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예수포럼'이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교회에서 열리고 있다. 어제는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이끌고 계신 도법 스님이 오셔서 '순례자 도법이 본 기독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해주셨다.



기독교 내부에 계신 분이 아닌지라 무언가 비판을 하기에는 조심스러워서 그러셨는지, 직접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무어라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자신도 현재 기독교의 문제점들을 알고는 있지만 직접 겪은 것은 아니고 들은 것들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것은 없겠다고 하셨고.
어제 들은 말씀 중 중요한 것 몇 가지.
1.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째는 문명사적 반성이고, 둘째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패거리 논리이다. 사람들이 앞에서 내에우는 명분은 정의니 자유니 해서 보편적이지만 실제 행동은 패거리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더라. 그리하여 대안 문명의 모색과 패거리 논리의 극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2. 그런데 똑같이 '생명'과 '평화'라는 말을 써도, 뜻하는 바가 제각기 다르더라. 기독교인과 불교인 사이에, 미국인과 이라크인 사이에, 등등. 그렇다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경전(성경, 불경) 또는 이론(진보적인 이론, 보수적인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사실과 진실' 이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지금 여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내 생명' 이다.
3. 그리고 이 '내 생명'을 생각해보면 내 생명과 네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물이 없으면 내가 살 수 없으므로 물을 사랑해야 내 생명을 사랑할 수 있다. 꿀벌이 없으면 곡식이 열매 맺을 수 없으므로 꿀벌과 내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예수의 말씀도 떠올릴 수 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 마음도 편하지 않으므로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닌 것이다. 고로 너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스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예수의 두 말씀이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4. 생명과 평화를 위한 삶 -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가져와야 한다.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언어로서 '생명'이 아닌 '내 생명'. 그것이 삶 속에서는 '단순 소박한 삶'과 '민주주의의 생활화'로 실천되어야 한다.
5. 종교계의 문제는 아쉽지만 종교계 스스로 풀 수 없는 상황이다. 종교도 사회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즉 지금 종교계의 문제는 '한국 사회 안에' 있는 종교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이 사회 안에서 종교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합리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진보,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보수 지식인들이 함께 만나서 원칙과 질서를 만들고 합의를 도출하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 사회의 질서를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듯이. 그러려면 대화의 영역을 키워야 하고 대화가 가능한 이들이 중심이 되고 커져야 한다. 종교 문제이든 사회 문제이든.
6. 불교계에게는 조선조 오백 년의 멍에가 크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불교인들은 사람들 사는 곳과 완전히 격리되어서 천민 취급을 받아왔고, 극소수의 천재적 엘리트들과 또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그 명맥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많은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사와 멀리, 사회와 멀리 떨어져 은둔하는 것이 순수한 불교라고 하는 잘못된 인식이 깊이 뿌리박히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의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서구 종교의 흥성 속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기에, 지금 불교인들이 갖고 있는 불만은 하루이틀의 것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7. 순례의 전통, 온갖 좋은 일을 행하고 다니는 '만행'의 전통은 누구나 어느 종교에서나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행하면 좋을 훌륭한 수행이자 실천 방법이다. 만약에 일 년에 한 달씩을 시간을 내어서 어느 곳으로든 순례를 행한다면? 대단한 변화가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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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삶의 태도, 갈등 일으켜”
“누구나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 추운 곳에선 따뜻한 옷을 입고 싶고, 더운 곳에선 시원한 옷을 입으려 한다. 그가 불자이건 기독교인이건 좌익이건 우익이건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다. 사람은 이렇게 크게 보면 다 같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것만 갖고 따진다.”
5년째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고 있는 도법(59·사진) 스님이 최근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불광출판사)을 펴냈다. 18일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애초 자신과 너무도 달라 보이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그답게 ‘대동소이론’을 펼쳤다. 그의 책은 대동소이한 생명에 대한 그의 존재론과 철학을 집대성한 것이다.
출가 뒤 10여년 간 선방에서 정진하다 불교 개혁과 생명운동에 뛰어든 그는 지금 ‘걷는 중’이다. 기존의 모든 벽을 넘어 온갖 사람, 온갖 생명들과 함께 어우러져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탁발하기 위해 생명평화탁발순례에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경기도를 걷고 있는 그는 오는 9월5일 서울 입성을 앞두고 있다. 절과 교회, 성당, 교당(원불교), 마을회관, 사랑채 등을 가리지 않고 하룻밤씩 머물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온 탁발순례는 바로 대동소이를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엊그제도 안양의 성당에서 잠을 잤어요. 새벽에 일어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상을 보면서 사형을 받은 이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 헌신적인 마음가짐과 태도야말로 <법화경>이 얘기하는 보살상과 일치하는 대승보살의 실천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수님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지요. 부처님도 ‘동체대비의 삶을 살라’고 했고, 천도교에선 ‘사람을 하늘로 인정하고 존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생명 평화의 가르침은 다름이 없지요.”
도법 스님은 “각 종교의 진리적 공통점을 찾아보면 십중팔구 같은데도, 갈등과 분열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가치관과 세계관이 정립되지 못하고, 진리를 왜곡시키는 이원론적, 이분법적 삶의 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가 찾은 공통의 가치가 ‘생명평화’다. 어느 종교인이건 어느 민족이건 할 것 없이 누구나 생명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데는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책 제목에서 내세운 ‘그물코’란 인드라망처럼 얽혀진 존재의 ‘관계’를 말한다. 그물코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는 생명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은 그의 인생이자 그의 사랑이 되었다.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은 그가 뙤약볕 속에서 세상의 생명들이 평화롭게 쉴 수 있도록 넓게 드리운 아름드리 나무 그늘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