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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샘지 원고 (특집주제: 어디로?)

 

네오파시즘과 "인민의 아편," 그리고 예수의 길

 

김준우(무지개신학연구소 소장)

 

 2020샘지원고.pdf

 

 

 

 

 

1. “적극적 사고대신에 방어적 비관주의

 

1) 이 글의 목적은 (1) 최근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트럼프를 지지한 7300만여 명)와 한국의 광복절 광화문 집회(전광훈의 대통령 탄핵 요구)가 잘 보여주었듯이,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힘겹게 성취한 상호존중과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관용과 같은 문화적 가치들뿐 아니라 선거 결과에 대한 수용과 같은 민주주의적 기본 질서까지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움직임에 대해 기이할 정도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지하는 것은 단순한 반이성주의를 넘어 네오파시즘의 광기라고 판단되기에 그 정치경제적 원인과 교회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지적하고, (2) 전대미문의 생태계 파괴로 인한 팬데믹과 식량폭동뿐 아니라 인류의 멸종까지 위협받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예상과 대응을 살펴보고, (3) 이런 묵시적 시대에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출애굽하는 과업에서 예수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나의 전제는 (1) 성경 안에는 두 가지 서로 투쟁하는 종교가 있는데, 하나는 기존질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자들의 종교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질서의 구조적 불의에 맞서 생명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민중들의 종교로서 각각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고 있다. (2) 100여 년 전에 절망적인 가난의 대물림과 극심한 양극화를 혁파하고 외국 자본주의 세력에 맞서 싸웠던 동학농민군과 의병 수만 명이 학살당해 한반도가 피에 물들어 갈 때, 교회 건축과 부흥회에 몰두했던 교회주의와 현실 도피적 저 세상주의라는 반역사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주장을 요약하면 (1) 국가가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획기적인 부의 재분배 정책보다는 경제성장과 기업 이윤을 우선시함으로써 극심한 양극화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초국적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민감한 현실은 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결과로 나타난 생존 위기와 절망, 사회적 불안이 네오파시즘의 온상이다. (2) 한국에서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만들어진 후, 신자유주의와 식민사관, 이승만 국부론 등, 국가주의와 반공주의를 표방했던 극우파 목사들뿐 아니라 대다수 목사들이 반동성애 운동과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 올인하는 것은 단순한 반지성주의나 이성애자의 우월감, 또는 혐오와 적대감에 기초한 근본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가 시장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social bases)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네오파시즘의 극단적인 악마화(“동성애자는 가정과 문명 파괴자”)와 희생양 찾기 행태이다. (3) 시장전체주의는 노동과 자원에 대한 무한약탈을 통한 자본의 무한축적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노동착취와 생태계 파괴를 멈출 가능성이 없고, 또한 21세기 네오파시즘은 20세기 초반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처럼, 현재 인류가 직면한 절박한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대신에 차별과 전쟁 같은 폭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생태대로 출애굽하기위해 우선 지구적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네오파시즘에 공헌하는 인민의 아편”(불량신학)을 폐기하고, 예수의 체제전복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계산된 전략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멸종까지 예상되는 묵시적 시대에는 생명계 전체를 파괴하는 경제정치 구조를 외면한 채 아무리 영혼 구원”(동학의 언어로, “당신이 하늘이요 내가 하늘이요”)을 선포해도 대규모 약탈과 파괴를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요한계시록(19)의 천년왕국 비전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기독교는 또다시 대규모 인종학살의 선봉에 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물두 살의 독실한 크리스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산업재해 사망자가 매일 평균 7명씩, 해마다 2천 명이 훨씬 넘는 열악한 노동현실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전태일 노동 3(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촛불정부에서마저 경제성장과 기업 이윤이라는 명분 때문에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특히 1997년 동남아 국가들과 한국의 연속적인 IMF 사태는 지구적 자본이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 극대화와 금융시장 개방을 목표로 얼마나 약탈적이며 국가경제를 파탄나게 하는지를 뼈아프게 깨우쳐주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생산과정과 금융에서 지구적 자본주의가 정착하기 시작한 이후 자본주의 국가는 초국적 기업과 금융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구조조정, 곧 개방화, 임금 삭감, 세금 감면, 탈규제, 긴축정책, 민영화, 노동 유연화 정책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모순을 갖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경제성장의 성과를 소수의 부자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보통 사람들과 노동자들이 혜택을 누리지 못함으로써 계층 간 불평등이 확대되고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었다(장하성, 2014: 19). 그 결과 OECD 국가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2018년 국민총소득 가운데 60% 이상은 금융자산의 이자와 이윤이며, 노동소득은 40%에 불과할 정도라서, 이처럼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은 기본소득제도와 획기적인 조세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3(고용, 임금, 분배 없는) 성장이 지속적으로 구조화될수록 양극화는 더욱 고착되어, 중산층의 하향 이동성은 가능하지만 하류층의 상향 이동성은 거의 불가능한 카스트 체제(Isabel Wilkerson, 2020)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자들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함해서 대다수의 삶이 불안하며 희망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이처럼 지구적 자본의 이윤 축적을 위해 대다수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함으로써 정부의 합법성이 도전받고 있는 현실에서 최근에 미국 대선이 확실하게 보여준 것은 지금 네오파시즘의 광풍이 얼마나 거세게 휘몰아 닥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다시 위대한 미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국가주의, 인종주의, 극단적인 남성주의적 권위주의와 호전성을 내세우고 온갖 가짜뉴스와 혐오와 차별과 폭력을 부추긴 트럼프에게 무조건 충성하기 위해 모든 과학적 상식, 생명의 존엄성, 개인의 자유와 생각,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성, 그리고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인 선거마저 불복하는 집단에 앞장선 게 바로 백인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분명히 증명했다. 팬데믹 사태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존중과 배려와 같은 문화적 가치들이 더욱 절실한 시기에 그런 가치들 자체를 전면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배층이 구조적 위기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에 기독교 우파들은 보다 필사적으로 안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며,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정권의 합법성이 도전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독일교회 목사들과 대학교수들이 앞장서서 지지했던 히틀러 시대보다 지금은, 미국 안보국(NSA)이 지구 위의 모든 통신을 감청하고 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처럼, 디지털과 통신혁명을 통해 사회적 감시와 통제 기술이 훨씬 발달하여 억압이 용이한 시대가 되었다. 네오파시즘의 광풍이 점차 더욱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지구의 대답은 기후위기의 최근 현실과 예측을 정리한 2050 거주불능 지구(데이비드 윌러스 웰즈, 김재경 역, 2020)이다. 북극과 그린란드 빙하의 임계점은 이미 지났다. 지구 산소의 2/3를 만들어내는 식물플랑크톤은 1950년 이후 40%가 줄었다(Bill McKibben, 2010: 251). 1970년 이후 세계 야생동물들은 68%가 감소했을 만큼 지구는 이미 생명체가 살기 힘든 행성이 되어버렸다(The Guardian, 2020/9/10). 기후위기를 안보 차원에서 다룬 책제목처럼 모든 지옥이 열리고 있다(All Hell Breaking Loose, 2019). 이런 점에서 2020년은 생태계 파괴로 인한 대파국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10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해다.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19 팬데믹도 생태계 파괴의 결과다. 포유동물과 조류에 있는 바이러스들 중에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가 50만 종류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며, 해마다 새로운 전염병이 다섯 가지씩 발생하는데 그 중 하나는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팬데믹의 위험성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The Guardian, 2020/10/29). 따라서 코로나 백신만큼 시급한 것은 생태계 파괴를 중단하는 것이다(2019년에 전 세계 열대우림은 매6초마다 축구장 크기만큼 파괴되었다). 최근 한국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선언했다. 당장 2030년까지 1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한 45% 줄여야 한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세계 2위를 기록했던 추세였다. 따라서 “2050년 탄소중립은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다. 이를 달성할 유일한 방법은 화석에너지와 육류의 생산과 수입과 소비에 높은 탄소세를 부과하여 그 세수를 모든 국민에게 배분하는 방법이다. “그린뉴딜조차 부의 재분배와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에너지 재벌들의 이익에 복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에어컨 사용과 육류소비를 늘리는 사람들은 이런 탄소감축 정책에 반대한다. 기후위기를 이슈로 내세워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과 트뤼도 총리마저 기후위기를 훨씬 악화시킨 이유는 탄소 감축정책에 반대한 성난 재벌들과 군중들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런 혁명적인 정책 전환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시민들의 혁명적인 의식 전환으로서, 성장주의와 소비주의, 각자도생이라는 집단최면에서 깨어나, 팬데믹 사태에 대응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들의 생존 위기에 대해 냉철하게 인식하기 위한 방어적 비관주의(줄리 노럼)를 회복하는 과제다. 전 세계적인 기후붕괴를 실감하고 있는 지금은 테크노피아에 대한 희망은 물론, 심지어 요술방망이 하느님(deus ex machina)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할 역사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4) 우리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예수의 복음과 부활은 지배체제를 찬양하는 획일적인 제국신학과 구원을 독점한 성전신학에 대한 체제전복적인 비판과 대안적인 질서, 즉 브로커 없는 하느님 나라 공동체 운동을 제시한 것이지만, 문자근본주의에 사로잡힌 대다수 보수적인 한국 교회는 비판정신과 저항정신을 말살하며, 다양성을 혐오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의 꿈과 정신을 죽이는 데 몰두해왔다. 이런 점에서 팬데믹 사태는 많은 교회가 지난 한 세기 동안의 경제성장과 소비주의 문화에 편승했을 뿐 아니라 냉혹한 시장전체주의체제를 보다 생명 중심적으로 바꾸는 지난한 정의 투쟁 대신에 세계 현실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며 생존의 고통과 불안을 잊게 만드는 인민의 아편판매상 역할을 해왔던 것에서 벗어날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다. 믿음을 실용주의로 대체하고 기도 대신 긍정적 태도를 강조한 적극적 사고복음을 이기주의로 둔갑시킨 삼박자 축복,” 그리고 구원을 유물론적 승리주의로 대체한 성공과 번영이란 결국 기독교에서 신비와 경외심을 없애버리고 에고의 욕망을 팽창시키는 솜사탕 복음으로 만들어버린 교회성장신학으로서, “무한생산, 무한경쟁, 무한소비, 무한성장에 근거해서 무한약탈과 무한축적을 도모한 자본가들을 정당화해주는 이데올로기이며, 예수의 믿음과 꿈과 정신을 죽이는 안티기독교적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은총의 기회다. 긍정신학은 지구와 생명계의 신비와 한계를 부인하고, 하느님마저 꼭두각시 인형(데이비슨 뢰어)으로 만들 뿐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정리해고로 쫓겨난 노동자들의 불행을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아름다움과 초월, 자비가 없는 세계를 완성하고 승인해왔기 때문이다(바바라 에런라이크, 전미영 역, 긍정의 배신, 205).

 

5) 그러나 인류가 초래한 여섯 번째 대멸종”(E. O. Wilson에 따르면, 자연적 멸종 속도보다 최소 100배 빠르다)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6,500만 년 동안 계속된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를 넘어 생태대를 향해 출애굽할 위대한 과업(토마스 베리)에 대한 우주적 사명감이 결여된 대다수 근본주의적 설교자들은 장차 온갖 살인적 환경 재난들이 경제 위기와 맞물려 증폭되고 식량폭동 같은 국가비상사태에 봉착하게 될 때, 또 다시 좌파 세력, 무슬림 난민들, 성소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혐오와 폭력과 전쟁을 찬양하거나, “초자연적 메시아에 의한 구원처럼 혹세무민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고 종교재판을 열어 중징계하며,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유일하게 반대하는 교회는 계몽주의 이전 시대의 미신과 억압과 불관용의 종교일 뿐 아니라, 2500년 전의 첫 번째 차축시대, 즉 부족주의에서 보편주의로, 지배층 중심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 중심으로 바뀐 차축시대 이전 단계에 여전히 머물고 있을 정도로 반역사적, 반지성적이며 또한 종교 전통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6)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지금의 세계 현실은 인간의 탐욕과 생명 경시, 특히 자본축적에 몰두하는 초국적 자본가 계급과 그들의 통제를 받는 국가 지배층, 매스컴과 보수 종교집단이 형성한 탐욕의 카르텔 구조가 전 지구적으로 작동하여 생명계 전체를 대량학살하여 인류의 멸종까지 예상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종교인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악령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교황이 회칙들을 통해 영적 전투를 위한 작전 계획서를 하달하는 가톨릭교회와 달리 개신교 목사들은 각자 지역 사단장으로서 대개 각개약진 하다가 흔히 총알받이가 되거나, 많은 경우 지배체제에 항복하여 그 이념적 포로가 된 줄도 모른 채 엔터테이너가 되는 현실이다. 지금의 전황은 어떠하며, 우리를 공격하는 영적 권세들은 무엇이며, 총사령관인 예수 그리스도의 작전 지침은 무엇이며,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 위해 폐기하거나 재고해야 할 불량신학은 무엇인가? 생태대로 출애굽하기 위해 신학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 것인가?

 

 

2. 현재의 전황: 자기파멸적 시장자본주의체제와 네오파시즘

 

1) 현재의 문명위기는 전 지구적 시장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위기다. 이 체제의 모순은 전쟁경제체제로 특징지어질 뿐 아니라 전대미문의 양극화와 생태계 파괴로 인한 전 지구적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인류의 최고 부자들 1%인 초국적 자본가 계급이 전 세계 재화의 50% 이상을 통제하며, 상위 20%95%의 재화를 통제한다. 하위 80%는 전 세계 재화의 5%에 의존하여 서로 아귀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9%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이다. 인류의 20억 명은 잉여인간으로 간주되는 실업상태이며, 13억 명은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약자들끼리 서로 적이 되어 싸우도록 만드는 구조다. 이런 전대미문의 양극화로 인해 과잉 생산된 상품이 소비되지 않게 되자,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전쟁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전 세계 군사비는 2001년 이후 100% 증가했으며, 2천 만 명이 지배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사설경찰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제국의 경제력은 항상 군사력이 뒷받침한다.

 

2) 반면에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 민영화, 노동 유연화 정책들로 인해서 생존 조건이 더욱 악화된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전 지구적 자본과 국가의 연맹체제에 맞서 저항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은 역사상 매우 약체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초국적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받는 정치권과 관료들은 민중의 저항에 대한 선제공격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스트 정권과 권위주의 정권뿐 아니라 군사주의를 강화하는 경찰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런 구조적 위기를 내외부의 적들(공산주의자, 난민, 성소수자)을 희생양으로 삼고 그들을 진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함으로써 세계 현실을 왜곡하며 망상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국가자본주의가 한창 발전했을 때 대두한 파시즘체제는 전쟁 산업을 통해 실업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일정 부분 혜택을 주었지만, 21세기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대두한 네오파시즘체제는 초국적 자본의 이윤에 복무하기 때문에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그런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없다. 따라서 파시즘의 임금은 전적으로 심리적인 것으로서, 달콤한 약속에 근거한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인 것이다(William Robinson, 2020: 119-120). 이처럼 극심한 불평등 구조를 지탱하는 수단은 속임수와 폭력이기 때문이다.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희생자들의 저항이 두려워 위험분자들로 비인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영국의 브렉시트, 유럽과 세계 곳곳(폴란드,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 그리스, 이스라엘, 터키, 필리핀, 브라질, 인도)에서 점차 네오파시스트 정당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이유다. 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은 매스컴과 영화산업, 그리고 보수적 종교 집단이다. 미 군사정보국은 할리우드 영화 800편과 100개의 TV 쇼에 자금을 지원하여, 폭력과 군사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3) 코로나 이후 시대는 많은 불확실성의 시대이지만 확실한 것은 팬데믹 사태를 통해 (1) 인류의 건강과 경제가 지구 생태계의 건강에 달려 있기 때문에 문명전환을 통한 가이아의 평화(pax Gaia)21세기의 절대명령이라는 점, (2)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1.2도 상승했고, 1.5도 상승까지 남은 탄소예산 350 기가톤이 앞으로 8년 내로 모두 소진될 것이기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툰드라 지방의 메탄가스의 기하급수적인 방출, 아마존의 계속적인 파괴, 바다의 산성화로 인해 바닷말(algae)과 식물성플랑크톤의 소멸로 인해 기후위기의 대파국이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에 거의 도달했다는 점, (3) 세계 경기침체로 인해 각국은 경기회복을 위해 환경 규제들을 철폐함으로써 생태계를 더욱 파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4)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와 대규모 군비축소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고수함으로써 국제적 분쟁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4) 기후위기(폭염, 가뭄, 태풍과 홍수, 병충해), 지하수 고갈,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2020년대부터 농업의 지역적 붕괴, 2040년대부터 초래될 것으로 예상하는 북반구 대도시들에서의 동시다발적 식량폭동”(Naomi Oreskes, 2014: 25)기후전쟁같은 최악의 결과 역시 현재로서는 피할 수 없다. 결국 대다수 기후학자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2100년경까지 최소 섭씨 4도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크며(Clive Hamilton, 2010: 191), “지구 산소의 2/3를 만들어내는 식물성플랑크톤을 2100년까지 대량으로 죽게 만들 것(Bill McKibben, 2019: 34)이기 때문에, 2050년에 90억 명에 도달할 인류는 점차 식량난과 산소 부족 사태로 인해 2100년경에는 “10억 명또는 “5억 명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는 상황도 피하기 어렵다. 2008년에는 37개 국가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났다. 곡물 자급률이 23%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식량자급을 위한 농민기본소득 제도와 고통을 함께 견딜 수 있는 생태적 공동체 건설이 필수적이다.

 

5) 결국 시장전체주의는 식량과 자원 독점을 통해 절대빈곤자들에 대한 종족학살(genocide), 대멸종으로 인한 종자학살(biocide), 기후붕괴로 인한 지구학살(geocide)의 자기 파괴적 체제라는 본질을 드러냈다. 8년 내로 탄소예산이 모두 소진되고 1.5도 상승하면 파국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점차 붕괴하는 과정(20206개 교단 교인수가 2011년 대비 15.8%, 139만여 명 감소) 속에서 비대면 예배와 헌금 감소로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예수나 바울조차 경험한 적이 없었던 대멸종 사태를 맞아 교회와 신학은 영적인 파산(존 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량신학을 폐기하고, “1% 99%의 투쟁(반다나 시바)과 연대하며, 최소한 30년 동안의 쓰라린 광야 길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3. 생태대로 출애굽하기 위해 폐기할 인민의 아편”(불량신학들)

 

1) 어디로 가야 하는가? 생태대로 출애굽하기 위한 문명전환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기업정치와 결탁한 종교적 우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과 관련해서, 모세와 예언자들, 그리고 예수가 가르친 직접종교(브로커 없이 하느님과 만남)가 아니라 은총의 수단들”(사제, 성소, 성일, 경전, 교리 등)을 절대화한 중보종교체제는 비판의 핵심이다. 예수는 중보종교체제를 반대해 처형당했지만, 예수의 무덤 위에 세워진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중보종교체제가 되어 직접종교를 가르친 신비주의자들을 처형한 탓이다(돈 큐핏).

 

2) 약탈적 자본주의로 인한 생지옥이 더욱 악화될수록 어떻게 기본 생필품조차 부족해도 삶의 의미를 찾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 신 부재의 절망적인 강제노동과 휴지와 식수도 없어 목이 말라 도랑물을 마시며 자주 설사를 하게 되어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짐승처럼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하느님이 우리들 가운데 거하시기에 적합한 거룩한 성소(25:8)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Melissa Raphael, 2003:82). 부헨발트 수용소 정문에 걸려 있었던 각자 운명대로(Jedem das Seine)라는 표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약육강식, 적자생존, 각자도생처럼 인간성을 박탈하는 구호였지만, “모든 유대인들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처럼, 집단적인 생존의 위기 속에서 우리의 인간다움과 존엄성을 지켜낼 복음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3) 주일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일수록 환경과 생태계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지배와 정복(1) 모델을 따르기 때문이다(Wesley Granberg-Michaeloson, 1987: 3). 또한 창조주 하느님의 전능성을 믿는 초자연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David. R. Griffin, 2019: 318). 생태계 붕괴 문제가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4) 생존 조건이 악화될수록 더욱 득세하는 신천지 같은 종파주의와 성서문자주의에 근거한 근본주의가 특히 위험한 것은 그 폭력성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수많은 전쟁과 학살에 앞장섰다. 특히 나치 시대의 SS대원들, 한국전쟁 당시 서북청년단, 남미 군사독재 치하의 학살단 거의 모두 세례 받은 기독교인들이었다. 히틀러 등장 당시 독일 인구의 97%가 개신교인들이었으며, 그 지지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대학교수들과 개신교 목사들이었다. 근본주의의 위험성을 특히 경계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치와 탈레반과 ISIS 집단뿐 아니라 대다수 백인 복음주의자들처럼 영적인 순수함을 강조하는 종교적 열심당원들(zealots)은 절대악이 초래한 위기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흔히 묵시론에 근거해서) 매우 위험한 극단주의 정치(특히 전체주의와 결합한 cultism)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Robert Lifton, 2019).

 

5) 생존 위기 앞에서 기독교인이 잔혹해지는 이유는 성서 안에 있는 진멸의 명령과 폭력에 대한 반성, 그리고 권력과 폭력에 대한 비판정신과 철저한 제자도를 동반하지 않는 복음화는 사회적 위기와 공포심 앞에서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초래하기 쉬운 이분법, 즉 자신은 선하고 타자는 악이기에, 악을 제거할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선민사상)는 확신, 특히 성서적 구원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해된 점, 폭력이 승리한다는 묵시문학의 최후 승리에 대한 비전은 비판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6) 기독교의 영적인 파산을 초래한 불량신학들은 아직 교회 안에서 막강하다. 로마제국은 예수의 육신을 죽였지만, 그의 체제전복적인 꿈과 정신은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교회는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예수 자신을 예배하고 영혼 구원과 천당, 대속론, 심지어 삼박자 축복성공과 번영의 복음을 가르쳐 에고의 욕망을 팽창시킴으로써 예수의 꿈과 정신마저 죽여버렸다. 특히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대속론은 기독교를 장삿속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하느님을 학대하는 아버지로 보이게 만들었다.

 

(1) 이분법적 사고: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들며 타자를 심판하는 폭력과 자기소외의 원천이다.

(2) 성서문자주의와 폭력성: “중생한 복음주의자들의 아내구타, 인종차별 등 폭력성은 미국인 평균보다 훨씬 심하다(Ronald Sider, 2005). 그 이유는 성서 안에 하느님의 뜻으로 둔갑된 폭력이 많고(크로산,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특히 예수의 말씀으로 둔갑한 복음서 기자들의 노골적인 적개심과 언어폭력이 심하기 때문이다(크로산, <비유의 위력>).

(3) 탈육신 종교: 예수의 영향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육신, 물질, 여성, 자연을 혐오하며, 인간 이외의 피조물의 신음과 대규모 대멸종 사태에 대해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또한 스콜라 신학을 능가하는 말(교리, 신학) 중심의 종교로서, 자기성찰, 자비와 용서의 실천이 간과되고 있다(리처드 로어).

(4) 초자연주의 신학과 개인주의: 세상에 대한 인간의 무책임성, 현상유지를 초래했다(로이드 기링). 또한 인간의 구원을 사후세계의 영생이나 내면적/심리적 평안으로 이해함으로써 체제변혁에 무관심하다. 이처럼 구원과 복음에 대한 개인주의적 해석과 탈정치화로 인해 체제전복적 저항을 불온시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가르쳤던 예언자들은 모두 거짓 예언자들로, 하느님의 자유를 강조했던 예언자들은 참 예언자들로 판명되었다.

(5) 전통주의와 믿음주의: 성서해석에서 과거의 본문(처방전) 해석 중심주의로 인해 현재적 과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오직 성서는 복음서들이 회당 예배력에 따른 예배 문서들이기에 성서 문자주의는 이방인들의 이단이다(존 쉘비 스퐁). 또한 오직 믿음, 오직 은총은 로마제국 신학자들조차 동의했을 고백들(주피터, 군신, 승리의 여신, 로마의 평화에 대한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이다. 관건은 제국들처럼 승리(폭력)를 통한 평화냐, 아니면 성서의 전통처럼 정의(비폭력)를 통한 평화냐 하는 문제이다(존 도미닉 크로산).

(6) 우월주의: 기독교 우월주의는 타종교인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배타주의로 이어져,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며, 친미 반공주의로 인해 분단체제 극복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4. 악의 권세들과 기독교의 저항문화적 가치

 

1) 시장전체주의의 대표적 악령은 물질만능주의, 네오파시즘, 적자생존, 각자도생, 허무주의, 절망 등이다.

2) “인민의 아편”: “영혼 구원,” 보상과 심판의 하느님, 메시아주의(“폭력이 구원한다”), 초자연주의(“요술방망이 하느님”), 성속 이분법(“기도와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고, 노동문제 등 세상사에는 관심을 갖지 말라”) 등이다.

3) 기독교의 저항문화적 가치는 사회정의를 구체화하는 섬김과 나눔의 행복한 대안공동체(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은총이다.

(1) 믿음: 존재 자체(선물)에 대한 기쁨과 찬미는 제국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탐욕, 성공, 경쟁, 독점, 불안, 공허)에 맞서는 것이다. 특히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생명체들이 무자비하게 떼죽음 당하는 현실 한복판에서 역설적으로 찬미를 요청한다. 지금의 대멸종은 우리가 우주의 뇌로서 성찰하는 삼라만상의 한 부분이라는 정체성과 삼라만상이 서로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경탄과 경외”(85), 즉 삶의 환희와 의미를 일깨우는 찬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기계론은 우주가 죽어 있으며, 목적도 없고, 영혼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기의 감옥과 일상에 매몰된 자폐적 생활방식에서 벗어나는 길은 삼라만상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탄과 경외를 회복하여 삼라만상을 찬미하는 길이다. 세계의 악의 세력은 홀로코스트를 사소한 사건으로 만들 정도로 생명체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하며 지구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역사가 참담해질수록 더욱 찬미가 요청되는 이유는 (1) 찬미는 모든 존재가 기적이며 은총이며 선물임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며, (2) 찬미가 불러일으키는 경탄과 경외가 없으면 거대한 슬픔만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며, (3) 찬미가 우리의 정신, 가슴, 영혼에 경탄과 경외를 회복시켜 고통을 담대하게 견디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Matthew Fox, 2006: 50-64).

(2) 소망은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원천으로서 탐욕과 번영의 질서가 된 지배체제(교회라는 중보종교체제 포함)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게 해준다.

(3) 사랑은 약자들의 고통에 대한 연대로 구체화되며, 지배자 중심의 개인적 번영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한다.

 

 

5. 생태대를 향해: 에고 중심의 이분법에서 불이적 에코 중심으로

 

1) 과학자들은 우주 전체의 지름이 15천만 광년에 이르며, 은하계의 지름만도 10만 광년에 이른다고 한다. 굉대한 우주 안에서 지구는 먼지에 불과하다. 흙 한 줌, 풀 한 포기, 파리 한 마리는 우주 안의 기적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우주에 대한 신비감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다. 역사상 막강한 제국들이 멸망하고 만 이유는 이런 신비감과 외경심이 없어 잔인했던 탓이다. 수천 년 간 이어져왔던 종교들이 사라지고 만 것도 이런 신비감과 외경심에 근거한 사회정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베리 신부의 제안처럼, 우리는 어떤 생명체도 없는 목성에서 어제 밤에 지구로 이주한 사람이라고 매일 아침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만물과 연결된 이런 우주적 자기를 찾아야 에고 중심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욕망을 줄이고, 에코 중심의 단순한 생활방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2) 인간의 자기이해: 인간은 우주의 뇌, 만물의 한 피붙이로서 생태적 자기(조안나 메이시)가 우리 정체성의 일차적 맥락이다. 또한 자연과 동물을 초월한 존재에서 자연과 동물 속의 우연한 존재로, --영의 통일성(三毒 七惡의 영육)을 지닌 존재로, 그리고 내세에 대한 희망에서 불교적 공 사상 통한 죽음 이해(돈 큐핏)로 재구성해야 한다.

 

3) 세계 이해: 지구가 인류 공동의 집으로서, 선과 악의 전쟁터 또는 내세를 위한 시험대에서 하느님의 몸(샐리 맥페이그), 또는 연인으로서의 세계(조앤나 메이시), 삼라만상이 서로 연결된 상호의존의 세계로 재구성해야 한다.

 

4) 신 이해: “초자연주의적인 전능한 창조주에서 가이아의 신비(로이드 기링), 전통적인 역사의 주관자에서 비인격적인 태초부터의 창조성(고든 카우프만)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영적 전쟁에서 타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과 연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대량학살의 시대에는 초자연적인 전능하신 창조주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하는 쉐키나(멜리사 라파엘)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5) 예수 그리스도 이해: 특수계시에서 보편계시로(리처드 로어)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질적 차이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예수는 폭력이 구원한다(redemptive violence)는 메시아주의를 거부한 안티 메시아였다(로즈마리 류터). 예수의 무차별적 밥상공동체와 무상의 치유는 무너져 내리던 인간성과 마을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계산된 전략으로서 종교적 및 경제적 평등주의 전략(크로산, 김준우 역, 2000: 666)이었다. 예수는 인류의 진화를 촉진시킨 사람으로서 무제한 보복 -> 제한적 보복 -> 제한적 사랑 -> 무제한적 사랑(원수사랑)의 길을 참사람의 길로 열었다(윌리엄 코핀).

 

6) 구원 이해: 에고에 대한 집착은 구원의 적이며, 특히 남성의 에고는 은총을 거부한다. 에고의 특성을 아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이다. 수행과 관상기도를 통해 에고를 비우는 일, 사고방식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인식론적 회개가 가능하다(리처드 로어). 구원은 보편적 그리스도 안에서합일이며, 승리주의에서 자기 비움(니르바나)으로 재구성해야 한다(크리스터 슈텐달). 특히 대속론의 폐해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도록 만든다.

 

7) 기독교인들의 폭력성, 교회의 군사화, 전쟁의 신성화 문제: 대다수 신자들은 폭력의 종교를 믿는다(월터 윙크). 예수의 하느님은 철저한 비폭력의 하느님이다. 선악 이원론과 자신의 그림자에 대해 성찰해야 극단주의적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가능하다.

 

 

 

6. 불안과 절망의 골짜기, 그리고 예수의 길

 

1) 우리는 지금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초래한 대량학살과 총체적인 생태계 붕괴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자녀들의 운명에 대해서조차 무관심한 첫 번째 세대다. 가축들의 대량 살처분과 무고한 인간의 떼죽음이 일상적이 될수록 우리의 정신도 마비되고 영혼의 불꽃도 사위어들기 쉽다. 그 불꽃을 살려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어야 할 설교자들은 차별금지법 문제에서 보여주듯이 사막종교의 막장 칼부림 버릇을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 모든 생명이 더욱 풍성함을 누릴 보편적 권리에 대한 확신, 그리고 사회정의와 생태정의 확립을 위한 투쟁이 절실하다. 누구의 목숨이든 온 천하보다 귀하며(8:36),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두고 찾아나서는 것이 하늘 아버지 뜻이라고 가르치신(18:12-14) 예수의 보편적인 사랑과 특히 신음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체제전복을 위한 예수의 계산된 전략의 기초이다.

 

2) 팬데믹 시대는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이며,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정의와 생태정의 확립이 필수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계급투쟁과 이념전쟁에서 교회의 영적 파산때문에, 현재로서는 생태사회주의와 같은 전환 노력에 공헌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생존 조건이 더욱 악화되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떼죽음 당할수록, 그 깊은 슬픔과 어둠 속에서도 예수가 마지막까지 우리의 희망인 이유는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길, 137억 년 동안 계속된 우주 창조와 작동 원리인 다양성, 서로 주체성, 친교를 원수사랑으로까지 확장시키는 진리와 생명의 길에 우리도 온 힘을 다해 참여하는 것이 삶의 참 기쁨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정의와 생태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모두가 어울려 나눔의 잔치를 벌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존엄성을 지니고 생명을 찬미하면서 죽는 길이 부활의 길이며 해원상생의 길임을 보여주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 ?
    김형통 2020.11.28 14:22
    자연과인공 - 입출을 위함인데, 밥과똥 그리고 과정인데,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 인가?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직언과 통찰이 삶에 적셔지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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