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신학대학원 주최 신학교육의 개혁 - 기후붕괴의 관점에서 강연 동영상
생태위기와 신학적 과제 / 2015년 인터뷰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74kQNt8jc8&feature=player_embedded
"신학자가 도대체 왜 기후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미국 유학시절에 공영방송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서 산성비로 인해 캐나다 접경지역의
1,000여 개의 호수들 속에 물고기는커녕 수초도 없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또한 아마존의 론다냐 지역에서 2500군데에 동시에 산불이 나는 NASA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빌 매키븐의 The End of Nature (1989)와 토마스 베리 신부의 Dream of the Earth (1988)을 읽고 생태계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귀국한 후에는 성서문자근본주의와 싸우느라 역사적 예수 연구를 소개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2009년에 James Hansen의 Storms of My Grandchildren(2009)과 James Lovelock의 The
Vanishing Face of Gaia (2009)를 읽고, IPCC 제4차 보고서(2007년)가 산유국 과학자들의 합의를 얻기 위해 기후 위기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출판된 기후변화 관련 서적들과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기후과학자들의 논문들을 살펴보았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최근의 정보에 근거한 알기 쉬운 책들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독자들이 기후재앙에 대해 1시간이면 파악할 수 있도록 서둘러 정리한 것이 포켓판 <<기후재앙에 대한 마지막 경고>>(2010)였다.
별로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구의 현실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과학적 예언자들", 즉 빌 매키븐, 제임스 핸슨, 제임스 러브록, 레스터 브라운, 클라이브 해밀턴, 나오미 오레스케스, 하랄트 벨쳐와 귄 다이어, 제임스 구스타브 스페스, 반다나 시바의 연구 결과를 요약해서 2011년에 기독교사상에 연재를 시작했고, 2012년에 책으로 묶어서 낸 것이 <<기후붕괴의 현실과 전망 그리고 대책>>이다. 출간한 지 1년 반이 되어 오지만, 아직도 제임스 핸슨, 제임스 러브록, 클라이브 해밀턴, 빌 매키븐, 반다나 시바의 책들 가운데 내가 참고한 중요한 책들은 아직도 번역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붕괴의 현실과 전망 그리고 대책>>은 여전히 최근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셈이다.
학생 때 지학이라는 과목을 배운 적도 없어서 혼자서 헤매면서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스러웠던 것은 기후변화에 관한 연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원서들이 비교적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쓴 기후 관련 책들은 분자생물학이나 천체물리학에 비해서 훨씬 이해하기 쉬운 분야였다.
세계 현실이 지금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깨닫지 못한 채 희망을 말하는 것은 거짓 예언자들처럼 헛된 환상을 심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세대는 단기간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다음 세대에게 엄청난 국가부채와 막대한 연금 부담액을 물려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실업률에 더하여 거의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진 지구환경을 물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IPCC의 5차보고서(2013년)까지도 기후변화의 양성 피드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IPCC에 관여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후붕괴를 막기 위한 국제적 공조체제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절망을 보여준다. 하물며 WCC의 10차 총회(부산)를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후붕괴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들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당위적인 선언과 희망사항에 불과한 부속 문서로는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세계 인구 90억 명 가운데 85억 명 이상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으며, 20세기 홀로코스트보다 더욱 처참하게 전개될 21세기 대학살 속에서 죽어갈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피눈물 흘리며 키운 우리의 자녀들과 손주들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절망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속에서 저항하며 희망을 만들어나갈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핵 발전소를 폐쇄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기후붕괴를 막기 위한 화력발전소 폐쇄는 어림없는 노릇이다. 국민 과반수가 녹색당을 지지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다. 국제금융조직과 제국들의 군사력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의 탈취경제(강내희 교수의 지적처럼 착취경제가 아니다)를 계속할 것이며, 아무리 세계교회가 선언문을 발표하고 저항한다 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학살을 계속할 것이다. 잘 사는 나라들의 교회 대표들이 깨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생태계 파괴 문제에 미적지근한 부산총회를 보이코트하고 교회일치운동을 깰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더욱 생지옥으로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 교회는 나사렛 예수처럼 하나님 나라를 이룰 신학과 실천방법을 모색해야만 하는 것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창조하는 길이다.(WCC 총회 생태부분 워크숍에 참석한 후에 다시 분명하게 정리하게 된 생각이다).
우리의 현실은 국제금융자본이 주도하는 탈취 경제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점차 속도가 빨라지는 기후붕괴 현실에서 보듯이 생태계는 더욱 파괴되어 인류는 레스터 브라운의 예언자적인 책 제목처럼 "벼랑 끝에 서 있다"(World on the Edge: How to Prevent Environmental and Economic Collape, 2011, 이 책은 국내에 "앵그리 플래닛"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단순히 인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산업문명으로 인해 여섯번째 대멸종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은 토마스 베리 신부의 지적처럼 우리가 지금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몰두하는 Business as usual 생활방식에서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우리는 지금 과거에 르네상스운동이나 계몽주의운동처럼, 역사적으로 거대한 문화혁명의 대전환기(Great Turning)를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업시대Industrial Age에서 생태시대Ecological Age로 바뀌고 있다. 현재의 문화혁명은 "생태 혁명," "지속가능성 혁명"이라고 불린다(Jorgen Randers, 2052; Joanna Macy, Active Hope). 하와이대학의 생태인류학자인 레슬리 스폰셀은 이런 혁명에서 종교의 역할을 정리한 Spiritual Ecology(2012)에서 이런 생태영성 중심의 문화혁명을 "고요한 혁명"이라고 부른다. 폴 호켄이 <축복받은 불안정>(2007)에서 지적한 것처럼,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조직들이 백만 개, 혹은 2백만 개가 될 정도로, 생명정의평화운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기독교가 개인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생태적 자아ecological self를 발견하고 생태영성을 계발하고 확산시키는 과제에 몰두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런 대전환만이 자기파멸의 시대에 우리의 자손을 포함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자본과 제국들의 군사력 등 막강한 세력들이 대전환을 방해하고 있지만, 인류 역사상 수천 년을 이어왔던 노예제도조차도 선구자들의 끈질긴 노력 덕택에 철폐되었고, 베를린 장벽도 무너져내렸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위대한 과업들도 그 변화를 갈망하는 개인들의 노력이 뭉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결정적인 임계점을 넘으면 둑이 무너지듯이 성취되는 것이다.
북극얼음이 2012년에 기록적으로 많이 녹아내린 것에 비해 2013년에 60%가 증가했다는 과장된 수치에 근거해서 지구온난화가 1997년에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되었다는 영국의 Daily Mail 기사.
위와 같은 종류의 엉터리 뉴스
http://korean.ruvr.ru/2012_09_03/87005432/
그걸 베낀 세계일보(2013/9/10)의 주장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디언 지의 그래프 기사.
Daily Mail이나 세계일보의 보도처럼 지구온난화가 1997년에 멈추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기쁜소식이지만, 지난 16년 동안의 지속적인 기온상승과 해수면 상승과 북극 얼음 최소치 감소 추세는 어찌 설명할 것인가?
기후변화의 할아버지 제임스 핸슨(2009)이나 스티픈 슈나이더(2010), 제임스 러브록(2009), 레스터 브라운(2011), 클라이브 해밀턴(2010), 나오미 오레스케스(2010), 빌 매키븐(2010)의 책 어디에도 그런 기쁜소식이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지구온난화 사실은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끝난 것이지만, 세계 굴지의 석유재벌들의 막강한 돈줄이 아직도 신문사들에 흘러들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틀이나 지나서 뒷북을 치는 한겨레 기사, 그나마 다행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environment/newsview?newsid=20130912155012672
과천기후변화국제포럼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신소재 개발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33998&ref=D
문제는 제임스 러브록이 <가이아의 복수>(E. 2006, K 2008)에서 지적한 것처럼, "연간 이산화탄소 생산량 270억 톤을 영하 80도로 얼려서 고체 이산화탄소로 만들 경우 높이 1.7km에 원주가 20km에 달하는 산이 될 것"(120쪽)인데, 이것을 지하 암석이나 해저에 매장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지각변동이나 지진으로 인해 누출될 경우에는 몇 년 전 카메룬에서처럼 치명적인 질식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기후붕괴 시대의 교회의 역할 (2013/10/10 한신대강연)
김준우(한국기독교연구소)
들어가는 말: “금성 신드롬”과 “설국열차”
2013년 여름, 우리는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를 겪었다. 닭을 비롯한 가축들이 백만 마리 이상 폐사하고 물고기들이 수백만 마리 폐사하는 동안에도 에어컨 사용은 더욱 많아지고 주말에는 행락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채웠다. 정부와 언론은 전력예비율에만 초미의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1)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ppm을 넘었던 적이 지난 42만 년 동안 한 번도 없었지만, 1988년에 “기후재앙의 문턱”인 350ppm을 넘어섰고, 2012년에는 400ppm마저 넘어섰다는 사실, (2)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온도가 섭씨 0.8도 상승한 것에 비해 서울은 평균온도가 2.1도 상승했으며(최저온도는 3.1도 상승), 도쿄는 평균온도가 3도 상승했을 정도로 특히 대도시들은 “열섬효과” 때문에 지구 평균온도 상승보다 2∼3배 높다는 사실, (3) 대다수 기후학자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현재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 추세로는 30년 뒤에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2도, 60년 뒤에는 4도, 100년 뒤에는 6∼12도 상승할 정도로, “금성 신드롬”(Venus syndrome)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 (4) 미국과 영국의 안보 전문가들조차 “인류 문명이 63∼75년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전 지구적 “비상사태”에 관해서는 정부와 언론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기상청이 발표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에 근거하여 “열대야가 10년마다 8일씩 늘어난다”는 보도와 함께 온통 시뻘건 불가마니로 변한 남한의 지도(21세기 후반기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가 지금 우리의 어린 아기들을 그 시뻘건 불가마니 속에 던져 넣고 있는 장본인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교육계와 종교계조차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금성도 처음에는 지구와 비슷한 화학적 조건이었지만, 땅 속의 모든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는 탈주효과 때문에 섭씨 450도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기후변화의 할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핸슨에 따르면, 5,500만 년 전에 대멸종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기후변화의 상승작용으로 인해 대륙붕에 있던 메탄수화물이 녹아서 방출되어, “수천 년에 걸쳐 섭씨 5∼9도 상승한 때문”이라는 것이 오늘날 과학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합의라고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 세대가 100년 안에 섭씨 6∼12도 상승을 예상하게 된 것은 토마스 베리 신부가 말한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가 얼마나 파국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지구의 운명 역시 이미 탈주효과가 시작된 메탄수화물(“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다)이 “지구 역사상 지금이 가장 많이 장전되어 있어서,” 지구 평균기온이 현재 섭씨 15도에서 섭씨 100도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지구의 평균온도가 섭씨 2도만 상승해도, 3백만 년 전의 최신세처럼 해수면이 점차 오늘날보다 25미터 상승할 것이며, 섭씨 4도 상승하면, 육지의 온도는 섭씨 6도 상승하게 되어, 지구 산소의 40%를 생산하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 열대우림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 건조한 사반나 지역으로 바뀔 뿐 아니라, 툰드라 지대의 메탄수화물이 방출됨으로써 지구 평균온도가 5도 이상 추가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지구 위의 모든 얼음이 녹게 되면 해수면은 약 75미터 상승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조차 흥행에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1) 기후붕괴로 인해 인류가 “20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한 이후로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으며, (2) 과거에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나 직립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처럼 호모사피엔스 역시 멸종할 수 있다는 점, (3) “앞으로 십 년이 마지막 기회”로서 “2015년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정점으로 삼고 그 이후부터 매년 3%씩 감소시켜야만 인류의 생존 가능성이 50%다”는 자연과학자들의 일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미흡했던 것 같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후대책을 공론화하지 못할 정도로 그 전제와 결론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인류의 미래는 설국이 아니라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가마니다. 단적인 예로 70년 뒤에 서귀포에서는 열대야가 한 해에 90일 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북극곰은 북극해의 급격한 얼음 감소로 인해 조만간 멸종될 것이기에 희망을 상징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1)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기후 안전선 350ppm을 넘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400ppm을 넘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핸슨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현재 지구가 더워지는 속도는 히로시마 원폭 40만 개가 매일 지구 전역에서 폭발하여 그 열이 더해지고 있는 속도라고 한다. 극지방의 급격한 온도 상승만이 아니라 해들리 순환(Hadley cells)으로 인해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모두 위도 30∼40도 지역의 곡창지대가 점차 고온 건조지역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2)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바다와 숲도 이미 충분히 산성화되었으며, 특히 냉각효과를 일으키는 바닷말(algae)이 사라져 불모의 바다가 된 영역이 지난 9년 동안 15%나 늘어났으며, 또한 툰드라 지역에서는 메탄수화물 방출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3) 한반도는 점차 아열대기후로 바뀌고 있어서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이기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양성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재 추세로는 약 60년 뒤에 550ppm에 이르며, 150년 뒤에는 700ppm에 이르게 된다. 일본이 컴퓨터 5,120개를 연결해서 만든 슈퍼컴퓨터 “지구 시뮬레이터”에 따르면, 550ppm에 이를 경우, 한반도의 중부와 북부 지방을 비롯해서, 만주, 중국의 북부지역, 유럽의 중앙부, 미국의 서남부는 매우 심각한 가뭄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700ppm에 이를 경우, 한반도에는 여름철에도 장마전선이 제주도 이남에 머물러 더 이상 올라오지 않게 되어 점차 사막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스페인은 국토의 1/3에서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식량생산이 “앞으로 50년에 걸쳐 1/3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4) 더구나 유엔 산하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회(IPCC)가 예측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최악의 시나리오”(A1F1)은 2030년까지 연간 2.5%씩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2000년 이후 연간 3.2%씩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5) 현실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은 에너지 절약 대책으로 연간 평균 1조 엔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교토의정서를 매우 강력하게 추진하여 1990년 대비 6%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2009년 8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1990년 수준의 9%를 오히려 초과함으로써 결국 목표치의 15%를 초과했는데, 조림사업 등을 통한 “상쇄” 방침이 에너지 낭비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레스터 브라운이 기후대책을 위해 “전시 총동원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현실적인 난관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학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되는 기후붕괴 현실은 20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 지구적인 식량난과 식량폭동, 도시들과 국가들 사이의 “물 전쟁”을 초래할 가능성,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대도시들과 핵발전소들의 침수로 인한 대재앙을 초래할 가능성, 아흔 살이 넘어서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열정적으로 호소하는 “행성 의사” 제임스 러브록이 예상하는 것처럼 “수십 억 명이 죽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수십 억 명은 전 세계의 가난한 80%의 인구를 말한다. 이처럼 자기파멸의 길로 질주하는 우리 세대는 “자신들이 마지막 세대에 속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첫 번째 세대”이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제 핏줄 제 후손에게 아무런 보호본능도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런 묵시적 현실 앞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종말이라는 “대충돌”을 향해 전 속력으로 돌진하는 <설국열차>를 멈추게 할 방법은 한 영웅의 폭탄이 아니라 바퀴벌레로 만들어진 끼니를 먹는 꼬리칸 사람의 각성과 연대와 저항에 달려 있다. “기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사상자 수는 해마다 더욱 늘어간다. “3차 산업혁명”을 얼마나 빨리 이루어내는가에 <설국열차>의 운명이 달려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최대 450ppm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인류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은 5년뿐”이라고 명토박아 경고했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구체적인 기후대책들을 제시했다. 우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 에너지 사용을 대폭 줄이고, 5년 내에 모든 화력발전소들을 폐쇄하고 탄소세를 도입하며, 핵발전소들을 태양광, 풍력발전으로 대체하고, GNP의 0.1%를 다음 세대의 생존비용으로 투자하도록 요구하는 길이 <설국열차>를 멈추게 할 합리적이며 평화적인 대책들이다.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평화롭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기후 비상내각”이 최소한 30년을 내다보며 체계적인 10년 단위 방어계획을 세워 총력을 기울일수록, 비극적인 대재앙과 폭력사태를 줄이면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137억 년 동안 신묘막측하게 우주 안에서 생명체들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살아 있는 별 하나를 만드셨는데, 인류는 시방 그 별을 금성처럼 뜨거운 불가마니로 만들고 있다. “금성 신드롬”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결국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에게 “다음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생태영성: 지구의 울부짖음>(2013)에서 틱낫한 스님이 표현한 것처럼, “몇 시간 내에 모두 죽게 될 닭들이 곡식 몇 알을 놓고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오늘날 생명운동에 헌신하는 단체들이 전 지구적으로 백만 개 이상이며 생명운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회 운동”이 되었다. 신석기 시대 이래로 인류 문명을 선도해왔던 종교들도 전대미문의 생명의 위기 앞에서 “생명의 종교”로 탈바꿈하기 위해 과학과 비이원론적 전통을 결합시켜 생태영성을 계발하고 함양하는 일에 진력하고 있다. 지구는 우주 안에서 유일하며, 지구의 건강은 생명 유지에 절대적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지구의 요소들이며, 지극정성으로 지구를 창조해 오신 하나님의 영은 인류가 만들어낸 “금성 신드롬”과 여섯 번째 대멸종 사태를 온몸으로 맞서신 채 우리의 몸속에서 온 힘을 다 해 새로운 창조를 계속하고 계신다.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시편기자들, 예수님을 비롯해서 그 어느 신학자조차도 상상했던 적이 없는 이런 전대미문의 위기 현실은 공고한 기득권 구조 아래 석유문명과 시장전체주의 체제가 초래하는 현실로서, 그 편리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이 작동하는 체제이며, “마음공부를 정말 제대로 하지 않고는 깨뜨릴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하다.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1. 나의 지적인 순례
신학대학에 학사편입을 한 게 40년 전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사도신경을 정직하게 고백할 수 없었다.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재림만이 아니라 대속신앙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목회에 나갈 수가 없어서 1983년에 유학을 갔다. 해방신학을 배웠고, 국가안보이데올로기가 인권유린의 가장 강력한 하수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1988년 이후 생태계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인식은 나에게 민중해방을 위한 프로그램에 앞서서 우주와 생명의 신비에 대해 눈뜨게 했으며, “우주의 선율에 맞추어 춤추게 하시는 하느님”을 깨닫게 했다. 토마스 베리 신부의 영향이 매우 컸다. 우주-지구-생명-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우주 이야기”로서, ‘우주의 진화/창조과정 속에 펼쳐진 하느님의 신비한 드라마’였다.
1) 론도냐의 충격(2,500군데 동시 산불), 산성비로 인해 완전히 죽은 호수들의 충격
2) 빌 매키븐의 The End of Nature (1989): 자연의 평생보증 끝났다. 기후변화는 인간 손에.
3) 토마스 베리 신부의 The Dream of the Earth (1988): 6천5백만 년 계속된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 – 신생대는 46억 년의 지구 역사상 생명체들이 가장 아름답고 풍성한 시대.
어젯밤에 목성에서 지구로 이민을 와서, 오늘 아침에 지구에서 첫 아침을 맞이하는 감격.
Big Bang 이후 우주 팽창의 절묘한 속도는 공중분해와 와해를 막았다.
genocide, biocide, geocide: “대량학살체제” - 인간의 자폐성 때문, Earth deficit,
pax Gaia 위한 functional cosmology: differentiation/diversity, subjectivity, communion
그 우주적이며 생명사적인 드라마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은 다양성(diversity)과 주체성(subjectivity), 교제(communion)라는 것이 베리 신부의 가르침이다. 우주와 생명의 역사에 대한 이런 진화론적 관점은 ‘오직 성서,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을 외친 개신교의 성경적 폭력성과 배타주의와 몰상식한 믿음주의를 단번에 극복하는 보편주의의 길이다. (1) 다양성은 수천 억 개의 갤럭시들만이 아니라, 예컨대, 전 세계적으로 개미가 1만2천 종, 국화는 2만여 종, 오징어 10만여 종, 육지의 달팽이만 3만5천 종이라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나님은 다양성을 매우 사랑하신다. (2) 주체성은 아메바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최대한의 신경조직과 뇌 조직을 발달시켜 각자 주체가 되도록 자기를 조직화해온 것을 말한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잠재력을 극대화할 때 비로소 창조(진화의 주체화 과정)가 일어난다고 나는 믿는다.(‘서로주체성’을 주장한 김상봉 교수의 입장이 더 보편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3) 교제는 우주 안의 인력의 법칙처럼 상호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의존되어 있음을 말한다. 특히 식물과 곤충들의 공진화 과정은 생명들 사이의 교제의 원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베리 신부는 이 우주-생명의 세 원리를, ‘성부-성자-성령’이라는 가족 모델, 심리적 모델, 사회학적 모델과 달리, “우주론적 삼위일체 모델”이라 불렀다. 하나님은 다양성과 주체성, 교제를 지향하며 사랑하신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주 안에서 줄기차게 창조/진화를 이끌어가는 우주와 생명의 신비한 창조성의 원천, 그 창조적이며 영적인 힘을 나는 하느님이라고 고백한다.
4) 민중해방에서 생명해방으로, 그러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출발 (사도신경의 의미)
5) James Hansen, James Lovelock, James Hogan,『기후재앙에 대한 마지막 경고』(2010)
6) “지구의 현실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과학적 예언자들”: Bill McKibben, Lester Brown, Clive Hamilton, Naomi Oreskes, Gwynne Dyer, James G. Speth, Vandana Shiva
『기후붕괴의 현실과 전망 그리고 대책』(2012) - “전 지구적인 아우슈비츠 시대의 복음을 찾아서.”
2. 교회의 역할: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나아가는 “위대한 과업”
성서와 신학은 공포(terror)와의 대결 속에서 시대적 절망과 체념을 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미래를 바라보며 돌파구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영을 체득하는 수행과 기도가 관건이다. 나의 신학 수업에서 결여되었던 것은 하나님 이해와 인간 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찰스 다윈, 홀로코스트, 소비자본주의의 문제, 즉 post-Darwin, post- Holocaust, post-consumerism 시대의 신학이었는데, 이제는 post-400ppm 시대의 신학을 구성해야 한다. 거짓신학(기득권자들의 지배논리)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negative campaign이 필요하지만, positive campaign에 치중해야 평화에 공헌할 수 있다. 예수의 대안적 비전과 전략은 포지티브 캠페인이었다. 무엇보다 긴급한 것은 교회 안에, 그리고 연회와 총회 구조 안에, 핵 문제와 기후붕괴 현실에 대한 공부-행동 집단Study-action group을 만들어 생태의식을 확산시키는 과제이다. 성서는 신앙전통을 맹목적으로 암송하는 앵무새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의 긴박한 과제 앞에서 신앙전통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1) 기후붕괴 시대는 어떤 계시의 순간인가?
하나님의 빛에 비추어 현실인식: 기후붕괴로 인한 “금성 신드롬”과 대멸종 앞에서의 회심.
안전을 바라는 인간 본성에 호소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근본주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이 백성들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상투적 신학을 통해 기득권자들의 지배논리에 편승하며, “기존 문화의 가치들에 가장 헌신한다는 점에서 가장 종교적이다. 그러나 참된 예언자들은 당대의 사회 경제적 구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며, 특히 종교성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인물들이었다.”
2) 왜 대규모적인 생명파괴가 기독교 문명권에서 비롯되었는가?
우리 세대의 책임: 다차원적인 원인분석을 통한 죄책 고백과 저항을 위한 연대
자본주의와 산업주의, 가부장제, 기독교 신학의 이원론, 개인영혼구원 중심주의
3) 생태대라는 역사적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한국의 생태적 영성을 어떻게 계발할 것인가?
생명의 과학적 실상에 대한 무지 극복하기 위한 과학과 비이원론적 신학 결합, 생태마을
기독교 전통의 금욕주의, 성례전주의(chain of being -> web of being), 신비주의
“지구는 가장 아름다운 보살”(틱낫한)
4) 절망과 폭력의 시대에 기독교 우파들을 중심으로 한 크리스천 파시스트들에 대한 경계
타자를 악마화하여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시키는 근본주의 전통
귄 다이어는 2040년대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파국적이며 복합적인 기후재앙들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과학기술이나 정치를 통해서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게 된 현실에 절망하여, 극단적인 종교형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즉 “탈레반”과 비슷한 호전적인 종교분파들이 등장하여 모든 재앙을 “분노하신 하나님의 징벌”로 설명하며, “타자들”에 대해 배척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며, 이런 종교적 강경파들이 의회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크레인 브린튼이
* 세계인구 증가와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닥칠 일
B.C. 24만 년 인간 등장
B.C. 7만년 빙하기 15,000명 이하 (최소 2천 명)
B.C. 1만년 1백만 명
B.C. 6천년 1천만 명
B.C. 500년 1억 명
A.D. 1년 2억 명
1000년 3.1억 명
1350년 3.7억 명 (흑사병)
1500년 5억 명
1804년 10억 명
1900년 16억 명 (1927년 20억, 1974년 40억)
2000년 61억 명
2012년 70억 명
2025년 80억 명
2050년 90억 명
2100년 5억 명 (섭씨 6도 증가) (Prof. Kevin Anderson of the Tyndall Center for Climate Change)
* 기후와 관련된 세계의 재앙( 홍수, 가뭄, 태풍 포함)
1980년대는 매년 평균 300건 발생
1990년대는 매년 평균 480건 발생
2000년대(2008년까지)는 매년 평균 620건 발생
2007년에는 874건 발생
- Worldwatch Institute, Oct. 1, 2008.
* 지구 46억년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보면
오전 0시 - 지구라는 불덩어리 생성 (태양 둘레를 돌던 물질들이 한 데 모임) 곧이어 작은 행성과 충돌하여 달 생성
오전 2시 - 지표면이 충분히 식어 스팀이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하여 바다가 생겨남
오전 3-4시 - 따뜻한 물 속에서 첫 생명체들 나타나기 시작 ( 대기 중에는 산소가 별로 없었고 오존층도 없어
자외선 차단되지 못하여 지상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었다)
오전 10시 반 - 광합성 작용 시작되어 산소 증가, 모든 생명체는 단세포 생물
오후 6시 반 - 다세포 생물 등장
오후 8시 - 얕은 바다 바닥에 벌레들 등장
오후 9시 20분 - 첫 물고기 등장
오후 9시 45분 - 육지에 식물 등장
오후 10시 - 파충류, 곤충 등장
오후 10시 40분 - 화산, 소행성 충돌로 생명체 95%가 멸종
오후 10시 45분 - 공룡이 등장하여 지배하게 됨
오후 11시 40분 - 폭 6마일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여 큰 동물들 멸종하고 포유류가 지배하게 됨
오후 11시 50분 - 일부 포유류가 바다로 들어가 고래와 돌핀이 됨
오후 11시 58분 - 아프리카의 작은 원숭이가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이 됨
오후 11시 59분 40초 - 원숭이 비슷한 인간의 조상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
오후 11시 59분 55초 - 인간 등장
* 인류(호모 사피엔스) 역사 24만 년을 하루 24시간으로 보면
오전 0시 - 호모 사피엔스 등장, 아프리카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군집생활
오후 6시 - 아프리카에서부터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함
오후 10시 - 농사 시작, 여리고에 도시 건설
오후 11시 20분 - 바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
오후 11시 30분 - 스톤헨지 시작, 이집트와 중국, 페루, 인더스 계곡, 에게해에 도시국가 발달
오후 11시 45분 - 붓다, 공자, 예수, 모하메드 등장
오후 11시 55분 - 풍차 사용
오후 11시 57분 - 컬럼버스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상륙
오후 11시 58분 - 산업혁명
오후 11시 59분 - 세계 인구가 10억에서 70억으로 증가
오후 11시 59분 40초(1950년) 이후 인류는 그 이전까지 인류가 사용했던 자원들과 연료 이상을 사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