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

 

by

 

John Shelby Spong

New York, New York: HarperOn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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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종교시대를 위한 예수의 의미


요한복음을 교리적인 포로상태에서부터 해방시킨다

 

 

우리는 종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문자주의를 갖고 우리의 성경에 접근한다. 존 쉘비 스퐁 주교가 쓴 새롭고 상상력이 넘치는 이 책은 그런 불필요한 혼란에서부터 독자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다.”

Karen Armstrong, 신의 역사저자

 

기독교의 탈 신화적 비전(post-mythic vision)을 해명하는 작업에서 존 쉘비 스퐁 주교보다 더 앞선 사람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의 노련한 해석은 고전이 될 것이다.”

Michael Dowd, Thank God for Evolution: How the Marriage of Science and Religion Will Transform Your Life and Our World 저자.

 

스퐁 주교가 요한복음과 깊이 씨름한 결과로 결실을 맺은 이 책은 지배적인 생각들과 해석들에 대해 도전한다. 신앙을 개방적이며, 활기차며, 포용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Tat-Siong Benny Liew, Pacific School of Religion의 신약학 교수

 

유대 신비주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작업은 스퐁 주교에게 맡겨라. 그가 요한복음에 대한 학문적 성과들을 종합한 이 책은 평신도들과 성직자들 모두에게 요한복음의 놀라운 메시지를 새롭게 음미하도록 안내할 것이다.”

David Felten & Jeff Procter-Murphy, Living the Questions: The Wisdom of Progressive Christianity 저자

 

스퐁 주교는 독자들로 하여금 요한복음을 새롭게 읽고 또한 기독교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는 신바람 나는 여행으로 초대한다. 요한복음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이다.”

Kah-Jin Jeffrey Kuan, Drew University 신학대학원장


스퐁 주교의 글은 항상 읽기 쉽고 많은 깨우침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은 탁월한 학문성에 근거하여, 마치 탐정소설이나 모험담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Fred C. Plumer, ProgressiveChristianity.org 회장





목차

 

서문 __ 9

 

1부 요한복음서 개론

1장 무대 설정 __ 27

2장 요한복음: 한 사람 이상의 저자가 쓴 하나의 복음서 __ 37

3장 요한을 다른 복음서들로부터 분리하기 __ 49

4장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작품 __ 59

5장 서문의 유대적 뿌리 추적하기 __ 71

6장 스며드는 지혜: 유대 신비주의로 들어가는 문 __ 81

7장 비()문자주의자 요한 __ 95

 

2부 표적들의 책

8장 예수의 어머니: 표적들의 책 소개 __ 111

9장 니고데모: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 __ 121

10장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예수 경험의 새로운 차원 __133

11장 이방인 관리의 아들: 하느님과 믿음의 의미 __ 149

1238년 된 장애인 __ 161

13장 안드레와 빌립: 홍해와 만나 __ 171

14장 예수의 형제들: 출신에 대한 논쟁 __ 181

15장 장님으로 태어난 사람: 유다이즘과의 분리가 완결되다 __ 191

16장 나사로: 최후의 장벽 깨뜨리기 __ 203


3부 고별담화와 대사제의 기도

17장 베드로와 사랑의 계명 __ 215

18장 속죄가 아니라 영광: 요한이 밝히는 예수의 죽음 __ 227

19장 포도나무 유비: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내주하는 하느님 __ 243

20장 예수의 기도: 겟세마네의 변형 __ 259

 

4부 수난 이야기: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21장 요한복음의 절정에 대한 간략한 소개 __ 269

22장 유다: 어둠의 인물 __ 275

23장 베드로: 영혼의 투쟁 __ 287

24장 빌라도: 생존과 진리 사이의 갈등 __ 299

25장 십자가에서: 예수의 어머니와 사랑받는 제자 __ 313

26장 다 이루었다: 물과 피가 함께 흐르다 __ 325

 

5부 부활: 신비적인 하나됨이 드러났다

27장 요한의 부활절 이야기 소개 __ 337

28장 막달라: 집착이 아닌 가능성을 위한 여행 __ 347

29장 베드로와 사랑받는 제자: 몸 없는 부활의 시작 __ 359

30장 오순절: 예수의 재림잠시 동안” __ 363

31장 도마: 마지막 증인, 최후의 주장 __ 375

32장 에필로그: 부활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지만 진짜다 __383

참고문헌 __ 395




나의 스물네 번째 책인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성취감을 느낀다. 나는 영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곳에 도달했다. 나의 인생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따라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며, 그 신비는 계속해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도구인 단어들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빠져들게 된다. 나는 나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존 A. T. 로빈슨이 그의 마지막 책들 중 하나의 제목을 마지막엔 하느님(In the End, God)이라고 정하고, 폴 틸리히가 자신의 책 중의 하나를 경계선에서(On the Boundary)라고 한 것을 볼 때, 그들도 동일한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은퇴한 주교(존 로빈슨 주교)가 나에게 했던 말에 크게 공감한다. “나이가 들수록 믿음은 더욱 깊어지지만, 내가 간직한 믿음 조항들은 점점 더 적어진다네(The older I get the more deeply I believe, but the less beliefs I have). 내 생각에는 그것이 모든 종교 체계가 가리키는 신비한 연합(mystical oneness)이며, 따라서 그것은 종교적 여정의 목표이다. 이제 나는 그 경계선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82년의 인생 전부를 통해 기독교 신앙과 씨름해왔고, 이 순간, 나의 전통적인 비판자들은 놀라겠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헌신과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깊어지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러나 나의 헌신은 그리스도와 기독교 신앙 모두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대한 헌신이다. 나는 점점 더 강하게, 서로를 분리시키는 장벽이 없고, 고대 신조들에 나를 얽매지 않는 기독교에 이끌리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전례 형식으로 담거나 표현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이다. 내게는 확실성을 발견하거나 종교적 안정감을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다. 나는 차라리 인생의 본질인 철저한 불안정(radical insecurity)을 받아들이는 한없는 기쁨 가운데서 사는 편을 택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또 다른 신앙의 길을 걷고 싶은 욕망도 없다. 나는 만일 내가 그리스도의 길을 깊이, 그리고 충분히 멀리 걸으면, 그것이 나를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기독교 신앙 너머의 어떤 곳으로 이끌어 줄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부정적인 진술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으로 본다. 예수는 자신의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전망(a new vision of God)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나는 나 역시 그런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며, 내가 축하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은 궁극적이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의 궁극성 속으로 들어가는, 내가 아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 신앙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의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길이며, 따라서 내가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망설임 없이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삶을 그리스도 체험이라는 렌즈를 통해 정의하며, 그것은 나를 만족시킨다. 나는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라는 점을 깊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이라 부르는 분의 의미가 나에게 열려졌다.


여기서부터 나는 신비주의, 신비적 경험 안에서 도달하는 의식의 새로운 차원에 대한 주장, 특히 1세기 유대인들의 신비주의 형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말 갑작스럽게 요한복음은 유대인 신비주의(Jewish mysticism)의 결과물로 내 앞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요한복음의 예수는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방문자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드러낸 사람이 되었다. 이제 이런 새로운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과 하나라는 예수의 주장은 성육신의 언어가 아니라 신비주의적 언어였다. “나를 본 사람은 내 아버지를 본 것이다같은 요한복음의 진술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하느님의 이름을 자신을 위해 주장하기 위해 말하는 나는 ~이다(I AM), 그리고 요한의 예수의 목적은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까지도 모두 이 복음서가 진정으로 말하려는 것을 위한 도발적인 새로운 길이 되었다.

그래서 이처럼 수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을 갖고, 나는 요한복음 연구에 착수하여 5년간 몰두했다. 이것은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풍부한 연구 경험 중 하나였다. 그 기간 동안 매일 신문을 읽는 것과 내가 추천하거나 리뷰하기로 동의한 책 말고는, 오로지 요한복음서에 대한 재료들만 읽었다. 나는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에 나온 요한복음에 관한 거의 모든 중요한 영어 주석을 읽었다. 또한 20세기에 출판된 학술적인 신학 잡지들과 성서학 잡지들에 실린 요한복음 관련 논문들도 훑어보았다.



우선, 나는 점차 요한복음을 유대인들의 책으로 보게 되었다. 요한복음은 20세기 초반의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일차적으로 영지주의적(Gnostic) 작품이나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문서가 아니며, 또한 예루살렘과 아테네를 합치려고 했던 1세기 유대 철학자인 필로(Philo)의 저술과 비슷한 종류의 책도 아니다. 요한복음은 오히려, 내가 발견하기 시작한 것과 같이, 진정으로 팔레스타인-유대인들의 책이었다. 나는 예수를 해방시켜라(Liberating the Gospels: Reading the Bible with Jewish Eyes, 최종수 역)에서 마가, 마태, 누가에 대해, 그 책들이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회당에서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추방당하기 전에) 예배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유대인들의 예배력(liturgical year) 절기들에 상응하는 (크리스천 예배를 위해 성경읽기 본문을 마련해주기 위한) 문서라는 점을 밝혔기 때문에, 나는 이제 요한복음을 풀어줄 비슷한 배경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1960년에 에일린 길딩(Aileen Guilding)이 발표한 4 복음서와 유대교 예배: 고대 유대인 성구일과 체계와 요한복음의 관계에 대한 연구(The Fourth Gospel and Jewish Worship: A Study of the Relation of St. John’s Gospel to the Ancient Jewish Lectionary System)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을 정독함으로써 나는 요한복음을 보는 새로운 창을 발견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예수가 자신이 창조 때부터 선재한 존재라고 주장한 것, 또는 예수가 하느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이고, 따라서 하느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라는 요한의 개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