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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캐서린 켈러
번역자 한성수
출판일 2021-10-15
가격 304쪽, 16,000원
ISBN ISBN 978-89-97339-77-8 94230 ISBN 978-89-97339-55-6 94230 (세트)


지구 종말 같은 광경. 그리스 일주일 동안 섭씨 45도, 아테네 산불로 포위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06848.html



기후 파국 직전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1/aug/07/were-on-the-brink-of-catastrophe-warns-tory-climate-chief


지구온도 1.5도 상승 10년 앞당겨졌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06996.html?_fr=mt1




켈러 아포칼립스.jpg




Catherine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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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켈러(1953- )는 드류대학교의 구성신학 교수로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에덴신학교,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존 캅 교수의 제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냉전 체제의 핵무기 경쟁과 함께 세계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인류가 방출한 온실가스가 지구 대기의 화학 성분을 변화시킴으로써 지질학적으로 인류세(Anthropocene)가 본격화되었고, 결국 인류는 두 가지 절박한 위기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핵전쟁의 위기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한 대멸종 위기이다. 켈러 교수는 이 두 위기에 대해 요한계시록과 연관시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에 신학의 초점을 맞추었고, 또한 그와 연관된 성차별, 인종차별, 경제적 불의, 민주주의의 해체 위기 등 긴급한 문제들에 대해 과정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정치신학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접근함으로써 오늘날 가장 창조적인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Apocalypse Now & Then: A Feminist Guide to the End of the World (1996), Face of the Deep: A Theology of Becoming (2003), God and Power: Counter-Apocalyptic Journeys (2005), On the Mystery: Discerning God in Process (2008, 박일준 역, 길 위의 신학), Cloud of the Impossible: Negative Theology and Planetary Entanglement (2015), 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 Our Planetary Emergency and the Struggle for a New Public (2018, 박일준 역, 근간), 그리고 이 책 Facing Apocalypse: Climate, Democracy, and Other Last Chances (2021)를 발표했다.

 

에볼라, 사스, 돼지열병, 메르스, 조류독감, 코로나19 등 계속 이어지는 팬데믹 사태뿐 아니라 전대미문의 폭염, 산불, 대가뭄, 대홍수, 대멸종 등 기후 재앙들이 더욱 악화되어 지구가 점차 생명이 살 수 없게 바뀌고 있는 묵시적 현실들 앞에서, 이 책은 성경 가운데 이런 묵시적 현실들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요한의 묵시록을 치밀하게 재해석한다. 저자는 묵시록을 세계 종말에 대한 예고가 아니라 오늘날 더욱 절박해진 하느님의 역사 변혁의 꿈들로 풀어낸다.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당한 신천지 같은 소종파 집단들뿐 아니라 대다수 신자들이 묵시록을 세계 종말에 대한 예고로 믿고, 기후 붕괴와 대멸종 사태를 휴거와 천년왕국의 선행조건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양극화가 더욱 악화되어 계급갈등과 혐오가 증폭되는 상황에서, 회복이 불가능한 기후 파국이 올 수 있는 1.5도 상승까지 20년도 채 남지 않았다(IPCC 6차보고서).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안일한 늑장대응 탓에, 조만간 다가올 동시다발적 식량폭동, 극단적 야만주의, 문명의 붕괴, 그리고 툰드라지방의 메탄 방출, 아마존의 계속적 파괴와 식물 플랑크톤의 급격한 감소가 초래할 산소 부족 사태로 인한 대량 멸절에 대한 불안이 나날이 더욱 엄습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어린이들 22억 명 가운데 10억 명이 이미 서너 가지의 극심한 기후 위협에 직면해 있다. 조만간 다음 세대들 전체의 생존이 위협받게 될 비상사태 앞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기득권자들의 안일한 자기 합리화이며 집단적 저항을 차단하는 수단처럼 보인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교가 세상의 체계적 착취와 파괴의 구조악을 외면한 채, 자신들만 초자연주의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거짓 희망과 탈정치적 환상을 불어넣는 혹세무민의 종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주로 묵시록 해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묵시록의 일곱 가지 표징들 속에서 메시아(재림)를 기다려왔던 신앙공동체들의 간절한 희망이 계속 배반당했던 집단적 트라우마를 읽어내며, 세계 체제에 대한 철저한 비판정신과 역사 변혁을 위한 저항의 원동력을 찾아내어 신자들의 정치적 책임과 예언자적 희망을 제시한다. 세상을 철저히 파괴하는 악의 권세에 맞서 하느님의 정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묵시록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악의 권세를 끝장내는 하느님의 폭력에 대한 믿음이다. 따라서 저자는 요한이 꿈꾸었던 하느님의 정의로운 최후심판과 대량학살을 그리스도인들이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수없이 자행해왔던 폭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처럼 마지막 전쟁대파멸구원 시나리오를 무기로 삼아 묵시록을 스스로 실현하는 예언으로 만드는 것이 왜 요한이 보았던 하느님의 꿈을 철저하게 왜곡하는 것인지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또한 구약성서의 희망의 종말론이 왜, 어떻게 더욱 극단적인 묵시론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묵시록이 강조했던 반제국주의는 왜, 어떻게 정통주의 신학에서 사라졌는지, 그리스도인들조차 왜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지구 파멸을 재촉하는지를 분석하고, 묵시록의 독특한 하느님 이해가 오늘날 어떻게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지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일곱 가지 섬뜩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신앙공동체의 선택을 모색한다. 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묵시적 종말에 맞서는 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묵시록의 혁명적 믿음을 이어받는 길이며, 또한 하느님의 진정한 위로를 발견하는 길인지를 증언한다.

    

한성수 목사는 서울문리대 물리학과, 감신대, 예일대 신학부,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은퇴했으며,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참사람: 예수와 사람의 아들 수수께끼, 무신론자들의 망상,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10여 권을 번역했다.

 




목차

 

두루마리를 펼치기 전에 -- 7


묵시록 요약 -- 21

 

1. 오, 구름이 펼쳐진다

      묵시록을 꿈으로 읽어내기 / 25

2. 슬피 우는 새들

      불타는 나무들, 독소로 물든 바다들 / 71

3. 땅의 아픔들

      마지막 기회들의 어머니 / 103

4. 포도주로 복수하기

      거룩하고 치명적인 포도들 / 133

5. 묵시록의 포르노 여왕

     전 지구적 경제의 지금과 그때 / 169

6. 말씀으로 무기 삼기

     두 저녁식사들의 이야기 / 199

7. 땅에 내려와서

     도시, 나무, 물 / 239


두루마리를 닫고  -- 279

감사의 말씀 -- 297





심층 해석과 꿈 읽기를 통해 캐서린 켈러는 우리 시대의 최후의 파괴력에 맞서서 요한계시록의 신비하며 무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묵시종말이라는 단어가 지닌 계시와 종말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놀라운 발견들로 가득한 탁월한 작품이다.”

Jürgen Moltmann

 

고대의 묵시종말과 현대의 묵시종말이 서로 만나는 역작이다. 켈러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으며 절묘한 단어 조립과 꿈 읽기를 통해서, 점차 짙어지는 암울함을 배경으로 고대의 묵시록을 지렛대로 활용함으로써,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들로 하여금 예언자적인 희망을 갖도록 설득시킨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창조적인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쓴 필수적인 책이다.”

John J. Thatamanil, Union Theological Seminary

 

묵시란 드러내는 것이라는 명석하고 넓은 관점에서, 켈러는 오늘날 허무주의, 승리주의, 확실성을 찬양하는 종말론 담론들에 개입한다. 풍부한 상상력과 냉철함, 윤리적 긴박감이 빛나는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 도서이다.”

Carol Wayne White, Bucknell University

 

우리 시대의 지나치게 과장된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사이에서 놀랍게 연주하는 이 책은 요한의 묵시종말 세계와 우리의 묵시종말 사이의 깊은 패턴들을 드러냄으로써, 점차 거주 불가능한 행성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지구를 위한 마지막 기회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부른다.”

Kathryn Tanner, Yale Divinity School

 

오늘날 생태 파멸적이며 민주주의가 해체되는 시대를 위한 예측 이후의 예언이다. 켈러는 매우 낯설지만 어느 때보다 더 상관성이 있는 계시록, 즉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끝장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책에 대해 섬뜩하게 만들고 때로 전율시키며 항상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는 예리함을 전해준다.”

Stephen D. Moore, Untold Tales from the Book of Revelation 저자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중 한 사람인 캐서린 켈러는 흔히 간과된 계시록의 표징들을 열어젖힌다. 본문과 시대의 표징들을 계시적 긴장관계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우리의 현재 순간을 뒤흔든다.”

Tripp Fuller, host of the Homebrewed Christianity Podcast



이제 우리 시대도 독특한 묵시종말적(apocalyptic)클라이맥스로 위협하고 있다. 기후 대파국이라는 클라이맥스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종말이란 수사(rhetoric)는 대체로 근본주의자들이나 공상과학 소설의 환상에나 있었다. 지난 세기의 핵무기 경고들을 제외하고는, “픽션(허구)”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은 현재의 세계 종말론은 단지 히스테리에 걸린 것으로 그냥 무시된다. 그러나 현재 진행형 시제로, 모든 신뢰할 만한 자료들은 곤충들의 최후대결전(the Insect Armageddon),” “거주 불능 지구(the Uninhabitalbe Earth),” “기후 파멸(Climate Doom)그리고 물론 인류세(Anthropocene)의 종말을 선포한다. 1년 전에 서부의 친구들을 방문하다가, 나는 지역 신문의 머리기사에 놀랐다: “지구의 미래는 급속히 녹아내리는 그린랜드(Greenland)의 얼음 위에 써지고 있다.” 그 기사는 존경할 만한 대기과학자이자 해양과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그런 빙하의 녹아내림을 지구의 종말로 추론한다. 비록 햄릿(Hamlet)의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없지만, 그런 생태학적 선언은 이제 너무도 비극적으로 정직하게 보인다.과학적으로, 공개적으로. 그러나 여러 수십 년 동안 일반 대중은 그런 묵시종말적경고들에 대해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낄낄거림은 이제 심각하게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천년기에 일어난 대로, 나를 떠다밀어서 처음으로 기독교의 세계 종말전통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도록 만든 것은 핵전쟁의 공포였다. 나의 의심은 요한계시록(Book of Revelation), 일명 요한의 묵시록(Apocalypse of John)이 마침내 옳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나는 세계 종말에 대한 서구의 오랜 상상이 스스로를 실현하는 예언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그 책의 피에 젖은 설명들이 여러 세기를 두고 기독교의 폭력과 이어서 세속적인 폭력의 의로운 물결들에 대한 정당화를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생태학적 붕괴는 아직 멈출 수는 있지만, 뭔가 회복 불가능한 것이 결국 이 세계에 진입하고 말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서서히 몇 도씩 올라가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영향을 준다. 그게 바로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뚜렷한 요소인가?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인간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요소일 수는 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19가 뛰어 들어왔다우리 인류의 파멸은 아니겠지만, 미국의 민주주의, 전 세계 경제, 그리고 전 지구적 건강이 상호 연결된 불안정성을 폭로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 온난화로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의한 희생자들의 발열과 전 세계의 발열은 함께 음산한 집단적 경고를 울리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묵시, “계시에 대한 성경의 의미가 될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서로와 비인간인 것들과의 균형에서 벗어나버렸다. 전염병 대유행이 우리로 하여금 이 묵시적 종말을 직시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그 경고를 지나치게 언급하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그 경고에 대해 과연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었는가?


현재 역사의 무대 속으로 그 연기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웃음은 사라지고 있다. 뜨거운 열기가 상승하고 있다. 탄소 배출로 추진되는 경제 속에서 다스릴 수 있는, 그리고 대기권에서 과잉 탄소를 제거할 그린 뉴딜(green new deals)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 세력들은 오히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미루거나 솔직히 부인해왔다. (전염병학의 충고를 무시하는 대통령이 전염병적으로 증거해 보여주었듯이, 과학에 대한 부인이 깊게 또 위험스럽게 퍼져 있다.) 한편에서 보다 고귀한 사회적 인물들은 인종적, 사회적, 경제적 불의로 기울어지고 있는 거대한 체제를 만족해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인간이 아닌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인간적(inhuman)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생태환경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이제 지구 온난화에 가장 적게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로 하여금 최악의 영향으로 고통을 당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기후 부인론(climate denialism)이라는 백인들의 소음을 헤쳐 나가려는 희망으로 경종을 울리는그레타 툰베리가 말하는 공포의 시간(time to panic)을 알리는단추를 우리가 이제 눌러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우리는 파멸의 날 허무주의(doomsday nihilism)를 회피하기 위해서 보다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가? 아니면 둘 다 맞는가? “전대미문의 산불, 홍수, 빙하의 해빙, 집단 이주, 이들 각각의 새로운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우리가 회피하기를 희망하는 바로 그곳에서많은 말을 떠벌이고 또 묵시종말을 발견할 것이다. 의식을 갖고 하든 아니면 잠재의식으로 하든, 반어적이든 아니면 협박적이든, “예견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 묵시종말에 대한 수사학은 더욱 강하게 울릴 것이다. 우리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우리가 예견하든, 아니면 하지 못하든, 고대 묵시록의 메아리가 이제부터는 다양한 종교들에 걸쳐서 뿐만 아니라 책임 있는 세속적 담론 속에서도 울려 퍼질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종교적 소란들에도 불구하고, 묵시종말에 대한 은유들은 대체로 표면 아래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의 영향들을 표면화하고, 그것들을 의식하도록 만들어 유지하는 것은 예견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생태학적 대응과 사회적 대응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묵시종말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걸 개인적인 절망이나 집단적인 불가피성 속에서 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지켜주며,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우리의 경제적 관습들, 민주주의적 혼란과 생태학적 자살로 내닫게 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다. 파멸을 향해 스스로 실현하는 예언(the self-fulfilling prophecy of doom)을 멈추도록 할 기회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멈춤, 곧 차단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단순한 멸망보다 원래의 묵시록에 더욱 참되다고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고대의 대본은, 오랜 세월 동안 거짓된 종말 예고들로 이용된 후에도, 여전히 효력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어느 문학비평가가 말했듯이, “묵시록은 그 종말 예고들이 틀릴 수(disconfirmed)는 있어도, 불신되지는(discredited) 않는다. 이게 바로 묵시록이 끊임없이 회복되는 놀라운 탄력성의 부분이다.” 실제로 그 지나치게 익숙한 상투어들, 즉 전사 그리스도(warrior Christ), 최후심판, 진주문(Pearly Gates, 천국의 입구역자주) 등의 상투어들 아래에서, 원래의 묵시록이 놀라움을 보여준다. 그건 역사의 한 계획(a plan for history)이라기보다는 꿈을 깨우는(a waking dream) 것처럼 읽혀진다. 우리는 묵시록이, 어떻게 해결되지 않은 정신적 트라우마와 실현되지 않은 치유에 대한 (마치 환등기처럼 변하는) 은유들을 통해, 현재 역사의 긴장들 속에우리의 현재 속으로(돌파구)을 만드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만일 엄청난 시대착오적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자신의 슬픔, 관심, 호기심을 우리의 책 읽어내기 속에 집어넣는다면, 그 과정은 아마 암울하게도 묵시록의 비밀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연평균 온도를 파멸적으로 몇 도씩 올리는 지구온난화는 이제 미래를 (비소설적으로 말해서) 최후의 파멸로 확인 도장을 찍는 길에 상당히 올라있다: 홍수들, 가뭄들, 그리고 산불들로, 동료 생물종들을 끝없이 멸종시킴으로, 백인우월주의로 증폭되어 인간 대 인간의 조직적 폭력으로, 치솟고 있는 기후에 의한 거주이동으로, 그리고 계급적인 불의로 치닫고 있다. 환경의 대재앙들에 대한 경제적 원인들을 두고서, 그 시민은 이렇게 지적한다: “그토록 적은 수에 의해서 그토록 많은 수에게 그토록 많은 양이 저질러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가 의미한 바는 온도 불과 몇 도가 아니라, 탄소로 동작하는 고소득을 위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데 가차 없이 돈을 대고 강요하는 (그처럼 적은 수) 1%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편집자주: 현재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1.2도 상승했다. Michael E. Mann, The New Climate War: The Fight to Take Back Our Planet (New York, NY: PublicAffairs, 2021), 213; David Wallace-Wells, The Uninhabitable Earth: Life After Warming (New York, New York: Tim Duggan Books, 2019), 65; 유엔 세계기상기구(WMO) 역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 파국까지 0.3도 상승만 남았다고 경고했다(프레시안, 2021.04.20.). 그러나 1.5도 상승에서 억제하자는 파리협약의 196개 참가 국가들의 정책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국제에너지기구(IEA)<2019 World Energy Outlook>을 통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현재의 (매년) 배출량 수준인 330억 톤에서부터 2040년까지 전혀 감소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360억 톤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Noam Chomsky and Robert Pollin, Climate Crisis and the Global Green New Deal (London: Verso, 2020), 137.


요한의 패러디(풍자적인 모방)가 그 자체의 쌍날가진 칼/말씀(S/Word)의 권능을 휘두른다. 그것은 그 짐승을 조롱하고 그 짐승은 메시아를 조롱하고 메시아는 짐승 같은 권력을 조롱한다. 요한계시록의 상황에서는, 그 이름 없는 제왕적 짐승은 오직 로마제국을 뜻할 뿐이다: 세상이 이제껏 보았던 것 가운데 가장 큰 정치적 권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요한의 칼날도 그 자체의 비전의 의도를 뒤집어 왜곡하는가? 그 짐승은 어떻게 밧모 섬의 요한이 품었을 법한 의도를 벗어나서, 제국의 권력을 기독교화(the Christianization of the imperial power)하고, 또한 기독교세계를 제국화(the imperialization of Christendum)하였단 말인가? 철학자 화이트헤드보다 이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더 잘 파악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갈릴리 청년의 겸손함에 대한 간단한 비전이 시대를 통하여 불확실하게 깜빡거렸지만 그러나 더욱 깊은 우상숭배, 즉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제국 통치자들(imperial rulers)의 이미지로 하느님 이미지를 만든 더욱 깊은 우상숭배가 계속 사용되었다. 교회는 오직 황제(Caesar)에게만 속했던 것을 하느님에게 주어버렸다.”


요한계시록은 예수의 짧은 생애 이후 세기의 메시아에 대한 실망이 특히 들려오게 한다. 폭력과 환멸이 그 이후의 모든 희망적인 돌파구들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제 예수 탄생 이후 제3 천년기에 들어서, 할렐루야 소리는우리가 일단 그 콘서트홀을 떠나고 나니공허하게 울리는 것 같다. 승리의 재림으로 집단적인 위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유행병, 가난, 지구 행성의 건강 파괴 등이 땅위의 거주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땅의 상처에 하늘의 모욕을 더해보자면, 요한이 말하는 왕들 중의 왕이 꾸중 들어야 할 유죄(有罪)의 부담을 좀 져야하는 것 아닌가? 기대했던 사람이 간단히 오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 무엇인가가 그의 이름으로 계속 왔다. 십자군의 날뛰는 십자가들, KKK의 불타는 십자가들을 갖고 계속 왔다. 무엇인가가 다시 또 다시, 기독교인들의 폭력을 강력하게 되풀이하면서 계속해서 오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어린 양과 사자라는 양극성 속의 내부적 긴장을 만났다. 유다의 사자(the Lion of Judah)는 왕권의 표상(emblem)으로서 오래 지속된 희망을 뜻하는데, 그 희망은 고대 유대인 역사의 상당히 많은 기간을 통해 반복해서 일어난 희망이며, 그 희망 안에 요한의 신앙이 깊이 젖어 있다. 그 희망이란 바로 위대한 전사인 왕이 제국의 원수들로부터 작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이다. 이처럼 마지막 승리를 위한 대결의 희망이 성경의 종말론을 형성하는데, 이 종말론은, 기독교 시대 이전 수백 년 동안에 서서히 보다 더 극단적이 되었고, 선과 악의 대립 속에 더욱 더 이원론적이 되었고, 더욱 더 필사적으로 신의 권능에 의존하게 되었다. 사실상 보다 더 끔찍한 실망들 한복판에서, 더욱 묵시종말적으로 되었다.


신의 장소를 옮겨가는 것은 이런 것 같다: 집단적 변혁은 하느님이 하늘 위에서 황제처럼 통치하는 구도에서 극적으로 벗어나는 것과 함께 일어난다(take place). 오직 신이 세계 속의 내재로 내려옴으로써 이런 새로운 창조가 일어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기는 우리의 실제 장소를 대체함(replacement)이 아니라 갱신함(renewal)”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자연세계를 철저히 회복하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대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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