 것이었다. 우리들이 하느님을 믿고 율법을 지키는 것은 상을 받기 위해서이며 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얄팍한 계산까지 보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복음에는 하느님의 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가 나타나야만’ 우리가 구원을 기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루터는 결국 “하느님의 의”가 우리를 심판하는 “능동적 의”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수동적 의”라는 바울의 복음을 재발견했던 것이 종교개혁의 결정적인 방아쇠가 되었다. 토마스 뮌처의 농민혁명을 잔인하게 진압할 것을 요청한 이유는 그가 독일 제후들의 보호 아래 종교개혁을 이루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계급적 편파성만이 아니라 뮌처의 혁명적인 성령주의를 인정할 수 없었던 성서주의자였고 “두 왕국론자”였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에게 근본 모순은 자본주의사회의 무한정한 착취를 가능하게 만든 생산양식과 사유재산제도로 인한 노동자들의 소외였고, 그런 착취 구조를 지속시키며 재생산하는 종교와 철학 같은 상부구조였다. 해결책은 노동자들의 현실 인식과 계급투쟁을 마비시키는 “인민의 아편”인 그리스도교를 비판함으로써 무산자들의 폭력혁명을 통해 계급없는 사회를 성취하는 과제였다.

     

    그러나 이런 유물론적 세계관은 공산주의 사회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팽배하게 되었고, 그에 포섭된 교회 안에서는 소위 “성공과 번영의 신학”이 유행하게 되었다.

     

    토머스 머튼에게 근본 모순은 이런 유물론적 세계관과 관상 전통의 단절이 초래한 “거짓 자기”에 대한 일반적인 집착이었으며, 해결책은 관상을 통해 오직 하느님과만 일치하는 “참 자기”의 발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마르크스의 우상 가운데 하나였던 프로메테우스의 신학이 얼마나 어리석고 반그리스도교적인 우상숭배였는지를 자세하게 비판한 이유는 프로메테우스가 유물론적 세계관과 "거짓 자기"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판단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리처드 로어에게 근본 모순은 인간의 온전한 성숙을 방해하는 에고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사회적 종교적 모순들이다. (1) 예수는 율법과 도덕 중심의 종교를 은총과 잔치, 용서 중심의 종교로 바꾸었지만, 변화를 원하지 않는 우리의 에고, 항상 통제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에고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 부활을 자신의 영적인 여정으로 따르지 않고 예수를 단지 예배와 종교적 믿음의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에고에게 요구되는 것은 감사뿐이며 공동체적 구원이 아니라 개인 구원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모순, (2) 하느님과 일치한 예수의 비이분법적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체험과 실천의 화육(성육신) 종교가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탈육신 종교로 둔갑하여 물질, 육체, 자연, 여성을 혐오하는 모순, (3)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대부분 남들과 비교하고 판단하고 경쟁함으로써 폭력을 초래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중독된 현실, (4) 교회가 교리적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방어적-공격적 태도를 갖게 됨으로써, 내적인 체험과 삶을 통한 복음의 실천보다 논리와 이론 중심, 머리와 믿음 중심의 종교가 되었다는 모순이다.

    이런 모순에 대한 해결책은 관상의 비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끈질길 에고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며 잊혀졌던 실재인 보편적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 안에서 우리들의 참 자기를 발견하는 신앙적 기쁨과 그런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를 이룰 뿐 아니라 생태계에 대한 책임성을 촉구하는 과업이다.


    특히 나오미 오레스케스 교수가 예측하는 것처럼 2040년대부터 본격화될 북반구의 동시다발적인 식량폭동을 생각할 때, 기독교인들은 유대인 학살에 앞장선 SS대원들이나 서북청년단처럼 모두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으로서 학살의 주동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로어 신부가 역설하는 보편적 그리스도는 신비주의적 기독교가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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