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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Rohr, The Universal Christ: How a Forgotten Reality Can Change

Everything We See, Hope For, and Believe (Convergent Book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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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서 유일하게 참으로 절대적인 신비들은 존재의 깊이 속에서의 하느님의 자기 소통인데 우리는 그것을 은총이라 부르며, 역사 속에서의 하느님의 자기 소통을 우리는 그리스도(Christ)라고 부른다. 칼 라너, 예수회 신부이며 신학자(1904-1984)

 

나는 물질을 예배하지 않는다. 나는 물질의 하느님을 예배하는데, 그분은 나를 위해 물질이 되셨으며 황송하게도 물질 안에 거하시고, 물질을 통해 나의 구원을 이루셨다. 나는 나의 구원을 이룬 그 물질을 끊임없이 공경할 것이다.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675-753)

 

우리들의 어떤 절망도 사물들의 실재를 바꿀 수 없으며 우주적인 춤(the cosmic dance)의 환희에 오점을 남길 수도 없다. 우주적인 춤의 환희는 항상 그곳에 있다. 토머스 머튼(1915-1968)




목차

 

 

 

 

 

시작하기 전에 / 9

      

1부 모든 것을 위한 또 다른 이름

       

1. 그리스도는 예수의 성()이 아니다 / 21

2. 당신이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을 받아들이라 / 39

3. 우리 안에, 우리로서 계시된 것 / 57

4. 원죄가 아니라 원선 / 77

5. 사랑이 그 의미라는 것을 / 95

6. 성스러운 온전함 /  111

7. 어떤 좋은 곳으로 / 123


2부 위대한 쉼표

 

8. 행동과 말 / 139

9. 사물들의 깊음 / 145

10. 여성적 성육신(화육) / 161

11. 이것이 내 몸이다 / 173

12. 왜 예수는 죽었는가? / 187

13. 그것은 혼자 지고 갈 수 없다 /

14. 부활의 여정 /

15. 예수와 그리스도에 대한 두 증인들 /

16. 변형과 관상 /

17. 단순한 신학을 넘어: 두 가지 수행 /

에필로그 /

 

후기 사랑 이후의 사랑 /

부록 하느님께 이르는 영혼의 여정의 길 /

부록 1 네 가지 세계관 /

부록 2 영적인 변화의 패턴 /

참고문헌

   

Review

“Fr. Richard challenges us to search beneath the surface of our faith and see what is sacred in everyone and everything.  Anyone who strives to put their faith into action will find encouragement and inspiration in the pages of this book.” 
-Melinda Gates, author of The Moment of Lift

"Rohr sees the Christ everywhere, and not just in people. He reminds us that the first incarnation of God is in Creation itself, and he tells us that 'God loves things by becoming them.' Just for that sentence, and there are so many more, I cannot put this book down."
-Bono
 
“Here Fr. Richard helps us to see and hear Jesus of Nazareth in what he taught, what he did and who he is—the loving, liberating and life giving expression and presence of God. In so doing he is helping Christianity to reclaim its soul anew.”
-Michael Curry, Presiding Bishop of the Episcopal Church in America
 
"A major shift in our culture is needed, and Richard Rohr's unpacking of The Universal Christ is a critical step in the right direction. Remembering our connection to "every thing" has implications for our religious traditions, society—and dare I say it—even our politics." 
-Kirsten Powers, CNN political analyst and USA Today columnist 

"[Rohr] invitingly asks Christian readers to bring together their thinking about Jesus (the historical person) and Christ (the savior) in order to recognize God in the world around them . . . Rohr’s innovative reflections will inspire believing readers to think deeply about the nature of God."
-Publishers Weekly
 
“Anyone who has made a confession of faith in Jesus Christ should read this book to grasp more fully the vast and startling implications of this belief.  This is Richard Rohr at his best, providing an overall summation of his theological insights that have been life-changing for so many.”
-Wesley Granberg-Michaelson, General Secretary emeritus of the Reformed Church in America
 
"Here, Christianity finds its root and its destiny in all things, in all matter, in all creation. and here, we find our connection to universal belonging, to universal trust, and to universal love.  This book will change religion and make it tender and gentle and transformational."
-Timothy Shriver, Chairman of the Special Olympics  

1054년에 대분열을 통해 서방교회가 동방교회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만물을 해방시키셨으며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이런 심원한 이해를 점차 잃어버렸다. 대신에 우리는 점차 신적인 현존을 예수라는 단 하나의 몸에 국한시켰다. 신적인 현존은 빛 자체처럼 어디에나 계시며 인간의 경계선들로 제한시킬 수 없는 때에 그렇게 국한시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믿음의 문이 닫히게 된 부분은 초대 교인들이 현현이라고 부른 주현(Epiphany)에 대한 이해, 또는 가장 유명하게도 성육신(화육, Incarnation)에 대한 가장 폭넓고 아름다운 이해를 못하게 문이 닫혔으며, 또한 화육의 마지막이며 완전한 형태인 부활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동방 정교회들은 원래 이런 주제들에 대해 훨씬 폭넓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서방교회의 가톨릭과 개신교회들은 모두 최근에서야 비로소 이런 통찰력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이 말씀이 육신(flesh)이 되셨다(요한 1:14)고 말하면서, 단 한 사람의 몸(body)을 가리키는 용어 소마(soma)대신에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용어 사르크스(sarx)를 사용한 이유다. 사실상, 요한복음의 서문에는 예수라는 이름만 사용된 적이 없다.


요한복음이 그리스도를 어둠이 이길 수 없는 빛(요한 1:5)이라고 묘사한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확한 표현이었다. 사물들의 내적인 빛(the inner light)은 제거하거나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것이다. 그것이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요한이 능동태 (과거진행형) 동사를 선택한 것(“그 빛이 세상 속으로 오고 있었다.” 요한 1::9)은 그리스도 신비가 과거에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적인 과정, 즉 우주를 채우는 빛처럼 불변의 상수(constant)로서 계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빛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창세기 1:3). 이 사실을 잊지 말라.



"하느님은 자신을 우리 유한한 존재들에게 하나의 사물로서, 즉 완결되고 즉각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사물로서 제공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그분이 영원한 발견이며 영원한 성장이다. 우리가 그분을 이해한다고 더욱 많이 생각할수록, 그분은 자신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시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붙잡고 있다고 더욱 많이 생각할수록, 그분은 더욱 멀어지시며, 우리를 그분 자신의 깊음 속으로 끌어당기신다."


하느님은 뒤로 물러나는 것, 즉 수많은 신비가들과 성서가 말하는 그의 얼굴을 감출기회도 만드신다. 하느님은 하느님 자신만이 채우실 수 있는 진공상태를 만드신다. 그 다음에 하느님은 만일에 우리가 우리의 하느님 파트너가 결국에는 우리 안에 그 공간을 채우실 것을 신뢰하는지 보실 것을 기다리시는데, 우리 안에서 그 공간은 더욱 넓어지고 수용적인 것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어둠, 필요한 의심, 또는 신비가들이 하느님이 사랑을 철회하심이라고 불렀던 것의 중심 주제이다. 그들은 고난, 우울, 쓸모없음처럼 느껴지는 것, 즉 하느님이 물러나신 순간들이 흔히 하느님이 깊은 신뢰와 친밀감으로 초대하시는 순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것을 매우 형편없이 이해하는 것이 드러난 것은 마더 테레사가 오랜 세월 동안 어둠 속에 지냈으며 또한 세속적 세계가 우울처럼 보이는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때였다.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하느님이 오직 바깥에서 밀어붙이기만 할 뿐 결코 안에서 끌어당기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바로 이런 일방적인 하느님을 우리는 배우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이제는 넌더리를 내는 하느님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차리기도 전부터 우리의 죄를 미워하거나 고백하도록 배웠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들 자신을 향한 혐오를 키운다면, 조만간 타인들을 향해 혐오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흔해빠진 그리스도교의 모습인데, 그로 인해 역사는 큰 대가를 치렀다. 종교가 우리를 깊이와 정직성 모두의 길로 이끌지 않는다면, 종교는 실제로 영혼과 사회에 매우 위험한 것이다. 사실상 패스트푸드 종교와 소위 번영의 복음은 하느님을 회피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비록 종교에 관해 거의 쉬지 않고 떠벌이지만 말이다.


인류에게 지금 필요한 예수는 역사적이며, 우리들처럼 육체적이며 구체적인 실생활과 연관성이 있는 예수다. 예수의 죽음보다는 예수의 삶이 우리를 더욱 잘 구원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본받을 수 있는 예수, 또한 충분히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기준을 세워주는 예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삼라만상을 하나의 조화로운 통일성 안에서 유지하기에 충분히 큰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런 예수와 이런 그리스도를 제시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