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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9 22:14

순수한 예수운동

조회 수 8238 추천 수 27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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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준우 (honestjesus@hanmail.net)
2004/11/8(월) 08:27 (MSIE6.0,Windows98,Win9x4.90,i-NavFourF) 218.156.170.104 1024x768

"순수한 예수운동"  

한사랑님이 "반미도 아니고 친미도 아니며 숭미는 더욱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에 대해 "반미언동"을 중단하라는, 숭미적으로 들리는 말에 근거해 숭미주의자로 매도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미국의 제국주의 행태에 대해 비판하는 나와 같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 대해 "경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으셨지만, 한사랑님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에서 그 이유가 짐작은 됩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반미는 금기사항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왔으니까요.

그러나 한사랑님이 말하는 '순수한' 예수운동이나, "예수님에 대하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요?

또한 만일에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운동이 철저한 반제국주의운동을 벌인 것이 아니라, 한사랑님처럼 단순히 "현실정치에 관해서는 중립적이며 집권자들에게는 비판적"이었다면, 로마제국과 성전 지배자들은 도대체 왜 그처럼 현실정치에 대해 "중립적"이며 집권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어떤 의미에서 애매모호한 예수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십자가형이라는, 로마제국의 노예들과 정치범들에 대한 극단적인 처형방식으로 처형했어야만 했나요?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과 예수님, 심지어 바울조차도 철저하게 반제국주의 운동을 전개했다는 나의 결론은 결코 님이 주장하듯 "편협한" 신학적 주장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 기초한 올바른 결론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기독교 역사상, 정치적 통치자들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해왔던 종교 지도자들과 사제들은 언제나 순종과 온유함을 기독교인의 중요한 미덕으로 강요했으며, 최소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강요해왔던 이론적 및 신학적 근거가 바로 예수를 탈정치적인 인물, 즉 오직 종교적-도덕적 인물로만 왜곡시켰던 것이고, 그런 탈정치적 예수운동을 "순수한" 예수운동으로, "성서적인" 예수상으로 세뇌시켜왔었던 것이지요. 그처럼 왜곡된 예수상은 기독교인들을 길들이고 지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선교활동의 정치사회적 측면이 거의 탈각되어버린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나 2천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권력자들의 그런 반예수적 왜곡과 세뇌에 놀아나는 순진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의 주님 예수님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만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참고로 예수 세미나는 예수에 대한 "정치적" 해석에는 별 관심이 없는 학자들의 집단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능한 한 정직하고 정확한 모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200여 명 가까운 신약학자들의 집단이지, 님의 주장처럼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더하고 빼는 집단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순수한 예수운동"이란 예수님에 대한 지배자들의 "불순한 왜곡"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교활동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 아닌가요?

또다시 말이 길어져 미안하군요. 월터 윙크의 작은 책 <예수와 비폭력 저항>은 그동안 교회가 얼마나 잘못된 제국주의 앞잡이와 같은 예수상을 가르쳐왔는지를 성경적으로 가르쳐줍니다. 또한 <예수와 제국>을 쓴 리처드 호슬리는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가 아닙니다. 250쪽에 지나지 않는 그 번역본이 이번 주중에 출간되니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고, 논리적인 비판을 해주신다면, 토론을 계속하지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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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04.11.09 22:18
    이름: 노문하 (nomoonha@hanmail.net)
    2004/11/8(월) 12:15 (MSIE6.0,WindowsNT5.1) 69.29.159.202 1024x768

    Re.."순수한 예수운동"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시킨 것은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정말 혁명가가 되기를 원했다면 왜 그리 못하셨겠습니까? "내가 당장 아버지께 12영도 더 되는 천군 천사를 동원해서 로마 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취지에서 말씀하신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지(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그런 오해 내지 몰이해 속에서 예수님을 배반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 자신이 반제국주의적 혁명가로 자처한 적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결국 평소에 성전을 모독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이것도 그 당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의 오판에서 나온 생각이지요) 예수가 눈엣 가시인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구실을 찾던 중에, 그당시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던 생각(예수를 정치적 메시아로 인정하는)을 이용하여 예수님이 민중들을 선동하여 왕이되려 한다고 모함함으로써 결국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한 것입니다(빌라도는 예수와의 짧은 대화 속에서 혹은 직감으로 그가 무죄인 것을 알고도 민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워 비겁하게 예수를 내어주지 않았습니까? 만일 평소에 예수님이 로마 정부나 빌라도의 눈에 정치적 메시아 내지 반제국주의 혁명가로 드러나게 행동했다면 유대교 지도자들과 민중들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을 치기 훨씬 전에 빌라도가 앞장서서 십자가 처형을 명령했을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대놓고 반제국주의 혁명가로 살았다는 님을 비롯하여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오판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님의 글들을 읽어 보면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 대부분이 마치 예수를 반제국주의 혁명가로 보고 있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예수 운동의 핵심이었다는 식으로 판단하여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순수한(?) 예수님을 따라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제국주의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 같습니다. 제발 판단의 균형을 잡으십시오. 왜 예수 운동을 한쪽으로만 몰아서 그것이 전부인양 이야기합니까? 역사적 예수를 견유학파의 지혜 담화자로 보는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종말론적 내지 묵시론적 예언가로 보는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어 기사를 일으키는 이적 행사자 내지 마술사로 보는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 전통을 따른 고난받는 종, 수난의 메시아로 보는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한가지 덧붙이자면,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는 혁명가로 간주하는 이유는 그런 이해와 맞지 않는 복음서의 모든 기록들을 전부다 싸잡아 객관적인 뚜렷한 증거도 없이 부활절 이후에 나온 초대교회의 작업(예수님을 영성가로 만들거나 신격화 시키는 작업)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입니다(실례를 든다면, 4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많이 영성화되고 신학화되었다는 판단하에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해 요한복음서의 기록을 거의 다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기준 설정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시도는 님이 못마땅해하는 예수 운동의 "탈정치화" 시도와 똑같은 수준에서의 예수 운동의 이른바, 의도적인 "탈영성화" 시도라고 봅니다. 그리고 님이 그렇게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는 똑같은 감정에서의 예수님을 반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몰아세우는 시도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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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04.11.09 22:19
    이름: 김준우 (honestjesus@hanmail.net)
    2004/11/9(화) 08:07 (MSIE6.0,Windows98,Win9x4.90,i-NavFourF) 218.156.170.104 1024x768

    Re.."순수한 예수운동"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각자의 증언이 서로 중대한 차이점을 드러내거나 정반대되는 경우,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의 증언이 아무리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성경해석에 따라 천양지차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 다음에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귀기울이는 노력을 하고, 다시 자신의 증언을 되돌아보면서 나에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신앙적 독선과 종교적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2. 성경과 기독교 전통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삶의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전제를 갖고 접근하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그 전제가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며, 성경본문이나 기독교 전통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들이 우리의 전제가 더욱 타당성을 갖는 것이 되도록 도와주고 종종 우리의 전제를 수정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신앙적인 문제에 관해 서로 다른 전제를 지닌 이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흔히 겪는 어려움은 학문적인 기초 없이 성경본문(혹은 그 본문에 대해 자신이 믿는 것)을 절대화하는 경우입니다.

    3. 복음서들은 그 본문을 기록한 저자들의 종교적 체험에 근거한 신앙고백이지만, 당시 그 저자의 특수한 상황과 해석, 기록 의도를 반영한 것들이지요. 그러므로 그 본문을 기록한 저자의 상황과 해석을 이해해야만 그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님이 인용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예수에 대한 태도에 관한 성경본문의 기록을, 그 본문을 기록한 저자의 상황과 해석과 무관하게, 문자적으로 주장하면, 예수를 죽인 책임을 로마총독이 아니라 모든 유태인들에게 돌렸던 복음서 기자들의 상황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반유태주의를 초래한다는 말입니다. 스퐁 감독의 <예수를 해방시켜라>는 복음서 기자들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4. 예수운동이 반제국주의 운동이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반제국주의자로 자처했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고 몸소 실천한 하느님 나라, 보다 정확하게는 하느님의 제국이 당시 로마제국의 질서에 맞서서, 그 제국적 질서와 정반대되는 대안적 질서로서의 하느님의 통치질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반제국주의운동이었다는 말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호슬리의 책 <예수와 제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5. 님이 지적했듯이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여러 해석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슈바이처 이후 20세기 예수상을 지배했던 "묵시종말적 예언자"는 이제 그 학문적 근거가 논박되었으며(샌더스의 입장을 비판한 마커스 보그의 논문 "비종말론적 예수를 위한 주장"에 대해 논박한 글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지혜의 교사"는 오히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대가인 크로산의 경우처럼 "사회적 혁명가"(결코 군사적 혹은 정치적 혁명가가 아닙니다)의 한 측면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즉 예수님 당시 전통적인 지혜를 뒤집어 엎는 새로운 대안적 지혜를 가르침으로써, 비폭력적인 사회적 혁명가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였다는 말입니다. 님의 주장처럼 학자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교회의 입장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전승층에 대한 분석을 그 잣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 서론부분만 읽어보아도 그 잣대가 얼마나 정교하며 치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학문적 잣대 자체를 거부하면,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포기하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6. 내가 특히 예수운동을 반제국주의운동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위의 4번에서 지적한 근거 이외에도, 첫째로, 성경전체에 나타난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활동을 가로막는 가장 막강한 세력이 제국들이었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활동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특히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나타났다는 점 때문에, 예수운동을 성경전체의 맥락에서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극심한 영향 가운데 있기 때문에, 예수운동의 반제국주의적 성격이 한반도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적합한 해석의 관점이라는 말입니다.

    7. 셋째로 예수님의 목회가 반제국주의적 대안 공동체로서의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 만들어나가신 목회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 즉 "지적이며 도덕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근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목회가 겨냥했던 하느님 나라가 바로 반제국주의적 대안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한 것이었음을 분명이 인식할 경우, 예수운동을 계승하는 우리의 목회의 목표 역시 예수님의 목회의 목표를 따를 경우, 한 예로, 교회 안의 남녀차별, 빈부차별, 불평등한 계급주의, 목회자의 전횡, 교회세습, 등등의 타락한 모습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또한 타종교인들과 교회밖의 불신자들에 대한 정죄와 배타적 태도 역시 죄인과 세리들 모두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있다고 믿고 사신 예수님의 목회방침과는 배치되는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메리카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가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8. 예수운동이 반제국주의운동이었다는 말은 결코 님이 염려하듯 "탈영성화"가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기독교 영성운동을 바로잡아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사로잡아 이끌었던 하느님의 영이란 흔히 기독교 영성운동의 두 잘못된 입장, 즉 개인의 심령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현실도피주의, 혹은 정적주의적 개인중심의 영성운동과 세속의 축복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자본주의적 영성운동이 모두 예수의 공동체적이며 역사변혁적인 영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임을 보여주며, 그 영성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적으로 성육신하여야만 하는지를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영성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9.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시나마 정성껏 나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았지만, 아둔한 머리와 둔탁한 글솜씨로 인해 얼마나 만족스런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대가들이 쓴 책들을 읽으신다면 훨씬 만족스런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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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04.11.09 22:20
    이름: 노문하 (nomoonha@hanmail.net)
    2004/11/9(화) 09:19 (MSIE6.0,WindowsNT5.1) 69.29.35.71 1024x768

    Re.."순수한 예수운동"
    님의 정성어린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님이 주장하려는 핵심 논제가 무엇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성경본문의 기록을 근거로 하는 말에 대하여 문자적 주장이라"고 하는 님의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님은 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인가요? 님은 빌라도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어떤 정치적이며 군사적이 위협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했다고 보는지요? 그래서 끝까지 몇몇 학자들이 세워 놓은 "예수 운동은 반제국주의 운동"이라는 대 전제 하에서, 예수가 반제국주의 혁명가로 십자가처형을 당했다는 주장을 고수하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뒷받침할만한 무슨 성서 밖에 역사적인 증거자료라도 갖고 있나요? 나의 판단으로는, 빌라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어떤 군사적인 위협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것에 대한 근거는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 사후에 그대로 잔존했다는 사실입니다. 님의 생각대로, 만일 예수가 반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처형을 당한 것이라면 그 운동에 참가한 제자들이 무사할리가 있었겠습니까? 비록 그들이 처음에는 도망쳤지만 후에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고 그 곳에서 선교 사업을 수행하지 않았습니까? 예수의 제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지언정 로마인들에 의해 처형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 마저도 문자주의적 해석이라고 예단해 버리실건가요? 대체 님은 어떤 기준으로 문자적 주장과 역사적(사실적)주장을 구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학문적 잣대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세웠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일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반제국주의 운동을 한 인간 예수 상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것과 합치하지 않는 모든 기록들을 비역사적인 진술 내지는 신화적 꾸밈으로 간주해 버리는 일은 비판적 학문을 수행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성경의 기록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저도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역사적 증빙 자료도 없는 성경본문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러한 시도를 무조건 문자주의적 해석으로 몰아부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와 아울러, 댓글 가운데 개인의 심령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기독교 영성 운동을 무조건 "현실 도피주의"라고 단정해 버리는 님의 주장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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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04.11.09 22:21
    이름: 김준우 (honestjesus@hanmail.net)
    2004/11/9(화) 10:38 (MSIE6.0,Windows98) 203.246.117.53 800x600

    Re.."순수한 예수운동"
    예수운동이 반제국주의적 공동체 운동이라는 것은 앞글 4에서 밝힌 것처럼, 나의 전제가 아니라 결론입니다.
    또한 복음서들의 본문들이 그 기자들의 상황과 해석에 의해 어떻게 창작되어졌는지, 본문들에 대한 문자적 주장이란 어떤 것들인지, 그 역사적 근거는 무엇인지를 전체적으로 알기 원하신다면,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나, 혹은 그 책을 낸 후 3년 후에 다시 간추려 낸 <예수: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 그리고 존 쉘비 스퐁 감독의 <2000년 동안의 오해로부터 예수를 해방시켜라>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빌라도 총독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예수의 재판과 매장, 부활 등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기록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가급의 학자들이 분명한 근거 없이 입맛대로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월터 윙크의 소책자 <예수와 비폭력 저항>만 보아도 예수님의 비폭력적 반제국주의 운동을 위한 중요한 가르침이 어떻게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말씀으로 왜곡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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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04.11.12 01:17
    이름: 노문하 (nomoonha@hanmail.net)
    2004/11/11(목) 08:36 (MSIE6.0,WindowsNT5.1) 69.29.167.133 1024x768

    Re.."순수한 예수운동"
    나는 나의 질문에 대한 님의 답변을 기대한 것이지 그런 류의 책들을 소개 받기를 기대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님이 소개한 학자들이 대단한 분들인 것은 나도 잘 압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논제가 모든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내 말은 "예수운동은 반제국주의 공동체 운동이라"는 주장이 그 분야에서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님이 표현한대로, 더더구나 결론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들의 논리가 빈틈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논제를 비판하는 그들과 똑같은 수준에서 대가인 다른 신약학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G. Vermes; L. E. Keck; Luke T. Johnson; J. P. Meier; E. P. Sanders등 - 그런데 참으로 의아한 것은 이들 저서의 각주에는 님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스퐁 감독의 저서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쟀든 님이 강조하는 "반제국주의적 혁명가"인 예수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던져줄 수는 있겠지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저항 정신내지는 개혁정신 같은 것 말입니다. 현실도피가 아닌 정치.사회적인 현실참여(의식)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이 그렇게도 힘들여 찾아내려는 예수는 과거에 죽은 예수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왜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과거에 죽은 역사적 예수의 실상을 찾으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것도 확실한 예수상을 지지하는 아무런 역사적 실증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시도 보다 오늘 우리 안에서 영으로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통해서 얻는 교훈이 더 수월할 것이며 혹은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요? 지난 2000년 동안 신앙고백이 왜곡되었다는 생각에서 그리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참으로 무익한 시도라고 봅니다. 설혹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과거에 죽은 역사적 예수의 실상을 찾았다고 손치더라도, 님은 과연 지나간 이천년간 교회사 속에서 형성된 신앙고백을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님이 추종하는 몇몇 진보주의 성서학자들이 추구하려는 것은 뻔한 것 아닙니까? 사도신경에서 고백된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몸의 부활을 부정하려는 시도 말입니다(추정하건대 예수 세미나에 가담한 학자들치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몸의 부활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대로 믿는 것은 문자주의적 신앙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간 예수를 신앙의 대상이 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키려는 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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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04.11.12 01:19
    이름: 김준우 (honestjesus@hanmail.net)
    2004/11/11(목) 13:34 (MSIE6.0,Windows98) 203.246.117.53 800x600

    Re..이 땅에 개미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도록
    1. 님의 질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 간단히 답변하는 것보다는,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책들을 님이 직접 읽고 답변을 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되어 책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스퐁 감독의 저서가 그 신약학자들의 각주나 참고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특히 존슨이나 마이어 등은 예수 세미나의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며 학제간 연구에 그다지 개방적이지 않은 학자들이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스퐁 감독이 교구를 담당하고 있는 현장 목회자로서, 전문학자들의 이론들을 자신이 소화하여 일반 평신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수준의 책들이기 때문에, 학자들 집단에서는 별로 인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대학생들을 위한 기독교 입문 교재들에는 스퐁 감독의 책들이 자주 참고문헌에 등장합니다.) 세번째 이유는 스퐁 감독의 독창적인 학설이 포함된 저서, 특히 <2000년 동안의 오해로부터 예수를 해방시켜라> 속의 학설을 신학대학에 소속된 신약학자들이 받아들일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잠시 생각만 해보아도, 그 신약학자들이 동조하고 싶어도 동조할 수 없을 학설이기 때문에,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님은 예수 세미나의 학설을 반대하는 여러 신약학자들의 이름들을 거명하셨지만, 나는 그들의 반대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호슬리와 윙크의 입장에 근거해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 반제국주의적 공동체 운동이라고 주장했을 뿐이지, 결코 그것이 모든 예수 연구가들의 결론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 운동을 반제국주의 공동체 운동이라고 규정한 학자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호슬리가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바울을 반제국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가 용기있는 학자라는 말입니다.

    2. 미국이 이미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수십 개의 핵무기를 사용할 전략을 세웠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이 땅에 개미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할만큼 철저하게 초토화시키겠다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전략을 들으면서도, 예수의 하느님 나라운동을 반제국주의 공동체 운동으로 해석하는 호슬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저에 대해 비판적인 님은 혹시 미국 시민권자이신가요? 오늘날과 같은 현실 속에서 예수운동을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보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님의 모습이 한편 제국주의적 기독교에 의해 세뇌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이해는 되면서도, 이 땅에 함께 공동운명을 진 채 살아가는 한국인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군요.

    3. 역사적 예수 연구 자체의 무용론에서 더 나아가 해악론까지 주장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화가 쉽지 않군요. 님처럼 주장하실 분들을 위해, 최소한 톰 라이트의 입장만이라도 이해하고 마커스 보그와의 대화에 참여하도록, 제가 2001년 4월에 이미 <예수의 의미: 역사적 예수에 대한 두 신학자의 논쟁>을 번역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 님의 말대로 역사적 실증도 없이 주장하는 것인지, 진보적인 성서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님의 말처럼 "뻔한 것," 즉 "사도신경에서 고백된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몸의 부활을 부정하려는 시도", "그래서 인간 예수를 신앙의 대상이 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키려는 시도"인지, 아니면 그 신앙의 대상이 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인간 예수의 삶과 가르침 위에 더욱 철저하고 확고하게 올려세움으로써, 기독교 신앙고백이 요즘 젊은이들말로 "헛소리"(nonsense)가 되지 않도록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려는 시도인지를, 최소한 <예수의 의미>를 읽어보고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졸고 The Historical Jesus to the Challenges of Globalization (한국기독교연구소 홈페이지 historicaljesus.co.kr 자료실 역사적 예수 방에 올려져 있습니다)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겨울 오사카에서 열렸던 동북아신학대학교수협의회에서 발표했던 논문입니다.

    4. 2000년 동안 고백해왔던 신앙고백이 만일 잘못된 것이라면, 교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전통은 생명체와 같은 것으로서 언제나 성숙하기도 하며 쇠진하기도 하지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억압하는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종교전통은 심지어 완전히 죽어서 사라져버리기도 하지요. 기독교 신학자의 과제란 성서적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해석이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복음의 활력을 잃지 않도록 지키고,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며,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켜 복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며, 또한 오늘날의 교회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증오하고 결국엔 죽여버린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처럼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감시하고, 경고하며, 개혁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5. 대화는 서로에게서 배우거나 서로를 설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닌 경우에는 서로를 인정하는 길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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