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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윤리
2020.01.06 10:25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한국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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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에 맞서 싸우겠습니까?

 

-- 성소수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은총을 찾아야겠습니다 --

 

 

장로님, 무더위 속에 가족 모두 평안하신지요?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매우 큰 고통을 겪는 시절에 교회가 또 다시 방역 문제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신천지에 이어 사랑제일교회가 집단 감염의 본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리교의 이동환 목사가 작년에 동성애자들을 축복했다는 것 때문에 30년 만에 또 다시 종교재판이 벌어지고, 신학대학 교수들 3백여 명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은 모두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직결된 문제로서, 역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위협당하는 때에 한국 교회에 대한 이런 지탄은 매우 안타까울 뿐 아니라 교회의 뼈아픈 반성을 요구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장로님께서는 제가 3년 전에 무지개신학연구소를 세워 성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던 이유를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하셨으니, 제 평소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유대인들의 속담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웃으시게 만들고 싶다면, 너의 계획(your plans)을 그분께 말하라! 그러나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게 만들려면, 그분의 계획(His plans)이 무엇인지를 그분께 말하라!” 그분의 계획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말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말이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도록 만들지는 않을지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합니다. 인간이 결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는 신묘막측하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교리와 정통신학은 흔히 절대 불변의 진리를 주장하지만,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한계와 무지함을 인정하고 겸손하라는 경고라고 이해합니다.

애당초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당시 막강한 제국의 중심부를 떠나 변두리로 가도록 이끄신 하나님의 전혀 뜻밖의 계획, 천민계층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히브리 노예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참으로 황당한 계획, 그렇게 선택하신 백성들에게 구체적인 인권 보호 율법까지 주심으로써 정말로 주변부에서 짓밟히고 신음하는 사람들까지 기쁨과 정의를 누리는 민족을 만드셔서 인간 세상의 본보기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계획하셨지만, 통일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는 오히려 서로 죽일 듯 미워하며 전쟁을 일삼았던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이런 통절한 지혜를 배운 것이 아닐까요? 노예들 출신으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민족을 통해서 만이라도 모두가 해방과 정의를 누리는 공평한 세상을 만드시려는 그분의 계획은 인간의 눈에는 결코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계획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혁명적이며 우주적인 계획과, 백성의 정치종교 지배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인간들의 계획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되풀이해서 뼈저리게 경험했던 때문일 것입니다. 나사렛이라는 깡촌 출신의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주변부의 짓밟히는 사람들이 중심부까지 구원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도 아픈 손가락에 자꾸만 신경이 가듯이, 하나님의 눈길은 항상 세상의 주변부 밑바닥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지만, 정치종교 당국자들은 항상 중심부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를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주장하는 역설과 허위를 유대인 민중들이 간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최선은 어떤 확신도 결여하고 있지만, 최악은 강렬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지요. 이것은 인간의 절대적인 확신강렬한 열정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수많은 정치종교적 열광주의자들을 낳았으며, 또한 그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비롯해서 얼마나 끔찍한 잔혹행위들이 초래되었는지를 꿰뚫어 본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이해한 하나님의 계획이란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을 탄식하시다 못해 대성통곡하시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지요.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차별과 폭력과 죽임이 더욱 만연해질수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어떤 명분으로든 차별과 폭력과 죽임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 명령이라고 제가 이해하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특히 종교 내부의 모순이 여실히 드러날수록 그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적이나 사탄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타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역사적 사명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은 한국 교회 안에서 빨갱이들(종북 세력)”을 제거 대상으로 삼다가 더 이상 효과가 없자 최근에는 반동성애운동에 몰입하면서 온갖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데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기 전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 신앙으로 삶의 온갖 아픔과 고난의 역사를 헤쳐 나갔지요. 관세음(觀世音), “세상의 슬픈 소리를 보는보살은 인도에서는 남성 보살이었지만, 중국과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성 보살로 그 젠더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생명을 낳아 키워내고 살려내는 극진한 모성과 여성성을 통해, 가부장적인 종교들이 초래한 차별과 폭력과 죽임의 질서를 극복하려는 마음을 우주적인 원리로 본 대항문화적 통찰력과 종교성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가부장적인 세상의 차별과 폭력과 죽임을 확대시키면서 사람들의 심성마저 더욱 모질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세상의 온갖 슬픔과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아 치유함으로써 상처받은 심성을 부드럽게 회복시키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온갖 차별과 조롱을 겪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종교재판을 벌이며 신학대학 교수들 수백 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한국 교회가 역사상 수많은 침략과 전쟁, 반란을 통해 온통 피로 물들었던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그 기나긴 고난으로 점철된 눈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관세음 신앙처럼 슬픔과 아픔을 온몸으로 품어 안는 어머니의 바다 같이 넓은 품을 내팽개치고,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사막종교의 막장 칼부림 버릇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여 안타깝습니다. 작금의 교회 현실을 보면서,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두고 찾아나서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라고 가르치신 예수님(마태 18:12-14),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외면한 채 예언자들을 죽이던 예루살렘의 종교 당국자들을 향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들을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태 23:37)라고 탄식하신 예수님을 새삼 기억하게 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요?

 

2

 

우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제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도록 만드는 생각인지, 아니면 탄식하시도록 만드는 생각인지는 장로님께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전쟁 전에 태어난 저희들 세대가 어느덧 인생의 끝자락이 내려다보이는 고개에 올라서고 보니, 저희들 세대는 이 땅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면전 없이 살아온 것만도 참 감사하지만,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 세대를 생각하면 우리가 불타는 집을 물려주면서도 아무런 효과적인 정치경제적 대책들과 신앙적 대비책을 세우지 못한 것 때문에 저는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생태계 파괴로 인한 인류문명의 붕괴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마존, 시베리아,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서 무섭게 타오르는 산불은 하나님의 몸인 지구 생태계 전체가 얼마나 빠르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요. 그래서 십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채 8년도 남지 않은 마지막 탄소예산의 대책을 요구하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는 절박한 시대입니다. 조만간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동시다발적인 식량폭동뿐 아니라 대멸종을 초래할 대파국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이 지구 생명계 자체가 평화롭게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시장전체주의자들과 제국주의자들, 그리고 탈레반과 같은 종교적 원리주의자들의 혐오와 배제와 죽임의 정치를 극복하고,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생태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문명전환의 혁명적 방법들을 시급하게 모색하고 함께 연대해서 행동해야 할 절박할 시점입니다. 침몰하는 배가 어느 시점을 지나면 복원력을 상실하고 급속하게 침몰하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과 손주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생태계 비상사태가 나날이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절박한 시대적 관점에서 볼 때, 36개 신학대학 교수들 376명이 서명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811)은 하나님을 탄식하시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의 모든 저자들과 신학자들은 시대를 분별하는 일이 신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지만, 그 성명서는 이처럼 빠르게 파괴되고 있는 하나님의 몸전체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오히려 시장전체주의와 제국주의와 종교적 원리주의의 하수인들처럼 혐오와 배제와 죽임의 정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요구한 것으로 보여서, 하나님을 탄식하시도록 만든 것일 뿐 아니라 지금 절박하게 울부짖고 있는 우리들의 다음 세대들 앞에서 매우 민망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특히 우리 기독교인 이성애자들이 갖는 혐오감, 무의식적인 우월감, 그리고 그들을 죄인들로 낙인찍고, 또한 그들이 회개하여 성소수자라는 정체성과 행동을 버리고 우리와 똑같은 이성애자들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들 모두 지옥불 속에 떨어져야 마땅하다고 외치는 기독교인들의 저주는 성소수자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경험의 한계를 드러낼 뿐 아니라, 우리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억압된 히스테리,” 그 바리새파적인 자기 의로움과 강력한 분노라는 종교적 방어기제가 표출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논쟁을 통해 바뀌기보다는 먼저 이 세상에서 그들 성소수자들이 겪는 숨 막히는 고통과 슬픔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만 바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장로님이나 저처럼 자녀들이나 손주들 가운데 다행히 아직까진 성소수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남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함부로 저주해서 더욱 상처를 주는 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잔인한 짓일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 나오는 목이 곧은요나처럼, 인간의 협소한 잣대로 하나님의 우주적인 뜻과 보편적인 사랑을 정반대로 왜곡하는 짓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마음 문을 열지 않는 한,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성경 문자에 대한 절대적인 집착과 잘못된 해석은 그 확신과 열정이 넘칠수록 그리스도까지 살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내노라 하던 예루살렘 성전 대제사장들과 신학자들이 달려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을 공모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매우 큰 역설이며, 이런 비극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적 확신과 강렬한 열정이 때로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큰 역설의 뿌리는 우리의 에고 중심적인 잣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판단하면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신비를 외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3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을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한 예를 들자면, 여름철에 우리를 성가시게 만드는 파리 종류가 85종만 된다고 해도 우리 생각에는 엄청 많은 것이지만,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하나님은 파리 종자를 85천 종이나 지으셨다고 하지요. 저는 이것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창조의 다양성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나 여자, 둘 중 하나로 만드셨다고 단순하게 믿었지만, 간성(intersex)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저에게도 처음에는 충격이었지요. 생식기, 생식샘, 성 호르몬, 염색체 구조와 같은 신체적 특성이 남자나 여자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간성의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지요. 자궁이 없이 태어나는 여자들도 있고, 난소와 고환을 한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으며, 생식기를 포함해서 외모는 여자인데 염색체는 XY라는 남성 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지요. 더군다나 염색체들의 조합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이런 간성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들의 존재 자체는 하나님의 실수라고 치부하는 것이 과연 그들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 신앙적으로 옳은 일일까요? 유엔에 따르면, 이처럼 특이한 간성의 사람들은 전 세계 인구의 0.051.7%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간성의 존재는 우리가 단순히 생식기를 기준으로 성별을 남녀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구분해왔던 전통적인 방법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들을 남자나 여자로 바꾸는 수술을 한다고 해도 유익함보다는 해로움이 더 많다는 것이 보고되었습니다. 따라서 간성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와 구원의 신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몰타, 캘리포니아, 뉴욕 등지에서는 이런 간성의 사람들이 정부 공식문서에 엄연히 3의 성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경향신문 2019/1/11).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2:22)는 말씀을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믿지 않고, 오히려 인류의 첫 조상은 여자였다는 고인류학자들의 DNA 분석에 따른 합의를 받아들이듯이,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1:27)는 말씀을 이제는 여자와 남자와 간성으로 창조하셨다로 재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를 더욱 잘 받아들이는 고백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간성의 사람들을 창조하신 계획을 달리 어떻게 인정하겠습니까?

 

4

 

트랜스젠더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저는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로 받아들입니다. 태어날 때의 생물학적인 성별에 따라 자신의 젠더(성별 정체성)를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생물학적 성별과는 반대로 자신의 내적인 젠더 정체성을 갖는 사람들이 존재하지요. 쉽게 말해서, 남자의 몸 안에 여자의 영혼이 들어가 있거나, 여자의 몸 안에 남자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상태의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트랜스젠더들의 젠더 정체성을 부인하거나 그들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의 실수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 신앙적으로 온당한 일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특히 사춘기를 전후하여 심각한 위화감을 갖게 되어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아빠는 사내아이답게 태권도를 가르치려 하지만, 아이는 태권도 같은 것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아서, 아빠가 아무리 때리면서 가르치려 해도 실패한 경우도 저는 보았습니다. 이런 트랜스젠더들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또한 가정이나 학교에서 얼마나 조롱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통계가 있습니다. 고려대 김승섭 교수팀이 트랜스젠더 282명의 건강연구를 조사한 결과, “40%가 넘는 이들이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오롯한 당신, 2018, 46). 미국에서 30년 넘게 트랜스젠더들을 상담한 의사에 따르면, 부모가 지지하지 않는 십대 트랜스젠더들의 자살 시도는 57%인 반면에, 부모가 지지하는 경우는 4%였습니다(Dr. Margaret Nichols). 미국에서 십대 게이들은 29%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세상에 어느 청소년 집단도 이처럼 높은 비율로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집단은 결코 없습니다. 또한 2008년 이후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살인 사건 통계를 발표하는 단체에 따르면, 2019년에만 전 세계에서 331명의 트랜스젠더들이 살해당했습니다. 미국의 트랜스젠더들 가운데 50%는 심한 괴롭힘을 당하며, 26%는 직장에서 쫓겨났고, 20%는 부모의 거절로 인해서 노숙자가 되었습니다(TED 강연, Katina Sawyer, Sunny Miller). 이처럼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본의 아니게 큰 고통을 당하는 트랜스젠더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자신의 진정한 젠더 정체성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신 이유가 아닐까요?

 

5

 

동성애자들 역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에만 동성애자들이 천백만 명이 넘는데, 이들의 엄연한 성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실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먼저 분명히 할 것은 동성애를 전쟁포로들이나 노예들에 대한 성폭행이나 성적인 착취, 또는 성적인 방종과 혼돈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이 금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성폭행과 특히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매우 흔했던 소년애와 같은 성적인 착취라는 것은 이미 많은 탁월한 성서학자들이 밝힌 사실입니다. 동성애는 이성애처럼 사랑과 헌신의 상호책임적인 관계이지, 동성 간의 성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도대체 왜 동성애자들이 태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의사들이나 과학자들조차 그 신비를 전부 해명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미 굴 속 깊은 곳에 누워있는 여왕개미가 왜 어느 때는 일개미 알들만 낳다가, 왜 어느 때는 병정개미 알들만 낳는지, 어떻게 여왕개미 한 마리 안에서 그런 생리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개미 집단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 신비하게 작용한 때문일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의사들 역시 한 가족 안에 동성애자가 태어나는 이유는 그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예컨대 부분적(30%)으로는 임신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엄마의 심리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성애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산모의 몸이 신비하게 알아차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평생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숨 막히는 고통스러운 일인데, 자발적으로 동성애자가 되는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이 팔십이 넘어서도 커밍아웃하는 노인들의 경우처럼,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과 주체성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그 개인에게는 평생 동안 매우 중대한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소위 성적인 변태들로서 스스로 선택한 가증한 존재들이라는 주장은 마치 성경 문자에 근거해서 갈릴레오를 처벌했던 교회처럼 시대착오적이며 비과학적인 주장입니다. 편견 없는 의사들과 과학자들 가운데 성소수자들을 질병으로 간주하거나 도덕적 타락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1973년 이후 미국정신의학회, 미국심리학회, 미국정신분석학회, 미국인류학회 등등 모든 과학자들 협회는 성적 지향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전환치료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는 성적 지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전환치료는 오히려 죄책감과 자살충동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잭 로저스, 조경희 역, <예수 성경 동성애>, 197-201). 또한 탈동성애 전환치료 운동을 벌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기극이라는 것이 이미 여러 차례 밝혀졌습니다(Justin Lee, Torn: Rescuing the Gospel from the Gays-vs.-Christian Debate, Jericho Books, 2012, 6장). 그래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인권이 확립된 북미와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아시아의 타이완뿐만 아니라 남미의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에콰도르,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등 전 세계에서 30여 개 국가에서 동성결혼이 이미 합법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성소수자 청소년들 가운데 67%는 주로 가족들로부터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바꾸기 위한 전환치료를 요구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전환치료를 받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전환치료를 받지 않는 청소년들보다 2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75개 도시들과 주정부의 40%는 청소년들에 대한 전환치료를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가장 포괄적인 전환치료 금지법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LGBTQ Nation, Aug. 27, 2020). 이처럼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전환치료를 금지하는 세계적인 추세는 바로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자신들의 특별한 소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돕는 길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6

 

결론적으로 성소수자들 문제는 섹스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땅의 성소수자들의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집단이 반동성애 광기에 사로잡힌 교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성 정체성 자체를 로 매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인간적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인간, 하나님, 성경, 복음, 구원, 교회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트랜스남성 목사인 저스틴 타니스 박사의 책 트랜스젠더와 기독교 신앙을 읽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것처럼, “성소수자들은 매우 특별한 재능과 특이한 자질들을 지닌 사람들로서 집단에게 유익을 주려는 자연의 신비이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을 단죄하는 것은 그 사회 자체를 해치는 짓입니다. 또한 아무리 우리 세대가 학교 교육을 통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소수자들이 한평생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 그 혐오와 차별과 조롱과 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심하면 실제로 그처럼 높은 자살 시도를 하며 심지어 살인의 대상이 되는 집단인지에 대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을 떠나 최소한 인간적으로 마땅한 태도가 아닌가요?

예수님은 온갖 이유들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내세우면서 정죄하기는커녕 그들에 대해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시는 하나님의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사랑으로 품어 안으셨지요. 중심부의 지배자들이 아니라 변두리에서 차별당하고 짓밟히는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기본 가르침이었지요. 성소수자들이 평생 동안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기는커녕 여전히 성경 문자를 잘못 해석해서 그들의 성 정체성 자체를 죄인들이라고 낙인을 찍는 일이 과연 지상의 어머니인 교회가 감히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그런 낙인이 정말로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요? “예수는 최고의 진정한 주변부 사람”(이정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 대신에 그분을 구원의 주님으로 섬기는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사회의 가장 변두리에서 생존 자체가 위협당하는 성소수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목회자들이 성경 연구만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자매들인 성소수자들의 특성에 대한 연구를 그만큼 게을리 한 때문은 아닐까요? “반동성애를 외치는 사람들이 과연 동성애자들에 대한 종교적 편견 없는 과학적인 저술 한 권만이라도 읽고 그런 주장을 하는지 매우 의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소수자들을 우리들 가운데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을 세우신 때문인데 우리가 그것을 헤아릴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이유가 혹시 우리들로 하여금 창조의 놀라운 다양성과 하나님의 뜻밖의 구원 계획 앞에서, 그 옛날 요나처럼 박 넝쿨 하나에 목숨을 걸겠다는 식의 에고 중심적인 옹졸한 편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사람들에 대한 종교적 판단을 중지하도록 만들며, 주변부 밑바닥에서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함께 기뻐하며 춤추는 세상, 인류사회의 온갖 장벽들을 허물어버리고 진정한 사랑과 정의로 하나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초대하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거지 나사로를 통해서 부자가 구원받을 기회를 마련해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누가 16). 목마른 사람들과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마태 25), 성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그런 기준에 포함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도, 월트 휘트만, 버지니아 울프, 헨리 데이비드 쏘로, 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 제임스 볼드윈, 레오나드 번슈타인 등등 수많은 위대한 성소수자 예술가들을 보내신 이유에서 드러나듯이, 그들 성소수자들을 통해서 우리 인간 공동체 집단에게 그들 나름의 독특한 공헌과 아름다움과 구원의 빛을 비춰주시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623일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는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개신교가 공격해온 성적 지향, 정체성항목과 관련해서도 응답자의 73.6%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가 바빌론 포로생활의 고난을 겪으면서 비로소 이방인들로부터 하나님과 세상, 구원에 대해 새로운 신학적 통찰력을 배우게 되었던 것처럼, 또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보여주듯이 천하에 상종 못할 죄인들이라고 멸시했던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서 유대인이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 민족 역시 일본, 만주, 중앙아시아, 하와이, 멕시코, 미국 등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의 뼈저린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서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혹시 한국 교회가 우물 안 개구리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절호의 기회는 아닐까요?

심지어 이중 예정론을 믿는 미국장로교회(PCUSA)조차 20여 년 동안 치열한 학문적 논의를 거쳐 2015년에 미국 정부의 결정보다 1년 먼저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던 것처럼, 이제는 한국 교회도 성소수자들의 문제에 대해 정죄와 배제, 종교재판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진지한 학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적으로 교회는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와 물질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을 억압하고 마지막까지 농노제 폐지를 반대했으며,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을 저지르는 잘못들을 성경의 이름으로 자행해왔었다는 사실입니다. 반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때문에 교회가 망하는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외면한 채,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자들의 기득권을 성경 문자로 포장하면서 과거와 똑같이 하나님의 역사 발전에 방해가 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문자를 넘어 인류의 자유와 모든 개인의 인권을 점차 확장시켜 오신 하나님의 기나긴 투쟁 역사를 깨닫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비와 주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교회를 등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기득권자들의 지배체제에 대한 혁명적인 대안으로 예수님이 가르친 하나님 나라, 그 체제변혁적인 운동을 위해 부름 받은 교회가 예수님의 정신을 망각할 때는 흔히, 영화 미션이 잘 보여주듯이, 세상 제국들과 기득권자들의 물질적 가치와 질서를 옹호함으로써, 교회 당국이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까지 배반하고 스스로 지배체제의 기생충으로 전락해버렸지요. 심지어 한국의 거의 모든 개신교단들이 지금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이단자들이니까 신학교와 교회에서 나가라!”고 요구하는데, 영화 미션이 잘 보여주듯이, 정말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쫓겨나야 할 이단자들이 만일에 있다면, 그 주변부 사람들인 인디언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돌보던 성직자들인가요, 아니면 그 땅과 자원을 빼앗는 식민지 정복자들에게 빌붙어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는 외면한 채 자신들의 중심부적인 지위와 기득권을 유지했던 종교 당국자들인가요?

그러나 여성해방, 흑인해방, 3세계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 생명계 전체의 해방과 구원을 위한 대열에서 항상 선봉에 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 한국 교회 역사에서 여전히 성소수자들과 이주민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서도 앞장서고 계신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여성해방신학, 흑인신학, 해방신학, 생태학적 신학이 백인 남성 인간 중심의 기독교를 벗어나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을 새롭게 깨닫게 했던 것처럼, 성소수자들의 퀴어신학은 가부장적 이성애주의 신학을 벗어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 역사를 더욱 잘 깨닫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던 여성억압정책, 노예제도, 인종차별정책들이 결국에는 철폐된 것처럼,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구원과 해방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결에 따라 머지않아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후에야 비로소 한국 교회는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정책을 지지한 것이 얼마나 반민주적이며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반성경적이며 반복음적인 것이었는지를 점차 깨닫게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말입니다.

아니,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후에도 대다수 교인들이 성소수자들의 고통에 대해 마음 문이 열리기까지는 성소수자 자신들뿐 아니라 교회 자체 역시 계속해서 얼마나 더 오랫동안 큰 상처들을 받게 되며 찢어지게 될 것인지를 지금 미국연합감리교회(UMC)가 우리 눈앞에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예제도에 대한 찬반으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연합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UMC의 이번 두 번째 분열 위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 하나님을 크게 웃으시도록 만들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온 세상이 정의와 사랑 가운데 평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한 분 하나님을 매우 탄식하시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깨닫도록 요청하는 사건은 아닐까요?

한국 교회도 이제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역사 대열의 맨 뒤에 머물러 있은 채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에 맞서 싸우는 헛발질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신비를 찬미하면서, 생명계 전체가 그 놀라운 창조의 다양성과 상호주체성을 북돋우면서 서로 친밀하게 교제하는 관계를 더욱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한 행진 대열에 발맞추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예수님이 당시의 온갖 종교적 차별과 정치적 폭력에 맞서서 죽기까지 몸소 보여주신 철저한 자기 비움과 이웃 사랑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믿는 주님의 제자들이라면 더욱 더 온갖 차별을 금지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장로님께는 매우 불편한 대답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평소 생각을 솔직히 정리한 것이니 앞으로 더 많은 논의를 위한 것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 장로님 가족과 교우님들 모두의 평화를 빕니다.

 

 

           2020818일 무지개신학연구소에서 김준우 올림

 

야훼는 무엇보다도 노예해방의 반역적 신이며, 신들의 세계에서조차 반역적 신이었다. 이런 점에서 야훼의 첫 번째 특성은 철저하게 반제국주의적이며 체제변혁적인 신이라는 점이다. 야훼는 가나안의 지존자 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로서 야곱족속을 할당받은 신이었다가(신명기 32:8-9), 나중에 엘과 병합되는데, 시편 82편에서는 야훼가 여전히 엘의 아들들가운데 하나로서, 엘의 다른 아들들은 모두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편들지만, 야훼는 가난한 소작농들을 옹호하며, 다른 신들을 탄핵한다. 이스라엘의 청동기문명이 가나안의 철기문명을 상대로 승리한 기적과 같은 역사에 대한 사후의 찬양이든, 그 생존 싸움의 원동력이었든 간에, 사회의 밑바닥에서 짓밟히며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을 끝장내려는 과업에 참여하지 않는 유대-기독교는 야훼와는 무관한 집단일 뿐이다. 또한 성서 자체가 종교다원주의만이 아니라 종교혼합주의의 산물이다. 관건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 그리고 생태계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여 한 걸음씩 나아감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천부적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매튜 폭스 역시 지금과 같은 절박한 위기의 순간은 담대함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참조, Karen Armstrong, The Lost Art of Scripture (2019), p. 29. Matthew Fox, The Tao of Thomas Aquina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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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의 의식과 관련하여 최근에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문제이다. 특히 개신교인들은 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 제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거짓 뉴스에 근거해서 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장 반대하여 무산시키고 있다. 단적으로 "동성애는 죄"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비개신교인이 48.2%인 반면에 개신교인은 22.9%로 조사되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자가 많아진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개신교인은 39.0%인 반면에 비개신교인은 46.8%가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두 배 이상 높았다.

또 "예수님은 동성애자를 어떻게 대하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의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한다"는 대답에 동의한 개신교인은 38.4%인 반면에, 비개신교인은 63.7%가 동의했다.(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2019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통계자료집>, 대한기독교서회, 2020, 165, 171, 17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92120005&code=940100

 

이처럼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개신교인들보다 비종교인들이나 비개신교인들이 훨씬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의 경우에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낙태 문제와 성소수자들의 문제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문제인데, 2020년 1월 2일 A.P.가 발표한 종교인들의 여론조사에서도 비종교인들이 개신교인들보다 훨씬 더 예수의 가르침에 충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결론은 개신교인들의 대다수가 그러는 것처럼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을 경우에는 매우 위험하며 반복음적인 태도를 낳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https://apnews.com/8d3eb99934accc2ad795aca0183290a7

 

Similarly, about half of white evangelicals showed support for increasing government aid to the poor, comparable to that policy’s support from Catholics and white mainline Protestants. About 7 in 10 nonwhite Protestants supported more government assistance for the poor. More than 600,000 low-income Americans are set to lose access to food stamps under new work requirements proposed by the Trump administration.

In addition, about 6 in 10 white evangelicals supported regulating the levels of carbon dioxide that power plants can emit, a climate change-fighting measure that Trump has weakened and that majorities of other religious groups also support, as well as those without a religious affiliation.

Americans without any religious affiliation registered stronger opposition in the poll than people of specific faiths to abortion restrictions (72%) and stronger support than people of specific faiths for government action to shield people who are lesbian, gay, bisexual or transgender from discrimination (83%). About one-quarter of Americans currently align with no religious faith, a figure that’s risen notably over three decades, according to the General Social Su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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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1.28 07:42

    목사가 동성애 반대하면 잡혀간다? 거짓말 선동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1280600015&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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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6.30 08:06

    정의당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안 발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292106015&code=9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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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7.13 14:46

    용서 받지 못할 죄(?)도 있다 / 이정배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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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7.13 19:31

    88%, 차별금지법 찬성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06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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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7.18 17:46

    교단 정치는 교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 김진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18030005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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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7.18 17:47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 목정평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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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7.20 18:08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인 성명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tJjZT53qbrSa96Nr7-bbUshAhy0o6n1SET0HuVCJgPYiBQA/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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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7.21 10:14

    포괄적 차별금지법 사회적 합의는 끝났다 / 박래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1030004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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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8.21 10:12

    허호익 교수 면직출교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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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9.04 20:04

    KakaoTalk_20200904_104739972_resize.jpg

     

    개신교 극우주의와 차별금지법 / 김희헌

    전광훈 씨와 그가 속한 사랑제일교회의 돌출행동이 화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로서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간 이들의 모습이 상식 세계에서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로 뭉친 의식의 카르텔도 기묘하거니와 타인의 피해에 아랑곳없이 자기 신념에 몰두한 태도는 도덕성에 대한 기본 믿음조차 허물어뜨릴 지경이다. 노골적으로 극우주의 정치에 동원된 그들을 향해 쏟아진 사회적 환멸은 마치 개신교 자체에 대한 사망선고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 안에 두 흐름이 감지된다. 자성하는 마음으로 환멸의 시대를 씻고자 하는 흐름이 있는 한편, 비난의 표적이 된 그들로부터 거리두기를 하는 흐름도 있다. 보수적인 세력일수록 거리두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개신교 보수주의가 극우세력의 텃밭이 되어온 그간의 정황에 기인한다. 십여 년 전, 전광훈 씨가 개신교 극우세력의 행동대장으로 등장할 때, 그는 ‘하나님의 친구인 조용기 목사와 김준곤 목사’가 자기에게 임무를 주었다고 뒷배를 밝혔다. 뉴라이트 정치세력과의 동맹을 이끈 김진홍 목사 역시 얼마 전까지 전광훈 씨를 가리켜 ‘이 시대의 사사(Judge)’라고 치켜세웠다. 이랬던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바람대로 보수 개신교는 극우주의의 오점을 씻어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극우주의 선동정치는 얼굴만 바꾼 채 여전히 활발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모습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운동이다. 차별금지법을 어젠더로 삼은 개신교 극우주의는 그간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욕망하며 교단 정치를 잠식해왔다. 2017년 7월, 개신교 21개 교단장의 이름으로 ‘동성애 반대’ 성명을 발표한 이후 거의 모든 교단에서 대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극우주의의 선동정치는 보수 교단에 국한되지 않고, 진보적 목소리를 내 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가맹 교단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NCCK 가맹교단도 다수 참여한 2019년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는 뜬금없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그것이 포문이었는지, 올해부터 감리교는 동성애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 소속 목사에 대한 징계 재판을 시작했으며, 예장 통합의 경우 성소수자와 연대감을 표현한 학생들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 비교적 온건한 주장을 해온 신학교 교수를 지난달 출교 처분했다. 심지어 차별금지법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NCCK 총무에 대한 소속 교단의 제재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그 교단 사무총장의 ‘차별금지법은 긴급조치를 연상하게 한다’는 발언은 부적절하고 불길하다. 기장의 경우, 7월에 발표한 교단의 ‘차별금지법 지지’ 성명의 철회를 요청하는 집단행동이 목포노회에 소속된 한 교회에서 일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 이런 광풍이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적 양심을 움직이는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기총이 몰락하자 재집결한 ‘한국교회총연합’(UCCK)은 ‘차별금지법 제정반대 기도회’를 열고, 혐오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에 ‘혐오를 표현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억측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도덕이 무너지고 종교의 자유가 억압될 것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차별금지법은 반대하는 사람을 억압하기 위한 법이라고 말한다. 이는 궤변이다. 이단과의 접경지역에서 제조된 해괴한 논리가 기독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데, 차별금지법을 가리켜 ‘공산화 전략’이라고까지 말한 변승우 목사가 실은 전광훈 씨의 비호 아래 한기총의 이단해제 조처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에 주목하면, 이런 광풍이 허망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교회가 종교적 책임감을 높이기보다는 극우주의적 편법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혐오를 종교상품으로 삼는 극우주의 선동정치에 쉽게 물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확장성의 한계상황에서 오는 두려움이요, 대내적으로는 무게감을 상실해가는 정신의 편협함 때문이다. 이는 교회가 번영신학과 성장주의 프로그램에 의존하여 존립해왔고, 종교적 지성을 세우는 훈련을 경시하고 규모의 정치에 넋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종교 지성에서 멀어진 영적 프로그램은 세속화되거나 샤머니즘화 되는데, 이때 세속이나 이단으로부터 차별성을 잃은 종교의 불안을 해소하는 결속 프로그램으로서 계발된 것이 바로 순수종교 이데올로기로 제조된 혐오정치이다. 그런 상품판매의 폐해가 결국 전광훈 현상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가 거리두기를 한다 해서 전광훈 현상을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 내부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근본 문제는 정신의 퇴화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인간 ‘향상’(ascent)의 지표로 삼은 ‘올바름에 대한 감각’이라는 개념을 빗대어 말하자면, 한국교회는 ‘새로운 미덕을 추구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느끼는 정신적 생동감을 잃고, ‘기존의 구조를 보존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느끼는 정신의 퇴화에 시달리고 있다 하겠다. 퇴화한 종교는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보다 ‘타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깨뜨리는 것’이 영혼의 성숙에 이롭다는 사실을 잊는다.

    ‘혐오를 표현할 자유’를 요구하는 퇴행적 교회는 결국 역사성을 잃은 폐쇄 종교로 전락할 것이다. 역사의 진보는 새롭게 도래하는 가치(value)를 수용하는 미덕(virtue)을 요구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익숙하지 않기 마련이다. 이 순간,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란 그 존재의 ‘한계로서 허용’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존재의 ‘자유로서 장려’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허용된 것과 장려할 것을 구별하지 않고 혐오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지배당했다면, 기독교 종교의 역사는 진즉에 끝났을 것이다. 인류는 자신의 정신을 향도하지 못할 종교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의 역사가 어두울 때는 차별과 혐오를 경건의 동력으로 삼는다. 기독교 역시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고,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억압, 동성애 혐오와 인종차별 등을 장려하는 불량신학을 배출했다. 율법의 이름으로 폭력을 저지른 무지의 시대였다. 그러나 어두운 마음을 씻어내는 하늘의 믿음이 역사에서 솟아나고,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을 자기 시대의 율법이 아니라 신의 은총에 내맡긴다. 그것이 역사를 헤치고 살아나온 종교의 모습이다. 예수의 제자들 역시, 사마리아 지역을 혐오하는 유대적 반북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에 내부적 가치를 획득하고, 할례받지 않은 비유대인 자매 형제와 식탁공동체를 마련함으로써 외부적 통합을 이루어가며 역사를 써갔다. 그들이 만일 믿음을 율법의 하위개념으로 삼아 율법의 계명을 따른 차별과 증오에 그쳤다면, 그들은 적(敵)을 발명하는 일을 얼마간 하다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만일 종교의 가르침을 진실로 갈망한다면, 바랄 것은 자기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것이지 혐오하는 적들의 죽음이 아니다. 역사를 구원하는 신의 은총을 진실로 믿는다면, 귀의해야 할 곳은 자기 편견이 아니다. 복잡한 듯하여도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의 요체는 사실 간단하다. 오직 사랑이 이기도록 자신의 율법적 판단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귀의하는 거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시대를 향해 준 프란시스코 교종의 고백과 같은 것이다.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총 아래로 나아가려는 사람(성소수자)을 내가 어찌 정죄할 수 있는가!”

    개신교 극우주의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혐오 정치에 의존하는 습속에서 벗어나려면 회개가 동반된 긴 정신의 성숙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민의식이 성숙해지면서 과대표 된 개신교 극우주의의 텃밭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수치로 알 수 있다. 올해 4월 국가인권위가 시행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88%에 달하며, 성 소수자의 동등한 대우에 대한 의견도 74%에 이른다. 2013년에 시도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한국교회가 앞장서 좌초시킬 때에는 60%였다. 빠르게 자라난 사회적 의식과 견줘보면 지체된 기독교의 의식이 아쉽지만, 그것도 살아야 할 우리 현실일 뿐이다. 다만, 타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자격이 피조물에게 있지 않다는 겸손만 갖추어도 좋겠다. 그렇다면, 교회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회의 태도이다.
    http://www.gilmokin.org/board_VgfD64/1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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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9.25 10:35

    한국의 종교들 가운데 개신교회만 차별금지법 반대 / 최영애 인권위원장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38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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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09.28 05:24

    차별금지법, 장혜영 의원실의 뜨거웠던 여름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92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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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06 18:58

    황인근 목사 최종변론

     

    09월 29일 이동환 목사의 2차 공판이 있었습니다. 3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는 추가증거 제출에 따른 심사위원회의 주장을 듣고, 이에 대한 변호인 측의 반론과 증인(인천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 및 고발인 신문, 피고발인 신문에 이어 대표변호인 황인근 목사의 최종변론과 최후 진술 등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 대표변호인 황인근 목사의 최종변론을 소개합니다.
    *
    존경하는 재판장님, 재판위원님! 저는 먼저 우리 감리교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성경과 ‘교리’의 기본 지침을 통해, 그리고 이동환 목사의 목회여정을 통해 그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장정보다 교리가 우선이고 교리보다 성경이 우선입니다.
    축복은 기독교신앙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의 표현 중 하나입니다. 창세기 47장에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가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입니다. ‘축복’은 말 그대로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목사가 복을 내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요 청원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를 축복합니다. 자녀가 의인이어서가 아닙니다. 사랑해서입니다. 우리는 이걸 교회에서 끊임없이 배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입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했다고 했는데 이것이(축복이) 죄라고 한다면 우리 감리교회와 한국교회가 얼마나 더 후퇴할까 염려가 됩니다. 부디 그의 축복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하여 10년이고 20년이고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 지침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오늘 이동환 목사를 면직시키겠다고 하는 재판을 하고 있는데 우리 장정은 2년에 한 번씩 변화합니다. 진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쉽게 법조항 하나를 가지고 축자적으로 반복해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리적 선언 서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 교회의 회원이 되어 우리와 단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교리적 시험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중요한 요구는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함과 그를 따르려고 결심하는 것이다. 웨슬리 선생이 연합속회 총칙에 요구한 바와 같이 우리의 입회조건은 신학적보다 도덕적이요, 신령적이다. 누구든지 그의 품격과 행위가 참된 경건과 부합되기만 하면 개인 신자의 충분한 신앙자유를 옳게 인정한다.”
    제가 이동환 목사를 처음 본 것은 10년 전 어느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기도회에서 였습니다. 그는 전도사였고 조용히 해고노동자들의 곁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친구가 진실하게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거리로 내몰린 이들을 위한 기도회에서,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의 천막에서, 그리고 얼마 전 70m굴뚝에 오른 절박한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회에서 보았습니다. 지난 10년간 늘 세상에서 내몰린 사람들의 곁에 있어 왔습니다. 노동자들의 친구이고 도시빈민들이 그의 가족입니다.
    지난 번 재판에 증인으로 왔다가 그냥 돌아간 노동자 한분이 있습니다. 그분께 바쁘신 시간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그분이 그러더군요. ‘이동환 목사님은 4년간 한 번도 버리지 않았는데 내가 그를 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재판의 사안도 그렇습니다. 이동환 목사는 목회의 연장선에서 이 시대의 사회적 소수인 성소수자들이 부르자 달려갔습니다. 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달려간 것이 그의 목회의 여정이었습니다. 성소수자를 우리의 편견대로만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이 목사는 늘 아픔이 많은 곳, 그리스도의 사랑이 절실한 곳에 가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이번경우는 오히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손을 잡지는 못할망정, 기도해주었다고 ‘동성애 동조자’라는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흑백논리와 예전의 빨갱이 논리로 정죄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온전한 길이 아닙니다. 이웃을 축복하는 것,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일이 우리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들이 성소수자라고 해서 이웃이 아닐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사회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데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판결이 나오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5장 19-20절 말씀으로 변호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고린도후서5장 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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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17 07:51

    이 독사의 자식들아! / 오수경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170300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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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20 20:22
    http://rainbowtheology.co.kr/xe/news/3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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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21 19:10

    성소수자 지지엔 '이단,' 전광훈엔 침묵: 한국교회 이중잣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65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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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22 11:09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리포트 차별금지법
    http://www.jpic.org/report/report_1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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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23 11:17

    프란치스코 교황, 동성결합법 지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221039001&code=9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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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31 11:06

    한국교회, 예수의 사랑 잃고 보수 이데올로기에 갇혔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967986.html?_fr=m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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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1.07 19:25

    보수 교단들의 사상 검증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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