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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상 서평, 2009년 5월호)

사도신경 살아내기 (홍정수 저: 한국기독교연구소 출판)

                                                   2009년 3월 9일  한성수(韓盛洙)


        2009년 2월 한국기독교 연구소(소장: 김준우)에서 출판한 "사도신경 살아내기"는 저자 홍정수 박사의 전작 "베 짜는 하느님(조명문화사: 1991)" 과 쌍벽을 이루는 저작이라고 할만하다.  저자 홍정수 박사는 12년 동안 감리교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로 봉직하면서 포스트모던 신학을 소개한 이유로, 또한 당시 감리교신학대학 총장이었던 변선환 박사의 종교다원주의 주장으로 감리교단의 해악을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두 사람이 함께 1991년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가 고발한 감리교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결국 1992년에 교단출교(黜敎: Excommunication) 당하여 목사직을 잃었고, 드디어 1994년에는 감리교신학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학교를 떠나야만했다.  감리교신학대학은 1992년에 종교다원주의로 변선환 박사를, 포스트모던신학으로 홍정수 박사를, 그리고 2008년에는 역사적 예수 소개로 김준우 박사를 줄줄이 쫓아낸 명성을 얻었으니, 이른바 열린 신학풍토를 지녀왔던 반세기의 전통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위업을 지난 10여 년 동안에 이룩하게 되었다.  한국의 신학대학 현주소를 읽어내는 전거로 삼아보아도 좋을 것이니, 툭하면 신학적인 이유로 교수를 내어 쫓는 여타의 신학대학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교회에 봉사하지 못하는 무책임하고 뜬구름 잡는 신학에 대한 허망한 경멸도 있지만, 교회에 봉사한답시고 교회의 시녀로 전락한 신학자들은 더욱 측은하다 못해 미워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감리교단은 인간 홍정수가 미웠어도 그의 신학은 아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새로운  살 길을 찾아 미국에 건너간 홍정수 박사는 Los Angeles에서 한아름 교회를 개척하여 14년째 담임목사로 봉직하면서, 쌘프란시스코 신학대학 분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Jesus Academy 를 세워 예수목회 방법론을 모색하고, 갈릴리 신학대학원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사도신경 살아내기"는 L.A. 소재 한아름 교회에서 행한 일련의 주일예배 설교를 다듬어 34회분의 신학수필 형식으로 묶어낸 책인데, 장장 360쪽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다루고 있다.  사도신경을 해설한 책이 많이 있지만, 나는 William Barclay가 지은 324쪽 분량의 "The Apostles' Creed"를 읽어본 이래 오랜만에 사도신경에 대해서 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이른바 보수 진영(나는 굳이 보수 대 진보 식으로 금을 그어 나누는 것을 주저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돌아가 의지할 표준적인 사도신경 해설서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Barclay 의 책을 추천할 것이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새로 다가오는 불분명한 미래를 꿰뚫고 나갈 길을 찾는 자들에게는, 홍정수 박사의 "사도신경 살아내기"를 일단 추천하고 싶어졌다.  이 책은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들을 지니고 있다.  Barclay 책을 읽고 나서 느꼈던, "참 많이 배웠네"하던 감상 대신에, 홍 박사의 책을 읽고 나면 하여간 뭔가 시비를 붙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을 지닌 책이다.  좋든 싫든 무슨 마약을 마신 기분이다.  상쾌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하고.......

        우선, 홍정수 박사가 그의 책에 붙인 영문(英文) 제목은 "Sensible Christian Story" 였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이 현행 기독교의 많은 형태는 Sensible(합리적이고 분별력이 있는) 한 모습들을 많이 상실한데서 오는 각가지 폐해를 지니고 있다는 선언이 앞서고 있는 듯하다.  종교가 꼭 sensible 해야하는가하는 질문을 앞세우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sensible 하다는 것은 reasonable (합리적인)하다는 면과 conscious(의식이 있는)하다는 면과 sensuous(감각적인) 한 면과 practical(실제적인) 한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폭 넓은 말이기에, 마치 움직이는 표적 같아서 겨냥하기가 미상불 쉽지 않다.  그러나 홍 박사의 책을 다 읽고나면, 그는 이 모든 것들에 조금씩이라도 다 손가락을 한 번씩이라도 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는 조직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조직신학적 체계를 세워가면서 논증하지 않고, 약간 마음이 불편해진 목회자가 소수의 내부 그룹 사람들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듯이 때로는 심하게 격앙되어  때로는 의기소침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기에 설교의 기회에 나눈 이야기들임에도 흔히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설교가 지닌 정형이나 말투를 벗어난, 그러니 수필이든 횡설수설이든 그런 쏟아내기를 비교적 평이한 말들로 흘리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이것은 신학 연습이요, 신학적 에세이 집입니다. 따라서 서두에 등장하는 성경 본문들은 그냥 참고만 하세요. 설교는 해당 성경주석을 염두에 둔 것이 전혀 아닙니다" 하고 고백하듯이, 이른바 "전통적" 설교이기를 사양하고 내지른 말들이라 생경함이 지나쳐서 반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흐름은 35꼭지로 엮어낸 사도신경 해설이라기보다는 사도신경을 오늘에 살아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를 자문자답하듯이 상당히 유장한 말투로 이어간다.  첫 3 꼭지(1. 큰 창조, 2.믿음과 사건, 3. "나"를 사랑하는 지혜)를 읽다가, 나는 내가 알았던 홍정수가 드디어 지리멸렬하게 변해버렸다고 탄식을 하고 책을 내려놓고 싶어졌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신학계의 이단아(異端兒)가 미국 생활 10여년 만에, 기백도 열정도 사라진 말장난꾼이 되어버렸나, 실망도 이만저만 나는 심지어 화가 났다.  참 좋은 신학자 하나 매장시켜 그도 드디어 흙이 되어버렸나 싶어, 그러지 않아도 듣고 보는 일만으로도 사람의 화를 돋게 만드는 대한 기독교 감리교단에 대한 실망과 증오가, 한 결 되살아난 기억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그런데 억지로 4번째 꼭지를 읽다가 드디어 나는 자세를 바로 고추 세우고 전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여전히 전능하신 하느님"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고 있는 사람은, 그 하느님이 아무리 나약할지라도, 그 하느님을 향하여 전능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이제 드디어 홍정수 박사가 사도신경에 대한 해석학적 틀로 삼고 있는 대전제, "사도신경을 고백한 사람들의 자리는 승리자의 자리가 아니라, 처참하게 패하여 마침내 할 수 없이 정든 곳에서 쫓겨난 유배자들의 고백이었다"(46쪽)가 처음 불꽃을 터뜨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런 고백을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적대적인 세력들과 맞서 싸우면서, 그들의 위협 속에서도 소수자의 그룹인 신앙인들의 그룹과 나 자신이 하나가 되었다는 정치적인 선언을 한 것" (79쪽)이라는 말에 이어진다.  나는 무릎을 치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뒤로 갈수록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다.

        "자신의 한계를 철저하게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겸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101쪽).  이는 옛날의  유난히 가시돋힌 말을 잘하던 신학자 홍정수 박사가 아니라, 미국 땅에서 이민교회 목회 12년을 하면서 성깔의 모퉁이가 다 닳아빠진 몽돌로 변한 홍정수 목사의 고백임에 틀림없다.  "복수할 수도 없고. 미워하지 않을 수도 없고, 헤어질 수도 없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을 가볼 수밖에 없습니다" (117쪽).  바로 그런 몸부림이 "예수님의 판단에 의하면, '원수를 사랑하고' '완전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 없이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라고(117쪽)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삭이며 부단히 스스로를 채찍질해온 한 목회자의 자기 확인처럼 들려온다.  그런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반복하여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려는 노력이 "사도신경 살아내기"로 자꾸만 되새김질하는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돌아와서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은 나 자신도 아니고, 내가 입으로 '주님'이라고 고백하던 예수님도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에, 저는 슬프고 수치스럽습니다" 하고(125쪽) 탄식하며 살아온 길을 돌아본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나는 자유를 원하지만,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될 때는 오히려 자유인이 되지 못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섬기며, 그분의 본을 따라 살기로 작정할 때에, 역설적으로 나는 참으로 자유로운 나 자신이 된다"고 (127쪽) 얌전한 모범 교인으로 자기를 세운다.

        "종교인들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입니다."(135쪽). 그러나 홍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일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냐 아니냐'하고 논쟁하던 옛 사람들의 말을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말이 생물학적으로 참이냐 아니냐'로 알아듣고 질문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옛 종교인들의 '관용어'를 오늘날의 무시간적인 과학적 언어로 취급하는 심각한 넌센스를 범하는 것입니다."  관용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보수성향의 종교라도, 그 해석은 새 시대의 말로 드러내야한다는 뜻이겠다.  그리고 그런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조직신학적 민감성을 지닌 언어는 책의 도처에서 게릴라처럼 나타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사실 사도신경 해설서가 아니라, 사도신경을 고백했던 2세기 사람들의 정황을, 이제는 그 정황이 달라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삶의 중심적인 의미 발견에로 인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도전적인 말씀나누기다.  이 책을 읽고 나서 Barclay 의 The Apostles' Creed 를 읽고난 기분에 비교라도 하듯이 뭔가 신경(信經)의 내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지식을 원한다면 실망하겠지만,  낡은 술잔에 새 술을 부어 마시는 기분으로 음미해보면서, 새록 새록 묘한 맛을 내는 청신함이 솟아오른다.  더러는 그 청신함이 독(毒)이라고 생각도 하겠지만.

        " '예수님의 십자가'가 식사의 본식(本食)이라면 '종려주일'은 전식(前食) 같은 것이고, '부활절'은 후식(後食)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9쪽).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예수께서 결국은 종려주일(Palm Sunday)의 주인이 되신 사연은, "시대의 요청" 앞에 예수님이 자기의 몸을 내맡긴 양심의 소리에 굴복한 것으로, 그러므로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예수님 자신을 생각하면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승리였습니다" 라고(172쪽) 저자는 매듭짓는다.  서평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본식(本食)은 "예수의 재림 대망"이라고,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은 전식(前食)이요 부활이야 말로 후식(後食)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이점에 대해서는 후일에 논쟁을 거칠 용의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사도신경의 끝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를 기대하면서, 그러기에 죄가 사하여지고 몸이 다시 살아 그날에 이르도록 영생을 믿는다고 마감한 사연이 어쩌면 후식(後食)역할을 하는 것도 같다 (이는 평자의 사족임).

        이 책 전체를 통해서 평자의 마음에 깊은 공명을 일으켰던 부분은 18꼭지 "십자가는 고난이 아니라, 말이었다" 라는 글이었다.  "실제로 죄 없는 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덕분에 인류가 죄를 용서받게 되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인신(人身)희생(犧牲) 제사"라고 하는 원시적인 믿음일 뿐" 이라고(191쪽) 대담한 선언을 하는 저자는 이 점에서 그의 전작 "베짜는 하느님"의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십자가를 지려고 했던 그의 '삶', 십자가 속에 담긴 예수님의 '행동의 의지', 그 '메시지' 때문에 그의 십자가가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와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구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다른 십자가와 구별되게 하는 것입니다" (198쪽)에 이르면, 전통적인 사도신경의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사이에 생략된 예수님의 삶, 역사적 예수의 행간을 메운 "예수님의 언어사건"이라고(198쪽) 저자는 통렬히 주장한다.  그런 십자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교회에 오늘날 영리한 청년들이 구원의 힘을 잃어버렸다고(199쪽) 홍정수 박사는 탄식한다.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19살(영아 사망이 많았으므로) 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예수님은 37살 정도에 죽임을 당것으로 "장수했다"고 까지 말하면서도, 저자는 부활은 "어떻게 살거냐"의 이야기로 환원시켜 버린다 (225쪽).  그러므로 부활은 정의의 심판이라고, 따라서 "우리의 국가, 이웃, 사회, 정의 등을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며 살면, 부활이 없습니다"로(226쪽), "예수님 한 사람이 죽고, 그에게 감동을 받은 수 없이 많은 신앙의 식구들이 태어난 것처럼, 한 사람이 죽어서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는 부활의 이야기를 믿으십시오"라고 권면한다(226쪽).  즉, 부활을 한 알의 밀알이 썩고 새로운 생명으로 나타나는 부활을 증언하는 것으로,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24절을 가장 확실한 부활 해석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죽음이 부활의 전제임을 강조하는 뜻으로 "정의의 심판"임을 천명하는 저자는 칸트(Kant)의 말을 의미 있게 인용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았는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런 이들을 위해 내세를 만들었다"고.   그러나 분명히 성서가 주장하는 부활은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모두 부활을 기대하고 있어서, 결국은 심판자 앞에 세울 그날을 향한 부활이 아니었던가?  부활을 부활 그 자체로서 신기한 능력, 기적적인 하느님의 권능이나 사랑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부활은 부활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해가는 수단이거나 부활 그 자체의 신바람일 수 없다.  저자 홍 박사는 이점에 동의해 줄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 가셨고, 언젠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 이라는 신화적 그림을 중국 문자라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여 표현하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될 것이라는(238쪽) 저자의 견해에는 나중에 "중요한 것은 우리기 믿는 믿음, 우리가 희망하는 희망이, 실제로 지금 여기서, 우리의 삶에 어떤 열매를 맺어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린다는 하여, 우리가 불쌍한 사람이 되는 법은 결단코 없습니다"라는(240쪽) 덧붙임이 없었으면 오해되기 쉬운 말이었다.  그것은 신화적 그림이 아니라, 사실적 그리움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동시에 " '성령을 믿습니다' 란 말 앞에 '주님의 고난' 이 있으며, '성령을 믿습니다'라는 말 바로 뒤에 '동지애'가 있습니다" 라는 설명에서 저자의 빛나는 성찰이 드러난다(250쪽).  "예수님의 고난과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그려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무런 신비의 경험이 없더라도 여러분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면서(250쪽), 홍정수 박사는 이제는 칼 대신 솜과 붕대를 들고 와서 환자의 가슴을 만져주는 간호사로 변해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신경의 핵심을 요약하고, 1)제일 처음에 나오는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  2)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3)"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셨다."  4)"사도신경은 하느님 얘기도 아니며, 죽은 다음에 복 받는 얘기도 아니고, 고난에 대한 일반적 찬미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다.  인생을 살다보면 삶이 아닌 죽음을 선택해야 되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게 되고, 이때에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시대의 사람들(순교자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말로 전한 자기 긍정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홍정수는 4번째의 것을 택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2세기 사람들에게는 "죽는 길이 사는 길"이었으나, 20세기의 사람들에게는 "변함없이 인간을 운명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고통에서 해방시키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코이노니아(친교, 공동체)를 형성해가면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며 살 수 있겠느냐는 것이, 죽는 것만큼 힘들 것이라고 내다본다.  아 아 홍정수도 세월 속에서 이제는 부드럽게 늙어가는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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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역사적 예수 사영리와 사생리 / 나는 왜 역사적 예수에 관심하는가? / 그분을 찾습니다 / 한인철 5 한기연 2010.02.24 153726
공지 역사적 예수 예수목회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홍정수 13 file 한기연 2010.02.19 168066
공지 기독교윤리 두달만에 - 북극 지역 빙하의 크기 변화 2009/9 22 한기연 2009.09.19 182365
공지 가정사회소식 소득 5분위 배율 비교 25 file 한기연 2009.09.13 182984
공지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 연구 서적들 읽는 순서 추천 4 file 한기연 2008.12.03 179233
공지 기독교윤리 세계/교회/신학의 물적 토대 - 신학의 출발점 9 file 한기연 2008.09.01 180453
공지 북극해의 해빙 속도와 기후변화, 한반도 가뭄과 사막화 위기 19 file 한기연 2008.05.14 201611
공지 역사적 예수 교회개혁을 위한 25개 신학논제 - 김준우 5 한기연 2007.10.20 182231
공지 실천신학 목사 개(dog)론 / 축도유감 / 그 안타깝고 아쉬운 오르가즘의 하느님 / 한성수 3 한기연 2004.08.30 146604
공지 실천신학 생명의 양식으로서의 성만찬/ 혼인주례자 상담체크 리스트 1 file 한기연 2003.09.30 29503
1061 조직신학 희생과 은총 1 file 토마스 베리 2003.09.27 4688
1060 역사적 예수 희망과 정의 - 존 디어 한기연 2008.05.22 5213
1059 조직신학 희년의 재해석과 교회의 사명 file 콘라드 라이저 2003.09.29 4404
1058 교회교육 희년을 맡기 위한 평화 통일 교육의 모색 file 장종철 2003.07.31 4275
1057 조직신학 흑인 신학 이야기(2) file 서창원 2003.07.14 5767
1056 조직신학 흑인 신학 이야기(1) file 서창원 2003.07.14 6712
1055 조직신학 흑인 신학 이야기 3 file 서창원 2003.07.15 6169
1054 조직신학 후회하시는 하나님 file 홍정수 2003.07.14 8026
1053 교회사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 한기연 2019.01.01 100
1052 교회사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1961) 한기연 2019.01.01 177
1051 교회사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 한기연 2019.01.01 98
1050 교회사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 한기연 2019.01.01 88
1049 조직신학 회중이 주인되는 교회 file 김기철 2003.07.16 4756
1048 교회사 황사영 백서(黃嗣永 帛書) file 정두희 2003.12.22 4039
1047 기독교윤리 환경윤리의 도전에 직면한 아프리카 독립교회들 file M.L. 대니엘 2004.05.10 6411
1046 환경소식 환경스페셜: CO2의 경고 해양산성화 한기연 2010.12.29 9936
1045 환경소식 환경 관련 도서목록 한기연 2010.08.20 8249
1044 가정사회소식 화석화된 군국들, 이스라엘과 한국 / 박노자 한기연 2009.01.22 4255
» 조직신학 홍정수의 <사도신경 살아내기> 서평 / 한성수 한기연 2009.07.30 9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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