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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김경율 씨 등이 낸 책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역시 이견의 존중 속에서 정치적 비판을 하는 것과 인간적 비난, 조롱, 경멸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주면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강경하게 고집하면서 상대를 더욱 공격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검찰-수구언론-우파가 연합해 반동을 시도한 ‘검찰대란’ 국면이 펼쳐졌었다. 그 절정은 광화문에 우파가 대규모로 결집해 스스로 ‘10월 항쟁’이라고 선포한 시기였다. 그 배경에는 촛불시위가 대중투쟁에서 제도적 탄핵으로 유턴하며 마무리된 것, 검찰이 ‘적폐청산’ 과정에서 주도권을 쥔 것, 오랜 세월 형성된 검찰과 언론 유착 구조, 문정부가 적폐세력에 계속 타협하면서 반격의 틈을 허용한 것 등이 있었다.

그 국면에서 진중권 씨 등의 입장은 분명 동의하기 어려웠고, 그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논박이 제기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이 비판과 반박보다는 비난, 조롱, 경멸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진중권 씨 등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지면서 그것이 지금의 입장으로까지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진중권 씨 등이 자신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보인 비난, 조롱, 경멸이 먼저였고 더 심했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인격적 존중도 없이 상대를 마치 벌레 취급하는 듯한 논쟁 방식은 정말 심했다. 조국 가족과 민주당 지지자에 대한 진교수의 태도는 비판보다는 증오나 혐오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더 큰 스피커와 마이크를 가진 사람의 그런 언행이 더 문제라는 생각은 분명 일리가 있다. 그것은 주류언론을 통해 더 증폭, 확산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이 더 큰 비난, 조롱, 경멸이라는 반작용을 낳고, 그것에 더 강하고 독한 표현으로 맞서면서 파괴적 상승작용의 연쇄가 계속돼 왔다.

그래서 지금 진중권 씨 등의 입장은 진영론을 비판하고 누구보다 탈진영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친문이냐 반문이냐는 진영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있다. 그래서 똑같거나 더 심한 형태의 부정의, 부조리라도 검찰, 보수언론, 미통당이 관련된 것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다.

나아가 오히려 감싸주면서 그들에게 문정부나 친문들과 이렇게 싸워야 한다고 조언, 훈수, 격려를 보내는 태도로 나타난다. 진중권 씨가 청년극우 유튜버들을 칭찬한 것이나 서민 교수가 ‘의사파업’을 응원하는 것은 이런 ‘반문 역진영론’의 몇 가지 사례들이다.

진중권 씨 등이 낸 이번 책에 대해서는 제목에서부터 2가지가 특히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제목에서 당장 이 분들에게 이명박근혜 시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용산참사와 쌍용차살인진압과 간첩조작,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등이 이어진 그 시기는 여전히 악몽으로 남아있다.

반면 지난 몇 년간은 당장 내 주변에서도, 최초로 노조를 만들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하나씩 찾아나가는 여성노동자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당연히 민주당과 문정부가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니다.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서 촛불을 들고 이명박근혜 시대를 끝내고, 그 자신감으로 스스로 행동하고 요구하면서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 시대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과인 것이다. 이런 노동자와 민중이 맞서서 투쟁, 요구하고 뭔가를 강제해내기에 더 나은 상황과 상대라는 것이 이박정부와 문정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책의 부제이다. 문정부가 전체주의이고 독재, 심지어 파시즘라는 미통당과 조선일보의 주장을 헛웃음 속에 한 귀로 흘려온 입장에서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분들이 문정부가 민주주의를 끝장내고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제목으로까지 붙였다는 게 놀라웠다.

물론, 사회주의적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문정부도 한계가 명백하지만, 적어도 문정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벗어나거나 권위주의나 독재로 회귀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의회와 선거제, 다수당을 부정하거나 언론, 출판, 집회, 민주노조나 좌파정당 결성의 자유를 가로막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커녕 전광훈 등은 혐오와 폭력 선동의 자유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누려왔다.

다만 민주주의는 완성태가 아니라 과정이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도 권위주의나 독재로 역행하려는 시도나 경향은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에 근본적 결함을 갖고 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돼서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끝장내는’ 방향으로 갔던 게 바로 박근혜 정부다. 그 절정은 내란음모 사건 조작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이었다.

그런데 진중권 씨는 당시 상황에서 종북 마녀사냥에 맞서기 보다는 침묵, 심지어 동조했던 대표적 지식인이다. 그런 분이 지금 민주주의가 끝장나고 있다고 하니 납득이 어려운 것이다.(자신과 정파나 성향이 다른 이들이 주로 탄압받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에 소극적이던 분들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을 불신하게 되는 이유다)

지금 정말로 민주주의가 끝장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홍콩, 벨라루스, 타이에서 볼 수 있다. 홍콩에서는 국가보안법에 만들어져 정치, 사상, 집회, 결사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벨라루스에서는 26년간 장기집권해온 독재자가 부정선거로 다시 권력연장을 하고, 항의 시위를 폭력 진압하다가 역부족에 직면하자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까지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도 군주제를 유지하는 타이에서는 쿠테타로 집권한 세력이 진보정당을 강제해산하고 반대파를 납치고문해 오다가 국왕의 권위에까지 정면도전하는 역사적인 ‘세손가락’ 항쟁을 불러일으킨 상황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는 이들 지역의 민중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한다.

만약 이명박근혜 정부가 권력 연장에 성공했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도 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촛불민중은 그것을 막아냈다. 이처럼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야당이나 지식인보다는 아래로부터 민중투쟁에 의해 조금씩 전진했고, 고비마다 기득권 우파의 반동 시도를 분쇄해 왔다.

군부독재에 뿌리를 둔 이 기득권 우파들의 변신이 요즘 진행중이다. 태극기부대와 결별하고 청년들에게 다가가겠다고 한다. 문제는 트루스포럼, 신전대협 등 청년우파들의 극우적 성향이 전광훈 등에 버금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변신은 경제위기와 팬데믹이 낳은 불만에 기반해 새로운 혐오를 선동하며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포퓰리즘적 신우파의 재구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브라질과 볼리비아에서는 그런 더 위험한 신우파들이 우파의 헤게모니를 쥐고서 기존 ‘개혁정부’의 무능, 약점, 부패를 공격해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는 소프트쿠데타를 성공한 바가 있다. 브라질에서 룰라에게 씌워졌던 비리 혐의,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가 저질렀다는 선거부정은 뒤늦게 모두 사실이 아닌 게 밝혀졌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본질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해 ‘검찰대란’과 광화문 ‘10월 우파 항쟁’ 국면에서 그것에 맞서서 거리로 나섰던 촛불시민들의 힘이 중요했다. 그들의 분노와 행동을 폄하, 조롱, 경멸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 분들은 차악(또는 차선)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최악을 방기하거나 심지어 돕자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놓치고 있다. 핵심은 차악을 믿지말고, 더 적극적이고 앞장서서 최악에 맞서 싸우자는 데 있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기득권 우파에 맞서서 거리로 나섰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 속에 문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어떤 이견과 혼란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하면서 토론할 문제다.

지금 홍콩, 벨라루스, 타이에서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정치적 의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모순돼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보다 ‘내가 가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어리석은 당신들의 잘못된 투쟁과 요구를 지지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위험하고 이상한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원리를 들고서 ‘여기 진리가 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어라!’는 교조적 방법으로 오늘날의 현실에 맞서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 자체의 원리에서 세상을 위한 새로운 원리를 발견한다. 우리는 ‘그 투쟁을 멈추어라. 너희는 어리석다. 우리가 너희에게 진정한 투쟁의 슬로건을 주겠다’고 세상에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그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를 세계에 보여줄 뿐이다.”(마르크스가 1843년에 동료에게 보낸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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