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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회칙서

2015. 10. 10. 1:55

 

복사 http://blog.naver.com/jogaewon/2205044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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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인사와 더불어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

 
서론
1.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은 교회의 중대한 관심사이다. 특히 기아와 빈곤, 질병과 무지로부터 해방되려고 노력하는 민족들, 인간의 자질을 더욱 적극적으로 향상시키고 좀더 문명의 혜택을 입기 바라는 민족들, 굳은 결의로써 완전한 발전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민족들의 발전에 관하여 교회는 깊은 관심을 가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고 교회는 여기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백히, 더욱 깊이 자각하였으므로 이 문제의 심각함을 각 방면으로 연구 파악하고 이 같은 위기에 처하여 모든 이의 공동 노력이 긴급히 요청된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사람들을 힘껏 도와줄 의무감을 느끼는 바이다.


역대 교황들의 가르침
2. 선임 교황들은 회칙과 메시지를 통하여 당시의 사회 문제를 복음의 빛으로 밝혀주는 교황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여왔다.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1),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2), 비오 12세의 라디오 담화3),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4)과 「지상의 평화」5) 등이 그것이다.


오늘의 중대 문제
3. 오늘에 와서는 이 사회 문제가 인류 전체에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모든 이가 인식해야 하겠다. 교황 요한 23세가 명백한 표현으로 진술한 것을6)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사목 헌장에서 다시 강조하였다.7) 그 가르침이 매우 중대한 것이므로 지체없이 적용되어야 하겠다. 굶주리는 민족들이 오늘 부유한 민족들을 향하여 처절히 호소한다. 교회는 이 처절한 부르짖음을 귀담아듣고 함께 괴로워하며 모든 사람들을 불러, 도움을 청하는 이 형제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펴도록 요청하는 바이다.


본인의 여행
4. 본인은 교황이 되기 전, 1960년의 남미 여행과 1962년의 아프리카 여행을 통하여 육체와 정신의 힘이 풍부한 그들 대륙이 겪고 있는 심한 곤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교황에 선출되어 모든 이의 아버지로서 팔레스티나와 인도에 갔을 때, 옛 문화를 지니고 있는 그들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는지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듯 느낄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날 무렵에, 하느님께서 환경을 마련해 주시어, 유엔 총회를 방문할 수 있었으며 거기서 본인은 빈곤한 민족들의 실정을 공적으로 탄원할 수 있었다.


정의와 평화
5. 마침내 공의회의 요청도 실천하며, 나아가서 발전 도상에 있는 민족들의 정당하고도 중대한 요구를 들어주려는 성청의 노력을 보여주기 위하여 최근 교회 중앙 행정 기구에 교황 직속 위원회를 두기로 하였다.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움직여 시대적 사명감을 체득케 하여 빈곤한 사람들의 발전을 증진시키며 국가간에 사회 정의를 고취시키는 한편, 저개발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여 그들 자신이 스스로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도록”8) 노력하는 임무를 이 위원회에 맡겼다. “정의와 평화”가 동 위원회의 이름이며 동시에 그 사업 계획이다. 이런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톨릭 신자들과 그리스도교 형제들뿐 아니라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자기 능력과 노력을 함께 모아야 할 줄로 여긴다. 그러므로 본인은 오늘 모든 사람들에게 엄숙히 호소하거니와 서로 의논하고 협력해서 개인의 완성과 인류의 발전에 힘쓰기 바란다.

 
I. 인간의 완성
1. 문제점
인간의 소망
6. 양식, 건강, 직업의 안정이 현대 사람들의 소망이다. 또 모든 억압에서의 안전과 인권을 유린하는 폭력에서의 자유를 얻어 날로 더욱 책임성을 발휘하며 인격 향상을 위해서 많이 일하고 많이 배우고 많이 소유하여 더욱 가치 있는 생활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이같이 정당한 소망을 보람없게 하는 조건 하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비로소 자주 독립한 국민들은 정치적 자유와 함께 인간 품위에 알맞는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며 우선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성장을 기하고 나아가서는 국가간에 있어서 마땅한 위치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식민화와 식민주의
7. 이 같은 중대하고도 어려운 일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것이 불충분하지만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민족들을 식민지로 삼아 다스리던 국가들이 때로는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권력과 자신들의 영광만을 찾았고 원주민들의 주권을 빼앗은 다음, 그들을 경제적 불안 속에 몰아넣어, 마침내 - 예를 든다면 - 농산물의 급격한 가격 변동을 겪어야 하는 상태에 방치하였던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비록 식민주의의 악폐와 거기서 따라온 손해를 인정한다 해도 한편 식민지 개척자들의 공적은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적지 않은 지역에서 남겨놓은 학술적 내지 기술적 참된 혜택은 오늘도 유익한 것이다. 개척자들이 남겨놓은 기계 설비가 비록 완성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으로써 무지와 질병을 몰아내고 그 곳 사람들에게 교통 통신의 혜택을 주었으며 생활 조건도 향상시켜 주었다.


빈부의 격차
8. 비록 앞에서 말한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이 같은 시설이 현대에 당면한 경제적 곤궁을 감당하기에 절대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의 기계 발전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재화 증가에 있어서 민족들간의 불균형을 제거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즉, 부강한 국가가 급속도의 성장을 누리는 반면에 가난한 민족들은 아주 느린 발전밖에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국가간의 불균형은 날로 더욱 심해진다. 어떤 국가에서는 인구에 비해 남아돌아 가도록 식량을 풍부히 생산하는가 하면 다른 국가에서는 부당하게 결핍을 느끼거나 생산된 소량이나마 외국에 수출할 수 있을지 불안해 해야만 한다.


깊어가는 자각
9. 동시에 사회적 모순은 전세계에 번져갔다. 공업화하는 국가에 있어서 빈민층을 에워쌌던 혼란이 이제는 농업 단일 경제 국가에까지 번져 농민들 자신이 “불쌍하고 불행한 스스로의 운명을”9) 자각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말하는 부당하고 원망스러운 불균형은 재산 소유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권력 행사에 있어서 오히려 더욱 심하다. 어떤 지역에 있어서는 소수의 귀족들이 최고의 문화 생활을 누리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과 농촌에 산재(散在)하여 있는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빼앗기고 가끔 비인간적인 생활 조건과 노동 조건에 처하게 된다.”10)


문화와 문화의 충돌
10. 전통 문화와 공업화 시대에 형성된 최신 문화와는 서로 충돌하므로 현대적 요구에 맞지 않는 사회 제도는 거의 전폐되어 가고 있다. 장년층의 사람들은 가끔 지나치게 협소한 옛 문화 범주에 개인 생활과 가정 생활을 얽매어두고 그것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젊은이들은 그것을 쓸모 없는 장애뿐이라 하여 그것을 떠나 사회의 새로운 생활 양식에로 넘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같은 세대간의 충돌은 비극적인 딜레머에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조상들의 제도와 사상을 고수하며 사회 발전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외부로부터 몰려드는 기술과 새로운 풍조를 받아들이며 인간미 풍부한 옛 제도를 떠나야만 한다. 사실, 장년층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윤리적 정신적 종교적 힘은 너무나 자주 난관에 봉착하며 새 세대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함을 보게 된다.


결론
11. 이 같은 혼란 속에서 어떤 이들은 속임수의 훌륭한 약속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며 제2의 메시아로 자처한다. 이것으로부터 갖가지 위험은 명백히 드러나보인다. 대중의 반항과 폭동의 가능성도 엿보이고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도 떠돌고 있다. 여기 문제의 여러 핵심 부분이 있고 여기서 문제의 심각성도 드러난다.


2. 교회와 사회 발전
선교사들의 활동
12. 가톨릭 교회를 창립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심으로써11) 당신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셨음을 증명하셨다. 교회도 역시 창립자의 가르침과 명령을 충실히 받들어 여러 민족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달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인간적인 향상도 꾀하여왔던 것이다. 가톨릭 선교사들은 교회의 건물을 마련함과 동시에 또한 후생 시설과 병원, 학교, 대학 같은 건물도 그 곳에 마련하도록 주선하였다. 선교사들은 또한 그 지방 사람들에게 그들의 자연 자원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줌으로써 가끔 외국인들의 야심에서 보호해 주었다. 물론 그들도 인간이기에 선교 활동에 있어서 결점도 보여주었고 어떤 이들은 복음 전파와 아울러 모국의 생활 양식과 사고 방식까지를 선전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은 또한 그 지방 사람들의 시설을 육성 발전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 지방의 물질적 개발과 문화적 발전에 있어서 개척자가 된 선교사도 적지 않다. 샤를 드 푸코 신부의 예를 들면 넉넉할 줄로 생각한다. 그는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마침내 “모든 이의 형제”라고 불리웠던 것이며 그는 또한 투아레그어 사전도 편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선교사들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이 몰라주어도 구세주께 대한 사랑 때문에 구세주의 선구자가 되었고 또 선진들을 모방하고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오늘도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며 무보수의 너그러운 봉사를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있는 선교사들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와 세계
13. 그러나 지방적 또는 개인적 사업 계획은 이미 불충분한 것이다. 현재의 세계 정세로 보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각 부면에 있어서 선견지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공동 작업이 요청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정치에는 간여할 바 아니나, 인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 자신이 하시던 일을 계속하려는 것 한가지뿐이다. 진리를 증거하고(요한 18,37), 판단하기보다는 구원하며, 봉사받기보다는 봉사하러(요한 3,17; 마태 20,28; 마르 10,45)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 하려는”12) 그것이다. 교회는 지상에서 이미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창립되었을 뿐, 지상의 정권을 잡기 위해서 창립된 것이 아니므로 교회는 교권과 속권이 서로 구별되어 각기 제 영역에 있어서 최상권임을 공언하는 바이다.13) 그렇지만 교회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할”14) 사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의 보람 있는 희망을 함께 품고 있으며 때때로 그들의 희망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는 동시에 그들이 충분한 진보를 성취하도록 도와주려 한다. 이 때문에 교회는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인간관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바이다.


발전에 대한 교회의 견해
14. 여기서 말하는 발전은 경제적 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이 올바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전체와 인류 전체의 발전 향상이 전체적인 것이라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어떤 전문가가 말한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우리는 경제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에서 분리시키거나 어떤 발전을 그 배경인 문명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찬동할 수 없다. 우리 생각에는 가장 중대한 것이 인간이다. 하나하나의 인간, 그 인간들의 집단,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가 중한 것이다.”15)


진보와 발전을 위한 사명
15. 하느님의 계획대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태어났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후일에 발전시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과 소질의 씨[種]가 날 때부터 부여되어 있다. 사회적 환경에서 받는 교육이나 아니면 자신의 노력으로써 각 사람은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충분히 발전시켜 마침내 창조주로부터 정해진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지성과 자유를 부여받은 인간은 자신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발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교육하거나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 같은 외적 유혹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동 역할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과 의지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만 각자가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고, 더욱 가치 있게 되고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 사명
16. 그러나 이러한 인격의 성장이 전적으로 개인 자유에 맡겨진 것은 아니다. 온갖 피조물이 그 조물주를 향하고 있듯이 지성을 갖춘 인간도 진리의 원천이시며 최고선이신 하느님께 자기의 전생활을 자원으로 이끌어갈 의무가 있다. 따라서 인격의 성장이 우리 의무의 종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의무감과 각자의 노력으로 점차로 완성되어 가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운 조화는 또 다시 더 높은 단계의 품위로 승격되도록 마련되어 있다.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됨으로써 인간은 생명의 새로운 성장을 성취하여 마침내 인간 본성을 초월하면서 인간 본성에 생명의 최대 충만을 부여하는, 이른바 휴머니즘의 더 높은 차원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개인 성장의 궁극 목적인 것이다.


공동체적 사명
17.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므로 인류 공동 운명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류 사회 전체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사명을 띠고 있다. 모든 문명의 형태는 생겨나서 꽃피다가 사라져버린다. 바다의 파도가 물결이 높아질수록 서로 앞엣것을 넘어서 해변을 치듯이, 인류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진하고 있다. 우리는 전 세대의 계승자로서 동 세대 동료들의 협력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은 뒤에 인류 가족을 계속 융성케 할 후대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는 없다. 전인류의 상호 유대는 한가지 사실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이익을 줄 뿐 아니라 또한 의무도 낳아준다.


가치의 순위
18. 이 같은 개인적인 발전과 인류의 공동체적인 발전은 바른 가치의 순위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탈선하기 쉽다. 물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노력이 정당한 권리라면 그것을 얻기 위한 노동은 의무로 따른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16) 그러나 지상 재화의 획득은 더 많은 재화를 탐내고 더 많은 권력을 잡으려는 무절제한 탐욕으로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의 이 같은 탐욕은 부자들뿐 아니라 빈자들까지도 유혹하여 마침내 둘 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른바 물질주의에 떨어지고 말게 한다.


발전의 장단점
19. 날로 더욱 풍부해지는 물질 재화를 개인이나 국가의 최종 목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모든 발전은 이중적 의의를 내포한다. 한편으로 인간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다른 편으로 사람을 옥(獄)에 가두어 그것만을 최상선으로 탐내게 하여 그 이상 것을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마음은 굳어지고 남에게 절대로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며, 사람들은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모이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 대립하기 쉽고 흩어져버린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재화만의 획득은 인격의 성장을 방해할 뿐 아니라 인격 본연의 위대성에 위배되는 것이다. 탐욕이란 병폐에 걸린 개인이나 국가는 도덕적으로 덜 발전하였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 인간적인 조건
20. 더욱 발전하기 위해 날로 더욱 많은 기술자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한층 더 많은 깊은 사색의 현인들이 필요하다. 현대인에게 사랑과 우정, 기도와 명상의 가치를 깨우쳐주고,17) 현대인이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탐구해야 할 현인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됨으로써만 참된 발전이 완성될 수 있고 개인이나 전인류가 인간답지 못한 생활 조건에서 더욱 인간다운 조건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진보의 이상
21. 인간답지 못한 생활 조건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꼽아보면, 우선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저 보상도 받지 못하는 물질 결핍에 억눌리는 사람들과 지나친 자애심(自愛心) 때문에 윤리적 빈곤에 자신을 묶어놓은 사람들이 있고, 다음은 사유권과 권력의 남용, 노동자들의 착취, 부정한 상거래로써 조성된 불합리한 사회 구조 밑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대하여 더욱 인간다운 조건들을 말해본다면, 먼저 빈곤에서의 해방과 생활에 필요한 재화 획득에로의 진보, 사회악의 제거, 지식의 증대, 정신적 문화의 획득이라 하겠다. 다음은 인권의 존중, 청빈에의 노력,18) 공동 복지를 위한 협력, 평화의 소망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선과 그 선의 원천이요 극치인 하느님을 인정하는 일도 중대하다. 마지막으로 더욱 인간다운 조건은 선의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신앙과, 만인의 아버지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생명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불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정신적 일치라 하겠다.


3. 몇 가지 권유
재화는 만민의 것
22.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19) 성경 첫 장에 있는 말씀이다. 이로써 우리는, 세상 만물이 다 인간을 위하여 창조되었음과 이것을 현명하게 이용하며 더 큰 이익을 위하여 노동으로 완성할 사명이 인간에게 맡겨졌음을 알 수 있다. 땅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양식과 발전의 수단을 제공하기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누구든지 필요한 것을 땅에서 찾을 권리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재확인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20) 이 원칙 외의 모든 권리는 사유권과 상거래의 자유까지도 어떠한 권리든지 모두 다 이 원칙에 양보해야 한다. 이런 권리들이 상위의 원칙 실현을 촉진시켜야 할 것이지 방해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런 권리들의 본 목적을 되찾아주는 일이야말로 중대하고도 긴급한 사회적 의무라 하겠다.


사유권
23.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21) 교부들도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대한 부요한 사람들의 의무를 강조하였음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하였다. “네 것을 가난한 이에게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을 네가 독점하였기 때문이다. 땅은 모든 사람의 것이지 결코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22) 하였다. 사유 재산권은 그 누구에게 있어서도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남들은 생활 유지에 필요한 것도 없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재화까지를 자신을 위해서 독점해 둔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부당한 일이다. 한마디로 “교부들과 훌륭한 신학자들의 전통적 교훈대로 공공 복지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사유 재산권이 임의대로 사용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만일에도 “개인의 기득권과 공동체의 기본 요구 사이에” 충돌이 생긴다면 “개인과 사회 단체들의 협력을 얻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23)이 국가 권력의 책임이다.


수익의 사용
24. 어떤 토지의 면적이 너무 넓거나, 거의 개발되지 못했거나, 지방민의 빈곤의 이유가 되거나,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거나, 공동체의 번영을 방해할 경우에는 가끔 소유권을 무시하고 그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사실을 선언하면서24) 이런 토지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개인 자유에 맡겨버리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지나친 욕심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똑똑히 가르친다. 그러므로 조국의 자원과 국민의 노동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은 사람이 조국에 명백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생각은 아랑곳없이 개인의 이득만을 위하여 수익의 대부분을 국외로 반출시켜 축적한다는 것은 절대로 안될 말이다.25)


공업화에 수반되는 문제점
25. 경제 성장과 인간 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기술자의 도입은 그 자체가 이미 발전을 말해 주고 촉진한다. 인간은 지력과 노동력을 총동원하여 숨어 있는 자연의 법칙을 점차로 개발하며 자연 재화를 더욱 유익하게 이용한다. 여기서 인간은 또한 자기의 생활 태도를 훈련하고 새것에 대한 연구와 발명의 의욕을 가지게 되며 예견되는 위험에 대해서 슬기로워지고 계획 수립에 대담해지며 실천력과 책임감을 길러나간다.


자유 자본주의
26.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 사회의 새로운 여건 하에서 불행히도 그릇된 사상이 머리를 들었다. 경제 발전의 근본 동기는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 경쟁”이며, 생산 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인 권리로서 사회적인 한계도 의무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무제한의 자유주의는 이미 비오 11세께서 바로 비난하신 대로 “금융상의 국제주의 또는 국제적 제국주의”26)를 낳았으며 폭군 같은 독점 상태에로 길을 닦아놓았다. 이 같은 재화의 악용은 아무리 비난받아도 넉넉하지 못하다. 다시 한번 엄숙히 지적하는 바이지만 경제라는 것은 오로지 인간에게 봉사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7) 이른바 자본주의라는 형태에서 한많은 슬픔이 왔고 불의가 저질러졌으며 형제간의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오늘도 그 결과를 체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업화 자체에 이런 악들의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공업화에 수반되는 이런 악들은 모름지기 불행한 경제 이론에 기인된 것이라 보아야 옳다. 조직적인 노동뿐 아니라 공업의 발달이 인류 발전에 필요한 공헌을 하였다고 인정해야 한다.


노동
27. 그러나 동시에, 때로는 노동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노동을 하느님께서 명하시고 축복하신 것이 사실이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창조 사업을 완성하는 데에 창조주와 협력해야 하며 자기 안에 새겨진 정신적 모상을 이제는 땅에 되새겨주어야 할 것이다.”28) 지력과 상상력과 감수성을 인간에게 부여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로써 당신이 시작하신 일을 완성할 수단과 방법을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예술가, 기술자, 고용주, 노동자, 농민 할 것 없이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떤 의미에서 창조를 계속하는 셈이다. 인간이 노력에 저항하는 물질을 접할 때 그 안에 자신의 모상을 새겨주며 자신 안에서는 인내와 재능과 연구심을 길러낸다. 또한 여럿이 함께 일함으로써 희망과 고통, 소망과 기쁨을 서로 나누게 되며 따라서 뜻이 합쳐지고 정신이 가까워지며 마음이 서로 결합된다. 사람들은 함께 일함으로써 서로 형제임을 깨닫게 된다.29)


노동의 두 가지 상반된 결과
28. 노동은 두 가지 힘을 지니고 있다. 노동이 한편, 돈과 쾌락과 권력을 약속하며 지나친 이기주의나 또는 반항에로 유인하지만 같은 노동이 또 한편 직업 의식과 의무감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고취시킨다. 현대에 와서 비록 노동이 점차로 과학적 근거를 두고 더욱 효과적으로 조직화되어 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인간 품위를 말살하는 노예화의 위험이 남아 있다. 노동이 인간의 지성과 자유에 기인하지 않고서는 인간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요한 23세가 엄숙히 권고한 대로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자들의 본연의 품위를 회복시켜 공동 사업에 실제로 참여케 하는 것이 긴요하다. “기업은 재화 생산을 통하여 진정한 인간 공동체의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그 공동체 정신이 개인의 요구와 다양한 임무와 활동에 완전히 젖어들어야만 한다.”30)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노동은 훨씬 더 높은 의의를 내포한다. 노동은 이미 지상에서 초자연적 세계를 건설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31)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신 대로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32)라는 표현대로 우리는 모두 일치하여 완전한 사람(그리스도)을 형성할 수 있을 때까지는 물론 이 초자연적 세계가 완전하거나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긴급한 일
29. 우리는 급히 서둘러야 하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발전하는 사람들과 발전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퇴보하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 간다. 또 해야 할 일도 적당한 조화 속에서 필요한 균형을 잃지 않도록 추진되어야 하겠다. 조심 없이 성급하게 서두르는 농업 개량 같은 것은 가끔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성급한 공업화도 역시 아직은 필요한 사회 기구를 파괴하고 사회적 빈곤을 초래하여 오히려 문화 발전을 후퇴시키고 만다.


폭력화의 유혹
30. 현재의 상황은 분명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만큼 정의를 벗어났다. 온 민족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빼앗기고, 뜻대로 무슨 일을 시작할 수도 없고, 책임 있는 무슨 직업을 택할 수도 없으며, 문화적 현상이나 사회적 내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마저 거부당한다면 인간 품위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폭력으로 몰아내려는 유혹을 쉽게 받는다.


혁명
31.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국가의 공동선을 극도로 해치는, 명백한 폭군적 압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혁명과 폭동은 새로운 부정과 새로운 불균형을 초래하며 인간을 파멸에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현실의 악을 거슬러 투쟁함으로써 더 큰 불행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개혁
32. 본인의 의견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현재의 상황을 용감한 마음으로 대처하고 현재의 상황이 내포한 부정과 싸워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발전을 보려면 현실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변화를 대담하게 일으켜야 한다. 긴박한 혁신을 요하는 일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각 사람이 너그러이 또 기꺼이 이 혁신 사업에 참여하기 바란다. 특히 받은 교육과 차지한 지위와 가진 권력으로 보아 영향력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야 하겠다. 주교좌에 앉은 우리 형제들이 한 것처럼33) 자기 재산을 혁신 사업에 희사하며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 사람들 기대에 응하는 길이요 성령의 인도를 충실히 따르는 길이다. “복음의 누룩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억제치 못할 요청을 인간들 마음속에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불러일으키고 있기”34) 때문이다.


실천 계획과 계획화
33. 개인의 기업과 경쟁의 결과만으로는 진보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부유층의 재산과 권력을 증대시키는 반면에 빈민층의 빈곤을 고정화시키고 압제받는 사람들의 노예화를 악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계획을 세워, 개인과 중간 기구의 활동을 “육성하고 격려하고 조정하고 보충하고 보완해야 하겠다.”35) 따라서 국가 권력은 마땅히 추구하는 목적과 달성하려는 목표와 거기에 이르는 길을 마련해야 하고, 이런 공동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나 공권은 또한 이런 공동 활동에 개인적 기업 활동과 중간 기구를 연결시켜 서로 협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의 기본권 행사를 막거나 자유를 부정하는 획일적 집산화를 피하며 멋대로의 계획화를 막을 수 있다.


인간에의 봉사
34. 왜냐하면 생산 증가를 위한 계획이란 어느 것이나 다 결국은 인간에게 봉사하려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획이란 것은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차별을 제거하며, 인간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누구나 자기의 물질적 복지를 도모하고 윤리적 향상을 추구하며 영신 기능을 계발할 수 있게 한다. 발전이라고 하면 사회적 향상과 경제적 발전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공동 재화가 평등히 분배되도록 증산을 꾀하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또 대자연을 개발하여 인간이 살기에 더욱 적합하도록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만으로도 넉넉하지 않다. 발전에 노력하는 사람들은 먼저 간 사람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거기에 무슨 위험이 있었는지를 배워야 하겠다. 과대 평가될 내일의 기술주의라는 기술의 횡포가 가져올 해악은 어제의 자본주의가 갖다 준 해악에 못지않을 것이다. 경제와 기술은 봉사해야 할 인간에게 이바지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의도 없는 것이다. 인간 역시 자신의 행동을 명령하고 그 행동의 가치를 판단하며 스스로의 성장을 추진해 나갈 수 있어야만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높으신 창조주께서 부여하신 본성에 알맞도록 자유로이 본성의 능력과 요구를 받아 계발해야 할 것이다.


초등 교육의 보급
35. 경제 성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 발전에 달려 있으므로 초등 교육을 개발 계획의 첫째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인정한다. 교육에 굶주리는 것도 식량에 굶주리는 것 못지않게 쓰라린 것이다. 문맹자는 정신의 영양 실조에 걸린 셈이다.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직업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동시에 자신 있게 남과 같이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본인이 1965년, 테헤란 유네스코 회의에 보낸 메시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의 배양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인격의 성장과 사회 참여에 근본적 첫째 요인이며 사회를 위해서도 경제 발전과 사회 진보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것이다.”36) 과연 이 점에 있어서는 개인과 국가와 국제 기관의 노력으로 거두어진 성과가 많았음을 기뻐하는 바이다. 이런 일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력 진보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부여하므로 그들이야말로 인류 진보의 선봉대라 하겠다.


가정
36.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비로소 참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로서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가정이다. 시대와 지방에 따라서는 개인의 기본 자유까지를 침해할 정도로 가정의 역할이 지나쳤던 것도 사실이다. 발전 도상에 있는 여러 국가에 고유한 옛 제도는 당분간 아직은 필요하겠지만 그 지나친 권한은 점차로 감소되어야 하겠다. 본래의 가정은 일부일처 제도와 영속성을 지녔고 하느님이 계획하시고,37) 그리스도교에서 성화된 것이므로 “여러 세대가 모여 더욱 깊은 예지를 얻고 개인의 권리를 사회 생활의 다른 요청과 조화시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곳이므로 가정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38)


인구 계획
37. 출생률의 급격한 상승은 진보의 계획을 너무나 자주 곤란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생산될 재화보다 인구 증가가 훨씬 빠르므로 사람들은 마치 골목길에 갇힌 기분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인류 증가를 감소시키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의심 없이 국가는 맡겨진 권한 내에서 국민을 계몽하며 적절한 수단을 이용하여 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률에 부합하고 부부의 정당한 자유를 조금도 침해하지 않는 수단이라야 한다. 결혼과 산아의 불가침적 권리가 손상된다면 인간의 존엄성이란 이미 사라지고 만다. 자녀들의 수에 대해서는 양친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결정할 문제이다. 하느님과 부부 자신과 이미 출생한 자녀들과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고 신법의 유권적 해석을 듣고 하느님께 신뢰하는 양심의 명령을 따라서 결정할 문제이다.39)


직능별 단체
38. 가정 안에 근원적 생활 환경을 가진 개인은 발전 추진 사업에 있어서 가끔 직능별 여러 단체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이런 단체들의 존재 이유가 단체 구성원 각자의 편리와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니만큼 우선 교육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그들의 중한 책임이며 의무라 하겠다. 교육은 과연 그들이 실천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사명이다. 이런 단체들이 사람들을 교육하고 계발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선을 인식시키고 공동선에 대한 의무를 각성시키는 데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다.


합법적 다원주의
39. 어떤 사회 활동이든지 일정한 학설을 추종하게 마련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유물론이나 무신론의 철학을 전제로 하는 모든 학설을 배격한다. 그런 학설은 인생을 궁극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시키는 종교적 본능도, 인간의 자유도, 존엄성도 존중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숭고한 가치를 보장하기만 한다면 다수의 직능별 단체나 노동 조합들을 허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것들이 자유를 보장하고 선의의 경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유익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런 단체에 가입해서 사심 없이 이웃 형제들에게 열심히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문화 발전의 장려
40. 직능별 단체 외에도 문화 발전을 위한 기관들의 노력도 없지 않다. 진보를 위해서는 그들의 사명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더 높은 예지를 가진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미래 운명은 위험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인정하였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예지로는 풍요한 여러 국가들이 다른 국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40)는 사실이다. 부유한 민족이나 가난한 민족이나 다 같이 물질적 생활에 필요한 기관과 예술, 학문, 종교 같은 더 높은 정신 생활의 표현들을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정신 생활에 인간의 참된 가치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물질 생활 때문에 정신 생활을 희생시킨다면 크게 그르치는 것이다. 이런 희생을 수락하는 민족은 이로써 자신의 가장 귀한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며 살기 위해서 삶의 가치를 희생하는 셈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41) 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은 민족들에 대해서도 알맞은 교훈이다.


물질주의의 유혹
41. 가난한 민족들은 부유한 민족들로부터 닥쳐오는 이런 유혹에 대해서 아무리 경계한다 해도 넉넉한 경계가 될 수 없다. 부유한 민족들은 그들의 기술 문명과 문화 발전 속에서 거둔 빛나는 성과를 보여주며 주로 물질적 번영을 얻기 위하여 사용한 그들의 활동 방법을 모델 삼아 제시한다. 물론 물질적 번영 자체가 정신의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란 말이 아니다. 오히려 물질적 번영 때문에 “인간의 정신은 사물의 노예 상태에서 훨씬 자유롭게 해방되어 더욱 쉽게 하느님을 섬기고 관상할 수 있도록 향상된다.”42) 그렇지만 “현대 문명은, 물론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지상 사물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가끔 하느님께로의 접근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43) 따라서 발전 도상에 있는 민족들은 자기들에게 제시된 사물 가운데서 적당히 선택할 줄을 알아야 하겠다. 인간의 이상을 저하시키는 거짓 가치들을 비판하여 배척하고 건전하고 유익한 가치들은 받아들여 이미 지니고 있는 고유의 가치들과 함께 제나름의 능력대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완전한 휴머니즘
42. 발전 향상되어야 할 주체는 완전한 휴머니즘이다.44) 완전한 휴머니즘이란 개인의 인간 전체와 전인류의 완전한 발전이 아니고 무엇이랴? 정신적 가치요 그 원천이며 기원인 하느님을 부정하는, 제한된 부분적 휴머니즘도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서도 지상 생활을 조직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떠난 조직은 결국 인간을 거스르는 조직이 되고 말 것이다. 인간 외의 다른 것을 생각지 않는 문화는 비인간적인 휴머니즘이 되고 만다.”45) 그러므로 인간 생활에 참된 이상을 부여하는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면서 절대자이신 하느님께로 향한 휴머니즘이 아니고서는 참된 휴머니즘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궁극 규범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을 초월하지 않고서는 본연의 인간이 될 수도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무한히 초월한다”46)라는 블라시오 파스칼의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II.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
서론
43. 개인의 전체적 발전 노력은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 노력에 결부되어 있어야 한다. 이미 봄베이에서 본인이 말한 바와 같이,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는 서로 형제 자매처럼, 하느님의 자녀로서 대해야 하며, 이 같은 호의와 우정으로써, 이같이 성스러운 마음의 결합으로써 우리는 인류 공동체의 행복한 내일을 위하여 함께 활동을 시작해야 하겠다.”47) 또 국가간의 참된 유대를 구축하기 위하여 협동 기구를 조직하고 가능한 모든 협동 수단을 동원하여 구체적이며 효과적인 원조를 제공하라고 권고하는 바이다.


민족들의 형제성
44. 인간적으로 보든지 초자연적으로 보든지 모든 국가들은 서로 형제라는 데서 우선 부유한 국가들에게 협동 실천의 의무가 부과되며 그 근거로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상호 연대성의 의무이고, 둘째는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거래상 불균형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 정의의 의무이며, 셋째는 모든 국가들이 공동으로 더욱 인간다운 세계를 건설하여 각각 줄 것과 받을 것을 향유하며 한 국가의 발전이 다른 국가의 발전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보편적 사랑의 의무인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 여하에 따라 세계 문명이 좌우될 것이므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 약소 민족에 대한 원조
기아로부터의 해방
4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48) 하고 사도 야고보가 말한다. 여러 대륙에서 무수한 남녀가 굶주리고 무수한 소년 소녀들이 영양 실조에 걸려 꽃다운 나이에 숨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오늘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육체 성장과 정신 계발이 늦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지역의 주민들은 명랑함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


오늘의 노력
46. 원조를 애타게 청하는 호소는 이미 들려왔다. 교황 요한 23세의 호소를 사람들이 기꺼이 들었다.49) 본인도 1963년 성탄 담화50) 같은 호소를 보냈고 또 다시 1966년에 인도를 도와주자고 같은 호소를 되풀이하였다.51) 국제 연합의 식량 농업 기구(FAO) 사업에는 사도좌도 응원하고 있지만 모두들 너그러이 호응하고 있다. “국제 카리타스”(Caritas Internationalis)라는 성청 기관도 도처에서 활동하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우리 형제 주교들의 격려를 받아 빈민 구조에 재산을 아끼지 않으며, 서로 이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범위를 점차로 확대해 가고 있다.


내일의 목표
47. 그러나 이미 공사간에 투자한 금전이나 증여, 대부 등, 이 모든 것이 아직은 넉넉하지 않다. 기아를 극복하고 가난을 몰아내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빈곤의 극복이 아무리 급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종이나 종교나 국적의 차별 없이 누구나 다 타인과 자연의 예속 상태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 명실상부한 자유 세계, 가난한 라자로도 부자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인간 공동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것이다.52) 이것은 다소의 너그러움만이 아니라 많은 자발적 희생과 항구한 노력을 부유층에 요구한다. 현대를 위해 새로운 요청을 일러주는 각자의 양심에 귀를 기울여보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계획된 사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용의가 있는가? 국가가 더욱 광범위한 발전을 추진하도록 더 많은 세금을 바칠 용의는 있는가? 생산자가 더욱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수입품의 가격을 좀더 높여줄 용의는 갖추어졌는가? 후진국을 돕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청춘 시절에 고국을 떠날 각오는 서 있는가? 깊이 반성하자!


연대성의 의무
48. 개인간에 개재하는 연대성의 의무는 국가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선진국은 개발 도상국을 원조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53) 공의회의 이 원칙은 실천에 옮겨져야 하겠다. 어떤 국가가 자기 노동의 대가로서 하느님의 섭리로 받은 선물을 다른 국가보다 먼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국가도 자기만을 위해서 독점해서는 안된다. 모든 국가들이 제 국민을 인간다운 생활 수준까지 향상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또한 전인류의 공동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더욱 좋은 것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개발이 늦은 국가들의 빈곤이 더욱 증대하고 있으므로 선진 국가들이 생산품의 일부를 그들의 필요에 응하여 양보하고 나아가서는 지식과 경험으로써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교육자, 기술자, 전문가, 학자들을 양성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 하겠다.


잉여 재화
49. 선진 국가들의 잉여 재화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후진국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또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옛적에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라던 계명이 오늘에 와서는 전세계에 산재하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득을 보는 사람들은 바로 부유한 사람 자신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부유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해 한다면 드디어 하느님의 제재와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할 뿐이며 또 거기서 어떤 사태가 빚어질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에, 재화로 빛나는 문명도 이기주의에 사로잡힌다면 소유하고 있는 가치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에, 더 좋게, 더 바르게 존재해 보려는 욕망을 희생시켜 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제 밭에 소출이 너무 많아서 어디 쌓아둘지 몰랐다던 부자의 비유는 당연히 이런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네게서 떠나가리라’고 하셨다.”54)


계획의 필요성
50. 이런 노력들이 만족할 만한 효과를 거두려면 산발적이거나 고립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위신이나 권력 때문에 서로 대립해서는 안된다. 현대는 계획적인 노력들의 협력을 요구한다. 계획적인 노력은 선의의 개인들이 기회를 따라 제공할 수 있는 원조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훨씬 좋은 것이다.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현재와 장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면밀한 연구, 목적의 확정, 수단의 선택, 선택된 사람들의 공동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욱 중대한 것은 이러한 계획들이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차원을 넘어서 실현하려는 일에 힘과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즉, 인간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인간의 품위와 힘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세계 기금 제도의 제창
51.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겠다. 세계 성체 대회를 위하여 봄베이에 갔을 때, 본인은 군비에 사용하는 경비의 일부를 세계 기금 조성에 전환하여 빈곤한 국가들을 원조하라고 여러 정부 고위층 사람들에게 요청한 바 있다.55) 당장은 빈곤을 몰아내는 데에 유효하겠고 그것은 또한 인류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 같은 공동 기금 조성으로 표현되고 이것을 수단으로 하는 세계적인 협력 하나만이 모든 민족들 사이의 무익한 대항심을 없애고 평화롭고 효과 있는 대화를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기금 제도의 장점
52. 두 나라나 또는 여러 나라 사이의 지역적인 협약도 물론 지켜야 한다. 이런 협약들이 식민지 시대의 한 많던 예속 관계를 법적 내지 정치적 평등에 입각하는 우호 관계로 승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협약이 세계의 모든 민족들의 공동 협력 계획에 결부된다면 협정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의혹은 사라질 것이다. 재정 원조와 기술 지원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식민지가 되어 정치적 자유의 제한이나 경제적 압박을 당하지나 않을까, 동시에 소수 인간들의 지배권이 강화되거나 뿌리박게 되는 결과가 오지나 않을까 하는 따위의 수혜 국가들의 공포는 감소될 것이다.


세계 기금 창설의 긴급성
53. 또 한편 위에서 말한 세계 기금을 창설한다면 공포심이나 자만심이 조장하던 지금까지의 낭비도 막아주리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사람은 없다. 지금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기아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을 당하며 얼마나 많은 문맹자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가? 또 사람들은 학교다운 학교, 병원다운 병원, 주택다운 주택들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 그런데 공적 사적인 낭비, 국가나 개인의 허영된 지출, 치열한 군비 경쟁이 웬 말이냐? 본인은 이 사실을 명백히 지적할 중한 책임을 느낀다. 너무 늦기 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대화
54. [당신의 교회」(Ecclesiam Suam)라는 첫 회칙에서 이미 희망한 바 있지만, 모든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있어야 하겠다.56) 원조 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에 대화가 성립된다면 제공자의 호의와 능력뿐 아니라 수혜자의 참된 필요성과 수용 능력까지를 고려하여 균형잡힌 원조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진국들이 부채에 억눌려 수익의 대부분을 부채 상환에 소비할 우려는 없어진다. 이자나 상환 기간에 관해서는 쌍방에 서로 무리가 안가도록 증여, 무이자, 싼 이자, 연부 상환 등 여러 가지 적당한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원조 제공자로서는 그 자금이 계약상의 계획대로 상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보장을 받아야 한다. 원조란 게으름뱅이나 기생충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혜국으로서는 내정 간섭이나 사회 질서의 혼란을 당하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독립 국가는 스스로 정책을 세우고 스스로 선택한 사회 구조를 유지하며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자발적 협력 태세로써 강제성 없이 평등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더 인간다운 세계를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화의 필요성
55. 그날 그날의 양식 걱정이 가정 생활 전체를 괴롭혀 여생을 좀 덜 괴롭게 살 수 있는 준비 방법이라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지방에 있어서는 이런 제안이 아주 불가능한 것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도와주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강구해야 하겠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격려해 주어 스스로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함께 일하며 자력으로 진보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이 같은 공동 작업은 물론 합심과 용기와 항구한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도 주저하지 말고 이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확신해야 한다. 빈곤한 민족들의 생활과 후진국간의 화목과 세계의 평화까지도 다 이 문제 해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 공정한 통상 관계
현대의 문제점
56.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국가들을 원조하는 현재의 노력은 기술면에 있어서나 재정면에 있어서나 제법 대단하다. 그러나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상거래 변화로써, 제공된 원조의 대부분이 상쇄되어 버린다면 모든 노력의 효과는 환상에 불과하게 된다. 주었던 것을 도로 빼앗아간다는 인상을 준다면 후진국들의 온갖 희망과 신뢰는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불균형의 증대
57. 고도로 공업화된 국가들은 주로 생산 제품을 수출하지만 저개발 국가들은 원료나 농산물 외에는 수출할 것이 없다. 공업화된 국가들의 제품은 진보하는 기술의 혜택으로 그 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시장도 쉽게 발견한다. 그와 반대로 저개발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일차 산업의 산품들은 급격한 가격 변동 때문에 공업 제품의 가격 상승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 결과로서 공업화에 뒤떨어진 국가들이 국내의 경제 균형을 유지하고 발전 계획을 실천하려면 수출 진흥만이 유일한 방법인데 큰 난관에 부딪히고 만다. 따라서 빈곤한 민족은 날로 더욱 빈곤해지고 부유한 민족은 날로 더욱 부유해지게 된다.


자유주의의 극복
58. 요컨대 자유주의 통상 원칙만으로써는 이제 국제 관계를 조정할 수 없게 되었다. 쌍방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 균형잡혀 있을 때에 한해서 유익할 뿐이다. 그뿐 아니라 진보를 자극하고 노력의 대가를 약속해 준다. 그러므로 이미 공업화된 국가들은 자유 통상 원칙을 정의의 법이라고 인정해 버린다. 그러나 조건이 지나치게 서로 다른 국가간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시장에서 자유로이 형성된 가격은 불공평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거래의 기준으로서의 자유주의라는 기본 원칙이 문제화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국가간의 공정한 통상 관계
59.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가 가르친 교훈은 아직도 귀중하다. 즉, 서로 조건이 지나치게 다른 경우에는 계약의 공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의 합의만으로 넉넉하지 않다. 따라서 자유 합의의 원칙은 자연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57) 본래 개인의 노동 임금에 관하여 가르친 이 원칙은 또한 국제적 국가간 계약에도 적용된다. 과연, 무역 경제는 이제 자유 경쟁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너무나 자주 경제적 독재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자유 무역은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원칙을 따라 행해져야만 비로소 공정한 것이 된다.


새로운 동향
60. 사실 선진 국가들도 이미 위에서 말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들도 국내 경제 내부에서 무제한의 경쟁으로 인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때로는 넉넉히 발전한 분야의 희생을 요구하면서까지 중농 정책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지역적인 공동 시장에 있어서 상거래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 재정, 금융, 사회 정책 등을 통하여 균형 잃은 경쟁으로 후퇴하는 사업들을 도와 매매의 균등한 기회를 마련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제 협약
61. 이 문제에 있어서 두 가지 저울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국내 경제에 대해서 지키고 선진 국가들간에서 허용되는 동일한 거래 원칙이 선진국 대 후진국 사이의 통상 관계에 있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쟁 시장을 아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공정하고 도의적인, 따라서 인간다운 것이 되게 하는 방법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들 사이의 통상 관계에 있어서는 조건이 너무나 다르고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인간적이고 도의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바는 국제 무역에 있어서 경쟁자들에게 적어도 어느 정도 공정하고 평등한 이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평등 조건이 하루 이틀에 얻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논의와 가격 조정에 있어서 기초적인 평등은 있어야 하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 협약을 맺고 아주 광범위하게 여러 국가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런 국제 협약으로써 가격을 조정하고 생산 수단을 보호하며 특정한 산업을 촉진시키는 일반적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간의 상거래를 더욱 정의에 가깝게 하려는 이러한 공동 노력이야말로 후진국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지원인지는 누구에게나 명백한 일이다. 그 효과는 오늘만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극복해야 할 장애:민족주의
62. 그러나 오늘의 인간 사회를 더욱 공평하게 하고 인류의 상호 유대를 더욱 완전하게, 더욱 튼튼하게 하려는 데에 또 하나의 장애가 있다.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주의가 그것이다. 최근에 비로소 정치적으로 독립한 민족들이 방금 얻은 민족의 통일이 아직 견고하지 못하므로 통일을 보호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도, 옛 문화를 지닌 민족들이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자랑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럽기는 하나, 정당한 이 감정도 전인류를 감싸주는 보편적 사랑으로 더욱 완전해져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민족들을 고립시키므로 민족의 참된 이익을 잃게 한다. 특히 국가 경제가 매우 빈약해서, 발전 계획을 실천하려거나 상업적, 문화적 교류를 증진시키며 강화하려면 서로의 모든 노력과 지식과 자금을 집결시켜야 할 국가들에 있어서는 민족주의가 말할 수 없이 해로운 것이다.


인종 차별주의
63. 인종 차별주의는 새로 독립한 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새로 독립한 국가에 있어서 부족이나 정당의 대립 속에 숨어 있는 인종 차별주의는 정의를 크게 해칠 뿐 아니라, 시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 차별주의가 식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건설적인 상호 이해를 방해하였으며 실제로 당하는 모욕에 대해서 심한 원한을 품게 하였다. 인종 차별주의는 또한 후진국들 사이의 상호 협력을 방해하고 국내에 있어서도 개인이나 가족들이 인종이나 피부색 때문에 억울하게도 다른 시민들의 특권 범위에서 제외되고 불가침의 인권마저 무시당할 때마다 불화와 미움의 씨가 되곤 하였다.


공동 세계를 지향
64. 장래를 위협하는 이 같은 여건들은 본인의 마음을 극도로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민족간의 불신과 지나친 이기주의는 언젠가 한번은 통감하는 협력의 욕망과 자라는 연대 의식으로써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저개발 국가들이 인접 국가들과 광대한 하나의 협동 개발 지대를 형성하여 공동 노력으로 각국의 발전을 시작하고 결실을 맺으리라 희망하고 있다. 그리하여 공동 계획을 수립하고 투자를 조정하며 생산을 분담하고 소비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여러 국가나 또는 모든 국가가 형성한 국제 기구가, 필요한 재편성을 단행하여 저개발 국가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갇혀 있는 울타리를 벗어나 고유한 특질을 살리면서 문화적 내지 사회적 진보의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할 계획을 수립하기 바란다.


민족 자결의 방침
65. 목표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세계 민족들의 상호 연대 의식이 날로 효과적인 것으로 되어가느니 만큼 모든 민족이 각자의 장래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주어야 하겠다. 국가간의 관계는 가끔 정당한 힘의 관계였다. 불행하게도 지난날에는 대부분의 관계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서로의 존경과 우정, 서로 제공하는 협력, 각기 양심대로 책임을 지고 공동 발전을 촉진하는 협동 작업으로 국가 관계가 특징지어지는 명랑한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저개발 국가들도 각자의 의무와 권리를 더욱 성스럽게 보호하는,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한몫을 담당하기 바란다. 이들의 요구는 극히 정당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들어주고 실천해야 하겠다.


3. 보편적 사랑
병든 사회
66. 인간 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다. 병의 원인은 자연 자원이 감소되었고 그나마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한 데에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간의 형제적 사랑의 유대가 끊어진 데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남을 받아들일 의무
67. 남을 받아들일 의무는 인간적 연대성의 의무이며 그리스도교적 애덕의 의무이므로 아무리 강조하여도 넉넉히 강조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의무는 외국인을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의 가정들과 문화 단체들이 느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을 따뜻이 받아들이는 가정과 공공 시설이 많아져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먼저 젊은이들의 정력을 약화시키는 고독, 실망, 걱정을 제거해 주어야 하겠고 또 조국의 극빈과 주위의 호화로운 낭비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적으로 불온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부당한 빈곤”58)을 상기하여 투쟁심을 기르거나 폭력 행동에 나아가는 일이 없도록 젊은이들을 보호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마침내 젊은이들을 형제다운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에게 건전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진실하고 효과적인 그리스도교적 애덕과 정신적 가치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유학생들의 비극
68. 많은 젊은이들이 한번은 조국에 더 나은 봉사를 하려고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선진국을 찾아간다. 물론 거기서 고도의 교육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은 너무나 자주, 그들이 자라난 문명 속에서 귀중한 유산으로 물려받은 정신적 보배를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외국 노동자들
69. 조국을 떠난 노동자들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하겠다. 그들은 고향에서 가난하게 사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받는 봉급을 아껴야 하므로 가끔 비인간적인 조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회 감각
70. 다음에는 최근 공업화되어 가는 국가들을 사업 관계로 찾아가는 공장주와 상인들, 그리고 대기업체의 장들과 대표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본국에서 이미 사회 감각에 젖었을텐데 그들이 저개발국에 가서 일할 때에는 개인주의 같은 비인간적인 원칙에로 다시 되돌아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지도적 입장에 선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여 그들이 일하고 있는 그 지방의 사회적 발전과 인간적 진보를 촉진시켜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조직 감각으로 원주민들의 노동을 더 능률적인 것이 되게 하는 방법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 유능한 노동자들을 양성하고 능숙한 기술진과 공장 지도자들을 육성하며 그들에게도 자발적인 기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점차로 중책을 맡겨 오래지 아니하여 그들도 경영의 책임을 분담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적어도 주종 관계가 항상 정의에 입각해야 하며 쌍방에 동등한 의무를 부과하는 공정한 계약이 체결되어야 한다. 끝으로 누구든지, 그 지위야 어떻든지 남의 마음대로 불의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개발 사절단의 파견
71. 기쁜 현상은 후진국들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국제 기구와 상호 우호 기관, 또는 사설 단체들이 파견하는 기술 전문가들의 수가 날로 증가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름지기 “지배자가 아니라 원조자이며 협력자로서 활동해야 한다.”59) 어느 민족이나, 원조하러 온 사람들이 과연 호의를 가졌는지 아닌지, 새로운 기술만을 도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참된 품위를 향상시키려는 것인지 쉽게 알아차린다. 남이 가져오는 것이 형제적 사랑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받는 민족들이 그것을 배격하리라는 것도 의심 없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의 자질
72. 기술의 지식도 필요하지만 사심 없는 형제적 사랑의 표시와 증명도 겸해야 한다. 전문가들        은 민족적인 교만이나 민족 차별의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그 누구와도 친밀히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과 기술이 우월하다고 해서 생활 모든 분야에 걸쳐서 우월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길러낸 문명이 비록 휴머니즘의 요소를 풍부히 내포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유일한 문명도 아니려니와 다른 민족들의 문명을 배제할 만큼 그렇게 훌륭하지도 못하며, 아무 수정도 가하지 않고 그대로 수입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파견되는 사람들은 우선 자기를 받아들이는 민족의 역사와 재능과 문화 가치를 알아내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문명이 연결되어 쌍방에 큰 성과를 성취케 할 것이다.


문명과 문명의 대화
73. 개인과 개인 사이에 있어서와 같이 여러 민족들의 문명과 문명 사이에 있어서도 성실한 대화가 형제애를 불러일으켜 준다. 만일 모든 국가들의 고급 관리들로부터 말단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형제적 사랑으로 세계적으로 인류의 단일 문화를 형성하려고 진실히 원한다면 인류의 발전 계획도 공동 노력을 위하여 여러 민족들을 더욱 친밀히 규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물질이나 기술만의 대화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민족들에게 경제적 발전과 정신적 성장의 수단까지 제공된다면 그들의 대화는 더욱 효과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또 기술자들이 교육자 구실을 하고 그들의 가르침이 경제적 발전뿐 아니라 인간적 성장을 도모하는 정신적이며 도덕적인 요소를 구비한다면 대화의 성과는 더욱 커진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라면 원조가 끝난 다음에도 영구히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관계가 얼마나 세계 평화에 유익한가를 누가 모르겠는가?


젊은이들을 향한 호소
74. 평신도들의 선교 활동을 권장하신 비오 12세의 요청을60) 많은 젊은이들이 벌써부터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호응하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자원으로 후진국의 발전을 위한 공적 사적 여러 기관에 참가하여 협력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떤 국가에서는 “병역” 의무를 “사회 봉사” 또는 더 짧게 표현해서 “봉사”로 부분적으로나마 대체하고 있음을 알고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이런 계획과 이것을 실천하는 선의의 사람들을 본인은 마음으로부터 축복하는 바이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애타는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61)
아직도 가난 속에서 배움에 굶주리고 불안한 생활을 계속하는 형제들의 운명을 보고도 무관심할 수는 없다. “이 군중이 보기에 참 안되었다”62) 하신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마음도 고통을 동정할 줄 알아야 하겠다.

기도
75. 인류 전체가 이같이 큰 불행을 의식하고 지력과 마음을 다하여 불행 제거에 노력하도록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이가 기도해야 하겠다. 이런 기도에는 각자의 역량대로 인류의 저개발 상태를 거슬러 싸우려는 단호한 결심이 따라야 한다. 개인이나 사회 단체나 국가가 모두 다 형제처럼 서로 손을 맞잡고 강자는 약자의 성장을 도와주고 그러기 위하여 모든 재능과 열의를 다하고 사심 없는 사랑으로 협력하기 바란다. 진실한 사랑에 지배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게 빈곤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서 마침내 결정적으로 빈곤을 쳐이길 줄 안다. 이 사람이야말로 “이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쁨의 등불을 밝혀주고 빛과 호의를 쏟아주며 모든 국경을 넘어서 가는 곳마다 형제다운 얼굴과 친구다운 얼굴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여정을 계속하는 사람이다.”63)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

 
결론
76. 국가들 사이에 개재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이 지나치면 긴장과 불화가 생기며 드디어 평화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본인이 평화를 위해서 국제 연합을 방문하고 여행에서 돌아와 공의회 교부들에게 말한 바와 같이 “발전 도상에 있는 민족들의 처지야말로 우리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세계의 무수한 빈민들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욱 진실하고 더욱 효과적이며 더욱 적극적인 것이라야 하겠다.”64) 우리가 빈곤과 부조리를 거슬러 싸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내지 윤리적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전인류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다. 힘과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면 그것이 평화라고는 할 수 없다. 평화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다.65)


고립에서의 탈출
77. 각 민족 자신이 그 발전의 주인공이므로 발전의 모든 책임도 민족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서로 고립되어 있어서는 발전할 수 없다. 상호 원조를 위한 약소 국가끼리의 지역적 조약이나, 원조 유치를 위한 더욱 광범위한 협정이나 일정한 활동 계획을 위한 국가 집단 사이의 더 중대한 협정들은 평화로 향한 발전의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효과적 국제 권위
78. 이같이 전세계를 총망라하는 국제적 협력은 이런 협력을 준비, 조정, 관리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보편적 법질서를 확립할 만한 기관의 존재를 요구한다. 인류의 발전을 위한 공동 작업에 이미 착수한 여러 기관들을 본인은 마음으로부터 격려하는 바이며 그들의 권위가 더욱 커지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뉴욕 유엔 대표들과 얘기할 때에도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의무는 몇몇 특정 국가뿐 아니라 모든 국가들을 형제로 만드는 일이다… 법적 분야나 정치적 분야에 있어서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려면 어떤 세계적인 권위를 점차로 확립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66)


더 나은 세계는 꿈이 아니다
79. 어떤 이는 이 같은 희망을 한낱 몽상에 불과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오히려 그들의 현실주의에 무슨 결함이 있어 보인다. 더욱더 긴밀한 형제적 유대를 가지고 살아가려는 현대의 조류를 그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현대는 무지와 오류 속에서도, 또 윤리적으로 후퇴하고 구원의 길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부지중에 천천히 창조주께로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인간다운 세계를 향한 노력은 수고와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대한 사랑과 형제들의 이익 때문에 당하는 역경은 인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속죄하는 구세주의 희생과 자신의 희생을 일치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고”67)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는 데에 크게 공헌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공동성
80. 이 길은 모든 사람이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걸을 길이기에 본인은 정세의 중대성을 지적하고 해야 할 일의 긴급성을 모든 이에게 깨우쳐줄 의무를 느낀다. 행동할 시기는 지금이다. 탓없는 어린이들의 무수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 빈곤에 신음하는 수많은 가정들의 생활이 더욱더 인간다운 조건을 갖출 수 있느냐 없느냐, 마침내 세계의 평화와 문명의 장래가 보장되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렇게 중대한 책임은 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지워져 있다.


마지막 호소
가톨릭인들에게
81. 그러므로 본인은 먼저 우리 자녀들에게 호소한다. 발전 도상에 있는 국가에 있어서도 다른 국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은 현세적 질서의 쇄신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 이 일에 있어서 따라야 할 윤리 법칙을 가르치고 유권적 해석을 내리는 것은 성직계의 의무이겠지만 평신도들은 피동적으로 지침이나 명령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구상과 계획으로 사람들의 정신과 풍습, 사회 공동체의 법제와 조직을 그리스도화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해야 하겠다.68) 사태는 변하여야 하겠고 현재의 생활 조건은 근본적으로 쇄신되어야 하겠다. 이것을 실천할 때에는 쇄신을 복음의 정신으로 교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선진 국가들의 가톨릭 신자들은 후진국의 곤란을 극복하려는 시민적 또는 종교적 기관들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적극 참여하여 자신들의 경험과 원조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과연 평신도들이 즐겨 모든 민족들 가운데 정의와 공평의 도덕률을 확립하기 위하여 아무런 수고도 아끼지 않는 선봉대가 되어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에게
82.형제들인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공동 노력을 더욱 확대하여 사람들의 지나친 이기심과 교만심을 없애고 시비와 적의를 풀어주고 야심과 부정을 제어하여 이웃을 형제처럼 사랑하고 도와주는 더욱더 인간다운 생활의 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봄베이에서 여러 비그리스도교에 속하는 형제들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을 아직도 감명깊게 상기하고 있지만 그들도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생활 조건을 마련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주기 바라는 바이다.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83.마침내 문명의 발전과 재화의 증가 없이는 평화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아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한마디하고자 한다.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국제 기관에서 또는 신문, 잡지의 발행인으로서, 또는 교육자나 지도자로서 각기 직책상의 위치에서 새 세계 건설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비추시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시어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모든 민족을 권유할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열심히 기도드리는 바이다. 빈곤에 신음하는 민족들에게 대한 사랑을 어려서부터 가지게 하는 것은 교육자 여러분의 책임이다. 신문인 여러분은 민족들 사이의 상호 협조 계획과 아울러 사람들이 양심의 평온을 잃을까봐 쉽게 외면해 버리는 빈곤의 실정을 우리 눈앞에 전개시켜 주기 바란다. 진수 성찬의 부스러기나마 기다리는 듯 빈민들이 문전에 서 있다는 것만이라도 부자들이 알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들에게
84. 국가 지도자 여러분은 전국가를 동원시켜 인류와의 연대성을 가지고, 자신의 사치와 낭비를 희생시킴으로써만 인류의 발전과 평화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기 바란다. 또한 국제 기관에 파견된 국가 대표 여러분은 위험하고 무익한 무력의 대립을 제거하고 평화적이고 우호적이며 사심 없는 공동 협력 체제를 수립하여 전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더 높은 계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색하는 사람들에게
85.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흔히 사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충분히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사색하는 사람, 명철한 사람, 가톨릭인, 그리스도인, 신을 숭배하는 사람, 절대적인 진리와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 요컨대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호소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빌려 “찾으라, 곧 얻으리라”69)고 간절히 요청하는 바이다.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고 사물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 사랑의 정을 더욱 넓혀 참으로 보편적인 인류 공동체 안에서 형제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바란다.


모두 다 활동하자
86. 빈곤에 신음하는 민족들의 호소를 들었으니 이제 우리는 모두 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겠다. 우리는 모두 다 참되고 유익한 진보를 촉진하는 사도들이다. 이러한 발전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얻어지는 재화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한 경제관이 수립되고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이 제공되고 형제적 사랑이 꽃피어 하느님의 섭리를 표현할 때에 참된 발전이 성취될 것이다.


마지막 축복
87. 마지막으로 본인은 신자 여러분에게 마음으로부터 축복을 보내는 동시에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형제적 사랑으로 우리가 하는 일에 힘을 합해주기 바라는 바이다. 오늘에 있어서 발전은 곧 평화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니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누가 아끼려 하겠는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외치는 애절한 호소에 기꺼이 응답해 주기 바란다.

 

 

 

로마 성 베드로좌에서,
교황 재위 제5년,
1967년 3월 26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

교황 바오로 6세

 

* 출처: http://cafe.naver.com/panzer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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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조직신학 절룩거리는 그리스도 / 카릴 하우스랜더 2 한기연 2019.05.18 87
공지 가정사회소식 지난 18년간 매일 평균 7명씩 산업재해로 사망 8 한기연 2019.05.11 40
공지 기독교윤리 우리 인류의 '마지막 싸움' / 신영전 23 한기연 2019.01.14 127
공지 가정사회소식 남성, 여성 아닌 제3의 성(간성) 3 한기연 2019.01.11 234
공지 교회사 웨슬리 [표준설교 정신] 이어 받은 기도문들 52개 pdf파일 file 한기연 2018.11.22 348
공지 조직신학 아우슈비츠에서의 하느님의 여성적 얼굴 1 file 한기연 2018.08.18 1234
공지 기독교윤리 빨간 지구 29 file 한기연 2018.08.17 228
공지 기독교윤리 파시즘의 망령 -- 극우 기독교의 가짜뉴스 -- 소수자, 난민, 무슬림 혐오 28 file 한기연 2018.06.30 336
공지 설교 및 예화 한반도 평화의 위대한 여정 시작되었다 17 한기연 2018.04.23 239
공지 가정사회소식 미투의 혁명, 혁명의 미투. 남성의 탄생 8 한기연 2018.04.19 226
공지 기독교윤리 <기후재앙에 대한 마지막 경고>(2010) pdf파일 9 file 한기연 2017.12.04 10379
공지 기독교윤리 <기후붕괴의 현실과 전망 그리고 대책> (2012) pdf 파일 file 한기연 2017.11.23 10571
공지 기독교윤리 <생태계의 위기와 기독교의 대응>(2000) pdf 파일 file 한기연 2017.11.10 11598
공지 기독교윤리 기후변화와 생태신학의 과제 (2017) 30 file 한기연 2017.11.04 12092
공지 가정사회소식 노령화: 남은 시간 7-8년뿐, 그 뒤엔 어떤 정책도 소용없다/ 장덕진 10 file 한기연 2016.04.26 19175
공지 역사적 예수 기후변화와 대멸종 시대의 예수의 복음 5 file 한기연 2015.11.12 18971
공지 기독교윤리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신학적 의미와 사목 과제 15 file 한기연 2015.10.06 21177
공지 역사적 예수 홍정수 박사가 말하는 예수 르네상스 (강의 동영상) 한기연 2015.04.01 25591
공지 기독교윤리 세월호참사 - 앉아서 기다리면 또 다시 떼죽음뿐 133 file 한기연 2014.04.18 37931
공지 기독교윤리 기후붕괴의 현실과 생태대를 향한 출애굽 - 녹색의 세계관과 생태주의 인문학 아카데미 29 file 한기연 2013.11.12 33958
공지 기독교윤리 기후붕괴 시대의 교회의 역할 17 file 한기연 2013.08.24 34472
공지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와 예수 살기 / 하늘이 낸 참사람들 11 file 한기연 2013.03.13 34362
공지 기독교윤리 엘리 위젤, <하나님에 대한 재판> 서평 1 file 한기연 2012.07.12 6737
공지 기독교윤리 크리스천 파시스트들과 한국 교회의 평화운동 자료 33 한기연 2012.04.24 57325
공지 조직신학 하나님이 계시냐고요 / 담임선생님 예수 / 홍정수 4 한기연 2012.04.11 89389
공지 기독교윤리 기후붕괴와 대멸종 시대에도 하나님은 전능하며 예수는 구세주이며 교회는 거룩한가 / 김준우 31 file 한기연 2011.12.12 97606
공지 역사적 예수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는 것 / 김준우 12 file 한기연 2011.10.23 62161
공지 조직신학 나의 종교경험 -> 나의 복음 -> 나의 신학을 일관성 있게 한 마디로 정리하기 4 한기연 2011.08.21 124933
공지 실천신학 대안교회의 가능성 / 한성수 1 file 한기연 2011.08.02 128808
공지 기독교윤리 핵위험 사회 치닫는 대한민국 1 73 한기연 2011.03.28 174282
공지 조직신학 감리교 종교재판의 전말/ 동작동 기독교와 망월동 기독교 6 file 한기연 2010.11.22 141904
공지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 담론의 종교문화사적 의미 / 김준우 4 file 한기연 2010.11.14 145021
공지 역사적 예수 신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씀 7 한기연 2010.10.28 129286
공지 기독교윤리 2015년까지 모든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라! 14 file 한기연 2010.10.02 16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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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조직신학 예수, 그는 우리에게 대속자인가 선생인가 / 홍정수 2 한기연 2010.04.12 155409
공지 조직신학 생명과 평화를 여는 2010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 1 한기연 2010.03.29 144922
공지 PBS Frontline: From Jesus to Christ _ The First Christians (1) 1 한기연 2010.03.27 1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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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기독교윤리 두달만에 - 북극 지역 빙하의 크기 변화 2009/9 22 한기연 2009.09.19 182315
공지 가정사회소식 소득 5분위 배율 비교 25 file 한기연 2009.09.13 18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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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북극해의 해빙 속도와 기후변화, 한반도 가뭄과 사막화 위기 19 file 한기연 2008.05.14 201450
공지 기독교연구소 한국기독교연구소 브로슈어 file 방현섭 2008.03.13 166875
공지 역사적 예수 교회개혁을 위한 25개 신학논제 - 김준우 5 한기연 2007.10.20 182176
공지 실천신학 목사 개(dog)론 / 축도유감 / 그 안타깝고 아쉬운 오르가즘의 하느님 / 한성수 3 한기연 2004.08.30 146536
공지 실천신학 생명의 양식으로서의 성만찬/ 혼인주례자 상담체크 리스트 1 file 한기연 2003.09.30 29466
1046 기독교윤리 21세기판 '전환시대의 논리' /이권우 한기연 2019.07.02 35
1045 환경소식 한국 환경정책의 모순 / 피게레스 한기연 2019.06.14 11
1044 환경소식 4대강 삽질, 그 후 십 년 한기연 2019.06.0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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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2 교회사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 한기연 2019.01.01 74
1041 교회사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1961) 한기연 2019.01.01 68
1040 교회사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 한기연 2019.01.01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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