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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존 도미닉 크로산
번역자 김준우
출판일 2015-06-30
가격 15,000원
ISBN ISBN 978-89-97339-23-5 03230
  • 한기연 2015.06.15 10:42 글쓴이

    옮긴이의 말

     

     

    “탈육신”의 종교에서 “성육신”의 길로

     

     

     

     

    로널드 사이더는『복음주의자들의 양심의 스캔들』(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2005) 제1장에서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 지역의 “중생한 복음주의자들”이 가정폭력, 성적 방종, 이혼율, 인종차별에서 미국인 전체 평균보다 훨씬 폭력적/공격적이라는 갤럽조사 보고서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복음주의자들이 “주님을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존 도미닉 크로산은 『하나님과 제국』(God and Empire, 2007)에서, “폭력적인 그리스도교 성경에 기초한 폭력적인 그리스도교 안에서 어떻게 비폭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p. 237). 복음주의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비종교인들보다 더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이유는 성경 자체 안의 하나님의 폭력성 때문이기에, 하나님을 자신들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열렬하게 섬길수록 폭력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폭력의 원천이 사회적 편견과 불의, 비합리성, 경쟁적인 문화, 종교적 우월감과 배타성, 에고 중심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있다고 볼 때, 하나님의 폭력성을 극복하는 과제는 신학의 일차적 과제이다.

    크로산은 마커스 보그(1942-2015년)와 함께 쓴『마지막 일주일』(The Last Week, 2006, 오희천 역), 『첫 번째 크리스마스』(The First Christmas, 2007, 김준우 역), 『첫 번째 바울의 복음』(The First Paul, 2009, 김준우 역)에서, 예수와 바울이 제국과 종교의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으며, 인류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들, 특히 노예제도와 가부장제도, 위계질서, 승리를 통해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통념에 대해 어떻게 도전하고 비폭력적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했는가를 정리했다. 바울이 흔히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 했던 예수의 실천적인 메시지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타계적이며 믿음 중심의 종교로 만든 장본인으로 오해받는 이유는 “첫 번째 바울”의 급진적 메시지가 그가 죽은 후 그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쓴 “보수적 가짜 바울”과 “반동적인 안티 바울”을 통해 완전히 뒤집혀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치밀한 본문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이어서 『비유의 위력』(The Power of Parable, 2012, 김준우 역)에서는, 복음서 저자들이 어떻게 예수의 언어폭력을 점차 심해지도록 만들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예수의 메시지가 훼손된 과정을 밝혔다.

    예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저자가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성경 자체 속의 폭력성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그 자신이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또한 아메리카 제국의 시민으로서 제국의 폭력을 체험적으로 인식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제국들의 폭력에 대한 하나님의 반제국주의적 생명정의평화운동의 선언서(manifesto)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 이 책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기념비적인 역작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계획과 주장이 성경 안에서 계속해서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정되고 전복되는 과정을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규명했기 때문이다. 제국들과 문명의 폭력성이 성경의 하나님을 왜곡시킨 역사적 과정을 밝히고, 성경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참된 계시(급진적 분배정의를 통한 평화)와 거짓 계시(인간의 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보복과 폭력)를 분명히 분별함으로써 성경의 본래적인 참 하나님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사도들의 성스러운 과업을 계승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둘째로, 저자는 그리스도교 성경 전체의 규범과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규범과 기준은 묵시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비폭력 분배 정의의 하나님에 기초한 비폭력적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살아낸 역사적 예수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정체성을 규명한 동시에 유대교와의 차이점을 확고하게 천명했다는 점 때문이다. 『예수는 신화다』이후, 신화적 그리스도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셋째로, 고대의 많은 신들, 예를 들어, 마르둑, 제우스, 주피터, 호루스,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처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섬겨왔던 신들은 오늘날 모두 죽고 말았지만,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야훼 하나님은 아직 살아 계신 이유에 대해 저자는 야훼 하나님의 성격 자체를 사회정의와 평화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갈망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의 성격 자체 위에 근거하도록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성경 자체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전복시킨 거짓 계시들이 다름 아니라 인류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폭력과 보복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성경의 본래적 하나님의 성격을 분명히 증언할 뿐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정반대되는 모습—복음서들 속의 나귀를 탄 평화의 메시아와 요한계시록에서 군마를 타고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심판의 메시아—으로 인해 초래된 혼란과 두려움을 깨끗하게 정리해준 이 책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너무 늦게 나왔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매우 절실한 그리스도교 복음의 의미를 밝혀준다. 그리스도교의 일반적 복음 이해는 “4영리 교리”에 바탕을 둔 저 세상 천국의 보상이나, “성공과 번영의 복음”이 가르치는 “재물, 성공, 건강”이었지만, 이런 “공포의 심리학이나 욕심의 전술”(홍정수)이 가르친 “보상논리에 근거한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신학적으로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생명나무, 선악과나무, 원죄에 대한 문명사적인 해석도 독창적 해석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가르친 구원의 길이 세례자 요한과 달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상식적이며 인간과 하나님이 협력하는 구원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인간론이 “전적 타락”을 기초로 했으며, 구원론 역시 “오직 십자가 보혈의 은총”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인간은 자기 구원에서 철저히 무기력하며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크로산의 인간 이해와 구원 이해는 철저하게 성경 해석에 근거하여 “예수 르네상스”의 무대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예수 자신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벗어나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또한 “하나님의 처벌”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인간적 귀결”로 대체한 점이다. 자연재해와 사고들을 제외한 고난은 인간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처벌이 아니라 인간 행동의 귀결에 대해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 너무 늦기 전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인간이 변화할 가능성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의 양심과 능동적 책임성을 천명한 것으로서 “예수 르네상스”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시작된 “예수 르네상스”는 신화적 그리스도 대신에 인간 예수를 새롭게 찾았을 뿐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잠재능력과 능동적 책임성도 되찾을 수 있었다. 성경에서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던 돌부리들과 가시덤불들을 모두 뽑아낸 저자의 평생의 수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예수 르네상스의 남은 과제는 “너무 늦기 전에” 인간의 변화와 사회 변혁, 문명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과제이다. 더욱 악화되는 경제적 양극화와 기후붕괴 현실이 보여주듯이 지속 불가능한 인류문명이 자멸을 향해 돌진할수록, 온갖 폭력도 더욱 증폭되며 고통도 심해지고 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체념과 사회에 대한 냉소, 문명에 대한 절망도 깊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정신병자가 아니라 말짱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이 더욱 근본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지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교, 특히 성경문자주의의 불합리성과 몰상식과 폭력성을 제거할 신학적 근거가 확보된 상황에서, 이제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지난 반세기 동안 예수 연구는 크로산을 중심으로 한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해명이 엄청난 공헌을 했다. 제국의 폭력과 종교적 차별에 맞선 예수의 무차별적 사랑과 나눔, 섬김의 하나님 나라를 규명했다. 또한 월터 윙크가 『참사람: 예수와 사람의 아들 수수께끼』(한성수 역, 2014)를 통해 잘 정리해 주었듯이,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복음서 연구에 적용시킨 연구도 예수 자신에 대한 종교적 투사 대신에 참 자기를 발견함으로써 개성화를 도와준 예수의 자의식과 교육 방법론을 규명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고백되기 이전에 예수 자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성육신했는지를 밝혔다.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토머스 머튼이 그 맥을 되찾은 묵상전통이다. 토마스 키팅, 리처드 로어, 신시아 부르조 등이 이어간 이 전통을 통해 예수 연구와 신비주의가 만나, 하나님과 일치한 신비가 예수의 비이분법적 사고와 지혜를 중심으로 한 성육신의 길을 회복시켜주었다. 이런 흐름들 모두 전통적인 예수에 관한 종교 대신에 예수의 종교를 찾는 데 공헌했다.

    지난 2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가 예수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아서, 물질, 육신, 여성, 자연을 경멸하고, 말과 교리와 믿음만 앞세우며 공격적인 탈육신(excarnation)의 종교가 되었지만, 최근 예수 연구의 이런 세 가지 흐름은 서로 협력하여 예수의 본래적 성육신 종교를 회복하는 길을 제시했다. 신화적인 그리스도 믿기에서 사람의 아들 예수 살기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전능성이 부정되는 현실에서 예수 르네상스의 남은 과제는 결국 예수가 가르친 것처럼, 나의 에고(ego)만을 전부로 믿는 가짜 자기에서 벗어나 우주 안에서 진짜 자기를 찾고, 이미 우리들 속에 와 있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유와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일이다. 십자가 사건을 포함해서 “폭력이 구원한다”는 주장에 대해 철저히 반대한 “안티 메시아”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급진적 생명평화의 길은 점차 생지옥으로 변해가는 이 묵시적 세상에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다.*

    
  • 한기연 2015.06.29 12:02 글쓴이

    신간안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존 도미닉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년 6월 25일, 352쪽, 값 15,000원

     

    1.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참 계시와 인간의 거짓 계시를 구별한 혁명적 성경해석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80세에 탈고하여 금년에 원서가 출판된 이 책은 성경이 하나님의 급진적인 분배정의를 통한 평화 계획과 인류가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보복과 폭력, 승리를 통한 평화 계획이 계속해서 서로 충돌한 격투장으로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계획과 주장이 성경 자체 안에서 계속해서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정되고 전복되는 과정을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분석함으로써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계시(철저한 비폭력적 분배정의를 통한 평화)와 인류문명의 거짓 계시(보복과 폭력, 승리를 통한 평화)를 분명하게 구별한 혁명적인 책이다. 제국들과 문명의 폭력성이 성경의 하나님을 왜곡시킨 역사적 과정을 자세히 규명함으로써,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를 밝혀준다.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이 보복과 폭력의 하나님으로 둔갑한 과정, 진짜 예수와 진짜 바울이 가짜 예수와 가짜 바울로 둔갑한 과정을 밝혀, 예수와 바울이 가르친 참 하나님이 정말로 누구인지를 증언한다.

     

    2. 하나님의 심판과 보복을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재림 예수의 폭력적 심판과 보복을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창조와 안식일, 희년법을 통해 철저한 분배정의를 가르친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점차 보복하시는 하나님이 되어, 요한계시록에서는 온 세상을 피바다로 만드는 분이 되셨는가를 해명한다. 이처럼 비폭력적인 하나님과 폭력적인 하나님, 복음서들 속에 나오는 나귀를 탄 평화의 메시아와 계시록의 군마를 타고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심판의 메시아 가운데 누가 참 하나님이며 메시아인지를 밝힌다. 예수는 원수 사랑을 가르쳤지만, 도대체 왜 교회 역사는 피로 점철되었는지, 그리스도인들은 왜 흔히 폭력적이며 공격적인 사람들이 되는지, 그 이유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폭력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해독제이다.

     

    3. 약소민족이 겪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패배를 “하나님의 뜻/처벌”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주장하듯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이 “하나님의 뜻/처벌”인가? 저자는 하나님의 처벌은 없으며, 오직 인간 행동의 귀결만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재해와 사고를 제외한 모든 고통은 사필귀정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당시 알려진 세 대륙, 즉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이음매였다. 이스라엘은 제국들이 서로 패권경쟁을 하던 통로, 전쟁터, 각축장이었다. 당시 초강대국들이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에서 일어났고, 그 다음에는 서쪽과 동쪽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은 불가피했으며, 신명기 28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패배 역시 불가피했다... 그런 지리적 위치에 있는 민족이 군사적으로 패배한 것이 하나님의 처벌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과 신 모두에 대한 범죄행위이다”(168쪽).

     

    결국,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역사에 개입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아우슈비츠 이후 시대에, 또한 신화적이며 마술적인 그리스도의 구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탈기독교 시대에, 전통적인 “예수에 관한 종교”에서 벗어나 “예수의 종교”를 성경적으로 회복시킨 완결판이다.

    
  • 한기연 2015.07.03 11:02 글쓴이












    202-203쪽 다음과 같이 수정합니다.









    셋째 요소는 비폭력 저항이다. 이 두 저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의 반응이 비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이미 여인들과 아이들을 동반할 정도로 계산된 집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필로는 프톨레마이스에서 유대인들이 한 말, 즉 “우리는 당신들이 보는 것처럼 어떤 무기도 갖지 않았다”는 말에 주목한다(OEG 229). 티베리아스에서는 사람들이 “우리는 결코 싸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율법을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곧 죽겠다”(JA 18.271)라고 말했다.

    넷째 요소는 농민 파업이다. 두 저자들 모두 이것이 농민 파업을 통한 적극적 비폭력 저항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톨레마이스에서는 40년 4월말이나 5월초에 “밀과 다른 모든 곡식들의 추수기였다”(OEG 249). 티베리아스에서는 10월 또는 11월 초에 이르러, “파종기였는데 사람들이 50일 동안이나 일없이 (페트로니우스를) 기다렸기 때문에, 파종기를 놓칠 위험에 처했다”(JW 2.200). “그들은 계속해서 40일 동안 탄원했다. 더 나아가 당시는 파종기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밭까지 무시했다”(JA 18.272).

    
  • 한기연 2015.07.06 07:45 글쓴이

    130쪽 위에서 셋째 줄에 이 책에서는 -> 이 책(신명기)에서는

    다섯 째 줄에 이 책의 -> 이 책(신명기)의

  • 한기연 2015.07.06 07:48 글쓴이

    정오표


    30쪽 위에서 열째 줄 성경(Christian Bible)라는 -> )이라는...

    53쪽 위에서 열한 째 줄에  평면 -> 평민

    90쪽 아래서 다섯 째 줄에 모습니다 -> 모습이다.

    91쪽 위에서 열째 줄에 요소들 -> 요소를

    101쪽 위에서 셋째 줄에 미래 -> 미리

    150쪽 아래서 일곱째 줄에 속도 -> 연설

    236쪽 아래서 아홉째 줄에 다를 -> 다른

    266쪽 위에서 넷째 줄에 여신의 아들(영원한 존재)를 -> )을

  • 한기연 2015.09.03 08:48 글쓴이

    한기연 님에게 달린 댓글

    204쪽 중간에 "기원전 4년 후반기에"  - >  "기원전 37년 후반기에"로 바로잡습니다.

    저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을 번역하면서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 한기연 2015.07.10 09:58 글쓴이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생명들에게 철저하게 골고루 자신의 몫을 차지하도록 세상을 분배하셨지만,

    오늘날 인류 문명(시장자본주의가 만든 10:90의 세계)은 생명체들의 몫을 싹쓸이 독점하여 대량멸종시키면서도,

    여전히 성경의 하나님은 심판과 처벌과 폭력의 하나님이며,

    또한 동시에 무한한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첫째로, 성경의 하나님이 분배정의를 위한 우리 각자의 변화와 공동체의 사랑과 정의 투쟁을 얼마나 애타게 원하시는지를 외면하고 있으며,

    둘째로, 성경에 근거한 자신들의 전통적 믿음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가 아니라 제국들과 권력자들과 어용학자들이 주축이 된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성경 속의 거짓 계시들(약자들을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한 채찍과 당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으며,

    셋째로, 지금의 세계 현실이 지구 역사상 얼마나 절체절명의 순간인지도 외면하고 있으며,

    넷째로 분배정의를 통한 평화와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실현하기 위한 열심이 없으면 더 이상 성경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골수를 쪼갠다는 게 이런 철저한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약성서 학자 크로산의 그리스도교 문명 비판은 존 캅 교수의 "영적인 파산"보다 훨씬 철저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크로산이나 존 캅 교수의 그리스도교 문명 비판을 가르칠 확신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 한기연 2015.07.11 16:27 글쓴이

    크로산은 제국주의적 성서해석을 하고 있는가?

    ---------------------------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254페이지에 대한 추가 설명:


    ...

    네로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주적인 로마제국을 파멸시킬 것이며, 그 신격화된 로마 황제와 로마의 모든 제국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 일을 위해서 사용할 폭력은 로마제국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어떤 폭력보다도 훨씬 더 능가하는 폭력이다. 매우 끔찍하고, 또 끔찍하며, 또 끔찍한 역설적 방식으로, 요한계시록은 돌아오는 네로 황제와 그의 파르티아 군사력을, 돌아오는 그리스도와 그의 천군천사로 대체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최악의 명예훼손이며, 예수에 대한 최악의 중상모략이다. 이것은 또 성령에 대한 최악의 죄이기도 하다.*

    -----------


    *역자주: 저자는 여기서 요한계시록의 우주적 폭력성(후천개벽)의 역사적 모체를 추적하면서 신학적으로는 매우 비판적으로 읽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비폭력적 성격 자체를 가장 크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제국들의 지배(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계속 받게 된 이스라엘은 다윗 왕과 같은 정치-군사적 메시아가 나타나 원수들을 파멸시킬 것을 기다려왔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Satan)라고 믿게 된 사람들은 인간 메시아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올 천상적 메시아를 기다리게 되었다. (로마인들조차 “종말”에 대한 강박관념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은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pp. 83, 139를 보라).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도 세상은 겉보기에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패망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은 주된 이유였다.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초대 교회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을 통해 정치-군사적 메시아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믿게 되어, 비폭력적인 어린양 예수가 요한계시록 19장에서 폭력적인 도살자 예수로 그려지게 되었다. 이런 부정적 묵시론의 역사적 배경과 그 신학적 의미에 관해서는 그레고리 라일리, 『하느님의 강: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류를 찾아서』(박원일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5); 월터 윙크, 『참사람: 예수와 사람의 아들 수수께끼』(한성수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14), 특히 4부를 보라.

    -----------


    문제는  요한계시록에서 재림할 예수 그리스도가 막강한 천군천사의 폭력을 사용하여 복수해 줄 것을 믿고 현재의 고통을 견디어냈던 믿음에 대해  크로산은 "하나님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최악의 명예훼손이며, 예수에 대한 최악의 중상모략이다. 이것은 또 성령에 대한 최악의 죄이기도 하다"고 평가한 것은 우선 하나님의 절대적인 비폭력성을 주장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더군다나 강자들이 계시록에 근거해서 약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비폭력성을 강자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성경의 마땅한 결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 성도들이 얼마나 억울한 고통과 죽음을 겪었으면 그처럼 재림 예수 그리스도의 폭력을 통해서라도 이 땅에서 억울함을 풀고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했겠는가 하는 사실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 무엇보다 역사가에게 필요한 일이며 신학자의 균형감각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크로산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 백인이기에 이처럼 짓밟힌 사람들의 원한을 외면한 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비폭력만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제국주의 신학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에 대해 크로산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궁금하다. 

  • 한기연 2015.08.31 18:07 글쓴이



    기독교인들 대다수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벌과 심판과 폭력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크로산은 성경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처벌과 심판과 폭력은 하나님의 참된 계시가 아니라 인류문명과 제국들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처벌과 보복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평양이 불바다가 되어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사람들의 냉혹한 복수심처럼 말이다....
    이스라엘(또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불가피하게 제국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게 된 것을 하나님의 처벌과 심판으로 간주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며, 인간의 행동이 초래하는 귀결만 있다는 말이다.
    "만일 하나님의 처벌 같은 것이 없으며 오직 인간적 귀결만이 있다면, 하나님의 용서 같은 것도 없고 오직 인간의 변화의 가능성만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자비 같은 것도 없고 오직 너무 늦기 전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의 시간만이 있다."(176쪽)
    기후변화로 인해서 이미 기후난민이 100만 명이 넘고, 앞으로 35년 내에 한국의 쌀 자급률이 최상의 조건에서 51.8%에 불과하게 될 상황에서, 기독교가 계속해서 그런 전대미문의 재난들을 하나님의 심판과 처벌이라고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도록 가르칠 것인지, 아니면 크로산처럼 인간 행동의 귀결과 변화 가능성의 관점에서 가르칠 것인지에 따라서, 우리 자녀들의 운명과 한국교회의 미래는 결정될 것이라고 본다.
    

  • 한기연 2016.01.05 08:48 글쓴이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  청년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이생망,

    이생망의 결정적 시점은 대학교 재학/휴학기간이 24.4%, 취업준비 17.6%, 고등학교 재학기간 14.4%, 취업후 13.7%, 출생 7%

    중학교 재학기간 5.9%, 초등학교 재학 3.3%, 미취학 아동기 1.3%, 기타 10.2%란다.

    청년들의 끔찍한 절망은 분배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601032300525

  • 한기연 2016.01.05 08:53 글쓴이

    박 승 인터뷰 - 문제는 분배정의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601032136175&code=920100&med=khan


    존 웨슬리가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 조세정책을 통한 분배정의였지만, 감리교를 비롯해서 대다수 한국교회는 분배정의를 위한 조세개혁을 실현할 방법을 찾을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크로산의 성경해석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기연 2016.01.23 11:10 글쓴이

    역자주: 1세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가 더욱 간절했던 것은 600년 가까이 계속된 제국들의 정복, 로마와 헤롯 왕가,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 이에 편승한 성전체제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기원전 27년, 오랜 내전을 끝내고 로마제국을 세워 41년 동안 황제로 통치하다가 기원후 14년에 죽은 뒤 원로원이 그의 승천을 선포한 “신”, “신의 아들,”“구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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