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명 시리즈 001
내 몸과 영혼의 지혜
영혼과 사회 속의 악을 변혁시키는 가르침들
매튜 폭스 / 한성수 역/ 572쪽
Sins of the Spirit, Blessings of the Flesh
Lessons for Transforming Evil in Soul and Society
영적인 죄들이 육신의 죄들보다 더욱 끔찍하다.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아우슈비츠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엘리 위젤은 "살인자들과 어릿광대들의 세상"이라고 썼다. 그런 생지옥이 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히틀러가 무수한 죽음들 속에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멸시를 체득했던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온갖 독가스와 화염방사기가 처음 사용된 대량학살전이었다).
여전히 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는 절망적인 시대에, 이 책은 내 몸과 영혼이 왜 온 천하보다 귀한지를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왜 나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을 지극정성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자살율이 가장 높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잊고 살았던 눈물과 잔잔한 미소를 되찾게 해주며, 흙수저일지라도 금수저보다 훨씬 고귀한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깨우쳐준다.
이 책은 에덴동산처럼 창조의 신새벽을 살아낸 사람들의 놀라운 지혜를 깨우쳐준다.
지금이야말로 내 몸과 영혼이 사랑으로 다시 태어날 순간이다.
자본의 막강한 힘을 견디어내고 끝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내 몸과 영혼에 대한 찬미와 온전한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1. 책 소개
이 책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혼돈과 절망의 시대에 개인의 치유, 사회의 변혁, 문명의 전환이 “나 자신을 아는 일,” 특히 “내 몸과 영혼의 놀라운 축복들과 함께 죄악의 근원들을 아는 지혜”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앓고 있는 온갖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질병들과 중독, 상처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죄악에 관한 동서양의 지혜를 통합하여 몸과 영혼과 사회 속의 죄악의 뿌리를 끊어내고 생태문명적인 삶과 사회를 열기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제1부에서는 새로운 과학적 우주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몸, 우주의 몸, 지구의 몸의 놀라운 기적들과 축복들을 자세히 소개하여 내 몸을 지구의 몸과 우주의 몸으로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죄악을 논의할 맥락을 새롭게 설정한다. 제2부에서는 동서양의 신비가들과 신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인간의 죄악에 대해 설명한 것들을 요약해서 정리해준다. 제3부에서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생명의 에너지들에 관한 동양 전통(생명의 에너지가 모이는 장소인 일곱 차크라)과의 관계 속에서 전통적인 “일곱 가지 치명적인 영적 죄들”을 새롭게 해명한다. 기독교 전통에서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들은 자만, 분노, 질투, 탐욕, 폭식, 정욕, 나태였지만, 저자는 자기 파괴적인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 몸의 생명의 에너지들이 각각 어디에서 어떻게 그 방향을 잘못 잡아서 육체적인 질병과 영적인 죄에 빠지는지를 폭넓게 분석한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 몸과 사회의 암과 같은 환부(患部)를 샅샅이 비춰주어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하도록 안내할 뿐 아니라, 타고난 축복의 사랑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창조영성의 지혜와 전통적인 성례전들과 연결시키고 또한 우리들의 “잘못 지향된” 사랑을 정화할 수 있도록 특별한 수행법까지 제시한다.
2. 저자와 역자
매튜 폭스(1940- )는 20권이 넘는 저술들을 발표한 미국의 대표적인 생태문명 신학자이다. 그는 중세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여러 대학들에서 가르쳤다. 원죄와 구원 중심의 전통적 기독교를 원복과 창조영성 중심의 신비주의 기독교를 통해 그 균형을 맞추려고 동서양의 여러 종교전통들의 지혜와 현대과학의 우주론을 통합교육하는 “창조영성대학”을 설립했다. 지금은 대안교육 프로그램인 “조상 지혜 교육(A.W.E) 프로젝트”에 헌신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은 『원복』 , 『우주 그리스도의 도래』,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종교개혁』 등이 있다.
한성수 목사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감신대, 예일대학교신학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미국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한 후 은퇴했다. 『성경을 해방시켜라』, 『영생에 대한 새로운 전망』,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참사람: 예수와 사람의 아들 수수께끼』,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 『무신론자들의 망상』 등을 번역했다.
3. 목차
2016년판 저자 서문: “흑표범과 악의 정화” __ 11
2016년판 디팩 초프라의 서문 __ 40
서론: 보살핌이 필요한 인종 __ 47
제1부 내 몸의 축복들: 거룩한 몸 __ 75
제1장. 몸이란 말을 회복하기 __ 79
제2장. 우주의 몸 __ 108
제3장. 지구의 몸 __ 131
제4장. 인간의 몸 __ 149
제5장. 일곱 가지 차크라(Chakras): 우리 몸의 또 다른 축복 __ 185
제2부 죄의 진화: 죄와 그 의미 __ 219
제6장. 신비가들이 죄에 대해 말한 것:
루미, 카비르, 줄리안, 에카르트, 예수, 바울 __ 223
제7장. 신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죄의 의미 __ 248
제3부 영적인 죄들: 일곱 가지 차크라와 치명적인 죄들 __ 287
제8장. 뿌리(제1 차크라)에서 잘못 지향된 사랑: 나태와 오만 __ 295
제9장. 성(제2 차크라)에서 잘못 지향된 사랑: 통제, 중독, 정욕 __ 359
제10장. 창자(제3 차크라)에서 잘못 지향된 사랑: 희생자 되기, 분노, 폭력 __ 396
제11장. 심장(제4 차크라)에서 잘못 지향된 사랑: 두려움, 허영, 그리고 원한 __ 420
제12장. 목구멍(제5 차크라)에서 잘못 지향된 사랑: 식탐과 소비주의 __ 457
제13장. 이마(제6 차크라)에서 잘못 지향된 사랑: 합리주의, 환원주의, 비관주의 __ 484
제14장. 정수리(제7 차크라)에서 잘못 지향된 사랑: 시기심과 원한 __ 517
결론: 내 몸과 영혼의 축복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도덕적 파동을 일으키기 __ 535
부록 1: 종교적 인물로서의 히틀러 __ 551
부록 2: 영어에서 죄(Sin)의 동의어들 __ 564
부록 3: 죄의 진화에 대한 폴 리꾀르의 견해 __ 567
4. 서평
“『원복』(Original Blessing)의 저자 매튜 폭스는 일곱 가지 영적인 죄들에 관해 담대하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그의 위대한 지적인 용기, 창조성,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책이다.” — 클라리사 핀콜라 에스테스
“매튜 폭스는 노련한 진료 기술과 올바른 치료를 제공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가 분노, 죄책감, 자기 판단의 파편들로 어지럽혀진 탓에 지금은 그런 의사가 가장 필요한 때다. 그의 새로운 책을 적절하게 받아들이는 유일한 말은 감사함뿐이다.” — 디팩 초프라
5. 출판사 서평
모든 죄악의 뿌리를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이라고 불러왔고, 기독교에서는 “치명적인 일곱 가지 죄”라고 불러왔고, 힌두교에서는 “일곱 가지 차크라(에너지 포인트)”와 관련시켜 설명해왔다. 이 책은 죄악에 관한 동서양의 지혜를 통합시켜, 오늘날 그 죄악의 뿌리가 각각 우리 몸 속 어디에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지, 또한 그 독소들은 자본주의 문명 속에 살아가는 우리 영혼과 사회 속 어디에 깊이 스며들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지, 그 독소에서 벗어날 방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해명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기도생활이나 면벽수행을 통해 그 독소를 빼내는 방법보다는 오히려 “몸과 영혼에 관한 생태문명적인 해부학”을 통해 치유하고 변혁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신앙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번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삼라만상과의 상호 연결 속에서 찾는 데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이처럼 새로운 “축복의 몸학”에 근거한 “자기 몸과 영혼 사랑학”을 구성함으로써 영육이원론과 몸에 대한 경멸을 극복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가 가담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죄악의 뿌리를 깊이 파고들어 우리를 성찰과 참회, 새로운 탄생의 길로 인도한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축복의 몸학”이며 “영적 죄론”이다. 이 책은 “내 몸과 영혼의 지혜”를 배우지 못하면,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학살과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온갖 폭력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으며, 인류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함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6. 이 책에서 묻는 질문들
미물들조차 매일 새로워지건만, 왜 인간 사회만 날로 더욱 악해지는가?
사회적인 약자들을 무수히 살해하는 구조악의 근원적 뿌리는 무엇인가?
서로를 물어뜯거나 멸시하는 끔찍한 생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
억울하게 희생당한 자라는 정체성을 창조적으로 극복할 길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탐욕, 경쟁, 중독, 폭력을 극복할 길은 무엇인가?
좌절과 분노, 허영, 시기심, 원한, 나태, 슬픔, 절망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탐진치 삼독, 또는 일곱 가지 치명적 죄들은 어디에 똬리를 틀고 있는가?
단순한 생존과 안락을 넘어 삶에 대한 환희와 열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왜 악이 곪아터지는 우리의 몸과 내면의 삶을 탐구하지 않는가?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아무리 가난해도 경이감을 느끼며 살 수 있었는가?
사회 변혁을 위한 선한 에너지들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장애물인가?
내 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채 영혼구원과 사회 변혁이 가능한가?
마비된 부분과 원인들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참회나 치유가 가능한가?
왜 대다수 남자들은 이성애주의와 남근주의를 의식조차 못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영혼과 죄라는 말조차 따분해 할 정도로 왜소하게 되었는가?
파시즘체제가 또 다가오는데 우리가 히틀러로부터 배운 것은 무엇인가?
전쟁과 폭력의 씨앗들은 우리 몸 속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가?
내 몸과 영혼의 지혜를 체득해서 온전하게 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7. 책 속으로
' “우주 속에 있는 보통 물질의 원자 한 개 안에 10억 개의 광자(光子, light particles)가 있다.” 인간의 몸은 어마어마한 양의 빛을 저장하고 있다.
즉, 몸속에는 100조 개의 세포들이 있고, 그 한 세포마다 100조 개의 원자들이 있어서, 적어도 10의 28제곱 개 광자(光子, photon)를 저장한다. 이것은 1백만 와트(watt) 전등으로 3시간 동안 야구장을 조명 하기에 충분한 빛의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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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의 위기는 몸의 위기다. 해양(海洋)에서 17개의 어장(漁場)들이 14개로 줄어들었고, 해마다 지표면의 흙이 260억 톤씩 없어지고, 매 초당 1에이커 이상의 열대우림들이 사라지고, 해마다 2만6천 종 이상의 생물이 멸종하고, 우리가 먹는 음식의 감퇴된 생장력, 물의 오염, 면역 체계들의 감퇴 등, 이런 모든 것이 위기에 직면한 몸, 사라지는 몸, 그 능력을 상실해가는 몸, 공격을 받고 있는 몸에 대한 것이다. 거룩한 몸이 이제 희생의 제단 위에 새롭게 올려지고 있다.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무수한 생명체의 종자들 가운데 도대체 어떻게 한 종(種)에 불과한 우리 인간들이 그토록 많은 파괴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저지르는 대량파괴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 “죄악 저편으로” 넘어갈 길들이 있는가?... 우리의 무시무시한 경향성들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지구는 하나의 병원이 되어가고 있고, 우리 인간의 병원들은 천식(喘息), 당뇨병, 암, 영양부족의 희생자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지구 몸의 모습대로, 우리네 몸도 닮아간다. 인간중심주의가 만들어내는 나태함과 될 대로 되라지(吾不關焉) 하는 태도는 이를 뒤따르는 태만(omission)의 죄에 큰 책임이 있다. 오늘날 생태환경의 위기를 볼 때, 나태함의 죄는 사막의 수도사들에게 악덕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었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오늘날 죄에 대해 말할 필요는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과거에 그것에 대해 말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문화가 진화하듯, 죄도 진화한다. 우리가 저지르는 파괴와 소외, 자기혐오와 사회적 원한, 엄청난 불의의 한 가운데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능력도 발전한다. 우리는 죄에 대해 다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어떤 종류의 부정(denial)도 틀림없이 더욱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내듯이, 우리의 문제들을 다시 되풀이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단지 “사교적인 음주가[social drinker]”일뿐이라고 주장하는 알코올 중독자를 생각해보라. 그런 부정은 그 악습을 더욱 지속시킨다.)
2억 년 전에 우리의 작은 포유동물 선조들은 두뇌를 새로운 방식으로 발달시켰다. 밤에도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 두뇌의 냄새 맡는 부위가 커졌다. 체내 온도를 조절하는 일, 어버이가 새끼들을 돌보는 기간을 연장한 일, 그리고 대낮에 활동하기 위한 시력을 확장하는 일(공룡들이 사라지고 난 후), 이 모든 것들은 대뇌의 외부 혹은 대뇌피질(cerebrum)의 확대를 의미했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대뇌피질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기에, 포유류의 두뇌는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기관이 되었다. 지난 4백만 년 동안에 원인간(原人間, protohuman)의 뇌는 크기가 3배로 커졌다. 인간은 지금까지는 가장 큰 두뇌무게 대 몸무게의 비율을 갖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가령 사람의 크기만큼 큰 토끼라도, 그 토끼의 두뇌의 50배나 무겁고, 늑대의 10배, 원숭이의 3〜4배다.
오늘날 우리 세계 속에 “외로움이라는 유행병(epidemic of loneliness)”(Dean Ornish의 말)이 돌고 있다는 점은 나태함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또 다른 표지이다. 외로움은 우주론의 상실, 즉 우주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상실함을, 우리가 우주를 접촉하고 우주가 우리를 접촉하는 것을 상실함을 동반한다. 우주가 다만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돌보아주지도 않는 차디찬 기계라고 가르치는 문화 속에는 격리된 고립이 들어 있다. 그런 고립은 쉽게 폭력으로 인도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표현되기를 갈망하는 힘들을 우리가 갖고 있는데, 돌보아주지 않는 우주는 이런 힘들을 표현하도록 부드럽게 혹은 적절하게 혹은 잘 훈육된 방식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힘들은 자신들을 표면으로 강제로 밀어 내보낼 수밖에 없다.
불의는 나태함을 뒤따르는데, 열성이 없이는 우리가 투쟁할 에너지도 없고, 불굴의 인내심이 없이는 우리가 투쟁에서 견뎌낼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빙겐의 힐데가르트는 삶에서 진짜 죄는 “메말라 붙어버림(drying up)”이고 이런 메말라 붙어버림(그녀의 나태함에 대한 정의?)에서 될 대로 되라는 태도, 정의를 위한 열정의 결핍, 혹은 정말로 아무것에도 전혀 염려와 관심을 갖지 않음으로 내닫게 된다.
불행하게도 오랜 세월 동안, 원한을 품은 사람들은 (항상은 아니지만, 때로는 여자들도) 수동적-공격성을 지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신학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분노를 신뢰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분노는 죄악이다”라고 그들은 배웠다. 즉, 강력한 감정들과 열정들이 죄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가 진실이다. 미적지근한 자세가 죄요, 불의가 판치는 한 복판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죄다. 열정이 없는 것이 죄요, 우리의 사랑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죄다.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우리 시대는 도덕적 분노의 능력을 상실한 세대”라고 말한다.
어른들 자신들이 아직도 잠들어 있으면, 어떻게 젊은이들의 영적인 각성을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어른들에게 영적인 삶이 없거나 혹은 거의 없고, 제1, 제2, 제3 차크라들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그들에게 우주론도 없고 친밀함과 다정함의 역사도 없다면,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넘겨줄 수 있단 말인가?
소비주의에 입각한 경제체제를 지닌 문화의 진짜 하느님은 편안함이라는 신(the god of comfort)이다. 희생은 편안함보다 관대함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편안한 자들이여, 복 있을지어다”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고, 붓다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깊은 악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제도화된 기성종교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이 모든 것에서 교황의 역할에 대한 명백한 의문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로부터 차압한 재산, 그리고 수세기 동안 줄어들지 않고 있는 기독교의 반유태주의 이외에도, 다른 문제들이 표면에 떠오르고 있다. 그것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만일 기독교 교회들이 그들의 일을, 즉 의식들과 예전들과 설교를 통해 영혼의 불결함을 정화하는 일을 적절히 수행하였더라면, 이 세대 기독교인들이 히틀러의 이단(異端)들에 그토록 매혹을 당했을 것인가? 교회의 전례(典禮)들과 신학들의 실패, 그리고 신학교에서 목사들과 사제들을 훈련시켜 예언자들과 창조중심적 신비가들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함—이것이 바로 히틀러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 책을 받아 미친듯이 줄을 그어가며 3일에 걸쳐 완독하여 읽었습니다. 한 사람의 창조된 피조물로써, 또한 목회자로써 서울의 교회와 교회가 건립한 안동의 그리스도교 수도공동체를 오가며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편협한 신앙적-신학적 폭력"으로 가득차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했습니다. 매튜 폭스의 "원복"이라는 글을 읽을 때의 충격은 사실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매튜 폭스의 영성이 얼마나 하나님의 창조를 기쁘게 생각하며, 그 기쁨을 잃어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쁜 한 주간 이었습니다. 또한 "생태문명연구소"의 첫 출간물로서의 "내 몸과 영혼의 지혜"의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강북행복한교회 & 안동 그리스도교 수도원장 윤경선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