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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9 16:12

예수 부활의 유대적 성격 / 크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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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첫 번째 기록자들은 그것을 왜 “부활”이라고 불렀을까?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를 예수 전승의 첫 번째 층위, 즉 원래의 층위로 돌아가게 만드는 두 개의 가장 근원적인 역사적인 문제들이 따라 나온다. 첫째, 1세기의 유대인들이 “부활”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그들이 뜻한 것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예수나 기독교가 존재하기도 전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주장을 했을 때 그들이 뜻한 것은 무엇인가? 둘째, 이러한 사실을 배경으로 볼 때, 1세기의 크리스천 유대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선언했을 때,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선포했을 때 그들이 뜻한 것은 무엇인가? 달리 말해, 우리는 1세기 당시의 의미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복음서의 이야기나 교회의 위치의 사실 여부를 묻는 논쟁들은 덮어 둔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의 부활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긍정하거나 부정하기 전에, 먼저 그 주장이 의미했던 것이 무엇인지 또 현재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이번 항의 제목 속에 “유대적”이라는 형용사가 들어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부활”이라는 말로 의미했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역사적인 문제를 묻고 있는 것이다.


마카베오파의 순교자들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 천 년 동안에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사후의 삶을 믿지 않았으며 영혼의 불멸이나 육체의 부활도 믿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스홀(Sheol)로 내려갔는데, 그곳은 단순히 대규모의 무덤을 의미하며, 모든 무덤들이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가공의 지하 영역 같은 곳이었다. 율법서의 장중함이라든가 예언서의 도전, 시편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모두 하느님의 백성에 드는 삶을 바라보는 신앙으로부터, 또 사람의 가족과 기억은 그 백성들 가운데서 계속되리라는 소망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이것은 사후의 삶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무지한 신앙은 아니었다. 그들의 이웃에는 언제나 이집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이 사후의 삶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신의 배타적인 특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달리 말해, 사후의 삶은 심각하게 논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과 악에 대한 응보는 당연히 이 세상에 속한 문제였으며, 내세가 아니라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신명기 28:2에서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너희에게 찾아와서 너희를 따를 것이다”라고 약속하고, 28:15에서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또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온갖 저주가 너희에게 닥쳐올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뒤에 길게 나열되는 복이나 재앙의 목록은 안에서 누리는 풍요나 궁핍, 대외적으로 거두는 승리나 패배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아래, 여기 이 땅 위, 그리고 지금 이곳의 문제이다.

그런데 위기가 닥쳐왔다. 오래 전부터 북쪽을 향해 밀고 올라온 이집트와 새롭게 동쪽으로 밀고 나오는 로마로 인해 궁지에 몰리게 된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B.C.E. 160년대에 이르러 쇠약해진 자신의 제국 속으로 이스라엘을 정치,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합병하려고 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을 상업화하여 전형적인 그리스 식 도시로 만든 일로 인해 일부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고대의 종교 전통을 고수하는 다른 유대인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그리하여 그는 완전히 다른 수단, 즉 종교적인 박해를 동원하였다. 너의 종교를 부인하라, 그러면 살 것이요, 고수하면 죽을 것이다. 과연 신명기 신학은 이 순교자들의 운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며 불순종이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는 곳에서 하느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는가?   

종교적인 혹은 신학적인 이 문제는 마카베오 혁명에 의해서, 즉 시리아 제국에 대한 마카베오의 승리에 의해서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또 토착의 하스모니아 왕조 하에서 백여 년 동안 유지된 유대의 독립에 의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하느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바로 그 하느님을 위해 죽었던 사람들이 당한 고통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순교자들의 고문당하고 찢겨진 몸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공의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몇 가지 답을 볼 수 있는데, B.C.E. 2세기 후반에 나온 마카베오 2서와 C.E. 1세기 중반에 나온 마카베오 4서에서는 네 가지 서로 다른 해결책들이 언급된다.

숭고한 죽음(noble death)이라는 그리스-로마 전통에 속하는 사례로는 엘르아잘(Eleazar) 노인의 영웅적 행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마카베오 2서에 따르면, 그는 “숭고하고 거룩한 율법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고상하고 훌륭한 죽음을 택하여 젊은이들에게 좋은 표본을 남기려”고 “기꺼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6:19, 28). 변절하기보다 박해를 감내한 일에 대한 고전적 모델은 당연히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의 존엄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처형될 위협 앞에서 변절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자기가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것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이라는 유대 전승에 등장하는 자발적이고 대리적인 속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엘르아잘은 마카베오 4서에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우리가 당하는 형벌이 그들의 유익이 되고, 또 내가 흘리는 피로 그들을 정결케 하고 내 생명을 취하는 대신 그들을 살게 하시오”(9:29)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은 대리적 속죄(代理的 贖罪, vicarious atonement)를 너무 경솔하게 다루어 왔다. 기독교 신학은 위를 향해 드려지고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받아주시는 선물을, 하느님이 준엄하게 요구하고 위로부터 부과되는 요구사항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러나 하느님이 요구하는(divinely demanded) 대리적 속죄는 신학적인 외설(a theological obscenity)이다.

마카베오 4서는 어머니와 일곱 아들이 순교한 일을 가리켜 인간의 감정에 대해 하느님의 대의가 승리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불태워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의로운 대의가 감정보다 탁월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마카베오 4서 13:5). 또 마카베오 4서 9:8에는 그들의 영혼이 불멸하리라는 암시도 나온다. “이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인내하고 나면, 우리는 그 행한 바에 따라 최고의 상급을 받게 되고 나아가 하느님과 함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숭고한 죽음이라든가 대리적 속죄, 불멸하는 영혼이라는 답이 어떤 유대인들에게는 하느님의 정의 문제에 올바른 해답이 되지 못한다. 위에서 본 순교자들은 그들의 영혼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몸(bodies)에서 죽은 것이다. 그들이 고문을 당하고 낙인이 찍힌 것은 영혼이 아니라 육신(flesh)에 일어난 일이다. 하느님의 정의가 어떻게 순교자들의 (bodies)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또 하나의 답이 마카베오 2서에서 매우 명료하게 제시된다. 그것은 마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듯,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인 듯이 아무런 논증 없이 주장된다. 즉 하느님은 미래의 어느 날, 어떤 곳에서, 어떤 모양으로든, 저 순교자들의 몸을 공개적이고도 뚜렷한 모습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이다. 마카베오 2서에 나오는 어머니와 그의 일곱 아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다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첫째, “이 못된 악마, 너는 우리를 죽여서 이 세상에 살지 못하게 하지만, 이 우주의 왕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위해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7:9). 둘째, “그는 혀를 내밀라는 말을 듣자 곧 혀를 내밀 뿐 아니라 용감하게 손까지 내밀면서 엄숙하게 말하였다. ‘하느님께 받은 이 손발을 하느님의 율법을 위해서 내던진다. 그러므로 나는 이 손발을 하느님께로부터 다시 받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7:10-11). 셋째, “나는 지금 사람의 손에 죽어서 하느님께 가서 다시 살아날 희망을 품고 있으니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너는 부활하여 다시 살 희망은 전혀 없다”(7:14). 넷째, “너희들은 지금 너희들 자신보다도 하느님의 율법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사람이 출생할 때에 그 모양을 만들어 주시고 만물을 형성하신 창조주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7:23). 다섯째, “이 도살자를 무서워하지 말고 네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도로 죽음을 달게 받아라. 그러면 하느님의 자비로 내가 너를 너의 형들과 함께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7:29).

마카베오 2서에 나오는 라지스(Razis)의 죽음에서는 숭고한(자살적인) 죽음과 몸의 부활이 훨씬 더 영광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이렇게 포위를 당한 라지스는 자기 칼로 자기의 배를 찔렀다. 악당들의 손에 넘어가 폭행을 당함으로써 자기의 고귀한 생애에 오점을 찍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어 버리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래도 죽지 않고 분노가 불처럼 일어 … 자기 창자를 뽑아내어 양 손에 움켜쥐고 군중에게 내던지며 생명과 영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자기 창자를 다시 돌려주십사고 호소하였다”(14:41-46). 이 격앙된 묘사 속에는 몸의(bodily) 부활에 대한 생각이 매우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박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말하는 것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박해당한 이들을 위한 보응의 시간과 장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되돌려 받아야 한다. 어느 날엔가, 어떤 식으로든, 어느 때, 어떤 장소에선가, 순교자들이 그들의 하느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때에 일반적인 몸의 부활(a general bodily resurrection)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희망은 마치 수면에 퍼지는 파동과도 같이 이 순교자들로부터 의로운 모든 사람들에게로, 정의를 위해 살았거나 불의를 당한 모든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여기서 일반적인 부활은 앞의 2장에서 언급했던, 언약적인 하느님 나라로부터 종말론적인 나라를 거쳐 묵시적인 나라로 이어지는 희망의 스펙트럼과 연결된다. 부활은 전적으로 종말론적-묵시적(eschato- logico-apocalyptic) 개념이다. 사실상 부활은 이 희망의 마지막 순간이요, 장엄한 종결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묻는 질문은, 나는 영원한가 하는 질문이 아니라 하느님은 의로우신가 하는 질문이다. 그것이 높이 든 표어는 이렇다. 어느 날엔가 하느님께서 승리하실 것이다(God will overcome, someday).

 

크로산 & 리드, 김기철 역, <예수의 역사>(근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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