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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1 11:19

무지개는 우리 가운데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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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소돔의 멸망

창세기19

 

A  본문을 둘러싼 상황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19장에 있다. 하나님의 천사가 소돔에 왔을 ,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당연히 손님에게 환대hospitality하기 위해 자기 집에서 하룻밤 편안히 쉬고 있도록 식사를 대접한다.[1]

거기에 소돔사람들이 와서 집을 둘러 싸고 손님을 알기 원하니 그들을 밖으로 보내라고 요구한다. 롯은 자기의 딸을 내어보낼 것이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지만, 자기 집에 있는 손님만은 손대지 말기를 부탁한다. 그러나, 소돔사람들은 이러한 롯의 태도에 화를 내며 밀치며 다가선다. 집안에 있던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소돔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한다.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망시키려 하신다는 계획을 롯에게 알리고,  롯의 가족들을 산으로 피하라고 후에 소돔과 고모라와 일대는 하늘에서 내려온 유황의 불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

현대의 기독교, 특히 서구 기독교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동성애로 인한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동성애자나 변태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곳은 하나님의 화를 입어 소돔과 같이 멸망하는 운명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있을 정도다. 현재, 소돔인이라는 뜻의 소도마이트Sodomite 동성애자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소도미sodomy 동성애 전반을  일컫는 말로 쓰여지고 있으며, 그래서 이야기는 동성애자 단죄에 심각한 영향력을 가져왔다.[2] 

 

1.      소돔의 이해와 변화

소돔 멸망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뜻으로 이해되어 것은 아니며, 후대에 해석되어진 것이다. 11세기에 정상적이 아닌 성행위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는 언어로 소도미타sodomita 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중세를 통해서 말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이해되어 정상이 아니라고 보이는 성행위를 가리켜서 사용되었다. ,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행위나 정상적인 체위가 아닌 성행위, 동성간이나 이성간이든 상관없이 오랄섹스(구강성교), 어널섹스(항문성교), 동물과의 성행위를 포함한 다양한 의미로 쓰여졌다. 이러한 성행위에 욕망을 갖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질서에 거역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어졌다. [3]

19세기 동성애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을 당시 King James Version에서 히브리어 qadhesh카데슈를 소도마이트sodomite 번역하여 (23:18, 왕상14:24)에서 사용되었다. 카데슈:qadhesh(남성명사), 카데샤:qedheshah(여성명사) 문자 그대로는성별되어진 라는 뜻으로, 성전 제의祭儀 직무자인 제사장를 가리킨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단어가 남성형으로  6 사용했다.[4]

카데슈는 구체적으로는성전 매춘자 일컫는 표현이며, 카데슈 직무의 일부로 농작물의 풍작과 가축이나 가족의 번성을 기원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동성간 성행위 의식이 성전에서 행해졌었다. 성경에서 반대하는 것은 그러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최근에 카데슈가 동성애간 성행위 의식을 행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근거가 불확실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고,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5]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카데슈가 남자동성간 성행위를 했다는 해석에 근거해서, 성전의 남자 매춘부라는 뜻으로 소도마이트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소돔의 죄가 동성애나 동성간 성행위로서 이해된 적이 없었으며, 시기에 성서학에서 새롭게 제시된 것도 없다. 다만, 정상이 아닌 애향성으로 동성애가 인식되어진 것을 계기로, ‘카데슈=남성동성간 성행위자=소도마이트라는 공식을 가지고 번역되어진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부적절한 번역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선포되어지는 문맥에서 소도마이트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진 것은 카데슈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소돔의 죄에 관해서도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러한 것은 단지 20세기에 들어와서 시작된 오해이다.

 

2. 소돔 멸망의 이야기는 원시설화

한편, 성경에 있는 소돔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는 태고에 있었던 옛날 이야기이다. 소돔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히브리어 성경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자료인 J자료, ,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자료에 기록되어있다. 기원전 9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측정되지만, 고대 구두문화 세계에서는 전승이 기록되기까지 세대, 혹은 세기 동안의 구두전승 시기가 있었다. 소돔 이야기도 오랜 세기에 걸쳐서 구두전승으로 전해진 후에 기술되고 편집되어진 것으로 본다.[6]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동남쪽 저지대로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먼저 있었고, 후대에 그것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원인담론적이며 전설적인 조상의 족보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롯은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의 아들이며(11:27), 기원전 2 년경 인물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4 옛날 이야기인 것이다. 한편으로 이야기가 저술된 것이 기원전 9세기경이라고 해도 3 년이나 지난 옛날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소돔의 죄가 동성애 성행위와 연결되어 해석된 것은 1920세기이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구두로 전해지기 시작해서부터 4 , 저술된 후로  3 년이나 지난 이야기인 것이다. [7]

  인간사회는 시대와 함께 다양하게 변한다. 예를 들면, 일본의 과거 년간 역사를 생각해 사회도 문화도 성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도 크게 변했다. 년이나 지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인간관이며 세계관, 또는 성에 대한 이해와 느낌도 크게 변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이야기가 시대와 지역이 다른 곳에서 읽혀질 ,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필요가 있다.

 

3.소돔의 :성경 시대의 해석

소돔 멸망에 관한 이야기가 성경에 쓰여진 시대에는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질문에 대한 해답이 성경 안에 있다. 우선 히브리어 성경에는 소돔이사악 같은 뜻으로 언급되어진 본문이 여럿 있다. 그러나 소돔의 죄악이 동성애라라고 언급된 곳은 군데도 없다. 소돔의 죄악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교만과 우상숭배, 포식과 번영 속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은 태만함과 냉정함 그리고 정의를 부패시킨 것에 있다.[8]

 

그들의 포도는 소돔의 포도나무에서 것이며, 고모라의 밭에서 것이다. 그들의 포도에는 독이 있어서, 송이마다 쓰디쓰다. …… 때에 하나님이 말씀 하신다. 그들의 신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피난처로 삼던 반석은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제물로 바친 포도주를 받아 마시던 신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그들이 너희의 피난처가 되게 하여라. (신명기32:32, 37-38).

 

동생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다. 소돔과 그의 딸들은 교만하였다.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교만하였으며, 앞에서 역겨운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는 그들을 없애 버렸다. (에스겔16:49-50).[9]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이사야1:10, 1:17)[10]

 

그런데 이제 내가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 끔찍한 일들을 보았다. 그들은 간음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도와서, 어느 누구도 저지르는 자들을 도와서, 어느 누구도 죄악에서 떠날 없게 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모두 소돔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루살렘의 주민은 고모라 백성과 같이 되었다." (예레미아23:14)

 

한편, 기독교 증언서인 신약성경 안에는, 소돔에 대해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성이나 촌에서 기꺼이 맞이해 주는 집에 머물며 그곳에서 주는 음식을 먹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호스피텔러티를 제공하지 않고 영접해 주지 않는다면 발의 먼지를 털고 그곳을 떠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신다(10:14-15, 6:11, 10:10-13).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소돔의 죄가 호스피텔러티의 결여, 몸을 의지할 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주인의 냉대와 불친절과 태만함을 지적하고 계시다는 것이다.[11]

 

다른 한편, 유다서에는 소돔이 성적인 죄와 연결되어 나온다.

 

자기네가 통치하는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들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날의 심판에 붙이시려고 영원한 사슬로 매어서 어둠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주위의 성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음란함에 빠져서 다른 육체를 좇았으므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유다서1:6-7,참조:벧후2:4-6).

 

하지만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성행위는, 사람끼리의 성관계가 아닌 인간과 천사 혹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다른 종류끼리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말하고 있다. (6:1-5참조).[12]

이상으로 히브리어 성경시대에서 기독교 증언서가 쓰여진 시대까지 기간을 통해서, 성경은 소돔의 죄악이나 멸망이 동성애와 동성간 성행위에 연결시키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았다.[13]

또한, 유대교의 전통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타인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냉대와 적의, 가난한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는 냉정함과 교만함, 호스피텔러티 결여로 해석되어져 왔다. 이러한 해석은, 히브리어 성경 여러 곳과 예수님 스스로의 말씀으로 전하여지는 성경말씀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간에 들어와서 기독교 교계에서만 소돔을 동성애의 죄와 연결시킨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있다. 그리고 소돔이야기를 읽어보면 동성애와 연결시켜서 해석하기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도 있다.

 

B. 본문 음미

지금부터 1. 여행객이나 나그네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 2. [안다]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3. 사사기19 이야기와의 공통점 4. 외국인 공포증 폭력 파트로 나누어서 본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여행객이나 나그네를 대하는 상반된 태도

소돔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19장에 기록되어있지만, 실은 앞장 18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언급되고 있다(18:20-33). 그러나 같은 안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애를 낳을 것이라는 예고가 기록되어 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아이를 원했던 사라에게 알리는 기쁜 소식이 아브라함의 규범적인 호스피텔러티라는 시나리오 속에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 명의 여행객,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들을 아브라함은 뛰어가 손님으로 맞이하고 최상의 호스피텔러티를 제공한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사라의 출산을 예고하고,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것이다](18:18) 라고 하셨다. 연이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는 창세기18: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이루어 주겠다) 나와 있는 데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도를 지켜 하나님께 순종하고, 정의를 행하여, 그것을 자손에게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18:19).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영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 바로 뒤이어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죄악이 심히 중하니](18:20) 라고 말씀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내려가서 확인하시겠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연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소돔을 위해서 간청하므로 그곳에 의인 명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놓는다(18:32). 이러한 상황 설정을 거치며 19장의 소돔이야기가 시작된다.

저녁 무렵에 소돔에 천사가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들을 보고 바로 자기 집으로 안내한다. 손님에게 묵을 곳을 제공하여 손님의 안전을 보장하는 호스피텔러티의 가르침은 당시의 사회현실에 상응하는 신앙전통이었기 때문에 롯은 손님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안전한 장소인 집안에서 피로를 있도록 한다. 그러나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도 전에 소돔 마을에서, 젊은이, 노인 없이 모든 남자가 찾아와 집을 둘러싸고 집안에 있는 손님들을 놓으라고 요구한다.

여기에서 몰려온 소돔사람들을 [ 모든 남자] 번역하고 있지만,[14] 히브리어로는 [아나심anashim],, [사람들] 이라고도 번역할 있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소돔 [사람들]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모여] 왔다고 해도 된다(19:4). 실제로 앞에서 난폭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남자들이라고 해도, 여기에 [아나심anashim]이라는 히브리어가 쓰여지고 있다는 것은 소돔의 [남자들] 강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소돔 백성들이사방에서 모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롯을 불러 손님을 놓으라고 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오늘 너의 집에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여기로 데려오라. 우리가 그들을 있게] (19:5) 번역이 가능하다.

 

2. [안다] 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5절에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또는 [우리가 그들을 있도록] 사용된 [상관하다] 또는 [안다]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야다yadha]이다. [야다]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성행위를 의미하는지 아닌지 이론이 분분하다. 말은 히브리어 성경 안에 943 쓰여지는데, 중에 10회만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성행위로 안다] 라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으며, 외에는 압도적으로 [서로 안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도 서로 안다/알자라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고 충분히 생각할 있다. , 소돔사람들은 롯이 초대한 낯선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도 소돔사람이 아니라 타국인이며, 소돔에서는 나그네/거류자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 타국인이 밤에 집에 들인 낯선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소돔에 위험을 가져올 사람들은 아닌지 소돔인들에게는 정체를 이유가 있었다고 충분히 생각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낯선 사람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알려고 하는 과정 중에 폭력행위로 변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15]

7절에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또는 9절에서 [너를 해하리라] 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라아raah: 파괴하다, 피해를 부르다, 상처를 입히다] 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단어는 [나쁘게 취급하다] [악을 행하다] 라고도 번역 있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집단폭력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롯의 집에 있는 손님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정체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롯이 거절한다면, 소돔에서는 타국인인 자신이 먼저 알도록 해주자. [야다(안다)] [라아(나쁘게 취급하다)] 이렇게 같이 쓰여짐으로 인해,  이러한 소돔 사람들의 집단폭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16]

한편, 여기서 사용하는 [야다] 성행위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롯이 [내게 남자(이슈) 가까이 아니한 ](19:8) 이라는 표현으로 [야다] 쓰고 있으며, [야다] 명백하게 성행위를 일컫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소돔사람들이 하는 [야다] 성행위를 의미하고 있다고 하면, 소돔 사람들, 특히 롯의 앞에 와서 손님을 놓으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성애자], 롯의 손님과 성행위를 하기 위해서 것이 되는가? [17]

만에 하나 소돔 사람들의 의도가 원래 성행위였다고 한다면, 여기서 [샤가브shakhabh] 아니라 [야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침대 위에 눕는 행위를 가리켜 [미슈카브mishkabh] 라는 말의 어원인 [샤카브]라는 말이 50 나오며, 성행위를 멀리 돌려서 말할 쓰여진다. 그리고 [야다] 성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질 때는, 10회이며 전부 남자들간의 성행위를 의미할 쓰여졌던 것에 대해, [샤카브], 이성간 또는 동성간, 동물과의 성행위 전부에 대해 쓰여지고 있다. 그러니까, 소돔 사람들의 기본적인 목적이 동성간의 성행위였다고 한다면, [샤카브] 쓰여졌어야 하는 것이다. [18]

의문은 다른 데도 있다. 소돔 사람들의 폭력행위에서 손님을 지키려는 롯이 제안한 조건이다. [내게 남자(이슈) 가까이 아니한 딸이 있노라 청컨데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사람들은 집에 들어왔은즉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19:8). 이렇게 말하는 롯은 딸들이 성폭력 대상이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소돔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자] 였다면, 특히 롯에게까지 덤벼들 것처럼 난폭해져 있는 남자들이 [동성애자] 였다고 하면, 롯은 사람들에게 딸을 내주는 일이 최선의 교환 조건이라고 생각했을까? 도대체 [동성애자] 남자들의 성행위 대상으로 여자를 내주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19]

이렇게 소돔 사람들이 [동성애자] 이며, 롯의 집에 손님에 대해서 동성애적 성행위를 하려고 했다는 해석에는 답할 없는 모순이 남는다. 한편으로 롯이 [남자를 모르는] 딸들을 교환 조건으로 사람들 앞에 놓았다는 일은 성적인 뉘앙스를 완전히 없애고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성적지향이나 사랑이라는 카테고리로서는 파악할 없는 고대의 성행위를 파악하는 법과 습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당시 사회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가 패배한 병사를 어널섹스(항문 섹스) 강간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페니스를 정복하는 것이 지배를 상징하며 그러한 성행위로 상대를 피정복자로 만드는 , 그래서 자기가 정복자라는 인식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페니스 항문에 삽입하는 방법으로 인해 정복당해진 남자는 남자라는 정체성을 빼앗겼다는 수치심을 갖고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20] 마치 여성들이 남성에게 손만 잡혀도 순결을 빼앗겨 버렸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를 정복한 남자와 결혼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하고 지낸 무지몽매한 시절이 있었듯이…(역자 추가)..

이러한 문화 속에서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에 낯선 사람들에 대해 행하려 했던 것은, [동성애] 아니라 상대를 정복하는 , 소돔에 위해危害를 불러올지도 모르는 낯선 이들에 대해 자기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폭력행위로 알리려 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뜻으로 , 롯이 손님 대신 자기 딸들을 내주겠다는 제안은, 딸을 지켜야 책임이 있는 아버지로서, 자기 자신을 불명예자로 전락시키는 뜻이 되며, 소돔사람들이 우위이고 정복자라는 것을 승인하는 교환 조건이 되는 셈이다.

 

3.사사기19 이야기와의 공통점

사사기 19장에 있는 레위인의 아내가 집단강간에 의해 희생이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면 한층 명백해진다.[21]

사사기 19장에는 에브라임에 사는 레위인의 아내가 가출해서 베들레헴에 있는 친정에 가버리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아내는 남편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하는 라는 당시의 사회 관념을 통해서 생각할 , 그녀가 저지른 일은 남펀의 아내라는 입장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버린 것이 된다. 남편인 레위인은 아내의 친정까지 찾아가서 장인을 만나 아내를 데려온다. 그리고 에브라임에 가는 도중 베냐민 땅인 기브아에서 해가 저문다. 아무도 그들에게 호스피텔러티를 제공하는 사람이 없는 , 에브라임 출신이며 기브아에 살고 있던 노인이 그들을 자기 집에 불러들여 식사를 제공한다. 그렇게 쉬고 있을 , 성읍 사람들 (아나심) 집을 에워싸고, 집에 들어온 자들을 놓으라고 난폭하게 요구한다. [ 집에 들어온 사람(이슈)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야다)하리라](사사기19:22).

그러자 주인인 노인은 [ 형제들아 청하노니 (라아) 행치 말라](19:23) 하며, 교환조건을 내놓는다. 처녀로 있는 자기 딸과 손님의 아내를 내놓으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사람(이슈)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19:24). 그러나 성읍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으므로 손님인 레위인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내를 밖으로 붙들어 낸다. 이렇게 해서 레위인의 아내는 밤새 폭행을 당한다.

소돔 이야기와 기브아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많이 있다. ①성읍사람들이 낯선 사람인 손님에게 호스피텔러티를 제공하지 않으려 . ②자기 집을 숙소로 제공한 노인이 성읍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타국인] 거류자인 . ③성읍사람들이 몰려와 집을 에워 싸고 손님을 밖으로 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 [아나심] [야다] [이슈] [라아]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 그리고, ⑤남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여자를 보내서 대신 욕보게 하는  등이다.

또한 이야기에서 다른 점은 손님의 행동여하에 의해, 한편은 위험을 면했고, 다른 한편은 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우 모두 외국인에 대해 유난히 공포를 느끼고 있는 군중들이 장로에게 가야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외국인을 집안에 들인 것에 격분하는 군중에 의한 집단강간 이라는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있다.[22]

그러면, 누가 강간을 초래하였으며, 누가 강간을 당했는지 살펴 보자.

소돔 이야기와 기브아 이야기는 단순하게 대조적이라고 말할 없다. 양쪽 모두 여자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아버지의 소유 밑에 있는 처녀인 딸들은 강간의 위기를 면하고 있다. 실제로 강간을 당해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른 남편의 소유인 아내인데 아내는 자기 입장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여자 명이다. [23]

그리고 양쪽 모두 강간의 목적은 상대 남자의 소유물인 여자를 강간함으로 인해, 여자의 몸을 지켜야 하는 남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남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낯선 사람을 강간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성읍과 소유물을 지킬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자랑할 있는 입장이 되는 한편, 자기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정복자인 것도 알게 하는 것이 된다. 무엇보다도 자기네들이 [진짜 남자]라는 것을 입증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24]

 

4.외국인 공포증의 폭력

곳의 집단폭력의 기저에 있는 것은 [동성애] 아니다. 외국인 공포증, 이것은 객지에서 사람들의 도움과 호스피텔러티 없이는 생명에 위험마저 겪어야 하는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 ( 지역사람, 낯선 사람) 재기 불능케하는 냉혹성에 있다.

창세기 19장의 소돔 멸망에 관한 이야기가 18장의 아브라함의 규범적인 호스피텔러티 이야기 바로 뒤에 따라 나오게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롯의 호스피텔러티 자세와 소돔의 죄악을 대조적으로 말하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그네에게 호스피텔러티를 실천한 아브라함은 대대로 자손 번영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 나그네에게 호스피텔러티를 실천하지도 않았고 외국인 공포증으로 인해서 폭력을 행사한 소돔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유황의 심판을 스스로 초래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18:23) 라고 묻는 아브라함의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답하셨을까? 소돔에서 낯선 손님에게 호스피텔러티를 제공한 [의인] 롯에게도 자손번영의 축복을 준비해 놓으셨을까? 롯은 멸망하는 소돔을 피해 간신히 도망가 딸과 함께 산속의 동굴에 살았다. 그러나 그곳은 딸들이 결혼해서 자손을 남길 환경이 못되었다.

성경은 롯과 그의 딸들이 그렇게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미리 정해져 있던 일이라고 말한다. 비상 사태에서 딸들이 자손을 남기려고 재치있게 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 하나님이 딸들에게 도움을 주셨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롯이 이틀밤이나 계속 술에 취해서 딸들이 자도 전혀 눈치채지 만큼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와인을 도망간 동굴에 준비해 놓아 두셨다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롯도 하나님으로부터 딸을 통해 민족이라는 자손 번영의 축복을 받는다(19:29-38).

히브리어 성경시대의 사람들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호스피텔러티를 둘러싼 대조적인 태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돔의 죄악은 하나님의 길에서 떠난 교만 이며, 포식과 번영가운데 있으면서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고 하지 않은 냉혹성과 정의의 부패라고 선지자들도 계속해서 예언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가 기원 1세기 예수운동과 기독교 시대까지 계승되어온 것은 지금까지 읽은 그대로 이다. 그러니까, 소돔 멸망에 관한 성경을 근거로 해서, [동성애] 혹은 동성간 성애나 성행위를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C. 회상

소돔 멸망 이야기를 고찰하면서, 소돔의 죄가 [동성애] 아니며, 동성간 성애나 성행위도 아닌 것을 알았다. 이를 토대로 하여 부문으로 나눠서 회상해 보기로 하겠다. 1.누가 소돔의 죄를 묻는가? 2.성경을 학문적으로 읽는 3.성경에 부각된 부권제적 가치관 4.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이야기.

 

1.      누가 소돔의 죄를 묻는가?

창세기 19장에서 소돔의 죄악으로 지적당하고 있는 것은, 자기들과는 다른 지역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증오하며 배척하는 외국인 공포증으로 인한 폭력이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호스피텔러티의 결여이다. 풍족한 생활을 향수하면서도 가난한 이웃과 나누지 아니하고, 정의를 행하지 않는 태만과 교만한 태도에 죄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소돔 이야기는 자기들과 다른 낯선 사람들에게 협박과 폭력을 행함으로 인해 자기들의 우월함을 내세우려 하고, 때에 따라서 상대를 죽이거나 배제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다. 오히려,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호스피텔러티를 갖고 대해야 하는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돔 이야기를 토대로 교회가 실천해온 것은 어떤 것일까?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나 [동성애] 자들에 대해 과혹한 외국인 공포증을 표현하며, 호스피텔러티가 결여된 교만한 태도로 대한 것은 다름아닌 기독교였다. 하나님의 노여움,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에 의해 멸망을 초래한 소돔의 진정한 , 심각한 불의와 죄를 오늘도 번복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며, 교회의 교만한 모습 속에 심각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있겠다. 소돔 이야기를 읽을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가슴에 담아 두어야 한다.[25]

 

2.      성경을 학문적으로 읽는다는

번째로 가슴에 담아 두어야 것은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 중에 색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 무의식 중에 자기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를 통해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 자기 자신의 성에 관한 견해를 본문 위에 겹쳐 놓고 읽으면서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었다고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라든가, [성경을 학문적으로 읽기보다는 신앙인으로서 솔직하게 읽어야 한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소돔의 죄를 동성애라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왜일까? 성경에는 [소돔의 죄가 이렇다…]라는 명백하게 기록해 놓은 곳도 없고, 동성애에 연결시킬만한 내용도 없는데, 그렇게 믿고 읽는 것일까? 교회에서 그렇게 해석하고 가르치고 있다 하더라도, 신앙인으로서 솔직하게 성경을 읽을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

그것은 자기 안에도 교회 지도자 안에도 스며들어있는 사고방식이나, 성경을 읽고 느끼는 방법, 자기들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해 무의식적인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주위 사람들과 같은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을 때는 깨닫지 못한다. 자기들이 일정한 색안경을 통해서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 오히려 성경을 솔직하게 읽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을 학문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그러한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해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되도록이면 지금까지 자기들이 믿고 있던 것에 집착하지 아니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한다. 신앙과 학문을 대조해서 이것인가 저것인가 이원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선조들이 전해준 소중한 말씀이기에, 학문적인 탐구에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성경을 비판적으로 솔직하게 읽으므로 인해, 지금까지 소돔 이야기를 오해하고 있었다고 깨달을 있다면 무의식 속에 끼고 있던 색안경을 벗게 날이 것이다.

 

3.      성경에 부각된 부권제적 가치관

성경 본문에 있는 소돔 이야기는 나쁜 사람들은 멸망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른 롯은 딸들과 함께 죽음을 면하고 하나님께 축복받아 자손이 번영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권선징악이라는 구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의 부권제적인 설득술에도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롯은 고대 근동의 호스피텔러티의 전통에 따라,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자기 집에 손님을 모셨다. 그리고 손님의 신변 안전을 마지막까지 지키려는 주인의 의무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딸을 집단폭행 속에 놓는 것을 조건으로 지킨 자세였다.

아버지는 딸의 성性과 삶에 완전한 결정권을 갖고 있고, 낯선 손님인 남자들의 안전을 위해 딸의 몸과 생명이 교환조건으로 놓여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와 문화를 전제로 한다. 성경 본문은 이러한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결단으로 손님을 받아들여 주인의 의무를 다한 다음, 롯은 손님의 안전을 위해 교환조건으로 자기 자신을 놓기 보다 딸들을 희생시키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롯은 하나님 앞에 [의인] 이라 불린다.

또한 성경은 롯의 딸들이 자기들의 자손을 남길 환경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을 , 아버지와의 성행위를 통해서 자식을 얻으려고 결의하고 실천했다고 한다. 그리고 행위는, 롯이 전혀 눈치채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졌다는 설명으로 인해, 롯은 완전히 면죄되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롯과는 대조적으로 딸들은 아버지에 의해 폭도들에게 놓여져 치욕을 당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일발의 순간을 넘긴 다음에는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근친상간의 (레위18:17,20:14) 추궁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다리를 건너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여성이나 남성 모두 성행위에 관계되어 있는데도 여성만 성性의 더럽힘과 연결되어, 생生이 희생되는 위험을 당하고 있다. 이것이 부권사회 속에서 사는 여성들에게 처해진  현실이다.[26] 

이러한 부권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아무 비판이 없는 것은 고대에 쓰여진 성경 본문만이 아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주류의 전통 속에서는 폭력성에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롯을 면죄해 왔다. 이유의 하나는, 성경을 쓰여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 으로 읽는 자세가, 성경 자체 속에 이미 스며들어있는 부권제적인 시점과 사기성에 대하여 무비판적인 정신상태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성경은 수없이 많은 역사 속에서, 신앙의 선조들이 자기들의 신앙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신앙 증언 책인 것이다. 그것을 존중하면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역사적인 상황을 비판적이며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신앙공동체를 물려주기 위해서도 너무나 소중한 임무라고 하지 않을 없다.[27]

 

4.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이야기

마지막으로, 롯의 아내에게 생각을 돌려보자. 성경은 그녀도 멸망으로부터 도망갈 있도록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19:17) 라고 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결과, 생명을 잃고 소금기둥이 되었다고 말한다(19:26). , 롯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임에 비해,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며, 믿음이 없는 여성이며, 어리석음 때문에 벌을 받고 신세를 망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점에서 우리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소돔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