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목회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오늘날처럼 세계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기후가 붕괴할 정도로 인류문명 전체가 짙은 어둠과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때에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은 차치하고라도 감독회장 선거 문제처럼 사소한 문제조차 신앙적으로, 최소한 세상적인 기준의 합리성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한국감리교 사태의 근본 원인만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오늘날처럼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급속도로 몰락하는 이유는, 1) 기독교의 교리들이 목회자 자신들에게만이 아니라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으며, 2) 기독교의 교리들이 살아낼 수 없는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신학자 로널드 사이더가 미국의 "중생한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들을 인용한 것에서 여실히 나타나듯이, 거듭났으며 성령충만하다는 사람들이 결코 비기독교인들보다 도덕적이지 못하며, 이혼, 아내구타, 헌금, 인종차별에서 훨씬 더 심하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몰락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교회성장을 주도해왔던 오순절교단들의 "성공과 번영의 복음"은 이제 세계경제가 고용없는 성장으로 바뀌게 됨으로써 그 수명이 다했으며, 최근 보도된 것과 같이 크리스탈 처치의 부동산 매각사태가 교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 마디로, 한국의 기독교인 대다수를 사로잡고 있는 기독교 가치는 1) 4영리 교리에 바탕을 둔 저 세상 천국, 혹은 2) 부와 귀(성공), 그리고 건강이라는 3복이다.
기독교인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이런 신앙 안에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부재하거나 왜곡되어 있고,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4영리 목회나 3복 목회는 공포의 심리학 혹은 욕심의 전술일 뿐,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입각한 기독교 본래의 복음은 아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목회(예수 목회)의 본은 공포가 아니라 자유에서, 그리고 경쟁적 욕심보다는 섬김과 연대에서 오는 큰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다음에서, 간단히, 목회의 3 패러다임을 비교해 본다.
구분 4영리 목회 3복 목회 예수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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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구원) 죽음 이후의 영생 물질적 축복 잔치에서 오는 기쁨
경쟁에서 이김
적수 죽음의 공포, 사탄 이해 엇갈리는 모든 사람들 지배자 세상(가치기준)
무기 순수한 믿음 열성적 믿음 예수 살아내기와 친구
신학 원죄와 대속의 보혈 적극적 사고 예수가 앞서 가신 삶
영성 순수성(배타성)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 세상 넘기
소망 중의 인내 (가끔씩은 때를 기다리는 마음 다스리기) 주체성, 전우애
하나님 의로운 하늘 심판자 복덕방망이 예수의 길 끝에서 만난다
예수 죽으러 오신 신의 아들 이름뿐 & 주술적 도구 기득권 없는 자들에게 보인
"사람됨의 길"
성령받음 관심(미래의 보장) "나도.."의 외형적 확인장치 예수의 말씀에 대한 충성
교회상 구원의 방주 축복의 통로 잔치집
장애물 죽음에 대한 공포 상실 기도응답은 상위 8%뿐. "세상" 유혹이 너무 크고
저 세상에 대한 관심의 축소 이것이 허상임을 알아차리기 앞서 사는 자가 소수자
시작했다.
목회자 본을 보일 필요 없음 부자, 큰 교회라야 함. 예수의 삶의 본을 보여야 함
예수에 대한 믿음과 교리 강조
예수목회는 무엇보다 목회자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지향한다.
둘째로 예수목회는 예수의 복음이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1) 말이 되는 복음, 2)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낼 수 있는 복음을 추구한다.
홍정수 박사는 2014년 가을의 어느 주일 설교에서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새마을 목회"와 "복지 목회"의 모델과 완전히 다른 "예수 목회"에 대해 언급했다. 새마을 목회란 예수 믿으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에 초점을 맞춘 목회이며 복지 목회란 교회가 곧 사회복지 시설인 것처럼 약자들을 돌보는 일에만 몰두하는 목회를 말한다.
예수목회에서 하나님을 "예수의 길 위에서 만난다"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에수의 길 끝에서만 만나지는 것은 아닌데...길 위에 올라선 초기에 만나지는 사람도 있고 중도에서 만나지는 사람도 있다고 봅니다.