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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는 15가지 서로 다른 증상. 기침, 열 전혀 없어도 두통, 위통, 근육통, 피로감, 이명, 호흡곤란, 어지러움 등등

 

3개월 내지 6개월 계속되기도 한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may/15/weird-hell-professor-advent-calendar-covid-19-symptoms-paul-g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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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장기비상사태와 문명전환을 위한 기독교 신학의 재구성 메모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 2020/6/11.

2020장기비상사태와 문명전환을 위한 기독교 신학의 재구성.pdf

 

1. 코로나 이후 시대: 인류의 공멸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10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 기후위기는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항상 빠르게 현실로 나타났다. 따라서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의 공멸 위기를 알리는 외침들은 2019년 들어 더욱 절박해졌지만, 대부분의 정치, 경제, 대학, 종교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절약 문제에서 안일했다. 열여섯 살의 그레타 툰베리는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만 고집하는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How dare you!”라고 외쳤다. 반 년 가까이 계속된 호주 산불로 인해 야생동물 10억 마리가 죽었다. 전 세계 1만여 명의 과학자들도 지구가 기후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외쳤다. 20201, 미국 핵 과학자회는 인류가 최후를 맞게 될 시간이 자정 100초 전으로 다가왔다고 외쳤다. 곧이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졌다. 온갖 경고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인류 사회를 직접 강타한 것이다. 되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임계점이 채 10년도 남지 않았을 만큼 임박했기 때문에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후비상내각을 설치하고 석탄 화력발전소 폐기 등 획기적인 그린뉴딜을 통해 에너지 전환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때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맞은 2020년은 인류의 공멸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10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해이다.

 

 

2) 코로나 이후 시대는 많은 불확실성의 시대이지만 확실한 것은 팬데믹 사태를 통해 (1) 인류의 건강과 경제가 지구 생태계의 건강에 달려 있기 때문에 문명전환을 통한 가이아의 평화(pax Gaia)21세기의 절대명령이라는 점, (2) 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경고했던 대재앙의 시작이기에, 세계경제가 회복 불가능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등 장기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 (3) 사스, 메르스, 코로나 등 인수공통 전염병의 근본 원인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에 있기 때문에 생태계 파괴를 계속하는 한 (2019년에도 전 세계 열대우림은 매6초마다 축구장 크기만큼 파괴되었다) 미래에도 팬데믹과 같은 대재앙들은 계속 발생될 수밖에 없다는 점, (4)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1.2도 상승했고, 1.5도 상승까지 남은 탄소예산 350 기가톤이 앞으로 8년 내로 모두 소진될 것이기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툰드라 지방의 메탄가스의 기하급수적인 방출, 아마존의 계속적인 파괴, 바다의 산성화로 인해 바닷말(algae)과 식물성플랑크톤의 소멸로 인한 기후위기의 대파국이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에 거의 도달했다는 점, (5) 세계 경기침체로 인해 각국은 경기회복을 위해 환경 규제들을 철폐함으로써 생태계를 더욱 파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6) 개인이나 정부에게는 더욱 생존 자체가 관건이 되었기 때문에 기득권자들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노약자, 난민을 희생시키는 죽임의 정치(necropolitics)를 펼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협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 (7)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와 대규모 군비축소보다는 자국의 이익 우선주의를 고수함으로써 오히려 기후위기 악화와 국제적 분쟁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3) 따라서 인류는 지금 더욱 깊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후위기(특히 폭염, 가뭄, 병충해)로 인해 2020년대부터 농업의 지역적 붕괴, 2040년대부터 초래될 것으로 예상하는 북반구 대도시들에서의 동시다발적 식량폭동” (Naomi Oreskes, 2014:25)기후전쟁같은 최악의 결과 역시 현재로서는 피할 수 없다. 결국 대다수 기후학자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2100년경까지 섭씨 4도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크며(Clive Hamilton, 2010:191), “지구 산소의 2/3를 만들어내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2100년까지 대량으로 죽게 만들 것(Bill McKibben, 2019:34)이기 때문에, 2050년에 90억 명에 도달할 인류는 점차 식량난과 산소 부족 사태로 인해 2100년경에는 “10억 명또는 “5억 명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는 상황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에는 37개 국가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났다.

 

4) 이미 시작된 전 지구적인 재앙적 사태들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은 당장 생계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여전히 임박한 파국에 대해 안이한 이유는 근시안적 과제뿐 아니라 나치 시대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너무 엄청나서 믿지 않으려 했던 현실(쁘리모 레비)과 비슷한 것 같다. 현재의 세계 상황은 크게 보면, 화석연료에 기초한 산업문명이 초래한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계 파괴로 인해 초래된 대멸종사태(E. O. Wilson에 따르면, 자연적 멸종 속도보다 최소 100배 빠르다) 때문에 지구 역사상 지난 6500만 년 동안 생명체들이 가장 아름답게 꽃피웠던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토마스 베리)는 점이다. 자본주의체제는 절대빈곤자들에 대한 종족학살, 대멸종으로 인한 종자학살, 지구학살(모친학살)의 자기파괴적 체제라는 본질을 드러냈다.

 

5) 이런 전대미문의 장기비상사태는 결코 신의 심판(섭리)”이 아니라 가이아의 복수”(제임스 러브록)이며, 인류문명의 사필귀정”(크로산)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절반 이상은 지난 30년 동안 화석연료를 태워 방출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온갖 재앙들에 대한 우리 세대의 책임이 매우 크다. 이미 권위주의 정부들이 곳곳에 많이 들어섰다.

 

6) 8년 내로 탄소예산이 모두 소진되고 1.5도 상승하면 파국은 돌이킬 수 없다. 지금은 인류의 생존을 결정할 결정적 이념전쟁에서 세계종교들이 총력을 기울일 순간이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시민운동을 분쇄해왔던 가장 큰 구조악은 세계적 재벌들과 강대국들의 단기 이익에 복무하는 WTO, IMF 등 국제기구와 헤리티지재단, 카토연구소 등 싱크탱크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체제의 자유무역, 무한경쟁, 탈규제, 민영화, 공적 지출 삭감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재생에너지 보조금 지급 등의 환경정책들을 보호무역 금지규정 위반으로 소송을 걸어 무산시켜왔다(Naomi Klein, 2014:64). 팬데믹 사태는 시장자본주의 대 생태주의, 신자유주의 대 케인즈주의, 성장주의 대 탈성장주의, 이윤지상주의 대 생명중심주의 사이의 이념전쟁을 다시 촉발시켰고 이 전쟁에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다. IMF에만 경제학 박사들이 800명이 있다고 한다. 세계종교들이 필사적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7) 그러나 이런 전대미문의 위기에 대해 한국 교회는 일반적으로 장기적 대책을 모색하기는커녕 국가보안법 철폐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자유를 향한 인류 역사”(헤겔)의 반동 세력이며 매우 위험한 혐오 집단임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나 바울조차 경험한 적이 없었던 대멸종의 장기비상사태를 맞아 교회와 신학은 안이한 낙관론에서 벗어나, 최소한 30년 앞의 파국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네오파시즘은 흔히 성경과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운다.

 

2. 기독교의 영적인 파산을 초래한 불량신학들: 초자연적인 전능한 하느님을 잘 믿을수록 반생태적이다

 

1) 비대면이 뉴 노멀이 된 팬데믹 시대는 탄식과 기도, 질문과 성찰의 시간이다. 모든 껍데기는 벗겨질 수밖에 없고, 본질적인 가치들만 남게 된다. 교회와 예배, 믿음은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의 감각, 의지, 생각은 무엇에 중독되어 있기에, “우주적 춤(cosmic dance)을 마음껏 향유하지 못하는가? 무고한 떼죽음들과 파국이 다가오는 시대의 불안과 절망을 어떻게 견디어낼 것인가? 어떻게 문명전환을 이루어낼 것인가? 기업정치와 결탁한 종교적 우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제도종교와 신앙의 껍데기는 무엇인가? 이런 종교적 질문들과 관련해서, 모세와 예언자들, 그리고 예수가 가르친 직접종교(브로커 없이 하느님과 만남)가 아니라 은총의 수단들”(사제, 성소, 성일, 경전, 교리 등)을 절대화한 중보종교체제는 비판의 핵심이 된다. 예수는 중보종교체제를 반대하다가 처형당했지만, 예수의 무덤 위에 세워진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중보종교체제가 되어 직접종교를 가르친 신비주의자들을 처형했기 때문이다(돈 큐핏,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

 

2)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들에게 온갖 생지옥(세계 1위 자살률, 산업재해, 저출산)을 물려주면서, 그에 대한 최소한의 종교적 대비책을 모색하고 있는가? 약탈적 자본주의로 인한 생지옥이 더욱 악화될수록 어떻게 그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어떻게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세상의 슬픈 소리들을 보는관세음(觀世音) 보살의 자비심 비슷한 기독교의 가치는 무엇인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 신 부재의 절망적인 강제노동과 휴지와 식수도 없어 목이 말라 도랑물을 마시며 자주 설사를 하게 되어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짐승처럼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구토가 나올 수밖에 없는 변기통들을 치우면서도, “하느님이 우리들 가운데 거하시기에 적합한 거룩한 성소(25:8)”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Melissa Raphael, 2003:82).

 

3) 작금의 세계적인 이념전쟁은 결국 신자유주의의 가치관에 대한 세계종교들의 대항에 그 승패가 달려 있다. 즉 인간은 탐욕과 사적 이익에 몰두하는 이기적 존재들에 불과해서 구원할 가치가 없다는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유물론적 가치관에 맞서서 세계종교들이 얼마나 공동체적 상생의 가치관을 살아내는가에 그 승패가 달려 있다. 차축시대 종교들의 등장 이유와 목표는 화폐-사유재산 경제의 탐욕에 맞선 상생의 공동체 건설이었다(울리히 두크로 외, 한성수 역, <탐욕이냐 상생이냐>). 또한 종교들은 석기시대 이후 인류문명을 선도한 진보적 제도였다(돈 큐핏, 토마스 베리). 예수는 당시 극심한 착취로 인해 무너져 내리던 마을공동체를 되살려내는 일에 목숨을 바쳤다(호슬리).

 

4) 그러나 예일대학교 스티픈 켈러트 교수의 광범위한 조사에 따르면, 주일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일수록 환경과 생태계 문제에 대해 지배와 정복”(1) 모델을 따른다(Wesley Granberg-Michaeloson, 1987:3). 또한 창조주 하느님의 전능성을 믿는 초자연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다(David. R. Griffin, 2019: 318). 이런 점에서, 동정녀 탄생을 종교적/신화적 진리가 아니라 생물학적/산부인과적 진리, 즉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믿는 성서문자주의는 인간이 자행한 생태계 파괴와 그 회복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부인하고 전능하신 하느님(또는 메시아)의 초자연적 기적에 의지하도록 만든다. 또한 신천지 현상이 보여주듯이,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사회적 불안이 커질수록 많은 사람들은 근본주의가 제시하는 반지성적 단순논리에 더욱 빠져든다.

 

5) 성서문자주의에 근거한 근본주의가 특히 위험한 것은 그 폭력성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 박해뿐 아니라 십자군과 종교전쟁 등 학살에 앞장섰다. 특히 나치 시대의 SS대원들, 한국전쟁 당시 서북청년단, 남미 군사독재 치하의 학살단 거의 모두 세례 받은 기독교인들이었다. 또한 히틀러 등장 당시 독일 인구의 97%가 개신교인들이었으며, 그 지지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대학교수들과 개신교 목사들이었다. 앞으로 반지성적인 근본주의의 위험성을 특히 경계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치와 탈레반과 ISIS 집단뿐 아니라 현재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다수 백인 복음주의자들(82%)처럼 영적인 순수함을 강조하는 종교적 열심당원들(zealots)은 절대악이 초래한 위기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흔히 묵시론에 근거해서) 매우 위험한 극단주의 정치(특히 전체주의와 결합한 cultism)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Robert Lifton, 2019).

 

6) 민족복음화는 역사적 위기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기독교인들조차 이처럼 잔혹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르완다 학살 사태 당시, 가톨릭 주교조차 수도원 안에서 학살을 방관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비판정신과 철저한 제자도를 동반하지 않는 복음화는 사회적 위기와 공포심 앞에서 무기력하다. 또한 믿음이 초래하기 쉬운 이분법, 즉 자신은 선하고 타자는 악이기에, 악을 제거할 우주적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선민사상)는 확신, 특히 성서적 구원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해된 점, 묵시문학의 최후 승리에 대한 비전은 비판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7) 앞으로 폭염, 가뭄, 홍수, 태풍, 해수면 상승 등 대규모 기후재앙들과 경제위기로 인한 고실업, 식량폭동 같은 사태 악화로 인한 사회적 무질서 -> 국내 및 국제 정치적 해결책에 대한 절망 ->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희생양 만들기 -> 혐오와 언어폭력이 실제 폭력적 행동으로 나타남 -> 공권력이 사회질서를 회복시켜줄 것을 기대하면서 파시즘이나 탈레반 같은 폭력적 원리주의와 급진주의 정치(메시아니즘 포함) 출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윤리 교육(특히 이데올로기 비판)이 부족한 기독교의 개인구원 경향과 일반적인 탈정치화는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8) 기독교의 영적인 파산을 초래한 불량신학들:

 

교회가 선포해온 구원은 예수의 체제전복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상관이 있는가? 로마제국은 예수의 육신을 죽였지만, 예수의 꿈과 정신은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교회는 영혼구원과 천당을 가르침으로써 예수의 꿈과 정신마저 죽여왔다.

 

탈육신 종교: 예수의 영향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육신, 물질, 여성, 자연 혐오(리처드 로어)

인간 이외의 피조물의 신음과 대규모 대멸종 사태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원인.

개신교 교리주의: 자기성찰을 통한 자기초월, 자비와 용서의 실천보다 스콜라신학을 능가하는 말(교리) 중심.

오직 성서”: 복음서들은 회당 예배력에 따른 예배 문서들이기에 성서 문자주의는 이방인들의 이단”(스퐁).

오직 믿음, 오직 은총”: 로마제국 신학자들조차 동의했을 고백들이다. 관건은 제국들처럼 승리(폭력)를 통한 평화냐, 아니면 성서의 전통처럼 정의(비폭력)를 통한 평화냐?(크로산)

성서 안에서 흔히 하느님의 뜻으로 둔갑된 폭력성(크로산,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예수의 말씀으로 둔갑한 복음서 기자들의 노골적인 적개심과 언어폭력(크로산, <비유의 위력>)

초자연주의 신학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인간의 무책임성, 지배체제에 대한 무관심.

하느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가르쳤던 예언자들은 모두 거짓 예언자들로 판명났다. 하느님의 자유를 강조했 던 참 예언자들은 사필귀정을 내다보았다.

중생한 복음주의자들의 아내구타, 인종차별 등 폭력성은 평균보다 훨씬 심하다(Ronald Sider, 2005).

인간의 구원과 미래를 사후세계의 영생이나 내면적/심리적 평안으로 이해함으로써 체제변혁에 소홀.

복음에 대한 개인주의적 해석과 탈정치화로 인해 제국주의와 독재권력 앞에서 무력.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로 혐오 조장, 친미 반공주의로 인해 분단체제 극복에 장애.

성서해석에서 과거의 본문(처방전) 해석 중심주의로 인해 현재적 과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

반지성적 믿음주의: 믿음은 연구와 성찰, 수행의 마지막 단계로서의 자기 내어맡김이라는 점을 간과.

 

3. 문명전환을 위한 반제국주의적, 저항문화적 가치: 섬김과 나눔의 행복한 공동체(하느님 나라) 삶의 길

 

1) 믿음: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 존재 자체(선물)에 대한 기쁨, 찬미 <-> 승자독식의 제국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고 중심적 탐욕, 성공, 경쟁, 독점, 상대적 열등감, 불안, 공허)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생명체들이 떼죽음 당하는 현실 한복판에서 역설적으로 찬미받으소서라고 고백한다. 지금의 대멸종은 우리가 우주의 뇌로서 성찰하는 삼라만상의 한 부분이라는 정체성과 삼라만상이 서로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경탄과 경외”(85), 즉 삶의 환희와 의미를 일깨우는 찬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기계론은 우주가 죽어 있으며, 목적도 없고, 영혼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기의 감옥과 일상에 매몰된 자폐적 생활방식에서 벗어나는 길은 삼라만상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탄과 경외를 회복하여 삼라만상을 찬미하는 길이다. 역사가 참담해질수록 더욱 찬미가 요청되는 이유는 (1) 찬미는 모든 존재가 기적이며 은총이며 선물임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며, (2) 찬미가 불러일으키는 경탄과 경외가 없으면 거대한 슬픔만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며, (3) 찬미가 우리의 정신, 가슴, 영혼에 경탄과 경외를 회복시켜 고통을 담대하게 견디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Matthew Fox, 2006:50-64).

 

2) 소망: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 <-> 탐욕과 번영의 질서가 된 지배체제(교회라는 중보종교체제 포함)

 

3) 사랑: 약자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 <-> 개인적인 성공과 번영

 

 

4. 문명전환을 위한 신학 재구성: 이분법적 에고/하느님 중심에서 불이적(non-dual) 에코 중심과 정치윤리

 

리처드 로어: 탈육신 종교의 폭력에 대한 대안적 정통주의: 보편적 그리스도(만물 안의 초월적 내재, 만물의 충만)

* 돈 큐핏: 서방교회의 과거 아우구스티누스적 대서사(천지창조에서 최후심판까지)를 새로운 대서사로 교체.

 

1) 인간의 자기이해: 우주의 뇌, 한 피붙이 = 생태적 감수성과 생태적 자기(조안나 메이시),

초월적 존재에서 우연한 존재로, 육체의 축복과 영적 죄: --영의 통일성(三毒 七惡의 영육)(매튜 폭스),

죽음 이후 내세에 대한 희망에서 불교적 공 사상 통한 죽음 이해(돈 큐핏).

 

2) 세계 이해: 지구는 공동의 집,” 선과 악의 전쟁터, 또는 내세를 위한 시험대에서 하느님의 몸, 또는 연인으로서의 세계(조안나 메이시), 만물은 신적인 DNA를 지닌 성스러운 존재들로서 서로 연결, 상호의존(리처드 로어).

 

3) 신 이해: “초자연주의적인 전능한 창조주에서 가이아의 신비”(로이드 기링), “생명의 종교”(돈 큐핏).

전통적인 역사의 주관자에서 생명/사랑의 원천또는 태초부터의 창조성”(고든 카우프만)으로.

초자연적인 전능하신 창조주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하는 쉐키나”(멜리사 라파엘).

 

4) 예수 그리스도 이해: 특수계시에서 보편계시로(리처드 로어)

예수는 폭력이 구원한다(redemptive violence)는 메시아주의를 거부한 안티 메시아였다(R. Reuter, 2014:203).

인류의 진화를 촉진시킨 참사람: 무제한 보복-> 제한적 보복-> 제한적 사랑-> 무제한적 사랑(W. S. 코핀).

율법의 종말과 자유로운 solar living, solar loving의 모범(돈 큐핏)

 

5) 구원 이해: 에고(거짓 자기)는 구원의 적, 따라서 에고의 특성을 성찰하는 것이 회개와 구원에 필수적이다.

특히 남성의 에고는 은총을 거부하며 자신이 성취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도덕 종교를 원한다.

성찰, 수행과 관상기도 통해 에고를 비우는 일, 사고방식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인식론적 회개 가능(리처드 로어).

만물 안에 충만한 보편적 그리스도 안에서합일, 승리주의에서 자기 비움(니르바나)으로(크리스터 슈텐달),

단순한 생활방식과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 특히 에너지 절약과 육류 소비 축소.

 

6) 떼죽음(가축 대규모 살처분, 팬데믹, 기아 사태 등)이 만연한 묵시종말적 시대에 기독교인의 폭력성 문제

성서의 폭력성, 선악 이원론, 종교가 양산하는 바리새주의(자기 의로움)과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성찰 필요.

특히 말세론, 사회정화운동에 기초한 극단주의(태평천국난 일으킨 홍수전, 히틀러, 모택동, 옴 진리교) 비판.

정치윤리(사회신경) 교육에서 case-study 필요: 예컨대 나는 4.3사태와 한국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겠는가?

 

 

 

5. 나가는 말

팬데믹 시대는 산업문명이 자행한 자기파멸적 생태계 파괴의 결과이며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이다. 파국의 임계점까지 채 10년도 남지 않았다. 결국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이분법적인 비진리(경쟁과 폭력의 뿌리)에 맞서는 진리 투쟁이다. 탐욕이 아니라 상생의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 회칙 찬미받으소서반포 5주년을 맞아 그 영적인 혁명을 새롭게 구체화할 때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과 식량자급이 관건이다. 홍수와 태풍처럼 일시적인 재난에서는 이웃들이 서로 협력하게 되지만, 장기비상사태에서는 이웃이 적이 되기 쉽다. 생존과 직결된 시대일수록 폭넓은 안목과 강인한 정신력과 확고한 제자도가 요구된다. 현재 치열하게 진행되는 이념전쟁에서 세계종교가 존 캅 교수가 지적한 영적인 파산때문에,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나아가는 길에서 생명체들의 떼죽음을 피할 수 없을지라도, 137억 년 동안 계속된 우주-지구-생명-인류의 창조/진화 과정, 그 놀라운 경이와 신비로 넘쳐나는 모든 과정을 신뢰하고, 약탈적 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운동을 전개하는 데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인류의 어리석음과 탐욕 탓에 인류의 멸종까지 예상하는 때일수록, 현재적 삶의 선물들에 감사하며 참새와 백합화를 비롯해서 모든 생명체들의 존엄성을 굳게 믿고, 특히 사회적 약자들과 잔치를 벌이는 것을 통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냄으로써 아름다운 참사람의 길로 인도하는 예수(월터 윙크)는 마지막까지 우리 기독교인들의 희망이다. 치열했던 사회적-영적 혁명가 예수께 찬미!

 

 

Killing Jesus가 결론!

 

"십자가에 처형된 그리스도가 다스리신다.(우리의 구원 문제를 그의 보혈로 해결하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관점에서 교권주의자들의 결정이 절대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역자주).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교의 진짜 업무는 그를 계속 십자가에 처형하고 또 처형해서 그의 입에서 한 마디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 바바라 에른라이히

 

성경문자주의를 통해 기득권을 지키는 종교 당국자들과 로마제국은 십자가를 통해 예수의 육신은 살해했지만 반제국적인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꿈과 무차별적 사랑의 정신은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의 체제전복적인 하느님 나라에 대한 꿈과 아무런 상관없는 구원과 천당을 가르친 정통적 대속교리는 예수의 꿈과 정신마저 죽여버렸다. 교권주의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출교시키라는 대다수 한국 교회 교권주의자들은 오늘도 여전히 예수의 꿈과 정신을 죽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연 파괴에 대한 경고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0/jun/17/coronavirus-warning-broken-relationship-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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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파괴는 더 많은 팬데믹을 초래한다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0/may/07/promiscuous-treatment-of-nature-will-lead-to-more-pandemics-scientists

 

 

팬데믹은 자연 파괴와 공장 축산업의 결과이다.

1990년 이후 영국의 7배 면적의 숲이 파괴되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jun/17/pandemics-destruction-nature-un-who-legislation-trade-green-recovery

 

김종철, 활로는 무엇인가?

https://www.vop.co.kr/A00001486114.html

 

 

이정배, 문명비판적으로 본 코로나 바이러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75

 

 

종교, 사회적 의제 설정 적극 나서야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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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heh Wang, 코로나 바이러스는 적이 아니라 안내자: 중국 도의 관점에서

https://www.openhorizons.org/8203coronavirus-is-not-an-enemy-rather-a-courier-a-daoist-perspective.html

 

 

김진호, 코로나 시대 우리가 자성해야 할 것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242105015&code=990100

 

 

코로나19는 빙산의 일각이다. 인류의 건강은 생태계의 건강에 달려 있다. 생태계 파괴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 더욱 자주 새로운 팬데믹을 겪을 수밖에 없다.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0/mar/18/tip-of-the-iceberg-is-our-destruction-of-nature-responsible-for-covid-19-a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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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때

 

최영준 LAB2050 이사장 ·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총이나 칼만 없지 전쟁과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햇살과 목련이 만개한 캠퍼스에 재잘거리던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 낯설고 서늘하다.

우리의 성격이 그렇듯 세상은 참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 드디어 정해진 경로를 탈피하여 새로운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그 새로운 길은 파시즘의 길일 수도 있고, 포용과 연대의 길일 수도 있다. 서구에서는 세계대전과 1929년의 대공황이 그랬고, 우리에게는 1997년의 외환위기가 그랬다. 위기의 시기에 많은 이들이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대응하려고 하지만 결국 시대의 거대한 물결은 과거의 유산을 삼키고 예상치 못한 길을 열어낸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새로운 물줄기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라는 표현이 있다. 잘 열리지 않는 정책의 창은 특정한 충격을 받거나 위기가 올 때 활짝 열리곤 한다. 하지만 새로운 비전과 정책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실현할 정치가 없다면 그 창은 열렸다가 닫힌다. 영미의 보수신문에서 신자유주의가 죽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그 문이 활짝 열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리멸렬한 아이디어들과 이전으로의 회귀에만 초점을 맞춘 비전 없는 정책들로 인해 그 문은 변화 없이 닫혀버렸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변화를 향한 정치가 정책 아이디어와 함께 그 열린 창을 맞이할 때 새로운 변화를 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유지상주의가 지배했던 영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충격과 함께 정책의 창이 열렸을 때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아이디어가 현실화됐다. “의사와 의료체계를 공공화하자는 이 주장은 1909년부터 제시됐으나 말도 안 된다고 여겨졌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현재의 상황은 불확실하다. 안타깝게도 조기에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그 시기가 길어질수록 정책의 창은 더 넓게 열릴 것이며, 리더에게 비전은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그 비전을 채울 원칙과 아이디어의 역할은 더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충격은 방역체계나 긴급 구호체계 정도를 바꾸며 끝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그랬듯이 거시적 구조변동이 닥치면 공식적인 사회경제 체제뿐만 아니라 가족과 같은 비공식적 제도들도 그동안 거부 당했던 변화를 일시에 만들어내곤 한다. 1997년 이후 국가의 역할도 상당히 많이 변했지만 가족관계와 노동시장의 변화는 더욱 깊고 넓었다. 서구의 방송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이래로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지금 우리가 현재로 경험하고 있는 역사인 코로나191997년을 뛰어넘는 충격을 우리에게 안길 것이다.

 

균형점 회복 노력에 던지는 두 가지 질문

 

각 사회에는 균형점(equilibrium)이라는 것이 있고, 그 균형점이 무너지게 되면 다시 균형점으로 회복하려고 하는 탄성을 보인다. 각국 정부들이 거대한 규모의 양적완화 정책을 펴는 것은 균형점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균형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현상이지만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균형이 그토록 노력하면서 돌아가야 할 바람직한 균형이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면 안 될까? 새로운 균형점은 그러면 무엇일까?

코로나19 바로 직전에 우리가 균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살펴보자. 지속적인 생산성의 증가(혹은 생산성 증가율의 증가)와 일정한 수준의 경제성장, 인구의 유지 혹은 증가를 맞추기 위한 출산율 2’ 정도의 사회, 안정된 직장과 가족을 통한 생계의 유지, 그리고 여기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수정·교정하는 국가의 역할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 상황과 더 낮은 출산율에 대한 대책으로 이곳저곳에서 직장과 사업장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려 하고, 가구 중심의 긴급구호 정책들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균형을 추구한다고 해서 실제 그런 균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살았던 시기는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지는 생산성 역설의 시대였으며, 저성장이 뉴노멀이라고 부르는 시대였다. 그렇게 올리고 싶어했던 출산율도 하염없이 떨어졌고, 번영의 경제를 약속하는 보수 정치나 정규직을 주겠다는 진보 정치 역시 추풍낙엽과 같았다. 청년들은 스스로를 부모로부터 독립된 주체로 생각하는데 가구 단위로 설계된 복지급여 제도들에는 제외된 채로 살고 있었다. 불평등은 하염없이 증가하고, 사회적 이동성은 줄어들며, 열심히 30년을 일하는 것보다 좋은 곳에 집 한 채 잘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좋은 시대였다.

 

다시 묻자. 우리가 하는 이 노력들은 도대체 어떤 균형을 회복하겠다는 것인가? 무제한 양적완화도 좋고, 100조 원의 지원도 좋고, 정부의 땀내나는 노력도 좋다. 그런데 그래서 회복하고 싶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지금까지 균형점이라고 생각했던 이상은 좀 더 많이, 좀 더 높이라는 구호 아래 달리는 오르막길과 같았다. 하지만 오르막길을 오르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뒤로 밀려나는 모습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나는 군대에서 아침마다 참 많이 뛰었다. 오르막길을 뛸 때는 어쩔 수 없이 앞에 뛰는 사람과 뒤에 뛰는 사람의 격차가 심해진다. 앞에 뛰는 사람이 행복한(혹은 다행인) 이유는 뛰는 것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단지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이 더딜수록 오르막길의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고 그 사회경제 체제에서 정치도, 우리의 삶도 참 안쓰러웠던 것 같다.

 

인구 감소는 위험한가?

 

과거가 그랬다면 우리의 균형점은 새로워야 한다. 얼마 전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얻은 통찰적 표현은 천천히 내려가기라는 것이다. 이제 전 지구적으로보면 우리가 과거 100년처럼 미래를 살아가기는 어렵다.

1900년대에 17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19년에 77억 명이 됐다. 1700만 명이었던 우리나라 인구는 남북한 합해서 현재 77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폭발적 증가가 지구에게 얼마나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현재만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학자들은 기후변화를 되돌릴 시간이 10년도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경고는 국제적 담론을 벗어나 국내 주류담론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출산을 강조하는 것도 태어날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를 위한 이기적 주장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인구와 연금을 공부하는 사회정책 학자로서 나는 그동안 세 명의 아이를 둔 아빠임을 은근히 뽐내고 다녔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고 추구하는 균형은 누구나 아이 둘 셋 정도는 낳는 국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구의 신음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새로운 디폴트로 받아들이고 그 체제에서 어떻게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

코로나19와 저출생은 우리에게 재앙과 같다고 하지만, 지구에게는 백신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구 감소 자체가 균형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과정에서 환경은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인구 감소를 새로운 노멀로 받아들이면 그 다음은 생산성과 분배의 이슈가 남는다. 10명이 100을 생산해 왔는데 생산에 필요한 인구가 2명으로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2명이 100을 생산할 능력이 있으면 된다. 또한 그 2명이 생산한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분배 체계가 있으면 된다.

생산성을 높이는 체계도 변화가 필요하다. 진보학자뿐만 아니라 IMF, OECD 역시 불평등의 증가는 정치적 불안정을 넘어 안정적인 생산성의 증가마저 가로막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는 많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평생동안 숙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일자리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 하는 과감한 투자와 지원은 없었다. 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생산성 증가를 기대하는 기존의 패러다임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는 개인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생산성 증가를 기대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분배 이슈도 생각해보자.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 경제와 더 밀접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디지털 자본주의 확산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인 지난 1월에도 영국의 한 도심 번화가를 지나갈 때 텅 빈 가게들을 상당수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제 대부분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유노동, 플랫폼 노동, 온라인 활동 등은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그 결과 전통적 고용을 균형이라고 생각하던 제도는 퇴행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새로운 자유노동이 정상적 노동이 되게 할 새로운 분배체계를 구상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지니 이전처럼 다시 밤거리가 네온사인으로 번쩍이고 사람들이 북적이도록 하기 위해서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아낌없이 지원할 태세다. 그게 기존의 균형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저녁이 있는 삶과, -생활 양립을 원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영업자들이 하염없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다.

자영업 대책이 필요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영업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대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자영업에 대한 현금 지원과 낮은 이율의 대출은 고용을 구하기보다 건물주들의 수입을 안정화시켜주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새로운 균형점에서 핵심은 연대

 

천천히 내려가며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분배체제에서 핵심은 연대(solidarity)의 원리다. 가장 우수한 자가 생산에 가장 큰 기여를 하되, 그가 우수해질 수 있었던 것은 사회 연대와 지원의 결과이며 그래서 각자가 생산한 것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고 다시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내는 자와 받는 자가 확연히 나뉘고 나의 성공이 사회 투자가 아니라 온전히 개인 투자의 결과가 돼서는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인 급여와 서비스와 함께 누진적인 조세체제를 실현해야 한다.

새로운 분배체제는 연대의 원리 속에서 나와야 한다. 분배체제가 개인에게는 안정과 자아실현에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해야 하며, 소득분위 어디에서도 아인슈타인이 나올 수 있는 사회적 이동성의 기반이 돼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자유안정성이라고 부른 바 있다. 분배체제는 반드시 기본소득 체제(Universal Basic Income, UBI)일 필요는 없으며,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일 수도 있다. 현금 급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 UBS) 역시 필수적이기도 하다.

 

지금은 연대의 원리를 제도에 구현하기에 최적이다. 많은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어려운 때이기 때문이다.

 

미국 학자 레인 켄워시는 최근 책에서 기본소득의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자유안정성을 어느 정도 실현한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가 본인에게는 현실형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디지털 자본주의의 확산 속도와 한국의 사회경제 구조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가 새로운 균형점의 목표일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안정을 제공하는 기본소득과 친환경적 기본서비스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의 창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정책의 창이 점점 넓게 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의 균형점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만으로 2030년을, 2050년을 내다볼 수 없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제도 개혁들을 시도하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시기다. 연대의 원리를 제도에 구현하기에 최적의 시기다. 많은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어려운 때이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이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치킨집 사장님보다 꽃등심집 사장님이 더 어려울 수도 있고, 외벌이 가정보다 아이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맞벌이 가정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떤 플랫폼 노동자는 일이 많아서 힘들고, 누군가는 더 앞당겨진 주된 일자리 퇴직이 걱정되기도 한다.

 

천천히 내려가자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탄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떨어지지 않았고 부자나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떨어졌다. 사회적 위험이 보편화됐고, 연대라는 희망을 키웠으며, 모두를 위한 보건서비스가 영국에서 탄생했다. 이런 시기에 필요 없는 이들에게 왜 주냐며 70%를 선별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대책이 아쉽기만 하다.

보편성과 연대를 중심으로 분배체제 개혁의 씨앗을 뿌리는 한편 그 동안 그렇게 많이 논의했던 역진적 소득공제 시스템을 확실히 정비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보이지 않던 역진적인 혜택을 상당 부분 정리하고 그 부분을 보편적이고 명시적 급여로 전환할 절호의 기회다. 소득공제 개혁에 저항이 컸던 것은 주는 것 없이 혜택만 줄였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긴급지원만이 아니다. 더 가속화될 경제와 노동시장 변화 속에서 숙련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킬 기회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경제가 잠시 어려움에 처했을 때가 누군가에게는 최적의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성인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투자 패키지를 준비하면 어떨까?

천천히 내려가자 하니 같이 망하는 길로 가자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라고 했다. 이렇게까지 비장할 필요는 없지만, 내려간다는 마음을 먹을 때만 살아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정도의 해석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 이 시대의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올라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깊숙이 가라앉는 불행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비전과 생각의 전환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다. 30년 후 지금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시작이 지금이었음을 후대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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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07 10:13

    코로나 직격탄, 더 아픈 20대, 실업, 파산, 우울증 악순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070600045&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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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07 10:31

    코로나19, 한국 사회 약한 고리를 파고들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052343005&code=9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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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10 04:28

    설국열차 승객들에게 묻는 공정과 정의/최병준

     

    세계 각국 경제학자들이 만든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world)를 보면 한국도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 한국의 부의 불평등을 보면, 상위 1%가 전체 부의 12.2%, 10%가 43.3%를 차지한다. 하위 50%의 부는 1.8%다. 한국사회를 100량짜리 설국열차라고 한다면 상위 10%가 앞에서부터 43칸, 하위 50%는 꼬리 2칸에 몰려 있는 꼴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090300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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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020.10.17 15:34

    전환시대를 사는 방법 / 한윤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17030004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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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23 시간 전

    코로나 19 죽음을 고립시키다 / 김해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210300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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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기독교윤리 핵위험 사회 치닫는 대한민국 1 73 한기연 2011.03.28 174308
공지 조직신학 감리교 종교재판의 전말/ 동작동 기독교와 망월동 기독교 6 file 한기연 2010.11.22 1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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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PBS Frontline: From Jesus to Christ _ The First Christians (1) 1 한기연 2010.03.27 15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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