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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직도 기독교인인가? / 김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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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직도 기독교인인가?


- 김준우

 

1. 질문의 의미

 

우리의 정체성과 직결된 이런 질문을 새삼 묻게 되는 이유는 우선 소극적인 측면에서, 기독교의 도덕적 파탄 현실 때문이다. 즉 예수가 목숨을 바쳐 보여준 하나님은 자칭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내려주는 무차별적인 사랑의 하나님이며, 우리가 그 큰 사랑에 힘입어 우리의 원수들까지 사랑하기를 원하는 철저한 비폭력의 하나님이지만,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지난 2천 년 동안 그 한없는 사랑을 실천하기보다 독선과 편견, 증오와 폭력을 조장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가장 잔인한 폭력적 종교가 되었으며, 심지어 "거듭난" 기독교인들조차 세상 사람들보다 결코 도덕적이지 못한 현실에서(Ronald Sider,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2005), 나는 왜 아직도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가 하는 실존적 질문을 묻게 된다.

 

또한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기독교 공동체의 이런 자기모순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시급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의 95% 이상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선제공격을 일삼고 자원과 이윤을 강탈하고 착취함으로써 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현실, 곧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제국이 된 현실에서, 존 도미닉 크로산이 God and Empire(2007, p. 237)에서 통렬하게 묻고 있듯이, "폭력적인 기독교 성서에 기초한 폭력적인 기독교 안에서 어떻게 비폭력적인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개인적 고백

 

기독교가 이처럼 예수가 보여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배반하고 가장 폭력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자기모순 때문에 급격하게 몰락하고 있으며 심지어 "교회의 죽음"까지 논의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도 기독교인인 이유는 우선 개인적으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과 나에게 "삶의 기쁨과 의미, 소명과 가치관 그리고 비전을 가르쳐주신 분"이 예수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보복하고 싶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했음을 깨닫고 나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생의 선물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인생길이 폭풍 속에 떠가는 일엽편주와 같은 취약성과 외로운 길이라는 진실이 가슴에 사무칠수록, 또한 기도를 드리며 예수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믿음과 부끄러운 모습을 고백하고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수록, 35억 년 동안 계속된 생명사의 창조적 진화과정 속에 나타난 신비와 경이 앞에 서도록 촉구하며 삶의 용기와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나를 더욱 큰 자유와 책임으로 불러낼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생명체를 더욱 키워주도록 요청하며, 우리가 받은 잠재성을 더욱 극대화하도록 이끌며, 우주 안에서 모든 만물과 함께 기쁨을 나누도록 요청하는 생명사의 하나님, 우주의 선율 속에 생명의 춤을 추도록 우리를 이끄는 하나님은 모두를 풍성한 "생명의 잔치"에 초대하는 하나님이며 예수가 보여준 사랑과 은총의 하나님이라 믿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인이라 고백한다.

 

 

3. 윤리학자의 사명

 

기독교가 역사상 가장 잔인한 폭력적 종교가 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의 자세를 반성하도록 촉구한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구원과 창조의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사랑과 자비의 비폭력적 하나님으로 성육신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폭력적 성전종교체제와 맞서 싸우다가 그 성전체제에 의해 고발되었고 결국 폭력적 제국에 의해 처형되었고 부활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의 순교 위에 세워진 기독교라는 또 다른 막강한 성전체제의 아이러니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폭력적 성전체제에 맞서 저항하는 것을 뜻한다. 그분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화 역시 개인주의적 차원에서 자기만족적인 고백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의 기쁨과 평화가 되도록 헌신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종족학살(genocide)과 종자학살(biocide), 지구학살(geocide)을 가속화시켜 약한 생명체들을 대량 학살하는 체제이다. 소수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를 위한 생명의 잔치를 파괴하고 학살과 공포의 체제로 만드는 것이다. 그 총체적 죽임의 체제에 맞서 저항하기 위해, 윤리학자의 과제는 우선 그 죽임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기독교의 폭력성을 해체하도록 노력함으로써, 죽임과 저주의 세상을 생명과 축복의 세상으로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혁명에 대해 기독교가 반동세력으로 존재할 것이 아니라 그 혁명의 대열에 참여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 사명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제가 필요하고 생각한다. 예수의 비전을 해명하고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한, 우리 자신이 기독교인이라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3-1. 함께 아파함(Orthopathy)

 

기독교가 선포하는 복음이 세상의 구조적 불의를 외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저 세상에 넘겨주거나 체제에 의한 집단적 고통을 위무하고(pacify) 영혼구원에 몰입하는 동안 기독교는 예수를 배반하게 되었다. 떼이야르 샤르댕 신부가 고비사막을 건너다 말고 빵과 포도주도 없이 성찬례를 준비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의 눈물을 포도주로 삼고 노동하며 신음하는 육신을 영성체로 삼아 미사를 드렸던 것처럼, 대량학살 체제 속에 살아가는 모든 기독교인은 사제로서 온 세상의 아픔과 신음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위로를 간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졌다고 가르친 삐에르 신부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개인주의적 평화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필요하다면 혁명도 불사하는 사람들이다.

 

 

3-2. 황제의 복음에 맞선 하나님의 복음(Orthodoxy)

 

1) 기독교의 폭력성이 성서의 폭력성에 기초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스퐁 감독처럼 "성서가 저지른 죄"(Sins of the Scripture: Uncovering the God of Love Beneath the Bible's Texts of Horror, 2005, <성경과 폭력>)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부족신앙의 폭력성을 벗겨내는 일은 성서의 비폭력적 사랑의 하나님을 성서 문자주의의 폭력성에서 구출하는 일이다.

 

2)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적이 있을 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적을 멸망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합리화시킨다(Martin Marty, 2002). 탐욕에 사로잡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폭력의 신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성서의 하나님을 살해하는 짓이다.

 

3) 로마제국에서 "복음"은 황제의 탄생, 정복전쟁에서의 승리였으며, 구원은 정복과 승전이었다. 나사렛 예수가 "주님," "신의 아들," "구세주"로 고백되기 이전에 이미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주님," "신의 아들," "구세주"로 고백되고 있었다. 그는 아폴로 신에 의해 기적적으로 잉태되었으며, A.D. 14년에 그가 죽은 후에는 로마제국의 원로원이 그의 "승천"을 선포했다는 사실은 예수의 복음이 황제의 복음에 맞서 그것을 대체한 반정치적이며 반체제적인 복음이었음을 보여준다.

 

4) 황제의 복음은 정복전쟁과 지배, 조공과 노예제도 등의 착취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악은 황제에 대한 저항세력이며, 힘이 곧 정의이며, 재물은 신의 축복이며, 구원은 "폭력을 통한 승리"다. 따라서 황제의 복음은 정복자의 특권, 번영, 우월의식을 가르치고, 피정복민의 복속, 섬김, 열등감을 고취한다. 결국 황제의 복음을 뒷받침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짓밟는 착취와 죽임의 체제이다.

 

5) 세례 요한과 예수는 모두 로마제국의 식민지 지배와 헤롯왕가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다. 로마제국이 자행한 처절한 학살, 유대의 왕이 될 정치적 야욕에 사로잡혀 세포리스를 재건하고 갈릴리의 새로운 수도 티베리아스를 건설하면서까지(A.D. 19년)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발버둥쳤던 헤롯 안티파스의 살인적인 세금정책, 농사를 지어봤자 생산물의 60% 이상을 지주에게 바쳐야 했던 소작농의 현실에서 가장 큰 문제는 끼니를 잇는 일과 부채 문제였다. 그러나 성전체제마저 정결의 정치학(politics of purity)에 사로잡혀 약자들을 짓밟는 현실 속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의 뜻은 한 마디로 말해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짓밟히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며 대항적 대안운동(counterforce alternative)이었다.

 

6) 이런 착취와 죽임의 체제에 맞서서 세례 요한은 "복수하는 하나님"(avenging God)이 조만간 찾아오실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회개하도록 요청했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만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 한 사람만 처형하면 그의 운동을 끝장낼 수 있었다. 세례 요한이 처형되기까지 "복수하는 하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7) 세례 요한의 실패를 확인한 예수는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 했다. 예수는 우선 미래의 희망을 현재의 해방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공동체 안에 도래했음을 가르쳤다. 세례요한이 금식했던 반면에 예수가 잔치를 벌였던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무제한적인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할 것과 평등주의와 아무나 참석하는 밥상공동체와 비폭력 저항, 차이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배려, "힘과 승리를 통한 평화"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를 통한 평화"를 가르쳤다.

세례 요한의 활동과 예수의 활동을 비교하면, "세례 요한은 독점이었지만 예수는 프랜차이즈였다"(John had a monopoly, but Jesus had a franchise. Crossan, 2007, 117-8.). 즉 예수는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에 정착하지 않고 유랑했으며, 자신이 하는 일들을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하도록 요청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도록 요구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특권층의 탐욕과 차별에 맞서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음을 가르쳤다.

 

8) 예수는 당시에 끼니를 잇는 문제와 부채 문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그 체제와 문화가 가르치는 인습적 지혜를 뒤집어엎는다. 안전을 위해 가족, 재산, 자손, 명예에 의존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감으로써 "산 자들의 땅에서 죽은 자들"(눅 9:60), 혹은 "눈뜬 장님"(눅 6:39)으로 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집단최면에 걸리도록 만드는 체제 속의 존재방식에 대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무제약적 은총을 신뢰함으로써 "좁은 문"으로 들어가 참된 자유와 인간다운 개방성, 공동체의 협동과 연대감 속에 살아가는 길을 가르쳤다. 예수는 당시의 폭력적 현실에 맞서서 이처럼 철저한 비폭력 평화의 길을 가르쳤다.

 

9)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묵시론적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여 예수의 재림과 휴거를 학수고대하며 세계 파괴(cosmicide)를 통한 인류 도살을 "종교적 의무로서, 피할 수 없는 소명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감행할 꿈을 꾸고 있다. 특히 세대주의자들(dispensationalists)이 1830년 이후 비로소 시작한 휴거에 대한 꿈은 최근 들어 자원고갈, 빈부격차 심화, 기후변화로 인해 미래가 불안해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비폭력 예수가 폭력적 재림 예수로 둔갑하며, 도살당한 어린 양(slaughtered Jesus)이 도살자 예수(slaughtering Jesus)로 둔갑한다.

요한계시록 19:11-21의 "흰 말을 타신 분" 재림 그리스도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는 그것으로 모든 민족을 치실 것입니다. 그는 친히 쇠지팡이를 가지고 모든 민족을 다스릴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하신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입니다...."(19:15). 공중에 나는 새들에게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힘센 자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과 모든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의 살을 먹어라"(19:18)고 말한다.

 

이처럼 학살당한 자들의 살을 뜯어먹는 "하나님의 큰 잔치"는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베푼 정의와 평화의 큰 잔치(25:6-8)의 비폭력성과 대조된다. 또한 여기에서 재림 예수의 최종 심판에 인간이 가담할 역할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자들이 세계 파괴를 획책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풍성한 생명의 잔치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범죄행위이다. 계시록의 재림 예수가 보여주는 이런 폭력성은 역사적 예수의 비폭력성을 뒤집어엎은 것으로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는 가운데,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한 비폭력적 메시아의 역할에서부터 재림 때는 군사적 승리자로서의 메시아를 성취시키고 싶은 열망이 작용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조, 그레고리 라일리, <하느님의 강>).

 

3-3. 실천(orthopraxis)

 

제국주의 체제만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제국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인류 문명에 희망이 없어 보인다. 더욱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생활방식에 맞서서 예수가 가르친 대안적 삶의 방식에 따라 단순한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대량학살 시대에 하나님의 풍성한 잔치에 참여하는 길이며, 우리가 힘써 그 길을 가는 한,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로서 기독교인이라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주변에 신앙의 동지들이 있으며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준우·기독교윤리 전공,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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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 아직도 충분히 알 수 없는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은가? / 김준우 한기연 2010.11.15 9583
123 역사적 예수 Future of Chrsitianity / Bishop Spong 강연 동영상 한기연 2010.10.16 8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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